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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로맨스
나를 잊은 그대에게
작가 : 하나
작품등록일 : 2020.9.14

7년을 만난 애인에게 예고도 없이 차인 단비. 하루하루를 고통 속에서 지내던 그녀 앞에 옆집 남자 윤완이 나타났다. 이별 극복을 도와준다는 모임 '라벤더 모임'을 운영하고 있는 그는 단비의 삶에 조금씩 스며드는데....과연 단비는 새로운 사랑을 붙잡을 수 있을까.

이별을 극복하고 새로운 사랑을 찾는 여자 이야기.

 
1화) 예고도 없이 차였다
작성일 : 20-09-14 20:50     조회 : 399     추천 : 0     분량 : 72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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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안해. 내가 너무 늦었지?”

 

 *

  분명 평소와 다름없는 날이었다. 아침잠이 많은 나는 모닝콜을 듣고 겨우 일어나 분주하게 출근 준비를 했다. 지하철역에 와서는 지루하고 초조한 시간을 견디기 위해 현수의 목소리를 들었다.

  내 휴대폰엔 현수의 목소리 파일이 스무 개쯤 저장돼 있었다. 기념일에 불러준 노래, 잘 자라는 밤 인사, 내 이름만 부르는 따뜻한 목소리……

  어느 것 하나 사랑이 담기지 않은 것이 없었다. 그래서 파일을 들을 때마다 마음이 행복으로 충만해졌고, 부정적인 감정들이 사라지곤 했다.

  회사에 도착한 뒤에는 가장 먼저 현수에게 톡을 보냈다. 아침에는 출근하느라 바쁘기 때문에 우린 서로에게 침묵했다. 대신 업무를 시작하기 전에 밤사이의 안녕을 묻고, 애정을 속삭이고, 별 탈 없는 하루가 되기를 응원했다. 그건 무려 7년 동안 단 한 번도 어긴 적 없는 우리 두 사람만의 룰이자 앞으로도 이어나갈 소중한 룰이었다.

  점심은 회사 근처에 있는 국숫집에서 먹었다. 그곳에선 다양한 국수와 사이드메뉴로 닭튀김을 팔았는데, 국수도 국수지만 닭튀김이 아주 유명했다.

  닭튀김은 조리된 냉동이 아닌 직접 만든 것을 사용해서 특유의 신선함과 고소함이 있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닭튀김 때문에 일부러 그곳을 찾았고, 현수 역시 그 중 하나였다.

  현수는 갓 튀겨낸 닭튀김을 비빔국수 소스에 찍어먹는 걸 좋아했다. 어느 정도냐면, 오로지 닭튀김만 먹기 위해서 메인 메뉴인 국수 대신 닭튀김만 여러 개 시키는 일이 종종 있었다.

  나는 맛있는 것, 특히 상대방이 좋아하는 음식을 먹고 있을 때 그 사람이 자연스레 떠오르는 게 사랑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닭튀김을 본 순간 현수 얼굴이 아른거리자 내가 그를 여전히 많이 사랑하는구나 싶어서 웃음이 나왔다. 현수의 고백에 가슴이 찌르르 울렸던 그때부터 지금까지 현수를 사랑하지 않은 날들은 없었다.

  현수도 그랬다. 눈빛은 거짓을 모른다고, 그의 눈빛을 보면 알 수 있었다. 나에게 머물러 있는 현수의 눈빛은 사랑이 충만해 항상 포근했다.

  그래서 그가 날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나는 행복했다. 7년이란 세월을 함께 하는 동안 그 눈빛은 흔들린 적이 없었고, 나 역시 다른 이의 눈빛에 설레어 본 적 없었다. 그게 우리의 사랑이었다.

 

  나머지 시간 역시 무난하게 흘러갔다. 프러포즈 이벤트 견적을 내달라는 메일을 다섯 통 받았고, 부분 환불을 외치는 진상 고객을 퇴치했으며, 사탕 바구니를 만들었다.

  알사탕을 하나하나 꽃으로 탈바꿈하는 동안 도정하의 불평을 들어야했지만 이제는 익숙해져 귀찮거나 짜증나지 않았다. 그저 불평이 많은 그녀가 안타까울 뿐이었다.

