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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현대물
로즈 앤 스노우
작가 : 쿠페
작품등록일 : 2018.12.31

옛 동료들에게 쫓기게 된 두 킬러의 이야기

 
2
작성일 : 18-12-31 23:48     조회 : 276     추천 : 0     분량 : 53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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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은고딕 나눔고딕 돋움 굴림 궁서 바탕
13 15 17 19 21

 

  에펠은 성급한 산업화의 폐해를 고스란히 간직한 도시였다. 한때 부흥의 꿈으로 무분별하게 세워진 건물들은 이제는 생명을 잃은 채 을씨년스러운 묘비처럼 변해있었다. 불법으로 증축된 골목은 미궁처럼 얽히고설켜 현지인들도 전모를 파악하기 힘들었고 공장에서 거미줄처럼 뻗어 나온 수많은 파이프들이 잿빛 하늘을 조각냈다. 골목골목의 어둠마다 갱과 불량배들이 꿈틀거렸고 파이프에서 쏟아져 나오는 오폐수는 하수도를 부식시키며 음침한 햇빛 아래 줄기를 이루었다. 에펠강은 도시 한 쪽에서 그 모든 더러움을 받아들이며 묵묵히 흘렀다. 사람들은 그 광경을 평화롭다기보다는 음산하다고 표현하는 것이 정확하다고 생각했다.

  에펠 거리를 걷는 블랑코는 모든 마음을 다해 그 표현에 공감하고 있었다. 그가 생각했을 때 마을이란 사람들이 각자의 생활을 영위할 뿐 아니라 그들 자신이 일종의 세포처럼 거대한 생명체를 구성하는 것이었다. 그런 의미에서 봤을 때 에펠은 마을이라기보다 수용소에 가까웠다. 가난을 창살 삼고 스스로를 간수 삼는. 도무지 유쾌하다고 볼 수 없는 정경에 마음이 불편해진 블랑코는 공연히 앞서 가는 파트너를 닦달했다.

  “아무리 봐도 너무 썰렁한데. 이런 데에 정말 정보소가 있긴 한 거야?”

  지도에 코를 박듯이 하고 걷고 있던 로제는 진땀을 흘리며 애써 그 말을 못들은 척 했다. 펠먼을 떠나면서 펠먼의 수많은 위성도시 중 가장 후미진 에펠로 오자고 주장한 건 로제였다. 추적당할 위험 탓에 카드를 쓸 수 없었던 두 사람은 에펠에 도착하자마자 중고 차 딜러를 찾아 밴을 처분했다. 적정가의 반은 될까 싶은 가격을 부르는 딜러 노인과의 살벌한 기 싸움 끝에 겨우 유용할 수 있는 현금을 얻은 로제는 즉시 안내소에서 지도를 구입하고 그들의 목적지를 찾기 시작했다.

  그것이 두 시간 전의 일이었다.

  조직의 추적을 따돌리고 정보거래소를 찾아 메모리칩을 해석한다는 로제의 계획은 생각지도 못한 곳에서부터 난항을 맞이했다. 로제는 에펠 어딘가에 있다는 그 정보거래소의 위치를 정확히 알지 못했다. 처음부터 떡하니 보이는 곳에 있을 거라 기대하진 않았지만 펠먼 같은 대도시와 달리 이 황량한 소도시는 어디로 가면 실마리를 찾을 수 있을 거란 짐작조차 하기 힘들었다. 마을에서 구입한 지도는 제기능을 하지 못했다. 뒷세계의 정보거래소는 당연하게도 기재되어 있지 않았고 심지어 기본적인 위치 정보마저 맞지 않을 때도 있었다. 도시 부흥기에 만들어진 이후로 갱신되지 않은 지도는 지금의 에펠과 적지 않은 차이가 있었다. 지도에 표기된 가게가 이미 망해있는 경우가 허다했고 건물 자체가 폐허인 경우도 있었다. 등 뒤에 꽂히는 파트너의 따가운 시선을 감지한 로제는 울고 싶은 기분을 느꼈다.

  “대체 이럴 거면 왜 여기로 오자고 한 거야? 위치는 모르면서 그런 게 있다는 건 어떻게 안 거고? 아니, 애초에 정말로 여기에 있긴 한 거야?”

  파트너의 질문이 하나씩 날아와 박힐 때마다 로제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블랑코가 결정타를 날리려 하자 로제가 그 입을 가로막듯 바락 외쳤다.

  “저기! 저쪽 골목으로 가보자. 아직 저 방향으론 안 가봤잖아.”

  블랑코가 의심 가득한 표정으로 말했다.

  “이번에도 아니면 그땐 진짜…….”

  “이번엔 틀림없다니까! 이럴 시간에 일단 빨리 가보자구.”

