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출장에서 돌아온 후로 그에게 많은 변화가 있었다. 아침마다 애견과 산책하는 것 말고도 빠지지 않고 헬스장에서 운동을 하였다. 그동안 적적할 때마다 마시던 술도 많이 줄여 손님이 찾아 올 때만 약간 마셨다. 그래서 그런지 얼굴에서 화색을 띠기 시작하였다. 학교에서 후배 교수들이 볼 때마다 얼굴이 좋아졌다고 하였다. 인사말로 하는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그가 스스로 보아도 무척 건강해 보이는 것은 사실이었다.
그는 시간이 날 때마다 주변을 정리하기 시작하였다. 학교에서 맡고 있는 직책을 내년부터는 맡기 어렵겠다는 의견을 학교 측에 전달하였다. 고향에 모신 부모님과 아내의 산소에 내려가 주변을 정리하고 당분간 자신을 대신하여 관리해줄 사람들 물색해 두었다. 사실 이제는 고향에 내려가도 아는 사람이 거의 없을 정도였다. 어르신들은 이미 작고하셨고, 고향에 남아 있던 친구들도 자녀들에 함께 지내기 위해 이미 도시로 떠난 상태였다. 어린 시절의 추억이 담겨 있는 고향이 조금씩 낯설게 느껴졌다.
병원을 개원해 정신없이 지내는 큰 아들 부부는 한 달에 한 번 찾아오는데, 아내가 없어서 그런지 밖에서 식사만 하고 바로 돌아간다. 큰 아들에게도 정년퇴직을 하면 지금 집을 정리해 작은 집으로 옮겨 놓고 당분간 해외여행을 다녀오겠다고 이야기를 해 놓았었다. 아들 부부는 별 의견 없이 그냥 알겠다고 하는데, 홀아버지를 따로 신경 쓰지 않아도 되어 한결 홀가분 마음일지도 모를 일이었다. 친구들에게도 기회 있을 때마다 퇴직 후에 당분간 한국을 떠나 여행을 다닐 것이라고 이야기한 터라 새삼스러울 것이 없었다.
이처럼 주변을 하나씩 정리하면 그녀에게 이메일을 통해 소식을 주고받았다. 그녀도 오랜 기간 북한 외교부에 근무한 상황이라 가급적 해외공관에서 근무할 기회를 얻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하였다. 그래도 가끔씩 서로 소식을 전할 수 있는 지금의 상황이 너무나 고맙고 다행이라고 생각이 들었다. 남북관계가 계속 호전된다면 서신이나 전화 통화까지 가능하지 않을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