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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로맨스판타지
용의 아이 따윈 개나 줘 버려!
작가 : 솔커
작품등록일 : 2020.8.3

#본격_여주인공이_다_해_먹는_동양_판타지!

"아이야, 너는 용의 아이란다."

아니, 용의 아이면 축복이나 내려줄 것이지 제물이 웬 말이람?
제물이 될 운명에서 벗어나기 위한 희진의 이세계 고군분투 생존기!

나는 지금이 왜 고구려인지도 모르겠고, 왜 황태손이 황궁 대신 산골짜기에 있는지도 모르겠고, 신관인 주제에 신을 죽이러 가자는 소리나 하는 신관이 옆에 있는지도 모르겠다.

"야, 너네 진짜 나한테 왜 그러냐?"

과연 희진은 용의 아이라는 운명을 벗어날 수 있을 것인가!

 
29. 그 마을에서는 (4)
작성일 : 20-10-05 19:12     조회 : 294     추천 : 0     분량 : 69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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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전에 계셔서 그런가, 엄청 뜬구름 잡는 말만 하시네요.”

 

 

 희진이 볼멘소리로 투덜거렸다. 휘는 소리 없이 웃으며 걸음을 옮기는 데 집중할 뿐이었다. 그 이후부터는 희진도 더 이상 말을 얹지 않았다. 반응 없는 물에 자꾸만 돌을 던지는 것도 제법 힘이 드는 일이었으니 말이다. 조용히 휘를 따라 걷던 희진의 눈에 저만치에 옹기종기 모여있는 아이들이 들어왔다.

 

 

 “어? 진짜네요?”

 

 

 휘는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희진은 걸음을 멈춘 채 아이들을 천천히 훑어봤다. 걔 중 쓸만한 아이가 보일까 싶었지만 때국물이 줄줄 흐르는 아이들은 죄다 쌍둥이가 아닐까 싶을 만큼 거기서 거기로 보일 뿐이었다.

 

 

 “헌데 아이들은 무슨 일로 찾으시는 겁니까?”

 

 

 휘의 질문에 희진은 어색한 웃음을 지으며 시선을 회피했다. 곤란해 보이는 그녀의 모습에 휘는 더 이상 말을 얹지 않았다. 단지 한걸음 물러서 있을 뿐이었다.

 

 

 ‘법준아. 법준아!’

 

 

 희진은 속으로 소리 내어 법준의 이름을 불렀다. 하지만 어깨 위에 느껴지는 온기와 달리 법준에게선 아무런 대답이 없었다.

 

 

 ‘금칙법칙준칙!’

 

 

 정확한 이름을 소리쳐 불러도 묵묵부답인 건 마찬가지였다. 이게 무슨 일이람. 희진은 어깨를 더듬었다. 옷 아래로 딱딱한 녀석이 느껴졌다. 대체 무슨 일이지. 희진은 걱정스러운 손길로 어깨를 쓰다듬었다. 여전히 법준은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어디 아프십니까?”

 

 

 휘의 물음에 희진은 고개를 저었다.

 

 

 “아뇨, 그냥요. 비가 오려나 봐요.”

 

 

 희진은 멋쩍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휘는 고개를 위로 들어 하늘을 바라봤다. 맑기만 한 날이었다. 그럼에도 휘는 웃으며 희진의 말에 맞장구를 쳐 주었다.

 

 

 “그러게요. 아무래도 내일은 비가 올 모양입니다.”

 

 “신전에선 그런 것도 배워요?”

 

 “글쎄요. 신전에서 배웠다고 해야 할지, 아니라고 해야 할지.”

 

 

 또 좀처럼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이었다. 희진은 팔짱을 낀 채 휘를 바라봤다.

 

 

 “저기요.”

 

 “네?”

 

 “신전은 용의 아이를 잡아서 제물로 바치려는 거 아니에요?”

 

 

 더는 궁금증을 참지 못한 희진이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휘는 조금 곤란한 얼굴을 했다. 잠시 고민하는 듯 싶던 그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신전은 그러려고 하는 게 맞습니다.”

 

 “그럼 그쪽도 얼른 용의 아이를 찾고 싶은 거 아니에요? 그래야 빨리 돌아갈 거 아니에요.”

 

 “아뇨, 저는 그분께서 온전한 삶을 되찾아 오래오래 사시길 바랄 뿐입니다.”

