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거시연립으로 이사 오기 전 일 년 남짓 고시원에 머물렀다. 이십 년 동안 정원이 딸린 120평의 2층집에서 살던 내게 고시원은 내 방보다 작았다. 하지만 역설적이게도 두 평 공간에서 마음의 안정을 찾았다. 입실한 일주일은 낯설고 어색해 몸을 뒤척이는 것조차 쉽지 않았지만 오래지 않아 관 속과 같은 그곳에서 모처럼 고향에 온 듯 마음이 편안해졌다.
어린 시절 어머니와 나는 식당에 딸린 작은 쪽방에서 살았다. 미혼모였던 어머니는 식당에서 일하며 생계를 이어나갔다. 작은 옷장과 화장대가 전부였던 방은 어머니와 내가 누우면 어른 한 명이 누울 공간 정도의 여유밖에 없던 작은 방이었다. 동쪽으로 난 창은 두 손바닥을 펼친 것만큼 작았지만 아침이면 구원처럼 방안에 햇살이 비췄다. 늦은 밤까지 일했던 어머니는 내가 학교에 가고 난 뒤에야 일어나곤 해 어머니의 얼굴보다도 등을 돌린 채 잠을 자고 있던 어머니의 등이 더 익숙했다. 어머니의 머리카락에는 늘 기름 냄새가 베어 있었다. 그 속에는 단지 식당의 냄새만 베어 있는 것이 아니라 왁자했던 전날의 이야기가 와글거리고 있었다.
후미진 시장 골목에 어둠이 내리면 낮 동안 똬리를 틀고 있던 온갖 추문과 욕망이 골목 구석구석으로 퍼져나갔다. 그럴수록 식당에는 욕설과 고함이 난무했고, 눈물 섞인 하소연과 넋두리가 이야기를 풀어냈다. 식당에 딸린 쪽방은 그것들이 모여드는 곳이었다. 낮이나 밤이나 늘 왁자했고, 밤이면 술에 취한 사내들이 불쑥불쑥 쪽방문을 열고 들어와 구토를 하기도 했고, 오줌을 누기도 했다. 만취해 그대로 누워버리는 사람도 있었다. 쪽방은 온갖 욕망이 배설되는 곳이기도 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그 왁자하고, 정신없는 쪽방에서 나는 평온했고, 고요함을 느꼈다. 식당과 쪽방을 가르는 나무로 된 얇은 미닫이문을 지나 들려온 소리들에는 저마다의 이야기가 있었다. 사랑과 이별, 믿음과 배신의 서사가 웃음과 눈물, 한숨과 넋두리, 고성과 실랑이 속에 담겨 있었다. 수많은 이야기들 속에서 혼자였지만 나는 외롭지 않았다. 어린 시절, 어머니의 침묵과 냉담을 이겨낼 수 있었던 것도 시장통의 이야기 때문이었다. 어느 성탄 전야에 마을 교회 앞에 쓰러져 있는 다 죽어가던 만삭의 미혼모를 살린 신도들과 목사님의 이야기에서 나는 어머니와 나의 과거를 상상했다. 그 안에는 서스펜스, 스릴러, 신파, 멜로, 느와르 등 갖가지 장르가 혼합되어 있었다.
그 작은 방에서 마음껏 상상의 나래를 펼쳤다. 작지만 행복했다. 초등학생이라고는 5명뿐인 아이들은 가족처럼 친했고, 마을 사람들 모두 어머니와 나에게 친절했다. 모두가 어머니와 나를 비호해 주는 것 같았다.
고시원에 입실한 사람들 사이에는 암묵적 규칙 같은 것들이 존재했다. 생리 현상에 의한 소음 이외의 소리들을 내면화하는 것이었다. 아무도 자신의 소리를 타인에게 전달하지 않았다. 고시원에서 자신을 드러내는 것은 규칙위반이었다. 그 누구보다 가까이 살고 있었지만 완벽한 타인이었다. 벽이 얇으면 얇을수록 사람과 사람 사이의 거리는 멀어지는 곳이었다. 하지만 얇을 벽을 타고 흐르는 숨소리에서 나는 저마다의 이야기가 들을 수 있었다. 그래서 고시원의 작은 방은 흡사 어린 시절 지냈던 식당 쪽방에 누워 있는 것 같은 기분에 마음이 편안했다.
나는 태생적으로 부유함을 추구하는 디엔에이가 없었던 것인지 모른다. 어쩌면 그냥 태어났던 그곳에서 신화처럼 살고 싶었던 것이었는지 모른다. 어머니도 나와 같은 마음일 것이라 착각한 것이 내 불행의 시작이라면 시작일 것이다.
‘너무 일방적인 거 아니냐고요. 누가 자기 집인 거 모른대요? 공동주택의 기본적인 예의와 도덕이라는 게 있잖아요. 505호 부부는 그런 게 없더라고요. 겨우 오천만 원짜리 집으로 유세하는 거, 진짜 웃기지 않아요?’
그 여름 마트 앞 벤치에 앉아 505호의 층간소음을 토로하던 504호 여자가 한 말이 떠올랐다. 공동주택의 윤리 · 도덕의 가치가 결국 내 집이냐, 아니냐의 기준으로 평가되는 현실을 한탄하던 여자의 가녀린 음성이 생생해지는 밤이다. 일방적으로 전달되는 층간의 소리에서 이야기를 찾고 싶었지만 그 속에는 가장(假裝)과 과장, 위선과 위압만이 존재할 뿐이었다.
