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밴드…. 학교 위쪽에서 밴드부를 해산시켜야 한다고 했어."
어렵게 입을 여시고 나온 그 말씀을 듣자마자 내 뒤통수에 야구방망이로 거세 게 맞은 것 마냥 정신이 멍해졌다.
눈동자는 초점을 잠깐 잃어버리고 입은 천천히 열려서 나지막이 단말마의 반응을 보였다.
"예?"
"...진짜야, 그래서 내가 어떻게든 협상하려고 했어."
"어, 어떻게 됐는데요...?!"
한별은 선생님의 말씀이 끝나기도 무섭게 불안에 떨리는 목소리로 급하게 결과를 물었다.
이에 혜진 선생님은 그녀의 불안정한 모습에 살짝 놀라서 어깨에 힘이 들어갔다.
긴 침묵을 보이며 한별이 진정하기까지 기다렸다가 다시 무거운 입을 열었다.
"일단 지금 당장 해산되는 건 막았어, 하지만 일주일 후에 있을 신입생 환영회에서의 반응을 보고 밴드를 해산시킬지 보겠다고 했지."
한별은 혜진 선생님의 맨 앞쪽 말에 안도의 한숨을 잠깐 쉬었지만 '하지만'이라는 말에 또 반응해서 들숨을 급하게 흐으읍 하고 쉬었다.
그런 한별의 최고로 불안정한 모습에 연민을 느끼고 마음의 한쪽에서는 죄책감을 느끼기까지 이르렀다.
"그, 그럼…. 어째서 우릴 해산시키려는 거에요?"
"...요즘 사회가 시끌시끌했는데, 뉴스를 안 본 거 같으니까 지금 보여줄게."
아까 전부터 켜져 있던 인터넷 뉴스 사이트를 보여주며 마우스로 기사들을 클릭해 보여주었다.
[레버넌트, 불법도박 혐의로 적발되어 체포...'충격']
[세인트 루이스, 여러 미투 운동의 대상이 되어 인터넷의 분노를 사...화제!]
한별은 이 기사들을 천천히 읽어가면서 가슴에 두 손을 모아 주먹을 꽉 쥐고 자신의 가슴을 진정시키려 한다.
하지만, 그녀는 가슴에서 점점 죽어 나가는 내면이 아파져 와 숨을 들이키는 것마저도 힘겨웠다.
"...한별아, 한별아?"
"...예."
그런 한별의 모습을 보고 안쓰럽게 생각하고 있는 혜진 선생님, 어깨에 손을 올리고 연민의 눈빛으로 쳐다보시며 구름처럼 부드러운 목소리로 다시 입을 여셨다.
"오늘 너희 연습 있지? 부탁이 있단다."
아래를 향해 고개를 푹 숙이고 가볍게 끄덕이는 한별의 반응을 보고 나지막이 말을 꺼내었다.
마치 금방 눈물이 나올 것 같은 울적한 울상으로 아무 말 없이 혜진 선생님을 바라본다.
"오늘, 연습하기 전에 애들에게 전해주렴. 신입생 환영회에서 잘해야 밴드가 해산되지 않을 거라고, 화이팅 해야만 한다고."
한별은 고개를 슬쩍 끄덕거렸지만, 가만히 머릿속에서 고민을 떠나보내지 못하고 있다.
안쓰러웠는지 혜진 선생님은 책상에 남아있던 막대사탕을 한별의 손에 쥐여주고 양손으로 한별의 손을 따뜻하게 잡아준다.
"할 수 있어, 걱정하지 마. 이제 선생님 일 해야 하니까, 이제 가자? 유나네가 기다리고 있을 거야."
한별은 그런 말에 천천히 일어나서 선생님을 우울한 눈빛으로 쳐다보더니 뒤를 돌아 교무실을 나갔다.
아침의 하얀 햇빛이 들어와 활기차고 왁자지껄했던 복도는 어디로 가고 힘없이 해가 누렇게 지면서 한별 혼자만이 남아있었다.
그저 슬픈 감정만이 가득 차 걸음걸이도 모래주머니를 발목에 묶은 것처럼 무거워졌다.
그렇게 바닥만을 바라보며 천천히 걷다가 자신이 밴드를 시작하게 된 계기들을 머릿속에서 되뇌기 시작한다.