  파트너의 입을 막다시피 하면서 앞장서기 시작했지만 로제의 기분은 암담했다. 뭐라도 주워섬겨서 블랑코를 이쪽으로 끌어들이는 데에는 성공했지만 아직 그들의 신뢰관계는 겨울밤의 모래사장 정도로 건조했다. 그것을 조금이나마 끈적이는 것으로 만들려면 그들이 쫓기는 이유를 확실히 밝히는 수밖에 없었고 그를 위해선 정보소를 찾는 일이 불가결했다. 하지만 폐건물과 낡은 창고가 이어지는 골목길로 들어갈수록 로제는 발걸음이 무거워지는 걸 느껴야 했다. 그 기분은 골목으로 진입한지 삼십분 째가 지난 시점에서 절정에 달했다.

  한때 조그마한 회사의 사무실로 쓰였을 것 같은 건물이었다. 원래는 조그마한 공원도 딸려 있었는지 건물 앞에는 마당에 해당하는 널찍한 공간도 있었다. 그러나 도색이 다 벗겨지고 깨진 창문도 심심찮게 눈에 띄는 그 건물은 이제는 그저 폐건물임에 분명했다. 오랜 탐색 끝에 그 황량한 폐허에 들어선 두 사람이 발걸음을 멈춘 것은 그저 실망감 때문은 아니었다. 블랑코가 땅이 꺼지는 한숨을 뱉었다. 로제도 블랑코가 그러는 이유를 잘 알고 있었다. 블랑코는 하얀 구두를 땅에 탁 소리 나게 부딪혔다.

  “돌겠네 진짜.”

  그를 신호로 하듯 공터를 둘러싸고 일단의 사람들이 나타났다. 기둥 뒤에서, 반쯤 무너진 담벼락 뒤에서, 깨진 유리창 뒤에서. 그들은 대개 청년이었고 대부분 남자였고 하나도 빠짐없이 껄렁한 차림을 하고 있었다. 그들은 저마다 한 가지씩 도구나 무기 따위를 들고 있었다. 쇠파이프, 배트, 나이프, 체인… 그들의 면면을 살펴보던 블랑코가 기가 차다는 반응을 보였다. 그들 중 가장 나이가 많아 보이는 자도 20대 중반을 넘어 보이지 않았다.

  블랑코는 모르고 있던 사실이었지만 거대조직이 장악하고 있는 옆 도시와 달리 에펠은 시정잡배들의 소굴이었다. 별 볼일 없고 탐낼 만한 것도 없었지만 그렇기에 그곳은 소규모 갱들의 좋은 보금자리였다. 은신처로 쓸 만한 폐건물은 얼마든지 있었고 거대조직들은 돈이 되지 않는 에펠의 황량함에 별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왕이 없는 땅에서 왕 행세를 하고 싶어 하는 건달들은 많았지만 그들의 주먹은 그들의 야심만큼 거대하지 못했다. 엇비슷한 규모의 갱들은 서로 으르렁거릴 뿐 지역을 장악하지 못했고 결과적으로 에펠은 주인은 없지만 치안만은 최악의 수준으로 치달은 기묘한 형태가 되어 있었다.

  그 사실을 모르던 블랑코는 황당한 기분이 될 수밖에 없었다. 불량배에게 금품을 갈취 당한다는, 소위 ‘삥 뜯기는’ 경험이 처음이었던 그는 그 상황에 일종의 신선함까지 느꼈다. 아직 얼굴에 앳된 티가 남아있는 청년이 폐차 위에 뛰어올라 한껏 건들거리며 소리치기 전까지는 분명히 그랬다.

  “어이, 그림 좋은데~”

  곤혹과 혼란과 의혹을 얼굴에 가득 담은 채 로제와 블랑코가 빠르게 시선을 주고받았다. ‘쟤가 지금 뭐라고 한 거야?’ ‘나도 몰라.’

  로제와 블랑코에게는 불행하게도 청년은 대답 없는 그들이 겁에 질려 얼어붙었다고 판단해버렸다. 신이 난 청년은 의기양양하게 권총까지 뽑아들고 협박(?)을 계속했다.

  “노니는 꼬라지가 한 폭의 수채화가 따로 없군. 보아하니 여유 있게 사는 사람들 같은데 불우한 이웃 좀 도와주고 가지?”

  맙소사. 요즘 세상에 저렇게 고전적인 멘트라니? 로제는 황당하다 못해 충격 받은 눈으로 청년을 바라봤다. 안타깝게도 그는 로제의 그런 시선을 편의에 맞게 해석했다.

  “그쪽 아가씨는 상황 파악이 된 모양이군? 알아먹었으면 지금 당장 가진 것 모두 꺼내서 바닥에 내려놔. 허튼 수작 부리거나 도망치려고 하면 이 총이 불을 뿜을 줄 알아!”

  로제와 블랑코는 서로를 마주봤다.

 

  “왜… 왜 이러세요 저한테…….”

