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_마청과 A조_합작_160824
7.
마법소년들이 마법 능력을 발휘하려면 여자 옷을 입어야 했다. 실전에 투입되는 마청과의 2, 3학년들을 위해 순식간에 옷을 갈아입혀주는 ‘세차장’이 발명된 것도 이 때문이었다. 물론 옷이 생성되는 건 아니고 미리 넣어놓은 옷을 입혀주는 기계다.
저런 옷들을 넣을 줄 알았더라면 발명가는 이 기계를 발명하지 않았을 지도 모르지만.
“끙...”
한소래담이 작게 침음성을 흘렸다. 소심한 그녀는 자신이 남학생들 사이에 섞여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심란하기 그지없었다.
게다가 주변에 가득한 남학생들이 평범한 남학생인가? 아니었다. 밥 한 번 곯은 적 없이 하루 세끼(채소한의 경우 다섯끼) 꼬박꼬박 챙겨 먹고, 그 영양분에 힘입어 무럭무럭 자란, 그 와중에 예비 공무원인 마법청소년으로서 건강 관리에 힘 쓴, 어느 모로 보나 건장 그 자체인 남자들이었다. 그들이 하나같이 몸에 맞지도 않는 여자 차림을 하고 있었으니 아마 그 가운데 껴있는 것이 한소래담이 아니라도 심란해질 것이다. 여장한 남학생들의 수가 계속 늘어나고 있는 지금은 더 말할 것도 없다.
하얀색 아치형의 짧은 동굴처럼 생긴 기계는 ‘세차장’이라는 명칭처럼 언뜻 보면 비닐하우스나 자동 세차기계처럼 보였다. 물론 ‘세차장’에도 정식 명칭이 따로 있긴 했지만 한소래담을 포함한 다른 학생들 뿐 아니라 선생님들까지도 그것을 세차장이라고 부른 지 오래였다.
‘왜 저걸 세차장이라고 부르는지 알겠다.’
한소래담은 쉽게 납득했다. 세차장 안에 후줄근한 교복을 입고 들어간 학생들이 세차장을 나올 때는 번쩍번쩍 치장되어 나오고 있었기 때문이다.
“짠.”
“.......”
세차장에서 막 나온 이우비가 치렁치렁한 가발을 쓸어 넘기며 모델 같은 포즈를 취했다. 사락사락한 머리카락 사이로 이우비의 귀에 박힌 피어싱이 마치 보석 귀걸이처럼 화려하게 빛났다.
“어때?”
“이상해.”
“너무 잘 어울려서 이상해.”
채소한과 한소래담이 거의 동시에 대답했다. 말마따나 어색하기는커녕 누님이라고 불려도 괜찮을 법했다. 180cm가 넘는 신장으로 여장이 잘 어울린다는 건 힘든 일이었지만 아무튼 이우비는 해냈다.
‘몸에 쫙 달라붙는 하늘색 원피스라, 내 기억이 맞다면 아마 베트남의 전통복인 아오자이인 것 같은데. 저 정도면 사이즈가 어떻게 될까, 얼마 주고 산걸까, 그리고 어디서...’
반쯤 현실도피를 하고 있는 한소래담에게 이우비가 싱긋 웃었다.
“고마워, 너도 예뻐.”
이우비가 조신하게 (보이지도 않는) 가슴골을 누르며 인사했다. 한소래담이 얼떨떨하게 고개를 끄덕거렸다. 기숙사 옷장 안에 들어있던 생활한복은 움직이기에도 편하고 보기에도 예뻤다. 네이비색 치마와 오트밀색 저고리. 평소엔 더 꾸미기도 힘든 남장을 하고 있던 차라 그녀는 간만에 입은 예쁜 옷이 참 마음에 들었다.
“나는? 나는 어때? 대단하지?”
채소한이 번쩍 손을 들고 이우비와 한소래담을 번갈아 쳐다보았다.
“...응.”
한소래담은 잴 것도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채소한이 뿌듯한 표정으로 다리를 어깨 넓이로 당당하게 벌리고 섰다. 한소래담은 자신의 눈알을 적출해내고 싶은 충동을 겨우 억눌렀다.
채소한은 가슴팍만 간신히 가린 새빨간 탱크 탑에 하얀색 테니스 스커트를 입고 있었다. 바깥으로 훤히 드러난 우람한 이두박근이라든지 빨래판을 연상시키는 복근이 하늘하늘한 테니스 스커트와는 무서울 정도로 안 어울려서 오히려 불쌍할 지경이었다.
맞는 옷을 찾아오라는 숙제를 내줬던 선생님도 멀찍이서 채소한의 몰골을 확인하고 묵묵히 고개를 저었다.
“오, 시아랑 나온다.”
이우비의 말에 한소래담과 채소한이 동시에 세차장의 출구를 쳐다보았다.
“우와아! 와아!”
