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진은 달빛 한 점 들지 않는 어둠에 익숙해지기 위해 한참이나 눈을 깜빡여야만 했다. 고개를 조금만 돌려도 목덜미가 욱신거렸다.
그래도 칼날이 아니라 칼등으로 맞은 게 어디냐.
희진은 애써 긍정적으로 생각하며 드러누운 채 눈을 깜빡였다.
한 차례 거하게 얻어맞고 정신을 차렸는데도 여전히 이곳이었다. 그렇다는 건 정말로 자신이 다른 세상에 떨어졌다는 소리였다. 눈물이 차올랐다. 강렬한 무서움이 모든 걸 삼켜버릴 기세로 희진을 향해 달려들고 있었다. 여기가 어디인지, 저를 데려온 이 사람들은 또 누구인지. 아는 거라곤 아무것도 없는 상황 속에 홀로 버려진다는 건 감당하기 힘든 공포였다.
희진은 세차게 얻어 맞고 욱신대는 목덜미를 어루만지기 위해 손을 들었다. 그리고 그때야 제 손목을 꽁꽁 휘감고 있는 줄을 발견했다. 손목만이 아니었다. 발목에도 거친 매듭이 자리하고 있었다. 모를 땐 몰라도 알고 나니 여린 살결이 쓰라린 통증을 호소했다. 눈물범벅인 얼굴에 달라붙은 지푸라기도 따끔거렸다. 서러움이 밀려왔다. 아픈 손목과 발목도, 따가운 얼굴도, 이곳에 떨어진 자신까지도. 모든 게 서러웠다.
하필이면 성인의 몸도 아니고, 기껏해야 일곱 살이나 되었을 법한 작은 몸이라니. 앞으로 뭘 어떻게 하라고. 희진은 펑펑 눈물을 쏟아내며 몸을 웅크렸다. 만약 이게 다른 사람의 몸이라면? 내가 남의 몸에 들어와 있는 거라면? 상상만으로도 소름이 돋는 일이었다. 희진은 고개를 저었다.
아냐, 이런 생각은 하지 말자. 지금 상황엔 하나도 도움이 안 된다고. 그 아저씨도 그랬잖아. 내가 원래 여기서 태어났었다고. 그럼 이건 내 몸인 게 아닐까?
희진은 묶인 손끝을 만지작거렸다. 하지만 제 몸이라고 하기엔 열여덟이나 먹은 저와 달리 작아도 너무 작은 몸이었다.
이게 진짜 내 몸이라고 치면, 그동안 내 몸은 어떻게 지냈던 건데? 영혼은 저쪽에 가 있었던 거잖아. 그럼 이 몸은 뭐야? 지금 세상에 냉동인간 같은 게 있을 리도 없고.
희진은 떨리는 눈을 감으며 한숨을 내뱉었다.
서희진. 너 지금 그 아저씨가 진짜라고 믿는 거야?
모르겠어. 하지만 그 아저씨가 진짜가 아니었다면 지금 여기도 진짜가 아니라는 거잖아. 하지만 이 모든 게 진짜가 아니라고 하기엔 너무 춥고, 아프고……아프단 말이야.
희진은 울음을 터뜨렸다. 부모님이 보고 싶었다. 지금쯤 그곳의 자신은 어떻게 되었을까.
“보고 싶어, 엄마, 아빠…….”
희진은 짚더미에 얼굴을 파묻었다. 이제 다시 볼 수 없을지도 모를 부모님을 생각하니 눈물이 끊이지 않고 흘러나왔다.
달빛도 깊은 잠에 빠져든 고요한 새벽이었다. 희진은 얼마 자지도 못한 채 눈을 뜨고 낑낑대며 몸을 일으켜 세웠다. 잠깐을 움직였다고 손목을 묶은 끈이 느슨해져 있었다. 희진은 멍하니 손목을 바라봤다.
설마 일부러 이렇게 묶어 놓은 건가. 도망가나, 안 가나 보려고?
