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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현대물
로즈 앤 스노우
작가 : 쿠페
작품등록일 : 2018.12.31

옛 동료들에게 쫓기게 된 두 킬러의 이야기

 
3
작성일 : 18-12-31 23:48     조회 : 284     추천 : 0     분량 : 36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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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블랑코는 짜증스런 얼굴을 한 채 로제에게 되물었다. 세 번째였다. 앞선 첫 번째와 두 번째는 황당하거나 어이없는 표정이었다. 로제는 일관되게 그녀가 할 수 있는 최대한의 반항적인 얼굴로 블랑코를 쏘아봤고 에셔는 그런 두 사람을 덜덜 떨면서 지켜봤다.

  에셔가 두 사람을 안내해간 곳은 에펠 시내 한쪽에 위치한 낡은 술집이었다. 빛바랜 목재 간판에 예스런 글씨로 벨 마르셀이라는 이름이 적혀 있었다. 하지만 블랑코의 표정은 만족스럽지 못했다. 칠이 벗겨진 간판과 녹슨 손잡이는 가게가 오랫동안 시민들에게 사랑받았음을 알려주는 지표이긴 했지만 그들이 찾는 것은 맛 좋은 에일주 같은 것과는 거리가 먼 것이었다. 하지만 로제는 블랑코보다 한 술 더 떠서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반응을 보였다.

  이곳에 올 때까지만 해도 로제는 정보소를 찾았다는 것 때문인지 완전히 들떠 있었다. 하지만 어쩐 일인지 에셔가 안내한 가게의 간판을 보자마자 얼어버린 로제는 선 자세 그대로 장승 흉내를 내기 시작했다. 그 이유가 가게의 외형 때문이라고 생각한 블랑코는 에셔를 타박했다.

  “정말 여기 맞아? 여긴 그냥 술집이잖아.”

  “마… 맞다니까요…!”

  블랑코가 에셔에게 의심스러운 눈길을 보내던 그때 간판을 올려다보던 로제가 천천히 뒷걸음질 쳤다.

  “나… 나 돌아갈래. 잘못 온 것 같아 아무래도.”

  그 말에 놀란 것은 에셔뿐만이 아니었다.

  “야. 이제 와서 그게 무슨 말이야? 물론 겉보기에는 평범한 술집 같긴 한데, 그래도 일단 들어가서 확인은 해봐야지.”

  하지만 로제는 블랑코의 말이 들리지도 않는 것 같았다. 사실 어떤 소리도 들리지 않는 것 같았다. 로제와 몇 번의 의사소통을 시도해보던 블랑코는 금세 그것을 알게 되었다.

  블랑코가 턱을 쓰다듬었다. 무언가 생각해보려 했던 그는 곧 그것을 포기했다. 그리고 네 번째로 다시 묻는 것을 선택했다. 이번에는 진지한 얼굴이었다.

  “그러니까, 정말로 안 들어가겠다는 거지?”

  로제는 굳게 닫은 입으로 단호하게 도리질했다. 블랑코가 대답했다.

  “알았다. 네 뜻이 정 그렇다면.”

  블랑코가 엄숙한 표정으로 품에 손을 넣어 무언가를 꺼냈다. 에셔가 저도 모르게 숨을 들이킬 정도로 비장한 동작이었고 그래서 에셔는 블랑코가 꺼낸 것을 보고 실망했다. 권총이라도 나오는 게 아닌가 싶었지만 블랑코의 손에 들린 것은 핸드폰이었다.

  하지만 에셔에게는 이해하기 어렵게도 로제에게는 핸드폰이 총보다 무서운 것 같았다.

  “야, 치사해! 그건 반칙이지!”

  로제는 입술을 깨물고 발을 동동거리며 사용할 수 있는 모든 수단을 사용해 자신이 얼마나 심각한지 어필했다. 물론 블랑코에게는 씨알도 먹히지 않았다.

  “반칙은 네가 지금 하고 있는 짓이 우리 관계에 대한 반칙이지. 들어가기 싫으면 맘대로 해. 살길은 각자 알아서 도모하자구.”

  “알았어! 들어갈게. 들어가면 되잖아.”

  로제가 번호를 누르는 블랑코의 손을 붙잡았다. 블랑코는 로제를 보고 가게를 향해 머리를 까딱해보였다. 로제는 도무지 내키지 않는다는 표정으로 가게 문을 열고 들어갔다. 블랑코의 눈치를 살피며 에셔가 뒤를 이었고 블랑코가 마지막으로 들어가며 낡은 술집 문을 닫았다.

  문에 달린 작은 종이 금속성의 소리를 냈다. 점내는 퍽 한산했다. 측면에 난 커다란 창을 통해 들어온 햇빛이 허공을 부유하는 먼지를 고요하게 비췄다. 한쪽 벽을 차지하고 있는 바는 손때를 타 반질반질했고 듬성듬성 산만하게 배치된 오크 엔틱 테이블은 묵직하게 짙은 밤색을 띠고 시간에 바래지 않은 존재감으로 놓여있었다. 테이블 몇 개를 끼고 에일주를 조용히 기울이는 몇 명의 남성 외에 손님이라곤 없었다. 평일 낮인 걸 생각하면 그리 이상하지 않을지도 모르겠지만 오래된 역사를 가진 가게치고는 맥없는 모습이 아닐 수 없었다.

