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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로맨스
기다림
작가 : joinB
작품등록일 : 2020.9.21

그가 사랑했던 조선의 푸른 하늘과 땅과 바람은 여전했다.
널 잃었던 그날로부터 난 멈춰있다.

이른 걸음을 걸어가버릴 수밖에 없던 나는 아직도 여전했다.
널 떠났던 그날로부터 난 멈춰있다.

세상은 우리의 사랑을 항상 다른 이름으로 가로막았다.
널 위한 것이라고 했다.
더하지도 덜하지도 않았다.
딱, 그만큼만 나는 너에게 상처주지 않으려 했다.
세상과 멀어진 지금, 멀어지려 하는 지금, 이제야 깨닫는다.
그게, 상처라는 걸.
너를 외롭게 했다는 것을...

나도 너도 기다린다.
사랑에 빠졌던 그 날의 사랑으로부터...

 
1. 그 날의 기억
작성일 : 20-09-21 17:55     조회 : 414     추천 : 0     분량 : 46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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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작하기 전> 그대의 향기로구나

 

 

 18세기의 조선의 추위가 극심해지던 1월의 겨울이었다. 전날이 동지(冬至)였음에도 날씨는 수그러들 줄 모르고, 매서운 눈바람이 아침부터 궐이며 골목 구석구석까지 휘몰아쳤다. 마치 무언가를 예견하듯이.

 

 “호~호오~! 으흐! 차거!”

 

 빨랫감을 한 바구니씩 들고 가는 무수리들의 무리가 바람을 뚫고 우르르 종종 걸음을 걸어갔다. 아침부터 손에 물을 묻혀야 하는 수라간의 나인들은 저마다 짝지어 우물에 물을 기르고, 꽁꽁 얼어가는 손을 녹이느라 더욱 분주했다. 대궐 입구부터 각 전각을 지켜야 하는 금군들은 털모자를 하고도 옷을 몇 겹을 껴입어 곰처럼 둔한 몸으로 용트림 같은 콧김을 내 뿜는 그런 날이었다.

 

 창덕궁 대전 앞. 나이 예순은 됨직한 사내는 대전의 마른 뜰에 엎드려 고개를 숙인 젊은 사내에게 삿대질을 하며 소리치고 있었다. 허조대왕이었다. 붉은 용포가 그의 움직임에 펄럭였다. 그 용포 사이로 불어오는 바람은 그의 분노로 금방 데워지는 듯 했고, 늙은 왕은 추위를 느낄 겨를도 없어보였다.

 

 “죽이라! 당장, 죽이라!”

 

 그의 곁을 지키는 상선 내관 하나, 제조상궁 하나, 그 아래 궁인들 수십이 이 모든 것을 지켜보고 있었다. 대왕보다 나이가 더 많아 보이는 상선 내관이 고개를 연신 숙이며 말했다.

 

 “전하. 살리소서. 부디 살리소서. 이 나라의 국본이십니다. 훗날을 기약하시어 부디 살리소서.”

 

 올해 스물일곱의 사내는 그저 고개를 숙이고 눈을 감았다. 대왕의 아들이자, 세자였다. 그의 귓가에 들리는 아비의 분노는 그의 머릿속을 헤집었다. 귀가 떨어질 것 같은 것이 아비의 분노 때문인지, 추위에 그런 것인지 분간이 되지 않을 정도로 세자는 세포 하나하나 빠짐없이 분노를 감내했다.

 

 ‘나는 그저 살아야 하는가...? 죽어야, 하는가...?’

 

 대왕은 충신의 말에도 아랑곳하지 않았다. 추운 겨울, 새하얀 적삼만 입고 무릎을 꿇은 아들의 손이 붉고 붉게 물들어 가고 있음에도 대왕은 외면했다. 세자는 주먹을 꽉 쥐고, 추위를 뚫고 날아오는 아비의 분노를 감내했다. 그때였다. 저 멀리서 10여년 익숙한 향기가 바람을 타고 들어왔다. 그 향기는 감고 있던 눈을 뜨게 했고, 숙이던 고개를 들게 했다.

 

 “하...”

 

 ‘그대의 향기로구나...’

 

 세자가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그리고 분노하던 대왕에게 열일곱 살의 어린 중전, 김성희가 걸어왔다. 세자보다도 열 살이나 어린 국모였다. 어리고 붉은 꽃의 눈빛은 가시처럼 날카롭게 돋아 매서웠다. 비단 쓸리는 소리가 들렸고, 무겁게도 꽂은 머리꽂이와 노리개가 바람에 부딪쳐 달그락 소리를 냈다.

 

 “전하. 그만 하시옵소서. 날이 차옵니다. 세자가 고뿔에라도 걸릴까 염려되옵니다.”

 “그대로 얼어 죽으라!”

 “전하! 아랫것들이 듣사옵니다.”