  근사한 외모를 비롯해 모든 것에 부족함이 없는 그녀를 투덜이로 만든 것은 무엇일까. 그녀의 겉모습만 보는 나로서는 도무지 알 수 없는 일이었다.

  -회사 앞 카페에서 기다리고 있어.

  퇴근을 할 때쯤 현수로부터 톡이 왔다. 예정에 없던 만남이었다. 현수는 가끔 이런 식으로 몰래 찾아와 나를 놀라게 했다. 그러면 내 심장은 철없는 아이처럼 이리저리 날뛰었다.

  이 얘길 현수에게 하면 현수는 살며시 미소 지으며 내 머리를 쓰다듬었다. 뿌듯해하는 눈치였다. 나는 또 그게 좋아서 현수의 품에 파고들고, 그로인해 현수는 또다시 뿌듯해하고. 끝이 없는 뫼비우스의 띠처럼 돌고 도는 애정의 순환. 이상적인 연인의 모습이 아닐까.

  다행히 잔업은 없었다. 그러나 퇴근 직전에 걸려온 전화로 인해 시간이 지체됐다. 상대는 억지를 부려가며 컴플레인을 걸었다. 이런 유형이 근본적으로 원하는 건 비용을 깎는 것이었다.

  그들은 입을 모아 우리의 가격이 터무니없다고 하지만 그건 무조건 공짜를 바라는 그들의 못된 심보일 뿐이었다. 우린 규모는 작지만 질 좋은 서비스와 합리적인 비용으로 업계에서 인정받고 있었으니까.

 

  대학에서 알게 된 나 선배가 이벤트 회사를 창업한 건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사랑이라고 여기는 낭만주의자이기 때문이었다. 그녀는 이 일의 장점을 누군가의 소중한 순간을 함께 만들어 가는 것이라고 했다.

  나는 아르바이트를 통해 이 길로 들어섰다. 그러다 선배의 말처럼 타인의 소중한 시간을 함께 하면서 점점 기쁨을 느꼈고 결국 내 일로 택했다.

  부모님의 반대가 심해 처음엔 순탄치 않았다. 하나뿐인 딸이 자신들처럼 교수가 되길 바랐던 분들이라 이 일을 하찮게 여기셨다. 그래서 내게 그만두기를 종용하셨고 뜻대로 되지 않자 나를 투명인간으로 대하셨다. 여전히 말이다.

  그럼에도 내가 굽히지 않고 버틸 수 있었던 건 현수가 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그만큼 현수는 여러모로 내게 소중한 사람이었다. 나 역시 현수에게 그런 사람이길 바랐다.

 

 *

  “미안해. 내가 너무 늦었지? 나오는데 전화가 와서. 다들 먼저 나간 후라 내가 받을 수밖에 없었어.”

  전화를 끊자마자 현수에게 달려간 나는 자리에 앉기도 전에 상황을 설명했다. 현수는 골이 났는지 빈 커피 잔으로 눈을 내리깔았다. 그러더니 별안간 카운터로 갔다. 돌아온 현수의 손에는 진동벨과 카페라떼 영수증이 들려 있었다.

  “아이스? 오늘은 따뜻한 거 마시고 싶은데.”

  “미안.”

  현수는 내 눈을 똑바로 보지 못했다. 어째서 혼이 난 강아지처럼 어깨를 잔뜩 늘어뜨리고 있는 걸까.

  “괜찮아. 너야 늘 주문하던 대로 했을 뿐인데 뭐.”

  그러나 현수는 괜찮지 않았다. 여전히 나를 보지 못했고 자꾸만 낮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런 현수가 낯설게 느껴져 마음이 불안했다. 나는 팔을 뻗어 현수의 손을 붙잡았다.

  현수는 손잡는 걸 좋아했다. 어디에서건 깍지 낀 손을 놓을 줄 몰랐다. 그걸 본 친구들은 나를 붙잡아두기 위한 족쇄냐며 놀리곤 했었다.

