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네?”
한소래담이 각오한 것은 마법학교에 들어가는 것뿐이었다. 맹세코, 이런 사태까지는 예상하지 못했다. 아니, 예상할 수 있었을 리가 없다.
그녀는 당황스러움을 표현할 만한 말을 찾지 못해 예드람의 말을 되풀이했다.
“남자로 입학해야 된다고요?”
“그렇게 됐다.”
대답이라고 생각하기엔 너무 단순한 말이었다. 한소래담은 더욱 당혹스러워졌지만 예드람은 그것을 눈치채지 못했다. 한소래담의 심정이 얼굴에 드러나지 않았기 때문이기도 하고, 예드람 역시 이 상황에 심란했기 때문이기도 했다.
“후우...”
예드람은 짜증을 억누르기 위해 한손으로 양 관자놀이를 꾹 눌렀다. 한소래담의 일로 한 달 넘게 골머리를 썩였다. 그동안 이 부녀 때문에 생고생했던 것을 생각하면 지금 당장이라도 책상을 뒤엎어버리고 싶을 정도였다.
그러나 한윤은 그런 걸 파악할 눈치가 없었다.
“똑바로 말해주게! 내 딸이 왜...”
한윤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내 딸이 왜 마법소년이 되어야 한다는 건가!”
“왜 그러냐고?”
그런 말을 듣자 예드람도 울컥 분노가 치밀어 올랐다. 두꺼운 주먹이 책상을 쾅 내리치자 금속으로 된 필기구 정리함이 땡그랑 소리를 내며 들썩였다.
“내가 따지고 싶은 말이다! 한소래담이 제때 입학만 했어도 이런 일은 없었어!”
예드람의 기세에 한윤이 몸을 움찔했다. 하지만 이미 예드람의 눈에는 보이는 게 없었다. 그는 기차 화통을 삶아먹은 목소리로 마구 쏘아댔다.
“요즘 세상에 ‘마법소녀’라니, 여자애라 증명서니 뭐니 뭐가 그리 필요한 게 많던지! 출국 금지를 거는데 법을 바꿔달라고 할 수도 없고, 내가 할 수 있는 게 뭐가 있었을 것 같냐, 어? 위에서는 잡아오라고 난리지! 출국 금지는 안 걸어준다고 하지! 네 딸이 ‘마법소년’인 게 제일 빠른 방법이었다!”
“그...”
한윤은 말을 흐렸다. 예드람의 얼굴이 야차 같았다.
예드람은 자신이 흥분했다는 것을 깨닫고 호흡을 가다듬었다. 옷깃을 세우며 다시 자리에 앉는다.
“그래. 마법소녀가 아니라 마법소년. 이 사태에 머리가 아픈 건 나도 마찬가지란 말이야.”
한숨과 섞인 말이 이어졌다.
“한소래담 너도 알겠지. 현재 공식적인 ‘마법소녀’는 없어. 마법청소년 학과의 학생들은 전부 남자고, 현역에서 뛰고 있는 것도 남자가 아니면 ‘마녀’, 그러니까 중년 여성뿐이야.”
“네. 알아요.”
한소래담이 고개를 끄덕였다.
예드람의 상황이 이해되지 않는 건 아니었다. 불과 20여 년 전만 해도 세상에는 마법소녀밖에 없었지만 지금은 상황이 달랐다. 마법소녀가 나타났던 게 갑작스러웠던 것처럼 그들이 사라진 것도 갑작스러웠다. 과학적으로 규명된 이유도 없이, 임신한 마법소녀들은 그 힘을 잃었고 대신 그 자녀들 가운데 아들만이 힘을 이어받았다. 현재까지 남아있는 마법소녀는 출산하지 않은 중년의 마법소녀(지금은 ‘마녀’라고 부른다)들과 여장을 해야 힘을 발휘할 수 있는 마법소년들 뿐이었다.
예드람이 한소래담을 보며 마저 말했다.