 

 어린 중전의 만류에, 대왕은 눈 쌓인 드넓은 뜰에 홀로 무릎을 꿇고 있는 세자를 버려두고 가 버렸다.

 

 ‘솨—아---’

 

 궐 뒷산에 가득 자란 대나무가 바람과 부딪쳐 스산한 소리를 냈다. 그 바람에 대나무에 앉았던 눈발이 안개처럼 흩날렸다. 그 와중에도 세자를 지켜야 할 세자빈은 어디에도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그럼에도 세자는 서운해하지 않았다.

 

 “오지 않는구나...”

 

 어린 중전, 성희도 그에게 등을 돌렸다. 부는 바람이 시려 눈을 감은 것인지, 이 광경을 보기가 힘들어서인지, 성희는 눈을 질끈 감았다. 그리고 급히 자리를 떴다. 세자는 외로웠고, 쓸쓸했다.

 

 ‘이 향기는 그대의 마지막 인사로구나. 그대는 이제 없구나...’

 

 ***

 

 늦은 밤. 봄바람이 꽤 찬 저녁. 궐 안 동궁전의 늦은 시간. 꽤 분주한 사람들. 궁녀들. 내관들. 그리고 이들을 감시하는 눈들.

 

 “두 분 마마는 아직 이신가?”

 

 표독한 눈초리로 쏘아 말하는 상궁이 동궁전의 상궁에게 물었다. 이미 동궁전 앞엔 가마 두 대가 대기 중이었다. 그리고 문이 열리며, 스물일곱의 세자빈, 홍윤희와 여덟 살의 세손, 이 성이 나왔다. 두 사람 모두 평복 차림이었다. 그들은 쫓겨나는 중이었다. 두 사람이 쫓겨나는 죄라고 한다면, 그들이 사랑하는 가족이 죽임을 당하게 지켜볼 수밖에 없었던 것이었다. 결국 정훈세자를 구하지 못한 것이 가장 큰 죄였겠지만.

 

 “마마. 소인들이 모시겠나이다.”

 

 좌, 우의 세자 익위(*세자 호위 무관)가 가마 앞에서 두 사람을 향해 고개를 숙였다. 그들은 죽은 세자에게 충성하던 사람들이었다. 웃음기라고는 하나도 없는 되게 돌처럼 굳어버린 얼굴. 주군의 죽음을 슬퍼하지 못하는 공감대가 세자빈과 세손, 익위사들 사이에 흘렀다. 모두의 얼굴이 그러했다. 울 수도 웃을 수도 없어, 그냥 어떤것도 얼굴에 드러내지 않았다.

 

 “서두르시지요.”

 

 표독한 말이 계속해서 그들을 밀어냈다. 단 몇 분 전까지만 해도 이곳은 그들의 집이었다. 그렇게 두 사람이 탄 가마는 궐을 급히 빠져나갔다. 그들이 나가는 길은 누구도 밝혀주지 않았다. 어둠 속을 그렇게 한참을 빠져나가야만 했다.

 

 “나갔대?”

 “너무해~. 세자께서 그렇게 죽는 것도 불쌍한데...”

 “쉿! 입 조심. 중궁전 귀로 들어가면 우리 다 죽어.”

 “불쌍해... 빈궁마마, 세손저하.”

 “이건 비밀인데... 중궁에서 곧 죽일 거래!”

 

 가마의 그림자는 곧 정훈세자의 사가 앞에 도착했다. 이제는 윤희와 성의 집이었다.

 

 “세손. 이제 이곳에서 지내야 합니다.”

 “아바마마의 장례도 아직 치르지 않았습니다, 어마마마.”

 

 윤희는 그저 안채로 향할 뿐이었다.

 

 “저기, 어머니...”

 

 윤희는 방으로 들어가 버렸다. 성이 할 말을 들을 생각이 없어 보였다.

 

 “이제 바깥세상을 보아도 되겠지요?”

 

 성은 사라진 어머니의 그림자에게 허락을 구했다.

 

 “날이 밝으면요.”

 

 대신 답하는 이는 그를 그림자처럼 따르는 내관, 차봉수였다.

 

 “지금도 괜찮지 않아?”

 “아니요. 어서 침소에 드시옵소서. 어서요.”

 

 봉수의 말에 성은 방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옷을 갈아입다가 말고, 몰래 옆방의 창을 열고는 집을 나섰다. 물론, 이런 날 사고를 치는 건 문제겠지만, 그는 꼭 보고 싶었다. 1년 전, 세자인 아버지에게 보낸 백성들의 함성. 그들의 환한 미소가 보고 싶었다. 이상하리만큼 지금, 꼭, 반드시.

 

 ‘끼—익’

 

 성은 캄캄한 거리를 걸었다. 오직 달빛에 의지했다. 벌써 인경(*밤 10시 통행 금지시간)이 다가오는 시간이었지만, 돌아다녀선 안 된다는 것도 알지 못했다. 통행을 위한 시간은 한 번도 경험하지 못했던 그였다.

