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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현대물
로즈 앤 스노우
작가 : 쿠페
작품등록일 : 2018.12.31

옛 동료들에게 쫓기게 된 두 킬러의 이야기

 
4
작성일 : 18-12-31 23:49     조회 : 278     추천 : 0     분량 : 39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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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은고딕 나눔고딕 돋움 굴림 궁서 바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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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벨 마르셀은 소위 악당들의 쉼터였다. 가게를 세운 초대 점장에게는 모종의 신념이 있었는데, 세상 모든 사람들에게 그렇듯 왈패들에게도 그 나름의 있을 곳이 필요하다는 것이었다. 한때 직접 어둠의 세계에 몸을 담그기도 했던 그는 술집을 열고 그곳을 중립지역으로 선포했다. 주인의 입장을 무시하고 가게의 이권을 탐내던 무리들과 그들의 적에 해당하는 다른 패거리들이 몇 차례쯤 피바람을 만들어낸 후에야, 각 세력의 우두머리들은 어디에도 속하지 않는 영역이 한 두 군데쯤 있어도 나쁘지 않겠다는 생각을 할 수 있었다. 고도의 정치적 제휴와 협상만큼이나 진지한 눈치싸움이 계속되는 틈을 타 벨 마르셀은 중립지역으로서의 위치를 굳혀갔고 그렇게 살인자와 도둑과 뜨내기들을 위한 쉼터가 생겨났다, 모든 조직이 공유하는 영역이라는 특수성 때문에 가게에는 별의별 군상들이 모여들었다. 가진 거라곤 술값보다 양심을 싸게 치는 계산머리밖에 없는 건달들과, 그런 건달들을 고용하고자 하는 불한당들과, 그들을 등쳐먹으려는 사기꾼이 한데 모여 있는 수라장. 그것이 벨 마르셀이었다.

 

 

  블랑코는 난감해하고 있었다. 지하에 들어선 직후 에셔에게 수고했다는 식의 공치사를 덧붙여 대충 떼어내고 돌아서자 로제가 보이지 않았다. 인파에 휩쓸렸나 싶어 잠시 제자리에서 기다려 보았지만 자줏빛 연기 사이로 사라진 그의 파트너는 어디로 간 건지 도무지 돌아올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하는 수 없이 직접 그녀를 찾아 나서기로 한 블랑코였지만 그 넓고 혼란스런 공간에서 사람을 찾기는 쉽지 않았다. 설상가상으로 직업상의 이유로 입은 흰색 정장은 이곳에선 지나치게 눈에 띄는 복장이었다. 다섯 번째로 달라붙은 호객꾼을 떼어내면서 블랑코는 슬슬 약이 오르는 걸 느꼈다.

  회장은 혼잡했다. 천장까지 차오른 연기가 네온을 난반사시켜 일종의 조명처럼 기능하고 있었다. 천장은 회가 다 떨어져 맨살을 고스란히 드러내놓고 있었고 그 밑에서 수명을 다한지 오래인 것 같은 아날로그풍의 팬이 맥없이 회전하며 뿌연 빛의 안개를 휘젓고 있었다. 거슬리는 쇳소리가 섞여 나오는 스피커에선 장르를 알 수 없는 음악이 끊임없이 흘러나왔고 사람들은 리듬에 몸을 맡기고 안개의 일부인 것처럼 너울거렸다.

  사람들을 헤치며 로제를 찾던 블랑코는 처음 보는 공간에 와있는 자신을 발견했다. 핸드폰을 꺼내 로제의 연락처에 전화를 해봤지만 그 자신도 기대하지 않았던 것처럼 핸드폰에선 무심한 연결음만 끝없이 늘어졌다. 마침내 블랑코는 자신이 처한 현실―가공할 킬러 집단에 쫓기는 와중에 무법지대에 홀로 남겨졌다는 사실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마음속에서 차오르는 조바심과 의구심을 식히기 위해 일단 구석진 기둥에 설치된 미니 바에 앉은 블랑코는 주머니에서 잡히는 대로 돈을 꺼내 테이블에 올려놨다. 그러나 블랑코는 막 받은 술잔을 입에 대지도 못하고 다시 내려놓아야 했다. 환영처럼 일렁이는 인파 속에서 익숙한 뒷모습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로제? 로제!”

  황급히 인파 속으로 뛰어든 블랑코는 그러나 원하는 모습을 발견할 수 없었다. 술과 약과 뭔지 모를 수상한 것들에 취한 사람들이 해초처럼 흐느적거리며 블랑코의 시야를 가렸다. 블랑코는 진저리를 내며 그들을 이리저리 헤치고 로제의 모습을 찾았지만 그녀의 모습은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회장에는 제법 많은 사람들이 있었고 그들은 하나같이 일사불란하게 흐트러져 있었다. 하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도 존재했다. 인파를 헤치고 나가던 블랑코는 멈칫했다. 그의 앞에 선 한 여자 때문이었다. 그녀는 다른 곳에선 별로 특별하지 않았겠지만 그 순간 그 장소에선 특이하다고 할 만한 행동을 취하고 있었다. 그녀는 그저 서있었다. 술에도 음악에도 분위기에도 취한 것처럼 보이지 않았다. 블랑코는 이곳에서 그런 행동을 보일만한 사람을 알고 있었고 그래서 그는 그녀가 어떤 말을 꺼내기 전에 먼저 움직였다.

  “미안하지만 약이라면 관심 없어.”