  에셔는 눈물과 콧물로 범벅이 된 채 세상을 향해 인간의 숙명적 비극에 대한 통렬한 질문을 던지고 있었다. 에펠 뒷골목을 터전으로 성실하게 불량배 짓을 하고 살던 에셔는 지금 일어나고 있는 일을 이해할 수 없었다. 오늘은 분명히 일진이 좋은 날이었다. 얄미운 경쟁파벌의 보스가 계단에서 굴러 떨어져 다리가 부러졌다는 소식을 들었고 전부터 갖고 싶었지만 가게 주인 영감이 무서워서 건드리지 못했던 중고 차 매장의 오토바이를 훔쳐냈다. 자축하는 의미에서 부하들(10년 전쯤엔 에셔를 보스라기보다는 형이라고 부르던)과 함께 아지트에서 축배를 들고 있는 참에 자신들의 구역에 다가오는 젊은 남녀를 발견했다. 그는 그것이 오늘의 행운의 정점이라고 생각했다. 딱 보니 이곳 사정을 잘 모르고 외지에서 놀러온 멍청한 연인인 게 분명했다. 겁이나 좀 주면서 실컷 놀려먹다가 주머니를 털어야지. 남자가 정장까지 갖춰 입은 걸 보면 어쩌면 꽤 쏠쏠할지도 모른다. 거금을 부어 손에 넣은 권총을 희희낙락해서 들이댈 때만 해도 그에겐 오늘 저녁에 열릴 파티 생각이 가득했다.

  으스대며 여자에게 다가간 부하가 팔이 꺾인 채 쓰러지기 전까지는.

  “뭐… 뭐야…!”

  가까이 있던 부하 몇 명이 달려들었지만 여자는 종이라도 접는 것처럼 자신의 부하들을 차곡차곡 땅에 눕혀갔다. 상황을 이해하지 못한 에셔가 발포할 생각도 못하고 멍하니 바라보고 있는데 부하들이 당황한 표정으로 자신 쪽을 바라보며 뭐라 소리치는 게 들렸다. 에셔가 돌아보자 그곳에는 하얀 정장의 거한이 휘두르는 거대한 주먹이 있었다. 그리고 암전.

  정신을 차린 에셔의 눈에 처음 들어온 건 여기저기에 이상한 자세로 널브러진 자신의 부하들이었다. 그들 옆에는 악마 같은 한 쌍의 남녀가 서있었다. 그중 여자가 에셔를 보고 반색하며 다가왔다. ‘어머, 일어났어?’ 가증스러운 것! 누가 보면 애인을 위해 아침식사라도 차려주는 여인인 줄 알겠다.

  당장이라도 여자를 향해 저주를 퍼붓고 싶었지만 정작 그의 입에서 흘러나온 건 덜덜 떨리는 애절한 목소리였다.

  “왜… 왜 이러세요 정말…….”

  “야, 우냐? 안 잡아먹을 테니까 뚝 그쳐. 뚝.”

  에셔의 시대착오적인 대사 탓에 완전히 분위기를 탄 로제는 누가 양아치인지 모르겠는 대사를 뱉으며 에셔를 을러댔다. 잔뜩 신나서 건들거리는 로제와 끅끅거리며 울음을 참는 에셔를 어이없이 바라보던 블랑코가 끼어들었다.

  “애 데리고 뭐하는 거야?”

  “왜? 재밌잖아.”

  절레절레 고개를 젓던 블랑코가 에셔 앞아 앉아 그와 눈을 맞췄다. 주먹 한 방에 기절한 탓에 에셔는 블랑코를 보자 거의 경기를 일으키다시피 했다. 블랑코가 에셔의 눈앞에 지도를 펼쳐놓았다.

  “딱 한번만 묻는다. 우린 이 마을 어딘가에 있다는 정보거래소를 찾고 있어. 그런 게 정말 있기나 한 건진 모르겠지만, 어쨌든 뭐 아는 거 있어?”

  “저… 정보거래소는 잘 모르겠는데요…….”

  겁먹은 눈으로 블랑코와 로제를 번갈아 쳐다보던 에셔가 주저하며 입을 열었다.

  “짐작 가는 가게가… 있긴 하거든요…….”

  “좋아. 거기가 어딘데?”

  블랑코의 눈치를 살핀 에셔가 지도 한 구석을 손가락으로 짚었다. 로제와 블랑코가 잠시 눈을 마주쳤다. 고개를 끄덕인 블랑코가 무릎을 펴고 일어서며 말했다.

  “좋아. 그럼 바로 가볼까.”

  두 사람의 눈치를 살피며 기회를 엿보던 에셔가 조심스럽게 말했다.

  “저… 말씀하신대로 알려 드렸으니 저는 여기서 이만…….”

  “무슨 소리야 누나 섭섭하게.”

  슬쩍 엉덩이를 빼던 에셔에게 로제가 어깨동무 했다. 에셔는 질겁했지만 감히 그 팔을 뿌리칠 엄두는 내지 못했다.

  “이런 험한 동네에 저런 덩치랑 단둘이 보내려고? 누나 무서운데. 우리 동생이 좀 안내해주면 안 될까?”

  어이가 없어서 헛웃음을 뱉는 블랑코와 다르게 에셔는 질린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는 수밖에 없었다. 활짝 웃으며 등을 탁 치고 일어서는 로제를 보고 에셔는 생각했다. 오늘은 절대로 운 좋은 날이 아니었다. 오히려 최악의 날에 가까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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