.
.
.
처음엔 유나가 밴드부를 만들 것을 먼저 제안했다.
"이번에 신생 밴드가 나온대! 원래는 인디밴드였는데 소속사에 픽업되었다는 모양이야!"
"그렇...구나."
"한별아, 혹시... 우리도 밴드 해보지 않을래? 학교 밴드니깐 조금 가벼운 마음으로 시작 할 수 있을 거야!"
"...피곤한 일을 뭐 하려 해?"
나는 평소에 락 음악에 전혀 관심이 없었다, 오래된 유물 같은 느낌도 들었고 애초에 락은 그저 기타의 줄을 아무런 규칙도 없이 퉁기며 소리를 꽥꽥 지를 뿐인 노래라는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
좋아하는 음악의 장르라고는 차분한 어쿠스틱과 발라드밖에 없었다. 남들 좋아하는 팝과 락은 그저 시끄러운 기계 소음일 뿐이라며 나는 듣기가 거북했을 정도로 정말로 싫어했다.
"에이, 한별이는 어쿠스틱 기타도 잘 치면서! 전자기타라고 뭐가 다르겠어!"
"많이 다른..데..."
그리고 어느 날, 유나가 '레버넌트'라고 불리는 락밴드가 등장하는 뮤직 페스티벌의 티켓을 내게 문자로 전달해주었다.
[한별아~ 우리 같이 공연 보러 가자! 내가 저번에 말했던 신생 밴드가 공연을 한다나 봐!]
나는 바로 거절할 생각이었다, 어차피 유나는 친구 따위 없는 나에 비해서는 3배는 더 친구가 많아서 나 말고도 같이 데려갈 친구는 많았기 때문이다.
[싫어]
[한별이는 절친이 같이 가자는데 거절하다니! 섭섭한데~]
[난 누가 빽빽 소리 지르는 거 듣기 싫으니까, 사람도 많고]
[그러면 맛있는 거 사줄게! 무한리필 고깃집은 어때?]
그래, 그녀는 날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다.
난 음식에 잘 이끌린다.
[그래, 대신 음료수도 사주는 거야]
[당빠지☆]
이렇게 해서 나는 그녀에게 거의 반강제로 공연에서 끌려갔다.
그래서 귀마개 두 쌍을 예비로 챙겨 내 고막을 전자 소음에서 보호하려고 했다.
"귀마개야 그거? 에이, 필요 없을 텐데!"
"사람 많고 소리 크면 속이 메스꺼워진다고…. 넌 이해 못할 거야."
티켓에 쓰여 있는 좌석 번호가 가리키는 의자로 향해 앉았다.
무대에서 세줄 정도 떨어진 아주 가까운 자리였다, 내 고막을 터뜨릴 작정인 건가.
벌써 토가 나올 지경이었다.
곧 사람들이 자리에 모두 앉더니 콘서트홀에 불이 천천히 꺼져 어두워졌다.
웅성거리는 관객들의 소리가 조금씩 들려오다가 점점 모두가 침묵하고 무대가 빛나기를 기다린다.
갑자기 불이 화아악 하고 켜지더니 내 눈을 부시게 만들었다.
잠깐 시야가 하얗게 잘 보이지 않다가 조금씩 앞에 누군가가 움직이는 것이 보이기 시작한다.
검은색 코트를 입은 누군가가 파란색으로 칠해진 보디의 기타를 들고 무대 옆에서 뛰쳐나온다.
그를 따라서 검은색 코트로 통일해서 입은 채로 달려오는 네 명의 멤버가 눈에 보였다.
각자 손에 든 악기는 개성이 눈에 띄었다.
스타일리시한 심볼의 스티커가 두 개 붙어있는 키보드, 넥 부분이 길고 기타 줄은 아주 두꺼워 보이는 베이스 기타, V자 모양을 띠고 있는 또 다른 일렉기타, 그리고 또 다른 한 명은 두 손에 드럼 스틱을 들고 드럼 셋에 달려들어 앉아서 시작을 알리듯 드럼을 서너 번 두드렸다.
그리고, 마법 같은 일이 생겼다.