“그러니 한소래담. 네 입장에서도 남자로 가는 게 마음 편할 거다. 모든 사람들의 집중을 받고 싶지 않다면.”
“...그렇겠죠.”
한소래담이 알기에도 현재 마법소녀는 그녀 혼자밖에 없었다. 그녀가 태어날 때까지만 해도 마법소녀가 몇 명 남아 있었기 때문에 신문에 대서특필이 되거나 하는 일은 없었지만, 지금 한소래담의 존재가 평범한 일은 아니라는 건 그녀 역시 당연히 알고 있었다.
“그럼 이야기는 다 된 거라고 믿고, 입학 수속을 마저 마치도록 하지.”
“.......”
한소래담은 입을 다물었다. 어쩔 수 없다는 건 이해했지만 시원하게 대답할 수는 없었다. 이대로 가면 꼼짝없이 남장을 하고 입학해야 할 마당이었다. 산 속에 있어 통학도 불가능한 마법 고등학교에서 3년, 게다가 5인 1실의 기숙사 생활까지!
물론 예드람도 사춘기의 여자애가 그런 생활을 하게 된다는 게 어떤 의미인지 모르는 바는 아니었다. 그는 말이 없는 한소래담을 보며 깊은 숨을 내쉬었다.
“한소래담. 어려운 결정이라는 건 이해한다. 만일 네가 원칙대로 수속을 밟고 입학했다면 이렇게까지는 안 됐을 거야. 통학이나 개인 수업이나, 잘은 모르겠지만 아무튼 뭔가 특별조치를 받았겠지. 하지만 마법학교 입학 거부는 중죄야. 이제 와서 특별취급을 부탁할 수는 없어.”
한소래담은 침묵했다. 예드람은 자신의 훈계가 먹히고 있는 것이라고 생각하고 말을 이었다.
“네가 입학거부를 한 심정은 이해한다. 마법소녀였던 네 어머니가 ‘그렇게’ 세상을 떠났으니 무섭기도 했겠지. 하지만 의무에서 도망치는 걸로는 아무것도 해결되지 않아.”
“예드람!”
한윤의 노성이 터졌다. 예드람은 눈살을 찌푸리며 한윤을 쳐다봤다. 한윤도 눈을 피하지 않았다. 기싸움이 팽팽해졌다.
“그만하세요.”
가만히 듣고만 있던 한소래담이 예드람에게 말했다.
“입학하겠습니다.”
“잘 생각했다.”
“담아!”
한윤이 한소래담을 돌아보았다. 한소래담은 눈을 내리깔며 살짝 미간을 찌푸렸다. 입꼬리에는 미동이 없었지만 그것이 그녀가 쓴웃음을 짓는 모양이었다.
“괜찮아요, 아빠. 별 거 아닐 거예요. 확실히 눈에 안 띄는 게 나으니까.”
한소래담이 살짝 눈짓했다. 한윤도 그것을 알아챘다.
‘탈출할 생각이구나.’
한윤은 입을 꾹 다물었다. 확실히 한소래담은 현재 ‘유일한 마법소녀’였고 탈출을 위해서라면 그 사실이 알려지지 않는 게 백 번은 유리했다.
마청과를 졸업하면 자동으로 고위 공무원이 된다. 철밥통이 어쩌고 월급이 어쩌고 복지가 어쩌고 해도, 그녀는 애초 마법소녀든 마법소년이든 될 생각이 없었다.
‘졸업 전까지는 반드시 탈출할 거야.’
그리고 그러기 위해서는 최대한 시선을 끌지 말아야 했다.
한소래담은 스스로에게 다짐하며 예드람을 향해 말했다.
“입학할게요. ‘마법소년’으로.”
***
한소래담의 입학 수속은 매우 신속하게 진행됐다. 딸과의 생이별을 앞둔 한윤이 침울하게 그녀의 머리카락을 만지작거렸다. 긴 생머리였던 것이 이제 목덜미까지밖에 안 오는 단발이 되어 있었다.
“담아, 아빠가 널 보내고... 으흑.”