채소한이 열렬히 박수를 치며 시아랑을 환영했다. 한소래담도 반사적으로 박수를 쳐버릴 정도로 시아랑은 완벽했다. 각선미를 드러낸 새빨간 차이나 드레스, 찰랑거리는 가발과 살랑거리는 치맛자락.
남자답고 사나운 얼굴이었지만 멀리서 보면 정말 여자로 보일 정도였다. 그것도 모델 급의.
시아랑이 채소한을 노려보았다. 한소래담이 찔끔 박수를 멈추고 채소한의 손도 멈췄다. 하지만 채소한의 입까지는 틀어막을 수 없었다.
“우와아!”
채소한은 한 톤 더 높게 소리쳤다. 다행히 시아랑을 향한 탄성은 아니었다.
시아랑이 자신의 옆을 바라보았다. 세차장에서 막 나온 혜달의 얼굴이 새빨갛게 달아올라 있었다. 혜달은 요즘 여자들 사이에서 유행하는 완벽한 세일러복을 입고 있었다. 채소한만큼이나 충격적인 복장이었다.
“풉.”
시아랑이 참지 못하고 웃어 버렸다. 이우비는 애저녁에 포복절도하며 난리가 났다.
“조용히 좀 해...”
민망함에 못 이겨 치맛자락을 틀어쥔 혜달이 스스슥 채소한 뒤로 숨었다. 하지만 한소래담은 도무지 혜달에게서 시선을 뗄 수가 없었다. 머리에 살포시 올린 티아라부터 분홍색 구두, 브로치 하나까지 섬세하게 신경을 쓴, 여장의 장인 같은 모습이었다. 입는 사람이 190cm가 넘는 거구가 아니었다면 훨씬 나았겠지만.
“분홍색 리본이 진짜 끔찍하다.”
채소한이 순수하게 감탄했다. 한소래담도 그 말에 동의했다. 가슴팍에 달려있는 분홍색 리본의 위용은 정말 대단했다. 물론 미니스커트도.
“그래도 각선미는 좋아. 파이팅!”
실컷 웃은 이우비가 사탕발림을 했다. 혜달은 대꾸도 못 하고 고개를 푹 숙였다.
“됐어. 이제 다들 집합.”
선생님이 박수를 치자 학생들이 모였다.
“여자 옷을 입어보니까 어때?”
“시원해요!”
채소한의 우렁찬 대답에 다들 웃음을 터뜨렸다. 선생님도 피식 웃었다.
“그래, 피할 수 없으면 즐겨야지.”
선생님이 박수를 쳐서 학생들의 주의를 환기시켰다.
“자. 이제 앞으로의 실습시간 때는 물론이고, 나중에는 실전에서도 여자 옷을 입고 있어야 해. 미리미리 익숙해지는 게 좋겠지.”
시아랑과 혜달은 뭔가 불안함을 느꼈다.
“과제다. 앞으로 3시간 동안 상점가에서 시간을 보내도록. 그 차림 그대로.”
채소한은 외출이라고 방방 뛰며 좋아했지만 시아랑과 혜달은 그대로 굳었다. 학생들이 제각기 웅성거리는 동안 이우비가 한소래담에게 눈치를 줬다. 한소래담이 살짝 고개를 끄덕여 신호를 주고 받았다.
선생님의 말이 이어졌다.
“남들 눈 신경 쓰다가 다치기 전에 빨리 익숙해져. 근처 사람들은 반응이 무딘 편이니까 그냥 조끼리 뭉쳐 다니면 되고, 이 기회에 주문을 걸어놓을 만한 액세서리를 사두는 것도 좋고. 지금부터 3시간 동안 교문 잠가놓을 테니 돌아올 생각 말도록. 이상.”
***
선생님은 학생들의 반발에도 아랑곳 않고 그들을 교문 밖으로 떠밀었다. 혜달은 퇴학이라도 당한 것처럼 학교에서 눈을 떼지 못했고, 시아랑은 교문 밖에 나오자마자 반사적으로 혜달을 쳐다봤다.
“분홍색 리본이나 달고 있는 변태랑 3시간을 같이 다니라고?”
말을 꺼낸 시아랑이 아차 싶어 입을 다물었다. 당황스러운 나머지 말이 뇌를 안 거치고 나와 버렸지만 또 살벌한 분위기를 연출하고 싶은 생각은 없었다. 다른 어떤 이유보다도, 시선을 끌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시아랑에게는 다행스럽게도, 혜달은 맞받아치는 대신 고개를 푹 숙였다. 스스로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으니까.
사실 겉보기에 더 부담스러운 것은 혜달이 아니라 채소한이었다. 하지만 채소한의 차림새는 도가 넘치게 안 어울리는 만큼 오히려 벌칙 게임이나 한 물 간 개그맨 같아 보였다. 여장에 심혈을 기울인 것 같은 혜달의 차림새와는 느낌 자체가 다른 것이다.
