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여자 아이스하키 대표선수와 친구의 딸을 거쳐 그녀의 편지가 전달되어 왔다.편지 봉투를 받아든 그의 손이 가늘게 떨고 있었다. 봉투를 열어보니 급하게 메모지에 적은 편지가 눈에 들어왔다. 오랜만에 만나 반갑다는 인사와 함께 현재 남한에서의 일정상 별도로 만나기는 어렵고 돌아가서 재회할 방법을 고민해 보겠다는 내용이었다. 길지 않은 편지에도 그녀의 마음이 전해져 오면서 그의 눈에서는 눈물이 흘러 내렸다. 그는 지금 이 순간을 놓치면 나중에 후회할 것이라는 생각에 고민에 빠졌다. 그녀가 일정상 별도로 시간을 내기 어려울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고 이대로 그녀가 돌아가는 것을 지켜만 보고 있을 수 없었다. 30년 전 공항에서 인사도 제대로 못하고 보낸 후에 가슴 아파했던 기억이 다시 떠올랐다. 편지를 전해 준 친구의 딸에게 고맙다는 전화를 하면서 여자 아이스하키 남북한 단일팀의 일정을 물어 보았다. 이틀 뒤에 마지막 경기가 열린다는 내용을 확인해 주었다. 재빨리 동계올림픽 홈페이지에 들어가 아이스하키 경기장 입장권을 예약하였다. 납북단일팀 응원단에는 이미 자리가 매진되었고 반대편 관중석에 자리가 남아 있어 상대편에서 가장 잘 보일만한 자리로 예약하였다.
드디어 경기 당일이 다가 왔다. 그는 이미 하루 전에 강릉에 있는 경기장 부근에서 하루를 묵었다. 인근 식당에서 간단히 아침 식사를 해결한 후 경기장으로 향하였다. 남북 단일팀의 마지막 경기라서 그런지 많은 사람들이 경기장으로 모여 들었다. 그는 예약한 자리를 확인하고 건너편 응원단을 살펴보았다. 남북 단일팀의 응원단이 벌써 자리를 잡고 응원 준비를 하고 있었다. 응원단 주변을 둘러보았지만, 아직 그녀는 보이지 않았다. 아직 경기장에 도착하지 않은 것 같았다. 그가 가방에서 준비해 온 플랜카드를 꺼내어 자신의 다리 앞에 내려놓았다. 그러는 사이에 북한 응원단 위쪽으로 자원 봉사자들의 안내를 받으며 북한 대표단들이 들어와 자리에 앉고 있었다. 대부분 남자들이고 여성은 눈에 띠지 않았다. 그런데 뒤늦게 여성 한 명이 들어와 자리를 잡았다. 거리가 멀어서 얼굴이 자세히 보이지 않았지만, TV를 통해 본 그녀가 분명하였다. 50대를 훌쩍 넘은 나이에 세월의 흔적이 남아 있지만, 그가 그토록 재회하고 싶었던 그녀였다. 그녀는 자리에 앉아 옆자리에 앉아 있는 사람과 무언가 대화를 계속 나누고 있었다.
남북 단일팀의 마지막 경기가 시작되었다. 동시에 응원단에서 응원의 함성이 울러 퍼졌다. 그는 계속하여 남북 단일팀 응원단 쪽을 응시하고 있었다. 오직 한 사람만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녀가 그를 알아보기를 바라면서. 그러나 그녀는 경기를 보다가 잠깐 옆 자리의 사람과 이야기를 나눌 뿐, 이쪽으로 시선을 돌리지 않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