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빛의 실타래는 바다에 항상 오래 머물지 않았다. 바다에서 일하며 봐온 경험에서 발산하는 그의 눈빛은 떠오르는 태양보다 더 강렬한 빛을 발산시키고 있었다.

　몇 초 뒤에는 양팔을 활짝 펼친 은빛 실타래들은 사라지고 아주 잠시 주홍의 바다로 변한다. 주홍도 언제나 놓칠 수 없는 광경이다. 그 뒤로 붉은 태양이 고개를 내민다. 바다는 수평선 끝자리부터 은빛에서 주홍으로 변했다가 바로 붉게 물들여진다. 바다 물은 푸른 색으로 점령되기 전에 본연의 색인 백옥을 잠깐만 보여준다. 그때의 색은 가랑비가 시냇물에 떨어질 때, 수정 알 같은 물 방울을 보여줄 때와 같다. 수정 알 같은 백옥의 물 방울이 바다에 반짝반짝 빛날 때는 태양도 백옥의 색에 빠져 들어간다.

　이 사람이 지금 무슨 소리를 하는가? 바다가 파란 색이지 왜 백옥이라고 하니? 궁금하면 지금 바로 바다로 달려가 바닷물을 한 움큼 쥐어보게나.

　이때 자칫 꾸물거리다가는 흔히 보는 푸른 바다만 보게 된다. 이 빛 속 감춰진 거센 파도는 수리 안중에는 없었다. 바다에 빠지든 말던 손바닥만한 사진기로 연속으로 사진을 찍어댄다. 이때 누군가가 수리 뒤통수를 한대만 살짝 쥐어박는다. 꿀밤이었다.

　“야! 이놈아! 그러다가 한 순간에 빠져. 잘 알잖아. 네 몸 둥이 하나, 너울에 실려가면 찾지도 못해. 매일 보는 해가 뭐가 신기하다고. 아직도 신기해?”

　오십 대 중반의 흰머리를 가진 서양인.

　석유화학제품을 실어 나르는 이 화물선의 일등항해사다. 어젯밤에 배에 왔다가 파도가 거칠게 요동 치는 바람에 육지로 돌아가지 못하고 밤새도록 파도가 잠잠해지기를 기다릴 때 이분은 깊이 잠들어 있었다.

　그때 꿀렁거리는 배에서 잠을 자는 데에 익숙하지 않아 소파에 누워 선잠을 자면서 날이 밝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혹시라도 깊이 잠들어버릴까 두려워하며 뒤척거리기까지 했다.

　오로지 지금 이 순간을 위해서였다.

　수평선너머에서 올라오는 해를 보자마자 소변기에 앞에서 순서를 기다리는 사람처럼 발도 동동 굴리며 사진기와 바다 위에 펼쳐지는 장관에만 집중하고 있다. 잠 한숨 자지도 않고 기다린 이유는 단지 이 순간에 떠오르는 해를 보며 떠오르는 생각을 적고 싶어서였다. 그러나 어쩌다 사진 찍기에만 몰두한 사람이 돼 버렸다는 걸 본인은 인식하지 못하고 있었다.

　수리 직업은 사진사 작가도 글 쓰는 작가도 아니다.

　이 배에 실린 석유화학제품의 시료를 채취해 정상 품인지, 오염이 되었는지, 항해 중에 파도가 덮쳐 제품을 담은 저장 탱크(석유화학제품을 담은 저장 창고를 탱크라 한다)에 바닷물이 들어갔는지, 파는 회사와 사는 회사간에 계약된 제품 수량은 적거나 많지 않고 정확하게 실렸는지를 검사하는 검정이란 일을 하고 있다. 수리에게 검정을 의뢰한 회사들은 대부분 무역회사다. 그들이 수입한 석유화학제품은 대부분 사우디아라비아나 텍사스에서 실어오기 때문에 이 배의 일등항해사를 대략 3개월 또는 6개월 주기로 만난다.

　어떤 때는 일년 만에 만날 때도 있지만 만날 때마다 엊그제도 만난 사람 같은 느낌을 항상 받는다. 그 이유에 대해 수많이 생각을 해봤지만 정확한 답을 수리는 얻지 못했다. 아마 어떠한 구속이나 제재가 없는 사람과 사람 사이의 마음이 아닌가? 그러는 동안 서로 터놓고 대화를 하면서 친해져서가 아닌가? 추축만할 뿐이다.

　그런데 자연은 다르게 느끼고 있었다. 매일 같아 보이지만 새롭다. 무슨 이유로 매일 다르게 치장을 하는지 물어보고 싶어하지만, 매일 자연스레 만나는 자연의 언어를 모르고 있었다. 수많은 언어들이 각 나라마다 있지만 자연만은 언어를 가지고 있지 않아 물어 볼 수도 없어, 속만 태우고 있었다.