 

 

 희진의 미간이 좁아졌다. 이거 어디서 많이 듣던 말인데.

 

 

 “신전의 뜻 같은 거 알 게 무어랍니까. 그저 신전을 피해 그분이 오래도록 달아나신다면 족할 일이지요.”

 

 

 만약 이 사람이 정말로 용의 아이의 편을 들어줄 거라면, 그렇다면 내가 용의 아이라는 걸 밝혀도 괜찮지 않을까?

 

 

 “저는 신전에서도 그리 환영받는 존재가 아닙니다. 사람들은 저를 더러 저주 받은 아이라 부르니까요.”

 

 “허, 저주는 용의 아이가 진짜 저주죠.”

 

 

 희진이 코웃음을 치며 대꾸했다. 휘는 새빨간 눈을 잠깐 크게 뜨는가 싶더니 이내 웃으며 희진을 바라봤다.

 

 

 “어찌 용의 아이를 저주라 생각하십니까?”

 

 “그야, 그건, 그러니까…….”

 

 

 희진은 선뜻 대답할 말을 찾지 못하고 말끝을 흐렸다. 내가 용의 아인데 그 굴레를 벗어나기 위해 힘쓰고 있소이다 하고 대답할 수는 없는 노릇이지 않던가.

 

 

 “잠시만요.”

 

 

 휘는 희진의 팔을 제 쪽으로 끌어당겼다. 졸지에 휘의 뒤에 서게 된 희진은 어리둥절한 얼굴로 그를 바라봤다. 먼 곳을 바라보던 휘는 재빨리 희진을 끌고 작은 움집 뒤로 몸을 숨겼다.

 

 

 “쉿.”

 

 

 그리고는 손가락을 들어 입가에 가져다 대며 조용히 하라는 표시를 했다. 희진은 영문도 모른 채 휘의 뒤에 숨은 채 눈을 깜빡였다.

 

 

 “허허, 언제까지 제 뒤를 밟을 생각입니까?”

 

 

 영감님 목소리잖아? 멀리서 들려오는 익숙한 목소리에 희진의 눈이 커다래졌다. 휘는 움집 너머로 살짝 고개를 내밀었다 이내 다시 몸을 숨겼다.

 

 

 “신관이 온 모양입니다.”

 

 

 휘는 낮은 목소리로 희진의 귀에 속삭였다. 희진의 얼굴이 하얗게 질려갔다. 어떡하지? 여기서 꼼짝없이 걸리는 거야? 설마, 이 자식 일부러 날 여기로 유인한 거야? 희진은 서둘러 휘에게서 벗어나며 그를 노려봤다. 휘는 멀어지는 희진을 안타까운 얼굴로 바라볼 뿐이었다.

 

 

 “너, 일부러 나 여기로 데려온 거지!”

 

 

 희진은 숨죽인 채 소리쳤다. 휘는 고개를 저었다. 다급해 보이는 움직임이었다.

 

 

 “글쎄, 영감님께서 어린 여자 아이 하나와 함께 온 것을 본 자가 있다지 않습니까?”

 

 

 낯선 목소리였다. 신관이구나. 희진은 등에 오소소 소름이 돋아나는 것을 느꼈다. 그녀는 재빨리 뒷걸음질을 쳤다. 어떻게든 이곳을 빠져나가야 했다. 우당탕탕. 하지만 희진의 발치에 걸린 그릇이 나자빠지며 시끄러운 소음을 냈다.

 

 

 “거기 누구 있느냐!”

 

 

 낯선 목소리가 근엄한 분위기를 풍기며 소리쳤다. 희진은 사색이 된 얼굴로 뒤를 돌았다. 숨을 곳도, 빠져나갈 곳도 보이지 않았다. 그저 제 눈앞에는 저를 보며 겁먹은 얼굴을 하고 있는 저보다 작은 여자 아이가 있을 뿐이었다.

 

 

 어떡하지, 이제 어떻게 하지?

 

 

 희진은 당황과 공포로 굳어버린 머리를 억지로 움직였다. 이윽고 묘책이 떠오른 희진은 휘에게 다가가 그의 옷자락을 잡아 끌었다. 휘는 당황스러운 기색이 역력한 얼굴로 희진에게 이끌려 가 주었다. 희진은 한 손에는 새하얀 휘의 옷자락을, 한 손에는 잔뜩 겁을 먹은 여자 아이의 옷자락을 잡은 채 속삭였다.

