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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로맨스판타지
마법청소년과 A조
작가 : A조
작품등록일 : 2016.8.30

여장을 해야만 마법을 쓸 수 있는 남학생들과 탈주 중독에 걸린 마청과의 유일한 여학생
#학원물 #개그 #마법소년물 #남장 #여장 #역하렘

 
1화
작성일 : 16-08-30 01:33     조회 : 892     추천 : 0     분량 : 55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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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청과 A조

 

 

 1.

  쪼그리고 앉아 사방이 조용해지길 기다린 지 세 시간 째, 한소래담은 드디어 자리에서 일어났다. 체육복 바지 주머니에 넣어놨던 알파벳 초콜릿이 부스럭거렸다. 그 소리에 덜컥 겁을 집어먹은 한소래담이 급하게 초콜릿을 꺼내 한입에 집어넣었다. 채소한과 혜달에게서 받았던 것이다.

 

  초콜릿이 입안에서 녹아내리며 죄책감이 알맹이처럼 드러났다.

 

  ‘미안하지만 어쩔 수 없어. 정말 미안하지만, 그렇지만.’

 

  한소래담의 초조한 심정과는 관계없이 달달한 맛이 입 안 가득 퍼졌다.

 

  그녀는 스스로에게 세뇌라도 하듯 연신 사과의 말을 중얼거렸다. 떨리는 가슴을 쓸어내리고 대망을 첫 걸음을 뗀다.

 

  ‘으윽!’

 

  한소래담은 이를 악물었다. 하마터면 비명을 내지를 뻔했다. 같은 자세로 너무 오랫동안 있던 탓이었다. 다리에 벌레 수십 마리가 붙어 우글거리는 것 같은 느낌이 엄습했다.

 

  허벅지 안쪽까지 저릿저릿했지만 더 이상 시간을 지체할 수는 없었다. 한소래담은 잔디 위에 납작하게 엎드렸다. 잔디에 맺힌 밤이슬 때문에 티셔츠가 촉촉하게 젖었다.

 

  가로등빛은커녕 달빛조차 건물에 가린 밤이었다. 단 몇 걸음 앞도 똑바로 보이지 않는 어둠. 하지만 한소래담에게 그런 건 문제가 아니었다. 한소래담은 작게 입술을 오물거렸다.

 

  “꽃보라가 휘날리는 밤.”

 

  그녀는 한 번 눈을 감았다가 떴다. 새까만 눈동자 안에서 묘한 기운이 일렁거렸다. 그녀는 앞이 훤히 보이는 것처럼 빠르게, 망설임 없이 담장 바로 앞까지 움직였다. 그 몸놀림이 한 마리의 바퀴벌레와 같이 잽쌌다.

 

  “후우.”

 

  심호흡을 하고 한소래담은 쪼그려 앉은 자세로 돌아왔다.

 

  ‘미안해. 정말 미안해. 하지만... 어쩔 수 없어.’

 

  한소래담은 입술을 깨물고 담장 아래에 톡 튀어 나온 벽돌을 꽉 잡았다. 손톱 끝이 하얘지도록 힘을 주고 당기자 툭, 소리를 내며 벽돌이 떨어졌다. 한 개를 빼자 나머지는 일사천리였다.

 

  툭, 툭, 한소래담의 옆에 벽돌이 몇 개 쌓였다. 곧 사람 한 명이 통과할 수 있을 정도의 구멍이 만들어졌다. 그녀는 다시 엎드렸다.

 

  ‘금방 갈게요, 아빠.’

 

  한소래담은 개구멍에 손을 넣고 팔을 넣었다. 조금씩 꿈틀거리며 앞으로 나아간다. 그러나 고개를 넣을 수는 없었다.

 

  “뭐하냐?”

 

  익숙한 목소리가 들린 것과 동시에 한소래담은 고개를 들었다. 아니, 정확히는 들어 올려졌다. 누군가 그녀의 머리끄덩이를 잡아 올린 것이다. 그 힘에 한소래담의 눈꼬리가 치켜 올라가 안 그래도 날카로운 눈이 더욱 사나워졌다.