　그런데 이보다 더 급한 언어가 필요했다. 항해사에게 오래 전에 사진을 찍는 이유도 설명했고 어처구니없는 이 나라 법도 설명을 했다. 또 사전을 찾아 설명을 해야 하나? 해본들 나라 망신이지. 그래도 대답을 하는 게 예의다 싶어 머리를 굴렸지만 배 바로 아래 바다에서 사이렌 소리가 울렸다.

　수리를 육지로 데려 갈 통 선(통 선: 가까운 거리의 바다나 강에서 사람이나 물건을 실어 나르는 배)이 왔다. 신통찮은 영어와 이 나라의 이상한 법을 한번 더 설명할 불행을 덜어줄 천만다행의 순간이 수리에게 왔다.

　씁쓸한 미소를 지으며 인사를 한 후에 통 선을 타기 위해 줄 사다리를 붙잡을 때 항해사가 엄지를 치켜 세워주며 멋진 사진과 글을 볼 수 있는 날이 빨리 오기를 기대한다고 한다. 엄지를 세워 감사를 표시하지만 수리는 일등 항해사의 진실한 마음을 잘 알고 있다.

　소수 약자들이 법을 거역하며 칭얼대는 하소연에 불과한 글에는 어느 누구도 관심을 가지지 않는다는 사실을 일등 항해사는 알고 있다. 반대의 입장에 선 사람들.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갑의 입장에 선 사람들에게는 간절한 마음으로 쓰고 있는 이 글은 술 취한 시정잡배의 횡설수설밖에 되지 않는다는 걸 모를 만큼 수리도 무식한 인간은 아니었다. 비록 아직도 시정잡배와 어울리긴 하지만 무식하지는 않았다.

　허리를 굽혀 바다를 보면서 줄 사다리를 붙잡는다.

　육지로 돌아가기 위해 화물선에서 내리려는 첫 번째 절차다. 서 있는 곳은 화물선 갑판이다. 배 위다. 통 선은 바다 위에 떠 있다. 높이로 치면 10미터 정도다. 아파트로 치면 4,5층 정도. 4,5층 정도에서 줄 사다리를 타고 내려갈 준비를 하고 있다. 이 준비는 군 시절에 수도 없이 많이 해서 두렵지 않다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그건 아니다. 항상 이때를 ‘무서워서 뒈지는 줄 알았네’ 이렇게 읊조린다.

　삶과 죽음의 순간인 지금! 태양이 수평선 위로 올라온다. 눈과 거의 직선으로 마주친다. 태양과 수리는 평등한 위치에 서 있다. 그러나 감히. 응징 당한다. 눈알이 아리어진다. 아주 센 놈의 주먹이 눈 앞에 오기나 한 듯 눈을 꽉 감는다. 벌써 얻어터지기나 한 듯이 엄지와 검지로 눈가를 주무른다. 눈물이 아닌 눈곱이 한 묶음이나 엄지와 검지에 걸쳐진다.

　그 순간 안경도 끼지 않았는데 시야가 뿌옇게 흐릿해진다.

　헤쳐나가야 할 현실 같은 뿌연 물 안개를 대신해 희망의 상징인 강렬한 태양이 시야를 가리게 했다. 태양은 말 그대로 활활 타오르기 시작했다.

　저 태양처럼 사업이 활활 타오르며 번창하고 싶은데 과연 될까?

　그때 방해하는 누군가가 나타난다. 누구지? 의문을 가지만 곧 실체를 안다. 단지 너무 많아서 딱 꼬집어 네 놈이다라고 지정만 못하고 있다. 잠 탓인가? 아님 뱃멀미 탓인가? 간단히 졸음 탓이다.

　소프트웨어와 하드웨어 등 정보기술이 아무리 발달해도 생명을 두고 닥쳐오는 위기에는 뇌를 따르지 못한다. 졸음과 배 멀미와 두려움의 순간에 뇌가 위력을 발휘한다. 순간적으로 개발한 프로그램이 전신을 움츠리게 한다. 고개가 자동적으로 좌우로 흔들거리고 있다. 바다에 빠지는 재수없는 생각에 겹쳐 창업을 위해 진 빚을 떠올리고 있다. 흥망도 떠올린다.

　당장 급한 건 안전하게 배에서 내려 통 선에 오르는 일인데도 말이다.

　너울이 제법 심한지 통 선이 화물선을 세게 쥐어박았다가 멀리 떨어지기를 반복하는 동안 수리는 줄 사다리를 타고 바닷물 바로 위에까지 내려가 매달린 채로 통 선이 화물선에 바짝 붙을 순간을 기다리고 있다. 통 선만큼이나 몸이 흔들리는지, 줄 사다리가 흔들거리는지, 여하튼 온몸이 흔들거리고 있다. 지금도, 다가올 미래도, 흔들리는 게 아닌 가 예견을 했는지 수리가 헛웃음을 치고 있다. 게다가 군복무 때도 떠올리고 있다. 상륙훈련을 할 때 그물망을 오르내린 효과를 지금에야 발휘하고 있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 줄 사다리에 매달려, 너울에 실린 통 선이 배에 붙는 순간에 뛰어 내려 통 선 갑판에 착지를 해야만 한다.

