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나 하나씩의 잘 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태어난다. 그러나 대부분은 그만의 장점을 모르고 시대를 따라가버린다.

　삼면이 바다로 둘러싸여 있는 대한민국이 시대를 잘 만났다.

　‘대~~~한 민국! 짜자~~자 짝짝’

　쩌렁쩌렁한 함성과 박수소리. 그렇게 홍보를 했던 2002년 한일 월드컵이 끝난 지 보름하고도 며칠이 더 지났다. 아직도 감격과 흥분이 일부 국민들에게 남아있다.

　이런 기분에 찬물을 끼얹는 말.

　나부댄다. 전 세계를 제패한 것처럼 황홀경에 빠져 난리치고 있다. 패했는데도. 그러나 그들은 축구경기에서 희망을 가지게 되었다. 역사는 돌고 돌아 제패(制覇)도 하고 재패(再敗)도 하듯 터키에게 지듯이 또 질 수도 있지만 영원히 진다는 보장은 절대 없다는 말과도 같다. 생명에는 영원이 없듯이 어떤 부류던 영원이 없다는 말이다. 또한 영원히 지배만 하는 부류에 속한 아성(牙城)도 없다는 말과도 같다. 아성(牙城)! 혼자만의 힘으로는 이길 수가 없으니 똘똘 뭉친다는 말로 이 글에서는 비하(卑下)시킨다.

　 아성(牙城)! 여기에는,

　‘젊은이여! 야망을 가져라!’

　꿈을 향해 질주하라는 이 명언에 찬물을 끼얹는 이기적인 오합지졸의 아지트에 불과하다. 이 집단이 만든 법은 혈세를 빨아들이는 정부에 의해 철저히 옹호 돼지고 있다. 돼지 똥처럼. 18! 무슨 이유인지 전혀 모르는 서른 살 총각인 정수리는 원망과 함께 콧방귀만 치고 있었다.

　먼저 농군의 아들인 이 청년 이름의 유래를 설명한다.

　성에다가 고치라는 의미만 붙였다. 바르게 고쳐라. 그래서 수리다. 농기구들이 얼마나 많이 탈이 났으면 아버지가 이런 이름을 지었을까? 자식이 평생 대를 이어 농사를 짓게 할 부모가 세상 천지에 어디에 있겠는가? 분명한 건, 고칠 것들을 농기구에만 한정시키지 않았을 것이다.

　그런데 이 청년은 이름의 본질적인 의미를 확대해석하고 있었다.

　‘세상 꼭대기에 서라.’

　세상이 그렇게 만만한가? 수리는 지금, 앞에서 말한 ‘꿈’에 대해 ‘글쎄!’ 란 의문 부호를 넣어 머리를 좌우로 흔들고 있다.

　현재 그의 기분은 한 골 넣고 흥이나 껑충껑충 뛸 겨를도 없이 바로 열 골을 상납한 비참한, 그런 기분에 사로 잡혀 있었다.

　고개를 흔들고 있는 곳은 울산 앞바다다. 그는 해병대원도 해군도 해경도 어부도 선원도 아니다. 출신은 해병대가 맞다. 그렇다고 추억 살리기나 하자고 고무보트를 울러 매고 바다에 간 것은 아니었다.

　지금 서 있는 곳은 바다에 두둥실 떠 있는 석유화학제품 운반선인 화물선 갑판 위다.

　눈은 아직도 어둠이 깔려 있는 육지를 향해 있다. 거기엔 산과들과 사람과 건물이 있지만 한쪽 귀퉁이에는 석유화학단지도 있다. 석유화학단지의 위용을 뽐내는 굴뚝에서 타오르는 불꽃 몇 점들이 그보다 더한 위용을 갖춘 태양의 기상 시간에 맞춰 서서히 꼬리를 내려 자취를 감추고 있다.

　그 시점에 눈을 여명이 드러나는 푸른 하늘과 푸른 바다가 맞닿은 수평선 끝으로 방향을 돌린다. 드디어 비참한 기분을 매번 들게 하는, 기다렸던 장관이 펼쳐진다. 수평선의 끝자락이 더욱더 또렷하게, 가느다랗고, 파랗고, 뽀얀 수증기로, 하얀 솜털로 변해 사라지면서 푸른 하늘과 맞닿아, 푸르게, 하늘인지 바다인지 구분이 되지 않을 정도로 더 푸르게 어우러진다. 이런 멋진 광경을 연출하는 자연의 순행을 보면서 무슨 이유로 비참한 기분에 휩싸여갈까?

　잠시 석유화학단지 밤 풍경을 설명한다. 굴뚝을 둘러싼 형형색색 아름다운 불빛들.