어머니가 진정 추구한 행복이나 삶의 가치가 무엇인지는 아직도 모른다. 다만 그 행복과 가치에 내가 존재하지 않은 것만은 분명했다. 그래서 어머니의 자살은 걷잡을 수 없는 감정의 소용돌이를 만들었다. ‘정말 나는 아니었나요?’ 묻고, 또 묻고 싶었지만 핏발선 채 부릅뜬 두 눈이 단호하게 말하고 있었다. 넌 아니다, 라고.
어머니에게 집은 도대체 무엇이었을까. 아니, 어떤 의미였던 것일까. 누군가에게 집은 부의 축적이자 과시의 대상일 것이고, 다른 누군가에게는 안락한 삶의 휴식처일 것이다. 누군가에 집은 크고 넓은 것이어야 할 것이고, 다른 누군가에게는 몸 하나 누울 자리 정도면 만족할 공간일 것이다. 어머니는 어느 쪽이었을까. 아파트를 싫어했던 것을 보면 적어도 집이 부의 축적이나 과시의 대상은 아니었을 것이다. 도대체 그 집이 무엇이었길래 잔인하리만치 일방적이고 이기적이었던 것이었을까.
505호 살인사건의 비명과 피비린내가 채 가시기도 전에 또다시 누군가 존재를 과시하기 시작했다. 살인사건 발생 두 달 뒤 505호에 남녀가 이사를 왔다. 설마 사람이 죽어나간 집에 누가 이사 올까 싶었으나 부동산에서는 삼천오백만 원이라는 파격적인 헐값에 집을 내놓았다.
505호에 다시 사람이 살기 시작하면서부터 가녀린 여자의 웃음소리, 거구로 추측되는 남성의 쿵쿵대는 발걸음 소리가 잦아졌다. 한동안 잠잠하던 감각의 촉수들이 신경을 곤두세우기 시작했다.
거시연립으로 이사와 계속 집은 무엇인가를 묻고 있었다. 집이 도대체 무엇이길래 다들 이렇게 처절한 것인지. 그렇다면 나도 이판사판이었다. 504호 여자도 해낸 일을 나라고 못하라는 법은 없었다. 죽기살기의 악으로 505호를 찾아갔다. 이미 화로 예열된 나는 무작정 싸울 준비를 하고 있었다. 벨을 누르고 잠시 뒤 현관문이 열리면서 낯익은 얼굴이 고개를 내밀었다.
“어?”
현관문 안쪽에 서 있던 여자와 나는 놀란 눈으로 서로를 바라봤다. 나는 단번에 그녀가 505호 남자와 바람을 피운 여자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녀는 마을 주점에서 일하는 여자였다. 이곳으로 이사 오기 전 두 번, 그녀가 일하는 주점에 간 적이 있었다.
“그 잘생긴 오빠랑 우리 가게 왔던 아저씨죠?”
여자 역시도 나를 기억하고 있었다. 여자의 반응에 열기는 사라지고 말았다. 식어버린 열기에 선뜻 올라온 용건이 입에서 떨어지지 않았다.
“그런데 아저씨가 여기 웬일이에요?”
여자의 질문에 입은 더욱 굳어버렸다. 용건을 말해보기도 전에 굵은 남자의 목소리가 선제공격을 해왔다.
“무슨 일이야?”
예상대로 거구의 남자가 여자 뒤에서 나를 노려보고 있었다. 남자의 등장에 몸이 움츠러들었다.
“405호 사는 사람입니다. 다른 게 아니라 발소리가 너무 쿵쿵거려 좀 조용히 해달라고 부탁하러 왔습니다.”
“아, 그런 거였구나.”
반가움으로 가득했던 여자의 얼굴이 아니꼽다는 듯 일그러졌다. 여자의 곁에 서 있던 남자는 당당하고 거친 음성으로 대꾸했다.
“거, 되게 예민하게 구시네. 그럼 내 집에서 도둑처럼 살금살금 걸으라는 거요?”
“아니, 그런 게 아니라 함께 사는 곳이니 조금만 주의를 해 달라…….”
“됐고, 그렇게 예민하게 굴려거든 다른 집으로 이사 가든가. 우리한테 하소연 할 게 아니라 연립을 지은 년놈들에게 하소연 하라고!”
적반하장이었다. 하지만 나보다도 더 당당한 그들의 반응과 남자의 위압감에 나는 비겁하게 더 이상 입을 열지 못했다. 그보다도 504호 여자가 생각났다. 얼마나 간절했던 것일까, 그녀는. 504호 여자의 간절함을 떠올리며 505호 집 앞에 서 있던 나는 닫힌 문 앞의 어둠 속에서 벌줌이 서 있었다.
자존심만 구긴 채 모멸감만 한 자루 떠안고 내려온 뒤에야 민망함과 억울함에 울분이 치솟았다. 괜히 장우산으로 애꿎은 천장을 툭툭 쳐댔지만 소용없는 짓이었다. 균열된 틈으로 시멘트 가루만 떨어질 뿐이었다.
잠이 오지 않아 새벽까지 층간소음 복수를 검색했다. 층간소음 복수로 우퍼 스피커와 고무망치가 유용한 도구로 활용된다는 기사를 보고 인터넷 쇼핑몰 장바구니에 우퍼 스피커와 고무망치를 담았다가 삭제하기를 반복했다. 벽은 단지 심리적 거리일 뿐이라고 자위했지만 벽을 두고 벌어지는 일방적이고 강압적 폭력에 울분이 사그라들지 않았다. 하지만 이내 이런 내 모습이 우스웠다. 죽으러 왔으면서 어떻게든 살려고 발버둥 치는 꼴이라니. 이까짓 집, 그냥 무너져 내렸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 내 모습 또한 한심해 웃음만 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