 

  상대의 얼굴을 확인한 한소래담의 심장이 덜컥 내려앉았다. 차가운 회색 눈동자. 익히 아는 사람이었다. 한소래담이 상대의 이름을 중얼거렸다.

 

  “시아랑...”

  “너 뭐하냐고.”

 

  시아랑이 다시 물었다.

 

  “아니, 나는, 그게.”

 

  한소래담이 제대로 말하기도 전에 구멍 바깥에서 손전등 불빛이 들어왔다.

 

  “거기 누구야?”

 

  바깥에 경비원이 나타난 모양이었다. 한소래담은 서둘러 일어나 벽에 등을 붙이고 숨었다.

 

  “여기에 구멍이 있는데?”

  “이런 데에 무슨 구멍이야. 막아야겠군.”

 

  ‘제발 들키지 않기를.’

 

  그녀는 입을 다물고 숨을 죽였다. 꽉 쥔 손에 땀이 배어나왔다. 시아랑은 그녀의 손을 잠시 내려다봤지만 사정을 묻지는 않았다.

 

  손전등 불빛이 멀어지자 한소래담은 가슴을 쓸어내렸다. 시아랑은 여전히 무심한 눈빛으로 그녀를 바라보고 있었다. 한소래담이 눈동자가 살짝 떨렸다. 이렇게 된 이상 어떤 해명이라도 해야 할 것 같았다.

 

  한소래담은 옷에 묻은 흙과 잔디를 털며 짐짓 아무렇지 않은 척 말했다.

 

  “그냥 산책을 좀.”

 

  말을 꺼내자마자 그녀는 아차 입을 다물었다. 누가 포복 전진으로 산책을 한단 말인가.

 

  ‘난 왜 변명도 제대로 못 할까.’

 

  자괴감이 더 심해지기 전에 그녀는 급하게 걸음을 옮겼다. 어서 기숙사로 돌아가 아무렇지 않은 척 이불을 뒤집어쓰고 잠이나 자고 싶었다. 한소래담은 진심으로 바랐다. 오늘의 기억이 차라리 아예 지워져버렸으면 하고.

 

  도망치듯 재게 움직이던 그녀의 발걸음이 잠깐 멈췄다. 시아랑이 그녀를 불러 세우기는커녕 제대로 따라오는 것 같지도 않았기 때문이다. 뒤를 돌아보니 시아랑은 산책하듯 평온히 걷고 있었다. 어슴푸레 보이는 얼굴은 무표정해서 감정을 읽어낼 수가 없었다. 한소래담은 먼저 말을 꺼낼까 했다가 도로 입을 다물었다.

 

  ‘어설픈 거짓말은 통하지 않을 거야. 그렇다고... 진실을 말할 수도 없고.’

 

  한소래담은 씁쓸한 기분으로 기숙사 건물로 들어갔다. 바로 옆의 엘리베이터는 무시하고 천천히 계단을 올라간다.

 

  마음이 불편했다. 티셔츠에 달라붙은 축축한 습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입학한 지 2주 만에 찾아온 첫 번째 기회가 지금 허무하게 끝나버린 것이다.

 

  ‘그래도, 손전등 불빛이라 다행이었지.’

 

  그녀는 하, 헛웃음을 내뱉었지만 입꼬리는 꼼짝도 하지 않았다. 짧은 한숨 같은 것이 공기 속에 사그라진다. 한소래담이 티셔츠를 내려다보았다. 2주 전에 이 옷에 비쳤던 것은 저격총의 빨간색 레이저였다.

 

  ***

 

  “얌전히 투항하라! 반항할 시에는 사살해도 좋다는 명령이 떨어졌다!”

 

  확성기를 타고 목소리가 공항에 울려 퍼졌다. 한윤은 이를 악물고 제 딸인 한소래담을 가까이 끌어당겼다. 무장한 군인들이 이미 그들 부녀를 완전히 포위하고 있었다. 열꽃처럼 옷을 수놓은 빨간 레이저들을 보며 한소래담이 천천히 손을 머리 위로 올렸다. 그녀의 작은 움직임에 군인 중 하나가 꿀꺽 마른침을 삼켰다. 분위기가 좋지 않은 것을 느낀 한윤이 한소래담의 귓가에 속삭였다.