 

 

 “얘야. 너 내 부탁 하나만 들어주지 않으련? 그럼…… 오늘 저녁은 맛있는 거 먹게 해 줄게.”

 

 

 희진은 나뒹구는 그릇 너머로 쏟아진 허여멀건한 풀죽을 보며 이야기했다. 아이는 겁에 질린 얼굴로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있긴 누가 있겠습니까? 기껏해야 굶주리고 불행한 아이들이나 있겠지요.”

 

 

 최 영감의 목소리가 이어졌다. 희진은 두 사람이 실랑이 아닌 실랑이를 벌이는 사이, 휘의 옷자락으로 아이의 얼굴과 목덜미를 꼼꼼하게 닦아냈다. 하얀 옷자락이 금세 새카맣게 변해갔지만 휘는 그저 아무런 말도 없이 희진이 하는 모양새를 지켜보고 있을 뿐이었다.

 

 아이의 얼굴을 닦아낸 희진은 제가 입고 있던 겉옷을 벗어 아이의 옷 위로 입혀주었다. 저보다 조금 작기는 해도 비슷한 체구의 아이에게 옷을 입히는 건 생각보다 버거운 일이었다. 휘는 말없이 낑낑대는 희진을 도와 아이의 옷매무새를 가다듬었다. 희진은 아이의 손을 잡은 채 눈을 맞추고 빠르게 속삭였다.

 

 

 “저쪽으로 가서 하얀 옷 입은 아저씨 옆에 있는 할아버지한테 할아버지, 하고 부르면서 안기기만 하면 돼. 어렵지 않지? 그럼 오늘 저녁은 맛있는 걸 먹을 수 있을 거야.”

 

 

 아이는 긴장이 역력한 얼굴을 천천히 끄덕였다. 희진은 고개를 끄덕이며 아이의 등을 살살 밀었다. 아이는 한 차례 뒤를 돌아 보았다. 희진은 땅바닥의 흙을 옷이며 머리며 얼굴에 묻히면서 아이를 향해 손을 휘저었다. 어서 가라는 듯한 몸짓이었다.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인 아이가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하, 할아, 할아버지!”

 

 

 또랑또랑한 아이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제발 눈치채 주세요, 영감님. 희진은 눈을 질끈 감은 채 바닥을 굴러다니는 그릇을 머리에 뒤집어썼다. 기분나쁜 끈끈한 액체가 머리부터 쏟아지는 게 느껴졌다. 희진은 그 상태로 무릎 위에 얼굴을 묻었다.

 

 

 “오오, 진이로구나!”

 

 

 최 영감의 목소리에 희진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역시 영감님. 눈치는 예술이시라니까. 눈가를 닦아낸 희진은 제 곁에 서있는 휘를 향해 손을 내뻗었다. 내쫓는 듯한 손짓이었다. 휘는 착잡한 얼굴로 그저 그 자리에 선 채 희진을 바라볼 뿐이었다.

 

 

 당신은 왜, 대체 왜 그렇게까지 필사적으로 신관님을 피하려 드는 것입니까. 그 아이와 닮은 얼굴로, 열두 번째 신관님을 닮은 얼굴로 그리 행동하면 제가 희망을 가질 수밖에 없지 않겠습니까.

 

 

 너스레를 떠는 최 영감의 목소리가 점점 가까워졌다. 희진은 멀뚱멀뚱 서 있는 휘를 향해 입을 벙끗거렸다. 저리 가요! 저리 가라고요!

 

 

 “헌데, 신관께서는 혼자 오신 것입니까?”

 

 “대동한 아이가 있기는 합니다만……. 큰 도움은 되지 않습니다. 영감님, 이 아이를 제가 잠시 보아도 되겠습니까?”

 

 “이 아이는 왜 보려 하는 것이요?”

 

 “저는 용의 아이를 찾고 있는 몸, 혹 이 아이가 용의 아이는 아닐까 싶어 말입니다.”

 

 “지금 날 의심하는 것이오? 나 최 영감이오, 신관.”

 

 “예, 알고 있습니다. 허나 영감님께서 모르시는 일일수도 있지 않겠습니까?”