희진은 용기를 내어 발목의 끈도 당겨 봤다. 느슨했다. 심지어 자세히 보니 매듭도 엉성하기 짝이 없어서 조금만 조물거리면 풀어낼 수 있을 것 같았다. 희진의 얼굴이 엉망으로 구겨졌다.
단칼에 사람을 베던 놈들이 이렇게 어리숙하게 굴 리가 없는데. 이거 함정 아니야?
아직도 그녀의 머릿속에선 단번에 사람을 베어내던 그들의 모습이 생생하게 남아있었다.
아, 이걸 풀어, 말아?
한참이나 짚더미 위를 오가며 고민하던 희진이 이내 결정을 내렸다.
일단 발만 풀고 바깥에 나가서 여기가 어딘지만 살짝 보고 오자! 보고 와서 다시 얌전히 묶으면 되지! 이 시대에 경보기가 있는 것도 아니고, 뭐 어때!
희진은 야무진 자기 합리화를 시도하며 발목을 죄고 있는 끈을 풀기 시작했다. 막상 볼 땐 별거 아닌 매듭 같았지만 풀려고 하니 제법 많은 힘이 들어가야만 했다.
“아, 손 아파.”
희진은 울상을 지으며 빨개진 손끝을 바라봤다. 푸는 데에는 성공했지만 다시 묶을 생각을 하니 눈앞이 깜깜해졌다.
그냥 자고 일어났더니 자연스럽게 풀린 척이나 할까.
제 손에 들린 엉망이 된 끈을 바라보던 희진은 한숨을 쉬며 끈을 짚더미 위로 집어 던졌다.
에라, 모르겠다. 걱정되면 잘 묶었어야지. 이게 어디 내 잘못이냐고. 난 모르겠다!
희진은 슬그머니 문을 열고 바깥으로 걸음을 옮겼다. 그리고 그녀는 눈앞에 펼쳐진 풍경을 바라보며 저도 모르게 입을 벌리고 감탄에 빠져들었다.
첩첩산중이란 말이 이래서 나왔구나 싶을 만큼 험난한 산세가 그녀를 맞이하고 있었다. 하얀 달빛 아래 성난 산자락이 윤곽을 드러내며 저를 노려보고 있는 기분이었다.
용케도 이런 깊은 산 속에 이런 걸 지었네. 사람 엄청 많이 필요했을 텐데. 아니, 진짜 대체 뭐하는 자들이래?
희진은 까치발로 조심스레 걸으며 이곳저곳을 둘러보았다. 어떻게 이 높은 곳에 집을 지었을지 신기하기만 했다.
진짜 우리 조상님들은 대단하다니까. 벼랑 위에 거대한 조각상을 짓지를 않나, 이런 산골짜기에 으리으리한 건물을 짓지를 않나.
잠깐만. 지금 고구려라며?
희진의 미간이 구겨졌다. 희진은 조금 더 집 가까이로 다가갔다.
이렇게 발달한 문화를 가졌다고? 고구려가?
내가 아는 고구려는 돌무더기 얹어 놓고 ‘짜잔, 무덤입니다!’ 하던 장군총이 전부인데? 이건 그냥 지금 남아있는 절들이랑 다를 게 없잖아?
혼란스러웠다. 희진은 저도 모르게 뒷걸음질을 쳤다. 자신이 이곳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고 있다는 사실이 실감이 나기 시작했다.
희진은 제가 갇혀 있었던 곳으로 되돌아가 문을 꼭꼭 닫고 짚더미 위에서 몸을 웅크렸다.
이곳은 다른 세계고, 자신이 알던 세계가 아니란 사실이 이제야 피부로 선명하게 다가왔다.
희진은 떨리는 손으로 얼굴에 묻은 지푸라기를 털어냈다. 온 얼굴이 눈물범벅이 된 탓에 지푸라기는 좀처럼 떨어질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어쩌면 손에 힘이 들어가지 않아서 그런 것일지도 모를 일이었다. 희진은 얼굴을 박박 문지르며 어떻게든 긍정적인 생각을 해 보려 노력했다.
그래도 여긴 완전히 다른 세상이라서, 몸도 건강하니까 맘껏 움직일 수도 있고, 뛰어다닐 수도 있고, 공기도 좋고, 지긋지긋한 병원도 안 가도 되고…….
