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디어 그 날이 다가왔다. 그녀가 그렇게 오지 않기를 바랐지만, 결국 오고 말았다. 아침 식사를 간단히 마친 그녀와 가족들은 대사관 버스를 타고 공항으로 출발하였다. 공항까지는 1시간 남직 거리였다. 그녀는 버스 안에서 계속 창밖을 바라볼 뿐, 말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다른 가족들도 말없이 조용히 앉아 있었다. 아버지만이 대사관 직원과 업무 이야기를 가끔씩 주고받을 뿐이었다. 어느새 버스가 공항으로 들어섰다. 가족들은 버스에서 내려 각자 맡은 케리어와 가방을 들고 수속을 받기위해 공항으로 들어갔다. 그녀는 공항 입구로 들어가기 전부터 주위를 살펴보았다. 항공권 발권과 수하물 수속을 하면서도 계속 둘러보았지만, 어디서도 그가 보이지 않았다. 출국 수속을 앞두고 잠시 기다리는 동안에 현지인 여자 친구가 공항까지 나와 그녀를 배웅하였다. 그녀들은 긴 포옹을 하면서 이별 인사를 나누었다. 벌써 눈망울이 촉촉이 젖어 있었다. 출국 수속 마감시간이 점점 다가올수록 그녀의 마음은 더욱 초조해졌다. 주위를 계속 둘러보았지만, 여전히 그가 보이지 않았다. 결국 그녀는 가방에서 편지 하나를 꺼내어 현지인 여자 친구에게 건넸다. 그리고 작은 목소리로 그에게 꼭 전해 달라고 부탁하였다. 출국 심사실 입구 쪽에서 아버지가 손짓으로 가족들을 부르고 있었다. 현지인 여자 친구와 다시 한 번 포옹한 그녀는 출국 심사실 입구 쪽으로 발길을 돌렸다. 그녀는 출국 심사실 입구에서 뒤돌아보면서 손을 흔들며 현지인 여자 친구에게 마지막 인사를 나누었다. 그리고 가족들과 함께 출국 심사실로 사라졌다.
그 순간에 출국장 2층의 기둥 뒤에 숨어 지켜보던 한 남자가 조용히 걸어 나왔다. 바로 그녀가 그렇게 기다리던 그였다. 그의 눈에는 하염없이 눈물이 흐르고 있었다. 감정을 주체할 수 없는 듯 한참 동안 멍하니 그녀가 사라진 출국 심사실 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조금씩 감정을 추스린 그가 그녀의 현지인 여자 친구에게 다가갔다. 현지인 여자 친구는 그를 보자마자 깜짝 놀랐다. 그녀가 기다리다가 출국 심사를 위해 조금 전에 들어갔다고 말하였다. 그가 고개를 끄덕이면서 이미 알고 있다고 대답했다. 현지인 여자 친구가 편지를 꺼내어 그에게 건네주었다. 한참 동안 편지를 내려다보다가 조용히 자신의 가방에 집어넣었다. 그는 현지인 여자 친구와 간단히 인사를 나눈 후 집으로 돌아오는 버스에 올라탔다. 버스 안에서 가방에 넣은 그녀의 편지를 꺼냈다. 그는 다시 감정이 복받쳐 오르듯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다. 창밖을 보면 감정을 누른 그가 천천히 그녀의 편지로 시선을 돌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