 

 

 희진은 초조한 얼굴로 휘를 바라봤다. 제발 갔으면 좋겠는데. 저기서 너 찾고 있잖아. 얼른 가, 바보야. 하지만 휘는 여전히 꿈쩍도 않는 모습이었다.

 

 

 “신관님.”

 

 

 휘의 입에서 나지막한 목소리가 튀어나왔다. 희진은 눈을 부릅 뜨고 휘를 노려봤다. 역시, 미끼였던 건가. 이제 나는 어떡하지.

 

 

 “신관님께서 찾으시는 아이는 그 아이가 아닙니다!”

 

 

 힘껏 소리친 휘는 희진을 뒤로 한 채 움집 너머로 모습을 드러냈다. 잿빛 한복을 입은 노인과 실랑이를 하고 있는 새하얀 옷차림의 제 신관을 바라보며 휘는 고개를 숙여 인사를 올렸다.

 

 

 “열 번째 신관님께 휘, 인사 올립니다.”

 

 “네놈, 어디서 무얼 하다 이제 나타난 게야?”

 

 

 잔뜩 인상을 찡그리며 말하는 신관의 모습에 휘는 속으로 코웃음을 쳤다. 저와 함께 다니기 수치스러우니 나갈 때까지 모습을 보이지 말라 할 땐 언제고. 우스운 일이었다. 이리도 남의 시선을 의식하는 자들이 어찌 남을 위할 수 있으려고.

 

 

 “송구합니다. 마을의 아이들을 찾아 다니느라 그만……. 그 아이는 할아버지를 잃었다 하여 제가 함께 데리고 다녔던 아이입니다.”

 

 

 최 영감은 제 눈앞에 갑자기 튀어나온 온통 새하얀 아이를 바라보며 이마를 찌푸렸다. 처음보는 아이가 희진이의 옷을 입고 저더러 할아버지라 나타난 것도 놀랄 일이었건만, 척 보기에도 불길해 보이는 새하얀 녀석이 함께였다니.

 

 

 “네놈. 누구냐.”

 

 

 최 영감의 목소리에 적대감이 깃들었다. 휘는 고개를 들어 살벌하게 저를 부르는 노인과 그런 노인에게 어떠한 제재도 가하지 않는 열 번째 신관을 바라봤다. 제 편이라고는 하나도 없는 상황이었다. 익숙한 일이었다. 휘는 웃으며 노인의 뒤에서 빼꼼 고개를 내민 아이를 바라보며 대답했다.

 

 

 “저는 신관님의 수행인 연휘라 합니다. 아이가 혼자 외진 곳에 앉아있길래 함께 가자 하였을 뿐입니다. 배가 많이 고픈 모양인지 저녁 타령을 그리 하더군요. 혹 누군가 먹을 것으로 유인하면 따라갈까 싶어 제가 함께 있어 주었습니다.”

 

 

 설마, 희진이 놈이 신관의 눈을 피하기 위해 이 아이를 먹을 걸로 회유하기라도 했단 말인가. 최 영감은 제 곁에 있는 아이를 힐끗 내려다봤다. 얼굴이나 목은 어떻게든 닦아낸 듯 싶었지만 아무렇게나 엉킨 머리는 거리의 아이임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었다.

 

 

 “언제부터 만났느냐?”

 

 “저 다리 아래에서 만났었습니다.”

 

 

 휘는 저와 희진이 처음 만났던 다리를 가리키며 대답했다. 열 번째 신관은 탐탁지 않은 얼굴로 두 사람의 대화를 지켜보다 그 사이에 끼어들었다.

 

 

 “영감님. 이 아이가 용의 아이가 맞는지 확인을 해야겠습니다.”

 

 “어허, 어찌 감히!”

 

 “영감님. 대신관님의 명입니다!”

 

 

 신관이 목소리를 드높였다. 최 영감은 불쾌한 낯을 숨기지 않았다. 신관의 명인데 어찌하라는 것인지. 황명도 아니고, 한낱 신전의 명 따위에 자신이 움직여야 한다는 사실이 내키지 않는 그였다.

 

 

 “영감님. 제가 감히 한 말씀 올려도 되겠습니까?”

 

 

 정중하게 물어오는 새하얀 아이의 목소리에 최 영감은 인상을 찡그린 채 어쩔 수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거절하기엔 너무도 예의바른 부탁이었으니까.