 

  “담아. 아빠가 여기는 어떻게든 할 테니까 너는...”

  “아니에요, 아빠.”

 

  한소래담이 한윤의 말을 자른 것은 처음 있는 일이었다. 그는 잠시 놀랐지만 지금은 ‘우리 딸 많이 컸구나’하고 흐뭇해 할 때가 아니었다.

 

  한소래담은 눈동자를 굴리다 말고 작게 숨을 들이마셨다. 17년 인생에서 제일 무서운 순간이었지만 티를 낼 수는 없었다.

 

  ‘지금 내가 무서워하면 안 돼. 아빠는 나랑 달리 평범한 사람이니까.’

 

  하지만 그녀의 능력에도 한계가 있었다. 그녀 혼자라면 몰라도 보호해야 할 사람까지 있다면 탈출하는 건 불가능한 일이라고 보는 게 좋을 터였다. 객관적으로 보자면 그랬다.

 

  한소래담은 확성기 소리에 따라 두 손을 들어 올렸다. 옆에 있던 한윤이 분을 참지 못하고 입술을 짓씹었다. 하지만 한소래담이 고개를 젓자 그도 결국 손을 머리 위로 올렸다.

 

  “드디어.”

 

  총을 겨눈 군인들 사이에서 금발머리의 남자가 여유롭게 걸어왔다. 한소래담과 한윤을 잡기 위해 한 달을 고군분투한 예드람이었다.

 

  “...안녕하세요.”

  “오랜만이지? 이렇게 볼 줄은 몰랐지만.”

 

  한소래담의 인사를 받으며 예드람이 말했다. 예드람을 확인한 한윤의 목소리가 떨려 나왔다.

 

  “자네가 어떻게...”

  “미안하네. 나도 담이를 못 잡으면 모가지가 잘릴 처지라 어쩔 수 없었어.”

 

  예드람이 씁쓸한 미소를 지으며 대꾸했다. 하지만 한소래담은 그 미소를 곧이곧대로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

 

  한소래담이 태어나기 전부터 예드람은 한윤의 친구였다. 무려 30년이나 된 인연이다.

 

  ‘예드람 아저씨에게도 사정이 있었겠지만...’

 

  한소래담의 미간이 미미하게 찌푸려졌다. 이번 일로 한윤은 범죄자가 된 것과 동시에 막역한 친구까지 잃어버린 것이다.

 

  “안타깝네요.”

 

  한소래담의 나지막한 목소리에서 냉기가 풍겨 나오는 듯 했다. 예드람이 주먹을 들어 신호하자 군인들이 견착을 단단히 했다. 군인 하나가 손에 밴 식은땀을 견디지 못하고 총을 고쳐 쥐었다.

 

  당장이라도 뭔가 일이 벌어질 것 같은 분위기였다.

 

  하지만 그건 그들의 오해일 뿐이었다. 한소래담은 그저 자신 때문에 원수 사이처럼 되어버린 아빠와 아저씨가 씁쓸하고 안타까울 뿐이었다. 그녀가 중얼거렸던 말 그대로.

 

  눈물이 날 것 같아 한소래담은 눈에 한껏 힘을 줬다. 그러자 군인들이 더욱 겁을 집어먹었다. 방아쇠에 댄 손가락을 부들부들 떨고 있는 사람도 있었다. 그를 보고 혹시 사고가 일어나진 않을까 걱정한 한소래담이 작게 입술을 달싹였다.

 

  “여우볕.”

  “으아악!”

  “담아!”

 

  탕!

 

  한소래담에게 총구를 겨누고 있던 군인이 비명을 지르며 방아쇠를 당겼다.

 

  “다들 진정해!”

 

  예드람이 서둘러 군인들의 동요를 막았다. 한소래담은 아무 일 없었던 듯 제자리에 부드럽게 착지했다.

 

  “이게 자네가 일처리를 하는 방식인가? 무방비 상태인 열일곱 살 여자애한테 총질이라니!”

