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언자 카산드라의 삶은 비극적이었어요.”
베르니스 드니로는 다크 서클이 짙게 내려온 크리스토퍼 교수의 얼굴을 가만히 바라보고 있었다. 크리스토퍼 교수는 지친 얼굴로 수업을 이어나가고 있었는데 베르니스는 자신의 전생보다 오히려 현재의 그가 불쌍해지는 참이었다.
“자신이 가진 예언능력으로 잃어버린 동생을 찾게 됐지만 그로인해 자신의 조국 트로이가 멸망하고 말죠.”
하지만 자신의 옛 조국의 이름이 들리자 정신이 번쩍 들었다. 그리고 속이 갑자기 뜨끈뜨끈해지는 듯했다.
그래 여자에 미친 놈. 여자에 미쳐서 나라를 망하게 해?
베르니스는 속으로 이를 부득부득 갈았다. 이전 생이지만 여전히 화가 들끓는 대목이었다. 그녀가 나름대로 표정관리를 하고 있다고 생각했지만 크리스토퍼 교수의 눈은 아니었던 모양이다.
“베르니스 드니로? 무슨 일 있나요?”
“아닙니다 교수님”
베르니스는 꽃같이 말간 미소를 지으며 자신의 짧은 보랏빛 머리칼을 부드럽게 흔들었다. 크리스토퍼는 그녀에게 희미한 미소를 지어보이며 다시 수업을 재개했다.
“카산드라는 적군 총대장의 전리품이 되죠. 그러면서 자신의 미래를 보게 됩니다.”
아아, 전생엔 그래도 내 미래를 봤는데 왜 지금은 이 모양인거야.
베르니스는 이제 크리스토퍼가 써내려가는 칠판을 뚫어져라 쳐다보기 시작했고 그녀가 쥐고 있는 연필은 부서지기 일보직전이었다.
“자신이 적군 총대장의 목욕시중을 들다가 그의 부인에게 죽게 된다는 걸 알게 됩니다. 그녀는 도망치지 않고 죽기로 마음먹습니다. 비참한 삶을 살 바에는 자살이나 다름없는 삶을 택하죠.”
그랬다. 적군의 대장의 목욕시중과 침실시중까지 안 해본 게 없었다. 잠자리 시중까지 요구 받았으니까. 자신이 죽는 걸 알고 있었지만 도망치지 않고 그냥 죽기로 마음먹었다. 그 때는 죽음이 낫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카산드라는 꽃다운 나이에 요절했다.
베르니스는 잠시 초연한 눈으로 크리스토퍼 교수를 바라보았다.
“여러분들도 신의 뜻을 받드는 사람으로서 예언자 카산드라의 삶을 보며 느끼는 게 있을 겁니다. 신의 뜻을 받드는 사제, 그 고귀한 삶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해보길 바라며 이번 시간 마무리 하겠습니다”
크리스토퍼 교수는 말을 마치고는 수업을 정리했다. 테베신학교 학생들도 자신의 필기구를 정리하고 교실이 소란스러워졌다. 일부 순수하고 열정적인 예비 사제들은 눈을 빛내며 예언자 카산드라의 삶을 얘기했다.
“내가 카산드라라면 어떻게든 살아남을 것 같아. 자신의 미래가 보이는데 뭐하러 죽냐구. 그리고 과거에 태양신의 사랑을 받았다면 어떻게든 되지 않았겠어?”
내가 그걸 안 해봤겠니. 예언능력을 준 옛 연인한테 몇 번이고 기도하고 그 난리를 쳤는데.
베르니스는 자신의 필기구를 정리하며 그 학생들에게 소리치고 싶었다.
“근데 애초에 자신의 죽음을 알았다면 도망칠 생각을 해야지 않나? 좀 멍청하지 않아?”
“야!”
한 학생의 의미 없는 비아냥에 베르니스는 자신도 모르게 화가 나서 그들에게 소리쳤다. 그들이 베르니스를 보며 놀란 눈을 껌벅거렸다. 평소 베르니스는 큰 감정변화를 보이지 않는 사람이었고 언제나 웃는 표정이었기에 그들은 더 놀란 표정들이었다.
“베르니스?”
“어...... 미..미안해 노을이 너무 아름다워서 감탄사를 말한다는 게 그만”
베르니스는 순간 당황해서 억지웃음을 짓다가 후닥닥 교실을 빠져나왔다.
노을은 정말로 아름다웠다. 노을빛은 테베신학교 본관의 큰 유리 창문 사이사이로 스며들어 복도바닥 또한 붉게 빛나고 있었다. 베르니스는 아무 일도 없다는 듯 그 복도를 천천히 걸었다.
그녀는 이 노을처럼 자신의 끝은 언제나 아름답길 바랐다. 그것이 전생이든 현생이든.
그 비극적인 삶의 주인공인 카산드라는 ‘베르니스 드니로’로 환생했기 때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