 

 

 “남달리 영특하고 영민한 아이님이셨습니다. 많이 겁을 먹으신 듯하니 밤까지 홀로 시간을 보내게 하심이 어떻겠습니까?”

 

 

 최 영감은 직감적으로 알 수 있었다. 눈앞의 하얀 아이는 희진이를 해한 것이 아니라 감춰주려 하고 있다는 것을. 최 영감은 시름 깊은 얼굴로 제 뒤에 숨어있던 아이의 손을 붙잡았다.

 

 

 “진아. 잠시 저 신관님이 널 보자 하신다. 괜찮겠느냐?”

 

 

 아이는 겁먹은 눈동자로 최 영감의 뒤편을 힐끗 바라보았다. 최 영감은 슬쩍 고개를 돌려 제 뒤에 무엇이 있는지를 확인했다. 다 쓰러져가는 움집이었다. 최 영감은 어렵지 않게 희진이 저곳에 숨어있으리란 사실을 짐작했다.

 

 

 “네.”

 

 

 아이는 개미만한 목소리로 대답한 뒤 쭈뼛대며 신관을 향해 다가갔다. 신관은 못마땅한 기색이 역력한 얼굴로 품에서 샛노란 구슬을 꺼내들었다. 그래봤자 정치판에서 물러난 영감 주제에 어딜 감히. 그는 괜한 화풀이로 아이의 손을 거칠게 잡아챘다.

 

 

 “신관님.”

 

 

 저를 부르는 휘의 목소리에 그의 심사는 더욱 엉망이 됐다. 감히 저주받은 아이 따위가 저를 저리 보다니.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신관은 화풀이를 할 요량으로 아이의 손목을 꽉 붙잡고 억지로 작은 주먹을 펼쳤다. 작은 손목이 금세 빨갛게 부어올랐다. 신관은 노란 구슬을 아이의 손에 던지듯 올려놓았다. 아이는 눈을 질끈 감은 채 신관에게서 고개를 돌렸다. 잔뜩 겁먹은 작은 몸이 바들바들 떨고 있었다.

 

 

 “뭐하는 짓이오!”

 

 

 험하게 아이를 다루는 그 모습에 최 영감이 큰 소리를 냈다.

 

 

 “용신의 명을 받드는 것입니다.”

 

 

 신관은 비틀린 미소를 지으며 최 영감을 향해 대꾸했다. 여전히 아이의 작은 손목을 꽉 붙잡은 채였다. 구슬은 미미한 노란 빛을 뿜어낼 뿐, 아무런 변화도 보이지 않았다.

 

 

 “더 빛이 나. 빛이 나란 말이야! 네가 마지막인데 어찌!”

 

 

 신관은 다른 손으로 아이의 어깨를 흔들며 윽박질렀다. 보다 못한 최 영감이 아이의 손목을 붙잡고 있는 신관의 손을 내리쳤다.

 

 

 “그만하지 못할까!”

 

 

 잔뜩 분노한 목소리였다. 신관은 그제야 아이를 잡고 있던 손에 힘을 풀었다. 최 영감은 잔뜩 성난 얼굴로 아이를 품에 안아들었다. 아이는 여전히 눈을 꼭 감은 채였다. 질끈 감은 눈가가 젖어 있었다.

 

 

 “신전의 만행은 내 잊지 않으리다.”

 

 

 최 영감은 그 길로 신관을 지나쳐 걸어갔다. 약자를 저리 함부로 대하는 주제에 자비로운 용신은 무슨. 최 영감은 아이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부러 큰 소리로 외쳤다.

 

 

 “진아. 다리로 가자꾸나. 다리를 건너 돌아가자꾸나!”

 

 

 움집 너머에 몸을 웅크리고 있던 희진이 그 목소리에 슬그머니 고개를 들었다. 최 영감이 멀어지는 걸음소리가 들려왔다. 그리고 뒤이어 선명한 마찰음이 울려퍼졌다.

 

 

 “재수 없는 놈. 너 때문에 되는 일이 하나도 없구나!”

 

 

 신관의 날카로운 고함도 함께였다. 반대방향으로 멀어지는 신관의 걸음소리와 그보다 한 걸음 느리게 멀어지는 여린 걸음소리가 들려왔다. 희진은 조심스럽게 움집 너머로 고개를 내밀었다. 잔뜩 어깨를 움츠린 휘가 신관의 뒤를 따라 걸어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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