 

  한윤이 고성을 냈다. 예드람은 한소래담을 바라보았다. 한윤의 말 그대로였다.

 

  ‘무방비 상태에 있던 열일곱 살 여자애가...’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었다. 군인 한 명이 방아쇠를 당긴 것도, 한소래담이 주문을 외우며 빠르게 위로 뛰어오른 것도.

 

  한소래담은 아무렇지도 않은 얼굴로 서 있었다. 예드람은 두 눈을 의심할 지경이었다.

 

  ‘정식으로 마법을 배운 적도 없을 텐데 저 정도의 운용이 가능하다니.’

 

  군 간부인 예드람은 놀라워하는 것에 그쳤지만 평범한 군인에게 그것은 공포로 다가왔다. 고작 17살짜리 소녀 하나를 잡자고 한 달을 생고생한 이유를 그들은 새삼 깨달아버린 것이다.

 

  고작 한 단어 주문으로 총알을 피할 수 있을 정도의 속도를 갖추고, 고등교육 과정을 배우지도 않았는데 2미터를 뛰어올랐다.

 

  예드람이 신호하자 군인 한 명이 천천히 다가가 한윤을 붙잡았다. 예드람이 한소래담에게 말했다.

 

  “혼자서 빠져나갈 생각은 아니겠지?”

  “그럴 리가요.”

 

  한소래담의 평온한 표정을 보며 예드람은 바싹 마른 입술을 혀로 축였다. 스스로도 몰랐던 사이에 몸이 잔뜩 긴장하고 있었던 것이다.

 

  ‘아니, 그래도 이렇게 긴장할 필요는 없겠지.’

 

  그는 가만히 고개를 돌려 한윤을 바라보았다. 30년이 된 친우. 그 딸인 한소래담의 성장을 가까이에서 지켜본 예드람은 확신했다. 한소래담은 탈출하지 못 한다.

 

  여자치고 키가 큰 편인데다 감정을 드러내는 것이 드물어 오해를 많이 받고는 있지만 한소래담은 그 차가운 인상과 다르게 순진하고 소심한 아이였다. 예드람은 확언할 수 있었다.

 

  ‘한소래담은 절대 아버지를 놓고 혼자 도망가지 못한다.’

 

  예드람의 예상대로였다. 한소래담은 다시 두 손을 들었다.

 

  하지만 군인들은 여전히 긴장해 있었다. 한소래담의 입술이 조금이라도 들썩거리면 당장에라도 쏠 태세였다. 딱 한 마디. 아니, 한 단어. 그것만으로 한소래담은 도주를 할 수도, 군인들을 죽일 수도 있었다. 세계 각지에서 출몰하는 괴물, 흑도종(黑渡種)에게 하듯이.

 

  그러나 군인들이 뭐라고 생각하던 간에 한소래담은 모든 것을 포기하고 눈을 내리깔았다. 공항에서 이 소란을 피운 이상 방법은 없었다. 비행기가 뜰 리도 없으니 어떻게든 시간을 벌면서 나중을 노리는 수밖에 없을 것이다.

 

  밀출국을 위해서는.

 

  “.......”

 

  조용해진 한소래담을 두고 예드람은 주변을 한 번 살펴보았다. 잔뜩 굳어 있는 군인들 사이에서 한윤은 제 딸을 바라보고 있었다. 오랜 친우가 배신했다는 사실도 안중에 없고 그에 대한 원망도 없이, 그는 딸의 미래에 대한 수심과 스스로의 무력함에 괴로워하는 듯 했다. 뒤늦은 죄책감에 예드람은 입맛을 한 번 다셨다.

 

  “이상한 일 안 시켜. 국민의 의무잖나.”

 

  위로할 생각으로 꺼낸 말이었지만 한윤은 오히려 그 말을 듣고 고개를 푹 숙여버렸다. 예드람이 그의 어깨를 툭툭 쳤다.

 

  한소래담은 고개를 돌려 제 아빠를 바라보았다. 주변의 공기가 팽팽해졌지만 그녀는 최대한 밝게 말했다.

 

  “괜찮아요, 아빠. 입학할게요. 마법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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