하지만 거기까지였다. 어떻게든 억지로라도 끄집어내고자 했던 긍정은 순식간에 바닥을 드러내고 말았다.
“엄마…….”
그 자리를 대신 채우고 올라온 건 그리움과 미안함이었다.
희진은 무릎 위로 얼굴을 묻었다. 눈물이 쏟아졌다.
쓰러진 저를 데리고 병원으로 달려갔을 엄마의 모습이 눈에 보이는 듯했다.
아빠는 또 일을 내팽개치고 달려오셨겠지. 언제나처럼 두 분은 내가 깨어나기만을 기다리며 병원 침대에서 쪽잠을 주무실 텐데.
그럼 이제 현실의 나는 영영 눈을 뜨지 못하게 되는 걸까.
아니, 어느 쪽이 진짜 현실인 걸까.
온몸이 사시나무처럼 떨려왔다. 희진은 억지로 눈을 감았다. 악몽 같은 현실이었다.
하지만 이곳도 그녀의 현실이 되어버린 이상 어떻게든 살아야만 했다.
희진은 억지로 잠을 청했다. 잔뜩 웅크린 작은 뒷모습은 보기 안쓰러울 만큼 서글프기만 했다.
* * *
정자 위에는 짙은 쪽빛 한복을 곱게 차려입은 두 남자가 마주 앉아 있었다. 은은한 달빛이 비치는 작은 다과상을 앞에 둔 두 남자는 오래도록 말이 없었다.
살랑대는 바람을 타고 나뭇잎이 흔들린다. 그 사이로 진한 녹차 향과 함께 고요한 침묵이 지나간다. 찻잔에 담긴 차가 미지근해질 때까지 아무런 말이 없던 두 사람 사이에 비로소 대화 소리가 모습을 드러냈다. 먼저 입을 연쪽은 최 영감이었다.
“너는 신라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느냐.”
난데없는 질문이었다. 도영은 조용히 찻잔을 들어 올렸다.
신라. 모두의 기억에서 잊히다시피 한, 그에 대해 기억하는 자라 할지라도 섣불리 입 밖으로 꺼내서는 안 되는 것.
한 모금의 차를 마시며 생각을 정리한 도영이 입을 열었다.
“그리 많이 알지는 못합니다. 그저 그런 나라가 있었고, 멸망했다는 것만 알고 있습니다.”
“왜 멸망하였는지도 아느냐.”
찻잔 위를 맴돌던 최 영감의 손이 멈추었다. 그는 고개를 들어 서늘한 눈빛으로 도영을 바라봤다. 살벌한 시선 속에서 도영은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부패한 귀족들의 탐욕이 용신의 화를 사서 멸망하였다고…….”
“아니, 그 반대다.”
최 영감은 단호하게 도영의 말을 잘라냈다. 도영은 의문스러운 눈빛으로 그를 바라봤다. 제가 지금 잘못 들은 것은 아닐까 의심이 갈 정도였다. 최 영감의 입술이 천천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신라의 왕은 용을 죽였다.”
“그게 무슨……!”
도영은 하얗게 질린 얼굴로 최 영감을 바라봤다. 하지만 최 영감은 그의 당황 같은 건 중요하지 않다는 듯, 혹은 이미 예상했었다는 듯 평온한 얼굴로 말을 이어갈 뿐이었다.
“그게 이 땅에서 신라가 종적을 감추게 된 이유다. 나도 우연히 알게 되었지. 벌써 천 년도 더 된 이야기니 얼마나 신빙성이 있을진 모르겠다만.”
최 영감은 그저 길에 떠도는 이야기를 입에 올린 것인 양 담담한 태도로 차를 들이켰다. 혼돈은 오로지 도영만의 몫이었다.
“영감께서는……그 이야기가 사실이라 생각하십니까?”
간신히 마음을 가라앉힌 도영이 입을 열었다. 찻잔을 내려놓은 최 영감은 수염을 두어 차례 쓰다듬은 뒤 느릿하게 입을 열었다.