귀마개를 뚫고서 들려온 소리는 어째선지 소음공해가 전혀 아니었다.
오히려 어쿠스틱 음악과는 전혀 다르지만…. 어째선지 오케스트라에 스테로이드를 잔뜩 투여한 듯한 하모니와 미친듯한 에너지로 나의 뇌 속이 넘쳐났다.
"....아...."
나는 깜짝 놀랄 수밖에 없었다.
지금까지 들려온 락은 이런 느낌이 전혀 아니었는데...
물론, 빽빽 소리 지르는 듯한 보컬은 여전했지만, 막무가내로 지르는 듯한 소음공해가 아닌 조심 조심히 정확하고 새어나가는 음 없이 하나의 악기로 강렬한 연주를 하는 듯한 샤우팅이었다.
하지만 내가 듣고 있는 락은 자신의 감정을 솔직하게 토해내며 반항의 의지를 보이는...'멋진 음악'이었다.
어느샌가 나는 락 음악 푹 빠져있었다, 며칠간 거의 미쳐있었다가 정신을 차려보니 내 방에는 '레버넌트'와 '세인트루이스'의 포스터가 덕지덕지 붙어있었다.
내 방에 교재로만 시시콜콜하게 정돈되어있었던 책장은 각종 락 음악의 앨범 CD들로 가득 차 있었다.
지금까지 진심으로 좋아했던 것들은 모두 게임에 관련된 것들뿐이었다, 그마저도 이제는 점점 질려간다 싶었다.
하지만 이렇게 게임이 아닌 다른 무언가를 열정적으로 좋아하게 되었다는 것이 너무나도 즐거웠다.
지루한 수업 시간과 따돌림, 그리고 게임 속 허무한 성취감만으로 가득했던 내 인생에 색다른 한 줄기의 빛이 들어왔다.
"너, 너... 저번에 밴드 하자고 했지?"
"응, 혹시 마음이 바뀌었어?"
"...그런거 같아."
기타라고는 삼촌에게 물려받은 어쿠스틱 기타밖에 없는 노릇이었지만, 어떻게든 락밴드를 시작했다.
나의 가슴이 말하는 대로, 나는 따라갔다.
.
.
.
"..."
한별은 머릿속으로 자신이 밴드를 시작하게 된 계기를 생각하면서 복도를 걷다 보니 음악실의 문 앞에 한 발짝 한 발짝씩 다가가다가 그대로 멈췄다.
한숨을 한번 땅이 꺼져라 푸우우욱 쉬었다.
어떻게든 폐부 위기에 대한 소식을 전달하면서 밴드의 모두를 실망과 절망으로 몰아넣지 않기 위해 돌려서 말하고 싶었다.
하지만, 그녀의 머릿속에서 떠오르는 것은 사실상 아무것도 없었고 그저 아무렇지도 않은 척 들어가는 것밖에 해답이 보이지 않았다.
모두가 실망할 표정을 상상하고 나니 폐부 위기에 대한 소식을 전할 용기가 전혀 나지 않았다.
"어떻게 하..."
벌컥!
"...?!"
"아, 안녕하세요, 선배!"
고민을 끝내기도 전에 음악실의 문이 갑작스럽게 열리며 중3인 후배, 이소민이 가만히 서 있다가 문이 열리자 화들짝 놀라는 한별을 목격하였다.
급하게 사과를 하려 했지만, 소민은 왠지 이상한 분위기를 눈치챈 건지 의문점을 가진 똘망한 눈빛으로 쳐다본다.
"그, 한별 선배, 무슨 일…. 있으세요?"
"아, 그..."
"...?"
.............
"아, 아무 일도 아냐! 갑자기 정신이 멍해져서..."
"그렇군요…. 저, 매점에서 과자 좀 사서 오려고 해요! 다녀올게요!"
이소민은 미소를 지어 보였고, 보아하니 두 손에 든 핸드폰에는 결제 앱이 화면에 보였다.
그녀는 급하게 고개를 숙여 인사를 하고 도도도하면서 계단을 내려갔다.
"..."
한별은 용기가 나지 않아 결국에 진실을 털어놓지 않고 혼자서 간직해두기로 한다.
모두를 실망하게 하고 슬프게 만들고 싶지는 않았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