  가게에 들어선 에셔는 그런 공기는 아랑곳없이 바를 향해 걸음을 옮겼다. 늙은 바텐더가 시큰둥이 쳐다보자 주변을 살핀 에셔가 은근한 어조로 주문했다.

  “진저에일 세 잔. 벌꿀은 넣고 계피는 빼서.”

  “……따라와.”

  바텐더는 심드렁하게 중얼거리고 바 안쪽에 있는 작은 문으로 들어갔다. 에셔와 블랑코가 바와 홀을 나누는 목제 파티션을 젖히고 바 안으로 들어갔고 로제가 도살장에 끌려가는 양의 표정으로 그 뒤를 따랐다.

  문 안쪽은 한 사람이 간신히 걸을 수 있을 정도로 좁은 복도로 통했다. 복도 한쪽 벽은 술병이나 종이 상자 따위가 가득 쌓인 선반으로 메워져 있었고 띄엄띄엄 설치된 난색 계열의 어두운 전등이 그 위를 비추고 있었다. 복도 끝에 있는 문에 이른 바텐더는 품에서 열쇠 하나를 꺼내어 문을 열고는 무언의 시선을 보냈다.

  에셔는 그에게 살짝 끄덕여 보이며 문을 열고 들어섰다. 안에 있는 건 밑으로 통하는 구멍과 좁은 나무계단 하나가 전부였다. 로제까지 안으로 들어서자 문밖에서 철컥 잠기는 소리가 났다. 로제는 불안한 시선을 숨기지 않고 블랑코를 바라보았지만 블랑코는 턱짓으로 계단을 가리켜 보일 뿐이었다.

  “뭐해? 내려가.”

  로제는 아랫입술을 깨물고 눈꺼풀을 가늘게 떨었다. 숙련된 암살자는 심리적 동요를 쉽게 겉으로 내비치지 않는다. 그녀는 숙련된 암살자였고, 따라서 그런 그녀답지 않은 모습은 그녀의 상태가 예사롭지 않음을 짐작하게 했다. 블랑코가 심각한 얼굴로 물었다.

  “똥 마려워?”

  로제의 구두가 번개같이 블랑코의 정강이에 작렬했다. 블랑코는 잠시 비명도 지르지 못하고 다리를 부여잡은 채 뒹굴었고 로제가 그 위로 서슬이 퍼렇게 욕지거리를 쏟아냈다.

  “이게 진짜 숙녀한테 못하는 말이 없어! 이 섬세함이라곤 국을 끓여 먹을래도 없는 놈아. 화장을 배운 뒤로 나한테 그딴 식으로 말하는 고추 달린 놈은 네가 처음이다. 참고로 내가 화장을 배운 건 아직 글자도 떼기 전이었어, 이 자식아!”

  한참을 씩씩대던 로제가 진저리를 쳤다.

  “아 진짜! 너 때문에 분위기고 뭐고 다 깨졌어. 좋아, 이렇게 된 이상 가 주고말고. 어디까지든 끝까지 가 줄 테다. 너도 똑바로 따라와. 도중하차 같은 걸 하려고 하면 그때야말로 마비독을 먹여서 본사에다 소포로 보내버릴 테니까.”

  로제는 용맹하게 쿵쿵거리며 계단을 내려가기 시작했고 바닥에 엎드려 늙은 개 같은 신음소리를 내던 블랑코도 투덜거리며 그 뒤를 따랐다.

  어둡고 좁은 계단은 지하를 향해 한참 뻗어 있었다. 지하에 가까워질수록 로제는 점점 커지는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떠들고 소리치고 괴성을 지르고 욕설을 퍼붓는 듯한 소리였다. 소리는 계단 끝에 있는 지저분한 문 너머에서 들려오고 있었다. 마침내 바닥에 도착한 로제는 거침없이 문을 열어 젖혔다. 왁자지껄한 소음이 폭풍처럼 쏟아졌다. 가늘게 뜬 로제의 눈에 들어온 것은 방금 전까지 있던 공간과는 전혀 다른 세상처럼 보이는 곳이었다.

  요란한 네온이 어둠을 유혹하듯 밝혀져 있었다. 지상에 있는 주점보다 훨씬 커다란 규모의 홀이 있었고 그 안에는 수십 명의 사람들이 제각각의 모습으로 자리 잡고 있었다. 수상쩍은 가루를 흡입하고 풀어진 눈으로 어둠에게 미소 짓는 사람, 한 여자를 두고 죽일 듯이 다투는 사내들과 그 틈을 타 사내들의 지갑을 챙겨 군중 속으로 섞여 들어가는 여자, 사기인 게 뻔한 카드 게임에 수중의 돈을 모조리 부어넣고 살아온 모든 순간의 간절함으로 기도하는 남자. 그곳은 술집이자 도박장이었고 매음굴, 댄스홀, 비즈니스 센터였으며 가장 음침하고 지저분한 사교의 장이었다.

  로제는 끔찍한 표정으로 유서 깊은 뒷세계의 중립지역을 바라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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