한윤은 눈물을 보였지만 한소래담은 묵묵히 서 있었다. 그들의 옆에 선 군인들은 한소래담의 냉정함에 혀를 찼다. 생판 모르는 남이 헤어져도 이것보다는 애절할 듯싶었다. 우는 아버지 옆에서 이토록 냉담한 표정을 하고 있는 소년이 마법학교에 입학하는 걸 그리 열성적으로 거부하고 밀출국까지 시도했다니, 예드람의 보고가 믿기지 않을 정도였다.
군인들이 뭐라고 생각하든 한윤은 애써 울음을 삼키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니, 아빠가 돼서 약한 소리를 하면 안 되겠지. 다시는 못 만날 것도 아닐 테니까. 담이 너도 그렇게 시무룩하게 있을 필요 없다.”
‘시무룩해? 누가?’
군인들이 하나 된 마음으로 자문했다. 고슴도치도 제 새끼는 예쁘다고 한다지만 소년의 저 싸늘한 얼굴에서 시무룩함은 정말 요만큼도 보이지 않았다. 한윤은 군인들을 보며 간절하게 물었다.
“마지막으로 한번만 안아보면 안되겠습니까?”
“...그러십시오.”
‘아빠가 참 유난이네, 유난이야.’
군인들이 속으로 혀를 찼다. 한윤은 감사인사를 하고 눈물을 펑펑 쏟으며 한소래담을 꽉 안았다. 흐느끼던 입술이 열렸다.
“2주 뒤 자정에 그곳에서.”
한 치의 흔들림도 없는 낮은 목소리가 한소래담의 귀에 들어왔다. 한소래담은 고개를 끄덕이며 아버지의 등을 토닥였다.
***
한소래담은 군인에게 둘러싸인 아버지의 모습을 마지막으로 눈에 담고 학교를 향해 걸었다. 오늘은 예드람이 나오지 않아 다행이었다. 예드람이었다면 절대 이런 허점을 보이지 않았을 테니까. 하지만 한소래담은 여전히 이 상황이 막막하기만 했다.
“후우.”
한윤과 약속한 시간은 2주 후.
긴 시간은 아니지만 짧은 시간은 더더욱 아니었다. 자그마치 336시간. 그동안 자신이 여자라는 것을 들키지 않고 지내야 했다. 그것도 5인 1실의 기숙사 생활을 하면서. 막막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여기가...’
거대한 학교 건물을 바라보며 그녀는 걸음을 멈췄다. 이곳이 우리나라에 유일한 마법학교였다.
‘분명 엄마도 이 학교에 다니셨겠지.’
현 세대, 모든 마법청소년은 공통적으로 1세대 마법소녀를 어머니로 두고 있었다. 한소래담의 어머니 역시 1세대 마법소녀 중 한 사람이었다. 하지만 한소래담은 마법소녀로서 활약하는 엄마의 모습을 한 번도 본 적이 없었다. 출산을 한 모든 마법소녀는 그 능력을 잃었다고 하지만 그것과는 다른 이야기였다. 한소래담의 어머니는 그녀를 출산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세상을 떴기 때문이다.
그리고 한소래담은 현 세대에 유일한 마법‘소녀’. 누가 설명해준 것도 아니지만 그녀는 여자인 자신이 마법능력을 물려받게 된 게 ‘엄마의 능력이 뛰어났기 때문’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러니까 아마 내가 태어나지 않았다면, 엄마도 그렇게 허무하게 돌아가시지는 않았겠지...’
거기까지 생각한 한소래담은 도리질을 쳐 어두운 기분을 떨쳐냈다.
‘아니, 지금은 감상에 빠질 때가 아니야.’
한소래담은 마음을 다잡고 다시 걸음을 옮겼다.
마청과는 입학할 때 정해진 5인조가 계속 유지되는 시스템이었다. 협동심을 기르기 위해 기숙사실도 같은 조원들끼리 배정됐다. 2주 후면 한소래담은 학교에 없겠지만, 그 계획이 성공하기 위해서라도 같은 조원이 어떤 사람들인지 알아볼 필요가 있었다.