“글쎄. 그거야 모를 일이지. 하지만 만약 그 아이가 정말로 신전과 관련이 있는 아이라면, 그래서 신전에서 아직까지도 신라의 잔당들을 찾고 있고, 그래서 그 아이가 신라를 알고 있는 거라면…….”
어둠 깊숙한 곳을 주시하는 최 영감의 눈에 시퍼런 안광이 맴돌았다. 잠시 말을 멈추었던 그는 서너 번 눈을 깜빡인 뒤에야 다시 입을 열었다.
“사실일지도 모르는 것 아니겠는가.”
마른 침을 꿀꺽 삼킨 도영이 떨리는 주먹을 꽉 쥐었다. 그저 절대적인 존재라고만 생각했었다. 용이라는 건 이 고구려에서 곧 신이나 다름없는 존재였으니까. 그러니 용을 죽인 자가 있다는 건 단 한 번 생각조차 해 본 적도 없는 이야기였다. 신이라는 건 애초에 인간에게 살해될 수 있는 존재가 아니었으니까.
하지만 지금 제 앞에서 감히 신의 살해를 입에 담고 있는 최 영감의 얼굴에선 조금의 장난기도 보이지 않았다. 도영은 두려워졌다. 최 영감이 대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것인지, 그가 알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
“나는 지금의 신전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네.”
최 영감은 한결 부드러워진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도영은 숨을 참은 채 그의 다음 말을 기다렸다.
“감히 대고구려에 유일무이한 황권을 위협하는 존재이지 않던가? 그러니 마음에 들지 않을 수밖에.”
최 영감의 입에서 나온 나름의 상식적인 대답에 도영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그의 말을 받아쳤다.
“그야…… 황실 다음으로 가장 세력이 드센 곳이기는 하지요. 허나 신전과 황실은 서로 가는 길이 다르지 않습니까.”
“만약 신전이 황실에게 신의 말이라는 이름으로 거부할 수 없는 일을 내린다면?”
“그건…….”
도영은 입을 다물었다. 여태까지 그런 일이 없었다고 앞으로도 그런 일이 없다고 자신할 수 있는 걸까? 황권과 신권 중 과연 우위에 있는 게 황권이라고 자신만만하게 이야기할 수 있는 것일까? 한 번도 생각해 본 적 없던 의문이 강하게 그의 머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애초에 용신을 위한 제물을 바친다는 게 지엄한 국법에 있단 말이더냐?”
최 영감의 목소리가 다시금 낮아졌다. 냉기를 머금은 그 목소리에는 한마저 서려있는 듯했다. 도영은 천천히 고개를 가로저었다.
“……. 아니오, 없습니다.”
“허면 신전은 무슨 근거로 죄 없는 아이들을 잡아간단 말이야?”
아. 도영은 뒤통수를 거세게 얻어맞은 것 같은 충격에 휩싸였다. 그는 이제야 최 영감이 왜 신라를 논하고, 신전을 논하는지 알 것 같았다. 근간부터 잘못되었다는 것, 그는 그 이야기가 하고 싶은 게 분명했다.
백 년에 한 번씩 용의 아이라는 명목하에 전국 각지에서 선발된 열두 명의 아이들을 신전에서 데려간다는 건 고구려민이라면 모두가 아는 사실이었다. 하지만 그중 누구도 신전의 행태에 대해 반발하는 이는 없었다. 그저 당연히 그러한 것으로 받아들이고 있었을 뿐이었다. 심지어 용의 아이로 선택받은 아이의 부모들조차 말이다.
이유는 간단했다. 과거부터 그래왔으니까. 단지 그것 하나뿐이었다.
“이번에 신전에서 용의 아이 하나에게 문제가 생겼다지.”
반쯤 남은 찻잔을 단숨에 비워낸 최 영감이 긴 수염을 쓰다듬으며 묘한 미소를 머금었다.
“자칫하면 일이 아주 재밌게 돌아갈지도 모르겠구나.”
도영은 최 영감과 달리 한 차례 긴 한숨을 내쉬었다. 앞으로의 고생길이 훤히 보인 탓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