  그랬던 그가 제 손 위에 포개진 내 손을 살며시 치웠다. 나쁜 짓을 하는 사람처럼 손끝을 벌벌 떨고 있었다.

  당황한 나는 가만히 현수를 주시했다. 이쪽저쪽으로 흔들리며 갈피를 잡지 못하던 현수의 눈동자가 마침내 내게로 왔다.

  “헤어지자.”

  평소와 다름없는 날이었다. 아니, 되짚어보면 조금씩 어긋나는 날이었다. 샴푸와 린스를 혼동했고, 선크림 바르는 걸 잊어 버렸으며, 립스틱을 다 넣지 않은 상태로 뚜껑을 닫는 실수를 했다.

  게다가 아침 톡에 현수는 ㅇㅇ이라는 무성의한 답변을 내놓았다. 눈코 뜰 새 없이 바빠 연락하기 힘들 때는 ♥만을 보내기로 했는데 어긴 것이다. 현수의 반응에 마음이 상했지만 곧 일 때문에 잊어 버렸다.

  또한 국숫집의 닭튀김 맛이 미묘하게 달랐다. 닭튀김을 전담한 직원이 결근해 국수 담당인 사장이 튀김을 만든 것이다.

  그리고 조금 전 현수는 그렇게 침묵하면 안 됐다. 현수는, 나의 현수는 늦어서 미안하다고 말하는 내게 조금도 늦지 않았다고, 실은 너를 기다리는 시간마저도 기쁨이라고 해야만 했다.

  혹 이런 것들이 오늘은 어제와 다를 거라고 경고하는 암시였던 걸까. 진작 눈치 챘더라면 나는 도망칠 수 있었을까. 헤어지자고 하는 현수로부터.

 

  숨이 턱 밑까지 차올랐지만 숨을 쉬고 싶지 않았다. 그냥 이대로 기절해 버리고 싶었다. 눈을 뜨면 모든 게 꿈이었기를 바라는 마음은 이기적인 것일까.

  침묵과 침묵. 나는 믿기지 않아서 침묵했고 현수는……도대체 현수는 왜 침묵하는 거지.

  일의 순서를 따져보자면 그 다음이 있어야 하는 건데. 헤어짐의 이유를 나열하고 미안하다 사과하고 내 입에서 나오는 각종 욕설을 참고 견뎌내야지.

  아니면 뱉어놓고 보니 벌써 후회가 되는 걸까.

  그건 아닌 것 같았다. 현수의 표정엔 영혼이 담겨 있지 않았다. 내 앞에 앉아 있는 것은 껍데기일 뿐이다. 그는 나와 이별하기 위해 영혼을 두고 온 것이다. 그래야만 이 괴로운 순간을 빨리 끝낼 수 있을 테니까.

  멈췄던 마음이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러자 갑작스레 이별을 고하는 현수에 대한 미움이 화선지 위에 떨어진 먹물처럼 빠르게 번져갔다. 날카로운 가시를 그리며 번지는 미움은 나를 아프게 찔렀다.

  그의 한 마디에 피투성이가 된 내 마음을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싶었다. 그러나 나는 입을 꽉 틀어막았다. 내가 아는 척을 해버리면 그 일이 정말로 현실이 될 것 같았으니까.

  지이잉- 지이이이잉-

  침묵을 깬 건 카페라떼의 완성을 알리는 진동벨이었다. 그건 빨간불을 반짝거리며 방정맞게 몸을 흔들어댔다.

  어서 가져가세요, 어서. 맛있는 카페라떼가 당신을 기다리고 있다고요-

  그러나 둘 중 누구도 일어나지 않았다. 그저 각자의 감정에 빠져 허우적댈 뿐이었다.

  ‘너는 먹을 때가 가장 예뻐. 그 모습을 보면 나도 행복해져.’

  문득 현수가 자주 하던 말이 떠올랐다. 그래. 그거야. 가장 예쁜 모습을 보여주면 마음이 달라질지도 몰라. 정신을 차린 나는 최선을 다해 내가 할 수 있는 걸 하기로 했다.

  “배고파.”

