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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현대물
로즈 앤 스노우
작가 : 쿠페
작품등록일 : 2018.12.31

옛 동료들에게 쫓기게 된 두 킬러의 이야기

 
7
작성일 : 18-12-31 23:51     조회 : 289     추천 : 0     분량 : 59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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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은고딕 나눔고딕 돋움 굴림 궁서 바탕
13 15 17 19 21

 

  이상한 남녀에게서 간신히 해방된 에셔는 울적함을 달래기 위해 벨 마르셀 1구역에서 잔을 기울이고 있었다. 재난이 따로 없는 날이었다. 얻어맞고 기절했을 뿐 아니라 그 무시무시한 악녀에게 협박당해 강제로 그들의 길 안내를 맡아야 했다. 에셔는 살면서 그런 봉변을 당할 날이 많지는 않을 것이라고 억지로 스스로를 위로했다.

  그때 지상으로 통하는 문이 열리고 사내 몇 명이 들어왔다. 가게에 들어온 손님은 대여섯 명의 남자였다. 대부분은 검은 단색의 수수한 슈트를 입고 있었지만 유독 눈에 띄는 차림을 한 사람이 한 명 있었다. 노란색을 기조로 한 개량 창파오를 걸치고 장발을 깔끔하게 뒤로 넘긴 남자는 콧등에 테 없는 서클 선글라스까지 걸치고 있었다. 외지인인 게 분명한데다 건실한 직업에 종사하는 인물로는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그 순간 에셔의 눈을 사로잡은 것은 남자가 쓰고 있는 그 선글라스였다. 순진하게도 에셔는 그 선글라스가 무척 멋지다고 생각했고, 교활하게도 그것이 자신에게도 썩 어울릴 거라고 생각했다.

  그 남자가 이들의 리더라고 생각한 에셔는 건들거리며 그들에게 다가갔다. 방금 전까지 어떤 꼴을 당했었는지는 이미 기억에서 까맣게 지워진 상태였다.

  “거기 신사 분들. 이런 누추한 곳에서 뭘 찾으시나?”

  황색 창파오의 남자는 에셔를 바라봤지만 에셔는 선글라스 안의 눈동자가 어떤 빛을 띠고 있는지 읽을 수 없었다. 남자가 에셔를 인식한 것은 분명했지만 그가 입 밖으로 꺼낸 말은 대답이 아니었다.

  “이곳 직원이시오?”

  건조한 목소리였다. 너무나 몰개성하고 평이하게 발화된 나머지 에셔는 하마터면 자신이 그의 질문을 들었다는 사실을 깜빡 놓칠 뻔했다. 접객을 별로 해보지 않은 초짜 웨이터라면 당장 도망가고 싶어질 수준의 무뚝뚝한 반응이었지만 에셔는 당황하지 않았다. 그의 관점에서 남자의 말투는 오히려 멋지고 쿨한 말투였다.

  “아뇨, 난 직원은 아니오. 그냥 단골이지. 이 동네엔 처음이신가?”

  상대의 말투를 얼핏 따라해 봤지만 상대는 그런 태도에 특별히 감동받은 것 같아 보이지 않았다. 그는 아무 대꾸도 없이 선글라스를 낀 눈으로 가게 내부를 슥 훑었다. 다른 사람은 아랑곳없이 그저 구경하는 듯한 태도였다. 살짝 조바심이 난 에셔가 슬쩍 그를 부추겼다.

  “무슨 일로 방문했는진 모르겠지만 나를 먼저 찾은 건 정말 잘한 거요. 이 가게는 꽤 복잡하지만 나는 타일 하나에 이르기까지 빠삭하게 알고 있거든. 찾으시는 게 뭐든 말만 하쇼.”

  “그렇소?”

  처음으로 남자가 반응을 보이자 에셔는 속으로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척 보기에도 남자는 도무지 이런 거리가 익숙한 사람 같지 않았다. 휴가를 맞아 놀러온 외지에서 조금 위험한 놀이를 해보고 싶어 기웃거리는 부잣집 도련님이 틀림없었다. 조금만 구슬리면 홀랑 속여먹을 수 있으리라. 에셔는 입에 발린 직업적 멘트를 늘어놓았다.

  “그렇고 말고. 찾는 게 뭐요? 게임? 약? 여자? 뭐든 안내해주지.”

  “잘 됐군. 나는 여자를 찾고 있소.”

  “그렇군! 역시 그럴 거 같더라니. 따라오쇼. 최고의 미녀를 소개해주지.”

  “내가 찾는 건 미녀가 아니오.”

  “음? 그럼 어떤…….”

  의아해하던 에셔의 말이 멎었다. 문이 열고 들어온 일단의 검은 남자들 때문이었다. 들어오자마자 노란 옷의 남자와 에셔를 둘러싸고 선 남자들의 수는 불어나는 걸 멈출 기세를 보이지 않았다. 순식간에 수십 명의 남자들이 1구역 홀을 메웠다. 불온한 기운을 느낀 이용객들이 불안한 듯 눈치를 살폈다. 한 순간에 그 공간을 거느리게 된 노란 옷의 남자는 주위에 도열한 남자들을 선글라스 안의 보이지 않는 눈으로 슥 훑었다. 그 시선이 향하는 끝에는 에셔가 있었다. 에셔는 깨달았다. 그는 어수룩한 먹잇감 따위가 아니었다. 오히려 절대로 건드려서는 안 되는 유형의 인간이었다. 식은땀을 흘리기 시작한 에셔에게 남자는 여전히 건조한 말투로 말했다.