　“어머머머! 어쩜 저렇게 멋져! 아름다워! 어머머머머~~”

　눈에 보이는 외형에만 감탄한다. 그러나 그 불빛을 내는 전등은 오색의 껍질을 가진 전구가 아니다. 곧 뽀얀 뭉게구름이 돼 또 한번 감탄을 쏟아내게 할 그의 실체는 석유화학단지에서 생산해낸 증기다. 그가 빛 속으로 들어가 눈을 잠시 현혹 시켰을 뿐이다. 이 사실을 잘 아는 가족들은 비록 감탄은 하지만 아픈 가슴을 쓰다듬던 손을 코로 가져가 막는다. 그들은 심리의 다중성에 잠시 방황 정도만 했을 뿐이지 그 감흥은 월드컵 때와 똑같이 사라지고 곧 현실로 돌아온다.

　석유화학단지에서 뿜어내는 가스에 붙은 불꽃을 보면, 사진이나 동영상에서 보는 밤하늘의 은하수와는 비교가 되지 않게 아름답다. 천문학에 대해 문외한이라 이 말을 하면 비웃을지 모르지만, 은하수도 하나의 유무해물질의 덩어리라고 본다. 그 덩어리 속에는 석유화학단지에서 내뿜는 유해물질 성분과 비슷한 어떤 성분이 있을 것이라 본다.

　이 둘을 무식한 자의 소견으로 볼 때, 은하수는 석유화학 단지에서 생산하는 불빛에 맞설 상대는 아니다. 은하수는 보는 것만으로 만족하지만 석유화학단지에서 뿜어내는 불빛은 삶의 질을 풍요롭게 해준다. 물론 밤하늘의 은하수뿐만 아니라 반짝이는 별도 달도 낮에 있는 공장 굴뚝의 불꽃같은 태양도 삶에 찌든 이들의 마음을 정화시켜주는 데는 큰 몫을 하고 있다.

　도시의 불빛에 가려져 남들은 쉽게 보지 못하는 밤하늘의 초롱초롱한 수많은 별들과 석유화학단지에서 반짝이는 수많은 불빛들을 볼 수 있는 영광을 누리면서 무슨 이유로 수리는 볼썽사나운 인상을 연출하는가?

　이유는 단순하다. 자연이 연출하는 세상을 보고 떠올랐던 영감이 유성처럼 나타났다, 잠시 머리 속에 머물다, 유성이 사라질 때쯤 같이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려서였다. 고작 서른의 나이에 치매 증상이 있는 것처럼 한 순간에 사라진 그때의 영감들을 찾아 헤매느라 찡그린 얼굴을 보면 나이가 엄청 들은 진짜 영감인 줄 착각할 정도다.

　그때의 표정은 마음에 드는 여인의 바지가랑이를 끈질기게 붙자고 늘어져 연락처를 받은 뒤에, 바로 분실할 때 나타나는 울상. 딱 그런 얼굴이다.

　이러한 현상이 나타났던 건 아주 오래 전부터였다.

　그 오래 전을 뚜렷이 기억하고 있었다. 대여섯 살 때 서양식들이 난데없이 시골 동네 나타나 밤하늘에 반짝이는 별을 쫓아내버렸다. 대신 오동나무 잎사귀를 두고 숨바꼭질하던 그 별을 집안으로 데려다 주었다. 그러나 그 별은 도시화에 빠르게 적응해 수리에게 아무런 감흥도 주지 못했다.

　그때 잃어버린 영감을 찾기 위한 묘안을 찾아 헤매기 시작했다. 빛이 없는 곳에 가야 진정한 빛을 볼 수 있다고 판단을 하고 밤만 되면 불빛이 없는 높은 산으로 올라가기 시작했다. 그러나 내려오는 즉시 힘들여 올라가 느끼고 붙잡은 영감은 가슴과 다리에게 매번 강탈당해 버린다. 다리도 후들거리고 가슴도 벌렁거리는데 그까짓 영감이 뭐라고 우리를 괴롭히냐며 난리를 치며 영감을 찢어버리기까지 했다. 그래서 또 묘안을 찾기 시작했다.

　고민 끝에 찾은 묘책이 카메라였다. 네 놈들에게 두 번 다시 뺏기지 않으려면 담아두자.

　그러나 어린 아이의 주머니 사정으로는 실행을 할 수 없었다. 해결책은 어머니밖에 없었다. 몇 달간을 울고 불면서 어머니 바지 가랑이를 붙잡고 길바닥에 누워버리는 작전이 유일한 수리의 해결책이었다. 버티다, 버티다 못한 어머니는 이를 부드득, 부드득 갈면서 지갑을 열었다. 그 돈은 전답에서 수확한 결실 중 쌀과 보리와 밀을 뺀, 감, 자두, 앵두등과 고구마를 팔아서 가계에 쓰고 남은 돈의 일부였다. 그 돈은 순전히 어머니 몫이었다. 그렇게 꼬깃꼬깃 모아둔 쌈짓돈으로 동네 사람들과 제주도에 여행 갈 돈이었다. 길바닥에 드러누운 수리의 고집을 꺾지 못해 제주도를 포기하고 카메라를 사 주었다. 그 후로 시도 때도 없이 사진을 찍어댔다.