　오늘은 파도가 제법 지랄용천을 떨고 있다.

　밑으로 쑥 2미터 정도 내려 갔다가 다시 올라온다. 하나 둘 셋이란 리듬을 잘 타야 한다. 군복무 시절 육상에서 이런 훈련인 그물망을 타는 훈련은 했지만 바다 위에서 이런 훈련도 실전도 똥 포(포병)란 병과 탓에 단 한번도 한적이 없는 실전을 전역 후에 치르고 있다.

　바짝 긴장해 줄 사다리에 매달려있다가 통 선이 최고 점으로 올라오기 직전에 뛰어내려야 한다. 만약에 최고점에 도달 한 후 밑으로 내려갈 때 뛰어내리면 통 선 갑판 위에서 1미터 던 2미터 던 공중부양 상태로 통 선과 같이 하강을 해야만 한다. 그렇게 착지하면 발목이 접질리거나 아니면 갑판에서 나뒹굴기도 한다. 재수 없으면 바다에 빠지기도 한다. 만약에 빠지면 물살을 실감해야 한다. 한 순간에 사라지기도 한다.

　이 모든 순간들은 두려움 자체다. 천만다행이 아무런 사고도 부상도 없이 통 선에 착지해 선실로 쪼르르 뛰어 들어가 털썩 자리에 앉는다.

　“야! 임마! 다음엔 한 템포 쉬고 뛰어내려. 너무 급해.”

　뛰어 내리는 모습에서 통 선 선장은 아찔한 기분이 들었다고 한다. 아주 잠시의 순간이었지만 수리도 뛰어 내릴까 말까 망설이던 중 멈칫하면서 뛰어 내렸다. 하마터면 큰 일중에 제일 큰일인 목숨을 잃을 뻔 했다. 그 순간이 지나자 안도의 한숨과 함께 죽을뻔한 당시를 월드컵 3, 4위 전으로 연관시키며 고개를 흔든다. 멈칫하지 않고 바로 슛을 날렸으면 월드컵 3위도 가능했을 텐데. 허긴 4위도 감지덕지지.

　삶과 죽음의 갈래에서 축구 선수의 멈칫한 슛 자세를 떠올리는 자기가 한심한 모양이다. 헛웃음 치고 말한다.

　“영 점 몇 초도 아니었는데 배가 쏙 내려가서 저도 당황했습니다.”

　통 선 엔진에서 들려오는 소리가 요란해 일등 항해사는 이 어쭙잖은 변명, 죽고 난 뒤에 하는 말처럼, 듣지 못한다. 엔진 소리가 논두렁을 달리는 경운기 엔진 수백 개를 달아놓은 것 같다. 시골 촌놈인 수리는 경운기 소리를 알지만 모르는 사람도 있다. 통 선의 엔진소리는 번쩍이는 번개 뒤로 들려오는 천둥소리의 합창곡이라 생각하면 쉽게 이해가 간다.

　배에서 내려 세관을 거쳐 주차장으로 가던 도중에 사진기에 찍힌 사진을 보며 궁리를 한다. 이 멋진 풍경을 어떻게 설명을 하지? 늘 하는 고민이었다. 이때마다 교과서 외에는 책과는 멀리 담을 쌓은 유년 시절을 후회한다.

　그때였다.

　등 뒤에서 통 선 엔진소리보다 더 요란한 빵빵거리는 소리가 들린다. 사진과 후회에 정신이 팔려 차가 달리는 차도를 인도로 착각해 무단횡단을 하고 있다. 깜짝 놀라기만 한다. 운전자를 너무 믿는 것 같다. 차를 피할 생각도 하지 않고 멍청하게 쳐다 만 본다. 소름이 오싹 끼칠 정도로 타이어에서 ‘끽’ 소리가 길게 난다.

　“아저씨! 정신을 어디 두고 다니는 거에요? 빨리 비켜요.”

　급 브레이크 밟을 때 아스팔트를 쓸어가는 타이어 찢어지는 소리보다 더 소름을 끼치게 하는 앙칼진 목소리다. 소리가 새어 나올 정도로만 창문을 내려 얼굴도 내밀지 않은 채 고함만 내지른다. 고함소리에 정신이 번쩍 던 수리가 잽싸게 인도로 뛰어오른다. 그리고는 왼쪽에 놀고 있던 검지 손가락을 귓구멍으로 쑤셔 넣어 앙칼진 목소리를 파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