  “빨간 여자와 하얀 남자. 그들에게 나를 안내하시오.”

 

 

  “무슨 짓을 저지른 거야?”

  십여 분만에 돌아온 셴리는 로제를 향해 다짜고짜 퍼붓듯 물었다. 그녀의 표정과 목소리를 살피던 블랑코는 셴리가 ‘화를 내고 있다’고 단정했다. 소파에 몸을 던진 셴리는 이마에 손을 얹고 곱씹듯이 말했다.

  “해독할 수 없었어.”

  “뭐?”

  “해커 다섯 명이 달라붙었어. 어지간한 기업 데이터뱅크도 하루면 털어낼 수 있는 자들이야. 그런 인원들이 메모리칩 하나를 읽을 수 없다고 단정했어. 상식적으로 말이 안 되는 상황이라고.”

  셴리가 인상을 찡그리며 로제를 바라봤다.

  “너 대체 뭘 건드린 거야?”

  로제는 침울한 표정으로 셴리에게 그간 있었던 일을 대략적으로 털어놓았다. 셴리는 극도로 화가 난 사람이 구사할 수 있는 모든 언어적 기교를 지극히 냉정한 어조로 5분여에 걸쳐 피로했다. 블랑코는 로제의 성질머리가 어디서 온 건지 알 것 같다고 생각했고 로제는 지금 이 순간을 피할 수 있다면 누아르와 마주 앉아서도 쾌활하게 차를 홀짝일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5분간의 신랄한 비난을 마친 셴리가 물었다.

  “그래서 너흰 지금 너희의 전 상사에게 쫓기고 있다는 거야?”

  “사실상 조직 전체에게 노려지고 있다고 봐야 하지 않을까? 지금쯤 우리가 살아있다는 게 알려졌을 테니까.”

  블랑코의 대답에 로제가 무언의 긍정을 보냈다. ‘잘하는 짓이다’라는 표정을 지어서 로제를 한 번 더 기죽게 만든 셴리는 턱을 받치고 앉아 맘에 들지 않는 듯이 중얼거렸다.

  “여기에 너흴 숨겨줄 순 없어. 벨 마르셀은 중립구역이니까. 이곳이 불가침일 수 있는 이유는 어떤 대단한 권위에 의한 게 아니라 전적으로 위험한 도박을 하지 않았기 때문이야. 너흴 허용하는 순간 균형은 깨지고 벨 마르셀의 중립성이 위협받을 거야. 매니저로서 그렇게 둘 순 없어.”

  “이해해.”

  로제가 체념처럼 대답했다. 그러나 셴리의 말은 끝나지 않았다.

  “하지만 나 개인으로는 너흴 도와주겠어. 이곳에 숨겨줄 수는 없더라도 어떻게 움직이는 게 좋을지 정도는 감을 잡을 수 있게 해주지.”

  “왜 갑자기 우릴 도와줄 생각이 든 거야?”

  “그 개자식이 내 동생을 죽이게 둘 순 없으니까.”

  블랑코가 나지막이 휘파람을 불었고 로제는 감동한 눈으로 셴리를 쳐다봤다. 셴리가 질색하며 담뱃대를 지팡이처럼 휘둘렀다.

  “시끄러. 그런 소릴 듣자고 도와주는 게 아냐.”

  눈썹을 찌푸린 셴리는 담뱃대로 로제의 미간을 찌르듯 겨누었다.

  “이번에 널 도와주는 건 너에게 진 빚이 있기 때문이야. 피로 피값을 치르는 거니까 적당한 변제가 되겠지. 명심해. 이걸로 난 너에게서 손을 뗄 거야. 네가 여길 나가서 무슨 짓을 하던, 혹은 당하던, 나는 신경 쓰지 않겠어.”

  눈앞에 겨눠진 담뱃대를 멀뚱히 바라보던 로제는 셴리에게 성큼 다가서며 그녀를 껴안았다. 돌발적인 로제의 행동에 기겁한 셴리는 진저리를 치며 로제를 떼어놓으려 했지만 로제는 셴리의 목을 감은 팔을 풀지 않았다. 몸에 잔뜩 힘을 주던 셴리는 이내 체념한 듯 못마땅한 얼굴로 로제가 하는 짓을 내버려두었다. 난데없는 포옹은 몇 초의 시간이 흐르고 이윽고 셴리가 로제를 밀어낼 때까지 지속되었다.

  “됐어. 이제 그만해.”

  로제를 떼어낸 셴리는 머리를 쓸어 올리며 지친 듯한 표정을 짓더니 느닷없이 테이블 위의 그릇과 식기를 밀어 엎질렀다. 블랑코가 기겁했지만 셴리는 그녀의 분노와 폭력성을 드러내기 위해 그런 행동을 한 건 아니었다.