  갖가지 감정과 충격으로 막혀버린 목소리를 쥐어짰다. 그래선지 음절마다 사방으로 튀었다. 나는 목을 가다듬고 다시 한 번 말했다.

  “나, 배고프다고.”

  그제야 현수가 고개를 들었다. 눈은 나를 향하고 있었지만 그 속에 담긴 진심은 어디론가 빠져나가고 없었다. 누구보다도 다정했던 눈빛이, 사랑이 넘쳐흘렀던 눈빛이 낯선 사람을 보듯 텅 비어있었다. 사랑했던 사이가 남남으로 돌아서는 순간은 바로 이럴 때겠지. 마음의 창이라는 눈에서 사랑을 읽을 수 없을 때.

  “왜 그렇게 보는데? 왜!”

  겨우 뭉쳐놨던 분노가 물에 녹듯 흩어져 사방으로 흘러갔다. 각각의 자리에 뿌리를 내린 분노는 지독한 냄새를 풍기며 나를 자극했다. 아직은 안 되는데. 여기서 내가 화를 내버리면 지는 건데. 아직 가장 예쁘다는 모습을 보여주지 않았는데.

  “왜! 왜! 이젠 먹는 게 안 예뻐? 꼴사나워? 그래서 함께 밥 먹는 것조차도 싫은 거야?”

  내 목소리는 점점 커져갔다. 도무지 진정이 되지 않았다. 현수는 고개를 살짝 숙인 채로 아랫입술의 안쪽을 잘근잘근 씹어댔다. 뭔가를 고민할 때 나오는 습관이었다.

  하아. 이젠 나랑 밥 먹는 일도 고민을 해야 되는구나.

  상대에 대해서 너무 많이 아는 것은 좋지 않은 것 같다. 특히나 이별을 앞두고 있을 때는.

  “그런 게 아니라. 나는 단지…….”

  현수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나는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현수는 입술 안쪽을 씹으며 천천히 움직였다. 나는 못 본 척 했다. 그가 고민을 하든 말든 나는 내가 하고 싶은 걸 해야만 했다. 그게 내가 현수를 붙잡는 방법이었다.

 

  걷는 동안 현수는 내게 가까이 오지 않았다. 그렇다고 타인처럼 멀찍이 떨어지는 것도 아니었다. 그는 나와의 사이에 선을 하나 그어 놓고 그 선을 넘어오면 큰일이 나는 사람처럼 행동했다.

  나는 곁눈질로 그를 의식하며 뭐가 잘못된 건지 우리의 상황을 곱씹었다. 불과 전날까지만 해도 우린 아무 문제없었다.

  없었는데. 없었을까.

  혹시 나만 그렇게 느끼고 있었던 건 아닐까. 견고하다고 믿고 있던 그와 내 사이에 균열이 있었는데 사랑에 눈이 먼 나는 보지 못한 것은 아닐까. 하지만 나도 모르는 균열이 있을 수는 없지 않은가. 우리는 서로에게만 충실했고 역지사지를 실천해 큰 다툼 한 번 없었으니까.

  아무리 머리를 쥐어짜도 답은 나오지 않았다. 확실한 건 현수에게 묻는 건데 묻고 싶지 않았다. 겁이 났다. 수많은 연인들이 이별하는 이유가, 그 중에서도 내가 아닌 타인을 사랑한다는 이유가 내게도 적용될까봐 무서웠다.

  찬란했던 나의 사랑이 누군가에게 가로막혀 비참하게 막을 내리는 건 내가 원하는 게 아니다. 그러나 일은 이미 벌어졌다. 그걸 돌려놓으려면 최선을 다해야겠지.

  “육수가 다 떨어져서 한 그릇 밖에 못 만드는데. 어쩌죠?”

  국숫집 문을 열고 들어서자 중년의 남자가 고개를 숙였다. 그러자 휑한 정수리가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작년 겨울까지만 해도 풍성했던 정수리가 저리된 것은 아내와 이혼한 직후인 올 봄부터였다.