“비켜!”
잔뜩 긴장하고 있던 한소래담의 바로 옆으로 무언가가 휙 지나갔다. 그녀는 비명도 지르지 못하고 눈을 크게 떴다. 정문 바로 앞에 있는 흰색 비닐하우스에서 사람이 튀어나오고 있었다. 빨간색 세라복을 입은 사람, 검정색 정장 원피스를 입은 사람, 하늘색 시스루 원피스를 입은 사람이 연달아 한소래담의 어깨와 머리 위를 스치며 지나갔다.
‘마법소년...’
한소래담은 하늘을 날듯이 나무 사이를 뛰어넘는 그들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텔레비전으로만 보던 것을 실제로 보니 위압감이 대단했다. 특히 시스루 원피스 밑에서 꿈틀거리는 근육과 섹시한 스타킹을 뚫고 나오는 다리털이 인상적이었다.
“.......”
‘버틸 수 있을까. 내가. 사람들을 속이면서.’
마법소년들을 직접 목격하자 멀게만 느껴졌던 일들이 현실로 다가왔다.
학교 자체가 남학교인 건 아니었지만 그녀가 들어갈 마법청소년과, 즉 마청과에는 남자들뿐이었다. 적어도 서른 명. 한소래담은 그들 모두를 속이고 남자인 척할 자신이 없었다.
‘아냐, 괜찮을 거야.’
한소래담은 손을 꼭 말아 쥐었다. 바람이 불었지만 짧게 자른 머리는 예전처럼 나풀거리지 않았다. 그녀는 굳은 얼굴로 그들이 지나간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2주만 안 들키면 돼. 2주만. 괜찮아.’
한소래담은 스스로에게 끊임없이 되뇌었다.
‘괜찮을 거야...’
***
예드람의 배려로 한소래담의 짐은 이미 기숙사로 배달되어 있었다. 한소래담은 빈손으로 마청과 기숙사 501호의 문을 열었다. 한쪽 책상에서 짐을 정리하던 남학생이(여긴 전부 남학생뿐이지만) 그녀를 돌아보았다.
“아, 안녕. 이름이 뭐야? 나는 혜달이라고 하는데.”
남학생은 어림잡아도 한소래담보다 머리 하나 반 정도는 큰 키였다. 인상은 부드러웠지만 한소래담은 제자리에서 굳어버렸다. 제 성별을 벌써 들킨 건 아닐까 겁을 먹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한소래담의 걱정과 달리 남학생은 그녀를 향해 빙긋 웃었다.
“앞으로 3년간은 매일 얼굴 보면서 살겠네.”
한소래담은 여전히 딱딱한 표정으로 서 있었다. 혜달의 미소가 어색해졌다. 방이 조용했다. 혜달은 어색한 공기에 질식할 것 같은 기분에 휩싸였다.
‘그, 그래도 아직 포기할 때는 아니야.’
혜달은 스스로를 다잡았다. 여동생 세 명을 도맡아 키운 장남으로서 지금까지 갈고 닦은 수다력와 뻔뻔함을 보여줄 때였다. 혜달은 다시 방긋 웃으며 아무렇지도 않은 척 말했다.
“잘 부탁해.”
“.......”
또 대답이 없다.
혜달은 이제 미소를 지우는 것도 어색해진 상황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는 애써 웃는 얼굴을 유지하며 구겨진 옷을 갰다. 괜한 짓을 했나 하는 뒤늦은 후회가 혜달의 머릿속을 빙글빙글 돌았다.
“큼, 한소래담. 내 이름.”
혜달이 뒤늦게 고개를 들었다. 한소래담은 고개를 푹 숙이고 제자리로 걸어가고 있었다.
‘아하, 그냥 목이 안 좋아서 대답을 못 한 거구나!’
혜달은 세상 시련을 벗어낸 듯 다시 환하게 웃었다.
“그래, 앞으로 잘 지내보자. 한소래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