  셴리가 테이블 사이드를 교묘하게 어루만지자 구동음과 함께 테이블 위에 디스플레이와 터치 패널이 표시됐다. 로제와 블랑코가 지금껏 평범한 테이블이라고 여겼던 것은 사실 특수한 형태의 컴퓨터였던 것이다. 테이블 한 구석에 USB를 꽂은 셴리는 빠른 손놀림으로 터치 패널을 조작하기 시작했다. 이윽고 원하는 정보를 찾아낸 셴리는 디스플레이에 손을 얹고 그것을 밀치듯이 흩뿌렸다. 길게 뻗은 테이블 위로 가상의 데이터 조각들이 미끄러졌다. 그 중 하나에 눈을 고정시킨 로제가 물었다.

  “이건 무슨 지도야?”

  “너희가 가야 할 곳.”

  셴리가 화상에 펼쳐진 지도를 잡고 끌자 해상도가 확대되며 테이블을 가득 메웠다. 지켜보던 블랑코가 툭 내뱉었다.

  “호엘로 시(市)잖아?”

  “메모리칩을 해독하진 못했지만 아무런 소득이 없었던 건 아냐. 메모리칩에 사용된 보안은 오래 전에 사장된 형태의 것이었어. 잘 짜여졌지만, 진즉에 유행이 지난 방식이지. 이걸 설계한 프로그래머는 아직도 이런 형태의 프로토콜을 즐겨 쓰는 레트로한 감성의 소유자일 거야. 다행히 우리는 어지간한 해커들의 신상은 파악하고 있어. 이력, 사상, 성격 등을 베이스로 이놈에 대해 알만한 후보들을 추려봤더니… 어쩌면 이걸 만든 장본인일지도 모르는 작자를 발견하게 됐지.”

  셴리가 빠르게 패널을 조작하자 화상 위로 한 남자의 프로필이 떠올랐다.

  “제페토 알레한드로. 지금부터 약 두 세대 전의 해커들 사이에선 전설로 통하던 양반이야. 이십 년 전 국세청 해킹과 피노키오 바이러스 사건이 이 자의 작품이지. 요즘엔 퇴물이라는 평판이었지만 이 보안을 설계한 게 이 자가 맞다면 그 평가도 수정되어야겠네. 한창 해커로 활동할 당시의 이름은…….”

  “닥터 인디고.”

  로제의 말에 셴리가 눈썹을 치켜올렸다.

  “아는 사람이야?”

  “조직원이야. 한때 정보기술의 스페셜리스트로 잘 나갔던 킬러고. 능력은 있지만 방식이 거친 걸로 유명했어. 장관급 요인을 암살하기 위해 국가 경제를 잠깐 마비시켰으니까 어느 정도인지 알 만 하잖아?”

  “……그건 처음 듣는 사실이네. 하지만 그렇다면 이 자가 이 일에 관여했을 가능성은 더 커진 셈이네.”

  “인디고가 이 칩을 만들었다는 거야?”

  “확실친 않지만 적어도 단서를 가지고 있는 자일 가능성은 높지.”

  블랑코가 고개를 끄덕였다. 셴리는 낭비 없는 동작으로 테이블 구석에서 종이를 꺼내 어딘가의 주소를 적었다.

  “그가 마지막으로 파악된 장소는 산 호엘로야. 호엘로에 도착하면 이 주소를 찾아가. 내 이름을 대면 도와줄 거야.”

  종이를 받은 로제가 그것을 곱게 접어 품에 넣었다. 블랑코가 솥뚜껑만한 손바닥을 주먹으로 두드리며 중얼거렸다.

  “좋아. 그럼 정해진 거지? 당장 출발하면 되겠네. 대금은 어떻게 주는 게 좋아?”

  “계좌를 남겼어. 금액은 따로 청구할 테니까 사흘 안에 보내도록 해. 하루라도 늦으면 너희 상사 쪽에 정보를 팔아버릴 줄 알아.”

  로제는 자리에서 일어나 셴리를 보고 섰다.

  “여러모로 고마워, 언니.”

  “집어 치워. 그런 말 듣자고 하는 게 아니니까. 말해두겠지만 이걸로 용서받았다거나 하는 생각은 하지도 마. 난 너를 용서한 적 없어. 애초에 내 권한도 아니지만 그런 권한이 있다고 하더라도 행사하지 않을 거야. 넌 엄마를 배신했어.”

  “…….”

  로제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셴리는 그런 로제를 묘한 시선으로 보다가 덧붙였다.

  “하지만….”

  “응?”

  “네가 여기서 죽는다고 해도 엄마가 기뻐하지 않을 거란 것도 알아.”

  “…….”

  “내뱉기도 부끄러워지는 말은 안 하겠어. 내 정보 헛되게 쓰지 마.”

  블랑코는 셴리를 다시 한 번 껴안으려다 담뱃대에 얻어맞은 로제를 보며 이럴 땐 어떤 표정을 지어야 할지 고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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