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계올림픽 이후 한동안 그녀의 소식을 접하지 못한 채 시간이 흘러갔다. 올림픽을 계기로 남북관계가 해빙무드로 접어들었다고는 하나, 사적인 서신까지 주고받을 정도까지는 아니었다. 그래도 통일부에 근무했던 친구를 통해 그녀에 대한 소식을 간접적으로 확인할 수 있었다. 그러는 사이에 교육부에서 대학교를 통해 8월 북경에서 개최되는 동북아 역사 포럼에 남한의 역사학자 대표 일원으로 참가해달라는 요청을 받았다. 정년이 얼마 남지 않은 상태라 마지막 해외 학술대회라고 생각하여 참석을 결정한 후 발표할 논문에 대한 본격적인 수정·보완에 들어갔다. 수업과 함께 논문 수정 작업을 병행하다보니 한 학기가 훌쩍 지나갔다. 여름 방학 때 마지막 보완 작업을 마무리하고 발표 준비에 들어갔다.
어느덧 시간이 흘러 8월말 출국 일자가 다가와 일주일 머물 일정으로 책, 노트북, 옷가지 등 출장 짐을 미리 정리하였다. 30년 전에 베를린에서 그녀와 찍었던 사진과 그녀가 마지막으로 전해준 편지 등을 함께 챙겼다. 이번 동북아 역사 포럼에서 그녀를 볼 수 있을 거라고 확신할 수 없지만, 그래도 혹시 있을지 모를 그녀와의 상봉을 위해 준비를 하였다. 정부 쪽 지인을 통해 북경의 역사 포럼에 참석할 예정이라는 사실을 그녀에게 전달해 놓은 상태였다. 그러나 그녀로부터 회신을 받지 못하였기 때문에 북경에서 어떤 상황이 전개될지는 모를 일이었다. 출장 짐을 챙긴 후 좀 이른 시간에 잠자리에 들었으나, 좀처럼 잠이 오지 않아 뒤척이다가 새벽녘에야 잠이 들었다.
다음날 아침에 늦은 아침 겸 점심을 먹고 인천공항으로 출발하였다. 공항에서 항공권 티켓팅과 수화물 수속을 마친 후 출국장 부근 자리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출국 시간이 다가오자 이번 동북아 역사포럼에 참석하는 교수들과 교육부 공무원들이 속속 도착하였다. 이번 대회에 참석하는 한국 대표단을 총괄하는 교육부 공무원이 전체 인원을 확인한 후 출국장으로 들어섰다. 출국 수속을 마친 후 비행기를 올라 자리를 앉았다. 인천공항을 떠난 비행기가 2시간 만에 북경 공항에 착륙하였다. 입국 수속을 마친후 수화물을 찾은 후 이번 역사학술대회에 참석하는 일행들과 함께 주최 측에서 제공한 버스를 이용해 호텔로 향하였다. 호텔에 도착해 짐을 푼 후 주최 측에서 준비한 환영 만찬에 참석하기 위해 호텔을 다시 나와 버스에 올랐다. 20분 정도 버스로 이동하여 만찬이 준비된 호텔에 도착하자 동북아 역사포럼을 알리는 플랜 카드와 함께 개최국인 중국 측 행사 진행 요원들이 호텔 현관에 기다리고 있었다. 진행 요원의 안내에 따라 만찬 장소로 들어섰다. 만찬 장소에는 중국과 일본 대표단들이 간단한 음료를 마시면서 서로 만나 환담을 나누고 있었다. 한국 대표단들도 서둘러 그들에게 다가갔다. 중국 및 일본 대표단들과 간단한 안부 인사를 마친 후에 그동안 국제학술대회에서 안면을 튼 역사학자들과 환담을 나누었다. 북한 대표단은 아직 만찬 장소에 도착하지 않은 상태였다. 그의 눈길은 계속 만찬 장소의 입구로 향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