　그러나 찍어둔 사진을 보고 항상 실망만 했다. 이유도 항상 같았다. ‘이게 뭐라고 찍었지? 별 것도 아닌데. 사진기 탓인가?’ 쥐었던 볼펜을 책상에 살포시 내려 놓지 않고 바닥에 내동댕이쳐버린다. 어디 볼펜만 내동댕이쳤겠는가?

　어머니의 제주도 여행을 포기하게 하는 짓인 카메라를 박살 내버리기 일쑤였다.

　자연을 보면서 느낀 영감이 도망치지 못하게 보관하고, 찍은 사진이 닳아 보이지 않을 때까지 쳐다보며, 그때 느낀 게 무엇이었던가를 찾아 다니는 수리가 지금도 시시각각으로 변하는 바다와 하늘을 보면서, 느낌을 바로, 바로 적고 싶어했다. 곧 표현력의 한계를 깨닫는다. 사진기 살 돈으로 책을 사고 글 쓰는 강의를 들었다면 그나마 조금은 나아졌을 텐데 후회는 당연했다. 곧 핑계도 주절댄다.

　‘누구던 자연을 보면 감성이 이렇게 시시각각으로 바뀌나? 바뀔걸! 그런데 어떻게 글로 표현하지?’

　칠흑이 서서히 사라지는 바다를 보고 있다. 한밤중에 바다 위에 서 있어도 푸른 바다는 보이지 않는다. 오로지 칠흑의 적막만이 너울거린다. 그 위에는 두려움이 숨어있다. 어두운 밤 골목길에 숨어있지나 않나? 떨게 하는, 칼 든 도둑 놈이나 성폭력 범 같은, 당장 눈앞에 닥쳐오지도 않은 불행 같기도 하다.

　인생사 누구나 희로애락이 있듯이 바다도 마찬가지다. 항상 이런 식의 두려움만 느낀다면 아무도 바다에서 밥벌이를 하지 않을 것이다.

　수평선 끝자락에서 두려움을 사라지게 하는 노란 빛이 서서히 올라오고 있다. 은빛의 가느다란 실타래들이 삼각편대로 풀어헤쳐져 바닷물을 수 놓다가 서서히 붉고 굵은 선으로 변한다.

　그 빛들은 오색을 바다 위 전체로 가지런히 흩어졌다가 살랑거리며 춤도 춘다. 그리고 곧 바다를 벌겋게 활활 불 태운다. 바다가 뜨겁다고 쌩 난리를 친다. 얼마나 뜨거웠으면, 벌겋게 대열을 지어, 솟구쳐 올라 줄행랑을 칠까? 그들에겐 고통이겠지만 보는 이에게는 장관 그 자체다. 너의 불행은 나의 행복이란 말이 이때 왜 떠오를까?

　그런데 지금 너의 불행은 나의 불행이기도 하다는 마음을 가지고 있다.

　떠오르는 태양처럼 세상을 한번 호령하고 떠나면 얼마나 좋겠는가! 내일 또 올라오면 얼마나 좋겠는가! 그러나 대부분의 인간은 올라 서지도 못하고, 아무런 흔적도 남기지 못하고, 태양 아래 잠시 머물면서, 태양도 아닌 같은 인간을 억지로 추앙하다, 뭉게구름처럼 본연의 뽀얀 색으로 사라진다.

　잡념에 빠졌던 수리가 정신을 번쩍 차린다.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니지. 이 순간은 두 번 다시 오지 않는다. 그럼!”

　한 달에 절반 이상은 이런 광경을 보면서도 도망치는 연인 꽁무니를 쫓아가듯이 허둥댄다. 내일이면 또 올라오는 자연인데도 또 서두르고 있다.

　이 순간만큼은 어떤, 아무런, 어느 누구에도, 간섭, 구속, 제재, 제약을 받지 않고 사진을 찍을 수 있다. 만약에 파란 하늘이, 푸른 바다가, 하얀 뭉게구름이, 먹구름이, 로마에 가면 로마 법을 따르라는 말이 있듯이, 이 나라를 지나치다가, 얄궂은 법에 따라서, 불법으로 촬영했다고 고발을 한다면, 그는 사진을 찍지 않을 것이다.

　현실의 제재만으로도 버거울 만큼 충분한 고통을 받고 있는 그는 현실에 단련된 영악한 수준에 다다른 사람이지 우매한 사람은 아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