하지만 당연히 혜달도 좋아서 이 옷을 세차장에 넣은 게 아니었다. 혜달의 친구들은 마청과에 들어갈 그를 위해 세일러복 컬렉션을 선물했고, 혜달은 돈을 아끼고 싶었다.
이제 와서 다른 옷을 입으려고 해도 이미 혜달에게 있는 옷은 모두 세일러복뿐이었다. 분홍색, 빨간색, 노란색, 보라색 등등의. ‘여장’이라는 단어에 미니스커트밖에 생각하지 못한 것은 제 탓이 아니라고 혜달은 스스로를 위로했다. 뭔가 잘못돼가고 있다는 것을 깨달은 건 채소한과 자신을 뺀 모두가 긴 치마를 가지고 왔을 때였다.
“이미 늦었지...”
친구들의 선물이 호의가 아니라 장난이었다는 사실을 너무 늦게 깨달았다. 채소한이 고개를 푹 숙인 혜달의 등을 토닥거렸다.
“괜찮아, 괜찮아.”
“...그래.”
혜달은 채소한의 차림새를 보며 한숨을 삼켰다.
‘그래, 이 녀석도 이런 꼴을 하고 있는 게 달갑지는 않겠지.’
“그럼 3시간 동안 어디서 뭐 할까?”
혜달이 뭐라고 생각하든 채소한은 씩씩하게 말했다. 시아랑이 보기에 채소한은 마치 수치라는 걸 모르는 인간인 것 같았다. 반면에 혜달은 채소한의 수치까지 모두 짊어진 희생자처럼 차마 고개를 들지 못하고 있었다. 혜달이 치맛자락을 꾹 끌어내리며 말했다.
“실내... 무조건 실내로 가자.”
“아, 그럼 액세서리 사러 가자. 이 근처에 가게가 있을 거야. 어차피 수업 준비물이었잖아?”
이우비의 의견에 혜달이 소심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시아랑은 저를 빼고 움직이는 조원들을 보며 쯧 혀를 찼다. 선생님은 괜찮을 거라고 말했지만 이미 시선이 몰리는 참이었다. 불쾌하기 그지없는 현상이었지만, 시아랑은 그냥 조원들과 함께 다니기로 마음먹었다. 이렇게 되어버렸으니 눈에 띄는 것은 어쩔 수 없겠고, 혼자 다니면서 그 시선을 모조리 감내하는 것보다는 혜달과 채소한에게 묻혀 가는 게 나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나무를 숨기려면 숲으로 가라고 했지.’
시아랑은 선조들의 말씀을 믿고 따르기로 했다.
이우비는 못 이기는 척 따라오고 있는 시아랑을 곁눈질하며 픽 웃었다.
‘열심히 머리 굴려 계산한 건 알겠지만... 그래봤자 시선을 아예 피할 수는 없을 텐데 말이야.’
이우비가 보기엔 시아랑의 꿈이 너무 컸다. 혜달과 채소한이 기괴한 차림으로 시선을 받는다면 시아랑은 화려한 겉모습과 특유의 분위기에 눈이 갔다.
그나마 여장 차림이 자연스러운 건 이우비와 한소래담뿐이었다.
‘한소래담은 체구가 작아서겠고, 나야 잘생긴 본판이 어디 가는 게 아니니까?’
자아도취해 있는 이우비의 눈앞에 액세서리 가게가 보였다. 이우비가 갑자기 멈춰 섰다.
“아, 나 잠깐 돈 좀 찾아올게.”
“응, 그래...”
혜달이 개미 기어가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한소래담은 이우비의 능글능글함에 새삼 감탄하고 있었다. 수업 중에 외출하게 된 것도, 액세서리 가게로 우리를 이끈 것도, 혼자 슥 몸을 빼는 것까지 물 흐르듯 자연스러웠다. 이제 남은 건 그녀의 임무뿐이었다. 한소래담은 긴장에 못 이겨 마른침을 삼켰다.
‘이제 나만 잘하면, 내가 채소한의 시선만 돌려놓으면 이우비가 ‘그 애들’을 데려올 거야.’
그럼 이 불편하고 어색한 기분도 끝!
한소래담은 상상만으로도 가슴이 벅차오르는 것을 느꼈다. 그도 그럴 것이, 한소래담은 성질 더러워 보이는 외모 탓에 길거리에서 길을 알려달라는 말도 들어본 적 없었다. 하지만 이번 이우비의 부탁은 달랐다. 그녀만 할 수 있는 일이라고 했다. 부탁이니 도와달라고 했다. 그것도 굉장히 중요한 임무를 맡기며!
아무튼 이번 일로 시아랑과 혜달이 화해한다면 그녀도 마음의 짐을 덜 수 있을 거라는 생각에 가슴이 설렜다. 얼굴은 여전히 얼음장이었지만 발걸음은 확실히 가벼워졌다. 팔랑팔랑 치맛자락이 박자를 타며 나부끼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