  사이좋은 부부이자 죽이 잘 맞는 파트너라고 소문이 자자했던 두 사람의 이혼은 단골들에게 큰 충격이었다. 한때 현수와 나는 그들처럼 살자고 약속했었다. 그 약속이 깨져버린 지금, 왠지 그들의 이혼이 우리에게 영향을 준 것만 같아서 원망스러웠다.

  국수와 닭튀김이 나오길 기다리는 동안 현수와 나는 또다시 침묵했다. 카페에 있을 때보다 더 멀어진 느낌이 들어 그의 손을 잡아볼 용기도 나지 않았다.

  “맛있게 드세요.”

  닭튀김의 고소한 냄새가 코로 들어왔다. 그러나 먹고 싶은 생각은 조금도 들지 않았다. 현수도 마찬가지인지 젓가락만 만지작거렸다. 매번 서로가 더 먹겠다고 달려들던 닭튀김 앞에서 나는 또 한 번 슬픈 감정이 들었다. 이젠 현수와 먹는 일도 끝이구나.

  나는 젓가락을 들었다. 가장 큰 튀김을 들어 천천히 입으로 가져갔다. 그리곤 토끼가 풀을 뜯듯이 앞니로 미세하게 갉아먹었다.

  눈앞의 음식을 다 먹으면 현수와 정말 끝이라는 걸 알았다. 재료가 없어서 음식을 더 주문할 수도 없었다. 내가 선택할 수 있는 건 최대한 음식을 천천히 먹는 것뿐이었다. 그렇게 시간이 흐르다보면 현수의 생각도 달라지지 않을까.

  “단비야.”

  들고 있던 닭튀김을 반쯤 먹었을 때 현수가 내 이름을 불렀다. 그가 매력적인 저음으로 이름을 불러줄 때면 첫 키스의 순간처럼 늘 가슴이 떨렸다.

  그래서 내 가슴은 눈치 없이 두근거렸다. 사랑을 속삭이려고 이름을 부른 게 아니라는 걸 알면서도 미친 듯이 뛰었다. 나는 재킷 안쪽으로 손을 넣어 두근대는 가슴을 진정시켰다.

  ‘제발 아무 반응도 보이지마. 침착하게 굴어. 그래야만 생각을 할 수 있어.’

  “단비야.”

  현수가 다시 나를 불렀다. 나는 못 들은 척, 안 들리는 척 튀김만 먹었다.

  “언제까지 모른 척 할 거야? 이런다고 달라지지 않아. 내 마음은 확고하다고.”

  더는 못 기다리겠는지 현수가 ‘그 얘길’ 하려고 했다. 나는 듣고 싶지 않아서 막무가내로 우겼다.

  “지금은 조용히 밥만 먹고 싶어. 그러니 아무 말도 하지 마.”

  날선 목소리는 나조차도 놀라게 했다. 분위기를 읽은 사장님이 조용히 자리를 피해줬다.

  이로써 가게엔 나와 현수뿐이었다. 둘만 남겨지자 우리 사이에 존재하는 낯선 공기가 적나라하게 느껴졌다. 그 공기는 나를 짓눌렀고 나는 점점 작아져 갔다.

  나는 음식에 시선을 고정한 채로 먹히지 않는 걸 꾸역꾸역 밀어 넣었다. 구역질이 올라왔지만 참고 또 참았다.

  “그만해. 제발.”

  더는 못 참겠는지 현수가 내 손에서 젓가락을 뺏어들었다. 그의 눈엔 길고양이를 보는 듯한 불쌍함이 깃들어 있었다. 그의 눈길은 물론 무서워서 하지 못한 말들 때문에 가슴이 턱 막혔다. 결국 나는 살짝 쥔 주먹으로 가슴을 두드리며 하고 싶은 말을 꺼냈다.

  “다른……다른 사람이……생긴 거니?”

  애인과 헤어져 힘들어하는 친구에게 이별을 받아들일 수 없다면 최선을 다해 붙잡으라고 조언한 적이 있었다. 과연 나도 그럴 수 있을까. 마침내 현수가 이별의 이유를 설명했다.

  “미안해. 너하고는 더 이상 하고 싶은 게 없어. 그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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