 

 “봉수는 데리고 올 걸 그랬나?”

 

 캄캄하고 인적 없는 큰 길을 걷자니 조금은 께름칙했던 것이었다. 그때, 저 멀리서 횃불이 보였고, 성은 그 유명하다는 압구정 구경을 위해 길을 물어볼 생각이었다. 숨을 한 것 들이마셨고, 곧 내지르려 할 그때였다.

 

 “이리- 헙!”

 

 누군가 급히 성을 낚아채 입을 막았다. 어디론가 쑤욱 빨려 들어가듯, 그는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성의 귓가에 낭랑한 목소리가 속삭였다.

 

 “미쳤어?”

 “읍! 음읍읍읍!”

 “쉿!”

 

 성의 입을 틀어막은 조막만한 손. 앳된 목소리. 성은 순간 입을 막고 있는 손에 감각을 집중하게 되었다. 아주 찰나였지만, 왠지... 순라꾼들은 곧 어둠속으로 숨은 이들의 앞으로 나타났다. 순라꾼들의 횃불은 담장을 비췄지만, 어둠 속의 그들은 보이지 않았다. 순라군들의 불빛이 저 멀리 사라졌을 때, 성은 손아귀에서 벗어났다.

 

 “이게 무슨 짓이냐?! 감히!”

 

 달빛 아래 사내 복장의 어린 아이가 보였다. 예쁘게 생겨, 계집아이라고해도 믿을 만한 아이. 성 자신과 비슷한 또래로 보였다.

 

 유아는 이 정신없는 남자 아이가 답답했다. 요즘 도성의 백성이라면, 김척론자들의 그림자만 보여도 서로 숨겨주려 난리인데, 이 남자아이는 누구기에 일을 망치려 드는 것인가?

 

 “그쪽이야말로 뭘 하려 했소? 돕지 않으면 않았지, 죽고 싶은 것이오?!”

 

 유아에게 대들려 하는 그 순간, 성은 유아의 뒤로 서 있는 건장한 사내 둘을 발견했다. 아무리 세손이라지만, 이런 상황에서는 몸을 사리는 것이 최선이라 판단했다. 약간 움찔한 것은 사실이었다.

 

 “자고로 사내란 입이 무거워야 하는 법. 난 너희들을 보지 못하였다.”

 “참나!”

 

 유아는 주머니에서 나무패를 꺼냈다. 화살 모양이 새겨진 표식. 성은 처음 보는 듯 갸웃했다. 그러자 유아는 한숨을 내쉬었다.

 

 “어느 촌구석에서 오셨소?”

 “뭐? 초, 촌구석?”

 “산에서 내려온 정도가 아니면, 이 표식을 모를 리가.”

 “이게 대관절...?”

 “김척론자!”

 “김척론자?”

 

 궁녀들이 수군거리던 것을 들어 본 적이 있었다. 얼마 전, 궐 밖 출입을 할 때도 백성들은 김척론자를 이야기했었다. 김씨 외척들을 배척하는 사람들. 또한 이들을 사칭하는 무리도 많았다.

 

 “도적떼라더니, 이렇게 어린 아이까지 동원을 한 단 말인가? 쯧쯧...”

 “사돈 남 말하네. 위험하니, 어서 댁으로 가시오. 아님, 오늘 피 봐요.”

 “뭐라? 감히 내가- 으헉! 이, 이놈들!”

 

 곁의 사내들이 성을 번쩍 들어, 거리 위에 올려두듯 내려두었다. 그리고는 사라졌다.

 

 “여봐라! 아무도 없느냐?”

 

 캄캄한 거리 한복판에서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니, 그에게 다가오는 것은 순라꾼들이요, 또한 그를 찾으러 때마침 나오던 봉수와 익위사들이었다.

 

 “아! 나, 몰래 나왔지?”

 “저~~ 언~ 하~!”

 “하... 봉수야...”

 

 ***

 

 그가 사랑했던 조선의 푸른 하늘과 땅과 바람은 여전했다.

 널 잃었던 그날로부터 난 멈춰있다.

 

 이른 걸음을 걸어가버릴 수밖에 없던 나는 아직도 여전했다.

 널 떠났던 그날로부터 난 멈춰있다.

 

 세상은 우리의 사랑을 항상 다른 이름으로 가로막았다.

 널 위한 것이라고 했다.

 더하지도 덜하지도 않았다.

 딱, 그만큼만 나는 너에게 상처주지 않으려 했다.

 세상과 멀어진 지금, 멀어지려 하는 지금, 이제야 깨닫는다.

 그게, 상처라는 걸.

 너를 외롭게 했다는 것을...

 

 나도 너도 기다린다.

 사랑에 빠졌던 그 날의 사랑으로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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