  약을 취급하는 판매상이나 브로커는 이곳에선 구멍가게보다 흔한 존재였다. 블랑코는 그녀를 무시하고 지나치려 했지만 그녀는 블랑코의 앞섶에 손을 올리고 그를 멈춰 세웠다.

  “관심 없다니까? 저리 비켜.”

  블랑코가 인상을 쓰며 그 손을 밀어냈다. 그러나 그가 움직이는 것보다 여자의 움직임이 더 빨랐다. 여자는 블랑코의 앞섶을 잡은 손을 부드럽게 거두며 그 자리에 약 봉지를 잡은 손을 올려두었다. 자연스럽게 블랑코는 약 봉지째로 그녀의 손을 잡은 모양이 되었다.

  그녀는 회장의 소음을 피하는 것처럼 몸을 기울여 블랑코의 귓가에 속삭였다.

  “샘플이에요. 받아두세요.”

  몸을 원래대로 돌린 그녀는 교묘한 움직임으로 손을 틀어 봉지만을 블랑코의 손에 남겼다. 블랑코가 어어 하며 손에 들린 봉지를 바라보고 다시 고개를 들었을 땐 이미 그녀는 인파 속으로 사라진 후였다.

  블랑코는 잠시 봉지를 바라보다 어깨를 한 번 으쓱하고 그것을 품에 넣었다. 공짜로 주는 걸 마다할 필요는 없었다. 일이 잘 풀리고 자축하는 파티에서 쓰던가, 아니면 죽어가는 고통을 줄이기 위해 쓰게 되겠지. 어느 쪽이든 가지고 있어서 나쁠 것은 없었다. 블랑코는 스스로의 합리적인 결정에 만족하며 다시 미아 수색 작업에 착수하려 했다.

  그러나 그전에 누군가가 어깨를 툭툭 건드렸다. 블랑코가 뒤를 돌아보자 그곳에는 방금 전과 다른 또 한 명의 여자가 물끄러미 그를 올려다보고 있었다.

  블랑코가 짜증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

  “이 가게는 무슨 사철이 블랙 프라이데이야? 왜 이렇게들 소비를 장려하고 난리야?”

  “뭐?”

  “오늘은 이미 충분해. 방금도 샘플이랍시고 받은 게 있단 말이야.”

  블랑코가 그녀를 향해 약봉지를 들어 올려 보였다.

  “이 화상아. 지금 상황이 어떤 상황인데 그럴 기분이 나냐?”

  그러나 블랑코의 예상과 달리 그녀는 오히려 약봉지를 잡아채며 역정을 냈다. 뜻밖의 반응에 블랑코가 눈을 크게 떴다.

  “뭐? 너 그게 무슨….”

  “나야 이 멍청아.”

  낯익은 말투에 블랑코는 그제야 그녀의 얼굴을 찬찬히 뜯어보았다. 머리색이 다르고 인상도 사뭇 다르게 변했지만 자세히 본 얼굴은 분명 그가 아는 것이었다.

  “로제? 대체 지금까지 어디서 뭘….”

  “변장하고 왔다. 그새 어디로 사라져서 이렇게 애를 먹여?”

  “갑자기 변장이라니?”

  “쉿! 목소리 좀 낮춰.”

  로제는 묘하게 초조해 보이는 모습으로 안절부절 못하며 주위를 살폈다. 그녀의 시선을 따라 멀뚱히 좌우를 살핀 블랑코가 허리를 낮춰 그녀의 귓가에 나지막이 말했다.

  “조직 놈들이 여기 있는 거야?”

  “아니. 아 그러니까, 있을지도 모르지만 나는 발견 못했어. 내가 변장한 건 그것 때문이 아냐. 좀 더 개인적인 이유야.”

  “개인적인 이유라고?”

  “만나기 좀 껄끄러운 사람이 여기서 일하거든. 내가 알고 있는 건 가게 이름뿐이었는데, 그게 에펠에 있는 줄은 몰랐어. 가급적 그 사람이랑은 안 만나고 일을 끝내고 싶지만 사람 일이라는 게 혹시 모르니까.”

  “뭐야. 여기에 빚쟁이라도 있는 거야?”

  “빚쟁이라면… 빚쟁이일 수도 있겠네. 어지간한 사채업자보다는 훨씬 무서운 사람이지만.”

  “…네가 그렇게 말할 정도라면 정말 무시무시한 놈인가 보군. 그런 놈이라면 나도 만나고 싶지 않은데.”

  로제의 평소 행실을 떠올린 블랑코는 스산한 기분에 몸을 떨어야 했다. 블랑코가 알고 있는 로제란 겁대가리를 상실한 인물로, 대개 블랑코보다 훨씬 과격한 임무 수행 방식을 선호하곤 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놈은 어디서 일하는데?”

  “몰라. 이곳에 있다는 것만 알고 정확히 어디서 일하는지는 모르겠어.”

  “뭐야. 그럼 피할 수도 없잖아.”

  “그래서 변장하고 왔잖아. 그러니까 일단은 우리 사정대로 움직일 수밖에 없어. 나머지는 임기응변으로 대응하자고. 아, 물론 그 사람이랑 만나게 되면 난 무조건 숨을 거니까 네가 알아서 하고.”

  자기 할 말만 빠르게 마친 로제는 블랑코에게 눈빛을 준 다음 인파 속으로 사라져갔다. 블랑코는 잠시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서있다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고는 이내 그 뒤를 따라 인파 속으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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