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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로맨스
두 번째 연인
작가 : 한결
작품등록일 : 2019.10.14

1990년대 초 독일 베를린에서 남한의 학생 운동권 출신 유학생과 북한의 외교관 딸이 우연히 만나 호감으로 느껴 연인관계로 발전한다. 그러나 외교관 아버지의 본국 송환으로 기약 없는 이별을 한다. 그녀의 귀국 후에도 여러 경로를 통해 그녀의 소식을 확인하려 하지만, 서로 연결이 닿지 않는다. 세월이 흘러 박사 학위를 마치고 귀국해 역사학자와 가장으로서 지내던 남자는 평창 동계 올림픽의 북한 대표단 일원으로 참석한 그녀를 발견한다. 여자 아이스하키 대표로 참석한 고향 친구 딸의 도움으로 서신을 통해 서로의 존재를 확인하지만, 경기장에서 멀리서 눈빛만 교환하고 만나지 못한다. 북경에서 개최된 동북아 역사 포럼에 남한대표로 참석한 그는 북한 대표단 일원으로 나온 그녀와 30년 만에 재회한다. 오랜 기간 떨어져 각자의 삶을 살아온 중년의 연인은 서로의 입장을 이해하고 진심으로 위로해 준다. 결국 그는 두 번 다시 후회하지 않기 위해서 서울 생활을 정리해 베를린으로 떠나 독일에서 외교관으로 근무하는 그녀를 만나 새로운 출발을 한다.

 
#9 짧은 만남 뒤에
작성일 : 19-10-28 17:12     조회 : 303     추천 : 0     분량 : 20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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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와 만남이 이어지는 가운데 청천벽력 같은 소식이 전해졌다. 외교관인 아버지의 귀국 명령이 떨어진 것이었다. 당초 일정대로는 2년 정도 더 근무를 한 후 귀국하든지, 유럽의 다른 지역으로 옮기는 것이 관례였다. 아버지께서는 평소 러시아로 옮겨 2년 정도 더 근무할 수 있을 것 같다는 말을 한 적이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귀국 명령이 떨어진 것이었다. 유럽 지역에서 근무하고 있는 많은 외교관들에게 동시에 떨어진 귀국명령이었다. 최근 북한 내부사정이 매우 좋지 않아 전체적으로 대사관 규모를 축소하는 모양새였다. 그래도 그동안 아버지의 경력과 평판으로는 본국 송환 대상에서 제외될 것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아버지께서 여러 경로로 본국 사정과 이유를 확인하고 있으나, 일단 귀국 송환 명령이 내려진 이상 되돌릴 방법은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아버지께 그녀만이라도 남아 있을 방법이 없는지를 물어 봤다. 외동딸에 대한 애정이 각별하였던 아버지는 딸의 간곡한 요청에 따라 외교부 안에 있는 자신의 네트워크를 동원하여 알아보았으나, 지금의 상황으로는 어렵다는 대답만 들었다고 했다.

 

 이러한 소식을 접한 그녀는 어떻게 그에게 말을 해야 할지 몰라서 타이밍을 계속 미루고 있었다. 이러한 소식들이 국내외 뉴스를 통해 전달해질 때까지 시간이 걸려 그는 전혀 알지 못하고 있었다. 그리고 이런 중요한 정보 사항이 밖으로 흘러나가는 것을 철저히 통제하는 것은 어쩌면 너무나 당연한 것이었다. 본국 송환 대상 대사관 직원을 제외하고는 거의 쉬쉬하고 있는 상황이었다. 그러나 언젠가는 그도 알아야 될 소식이었다. 그래서 그녀는 그에게 편지를 썼다. 자세한 내용은 적지 않고 이번 주말에 자신이 그의 학교로 찾아가겠다는 내용이었다. 그게 바로 내일이었다. 아직도 그녀는 이 소식을 그에게 어떻게 전해야 될지 고민하고, 또 고민하고 있었다. 그래도 뾰족한 방법이 떠오르지 않았다. 그래서 결국 무작정 내일 기차역으로 가서 하이텔베르크 행 기차를 타기로 마음을 먹었다.

 

 베를린이 위도 상으로는 북유럽에 가깝지만, 한 여름에는 남유럽 못지않게 더위가 기승을 부렸다. 이른 아침을 먹은 그녀는 귀국을 앞두고 마지막 여행을 한다는 핑계로 간단히 짐을 꾸려 기차역으로 나섰다. 아버지와 어머니가 좀 이상한 눈치를 차린 것 같았지만, 갑작스러운 귀국 명령에 놀란 상태로 그냥 넘어갔다. 베를린에서 하이텔베르크까지 기차로 3시간 거리였다. 아침 8시에 출발한 기차는 11시를 조금 넘은 시간에 하이텔베르크 역으로 들어서고 있었다. 그녀는 짐을 챙겨 천천히 내릴 준비를 하였다. 플랫폼에서 서 있던 그가 창문을 통해 그녀를 알아보고 반갑게 손을 흔들고 있었다.

 

 그가 그녀에게 다가오자 그녀는 짐을 플랫폼에 내려놓고 가볍게 포옹으로 인사를 하였다. 포옹이 끝난 후 그가 그녀의 짐을 집어 들으면서 말했다. “날씨가 무척 덥지? 고생했어.” 그러자 그녀가 살짝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아니야, 기차 안은 시원해서 더운 줄 몰랐어.” 그녀가 짐을 든 그의 팔짱을 끼면서 기차역 출구 쪽으로 걸어가기 시작하였다. 버스를 타고 그의 숙소에 도착하자, 그녀는 어두운 표정으로 그에게 말을 꺼넸다. “나, 오빠에게 할 말 있어.” “응, 그래 해봐!” “좋지 않은 소식인데, 아버지가 갑자기 귀국하게 되었어.” “왜, 내년까지 계속 있을 것 같다고 하지 않았나?” “그런데 본국에서 갑자기 사정이 생겨 귀국 명령이 떨어졌대.” 그때까지만 해도 그는 상황의 심각성을 깨닫지 못하고 있었다. “영구 귀국이라서 가족들이 다 같이 귀국해야 한 대.” 이 말을 듣고 나서야 사태의 심각성을 깨달았다. “정말로? 그래서 표정이 어두웠구나.” “그래, 나만이라도 남게 해달라고 해보았지만, 정부 명령이라 어쩔 수 없다네.” 잠시 침묵이 흘렀다. 사실 둘 다 둘 사이의 만남이 언젠가는 이별이 다가올 것으로 생각하였지만, 이렇게 빨리 올 줄은 몰랐다. “귀국했다가 다시 나올 수는 없는 건가?” “귀국해봐야 자세한 걸 알겠지만, 전체적으로 대사관 근무 직원을 줄이고 있어 힘들지도 모른대.” “그래?” 또 다시 적막이 흘렀다. 뾰족한 방법이 있을 수 없었다. 둘이 할 수 있는 것이 아무 것도 없었기 때문이다. 그가 가만히 다가가 그녀를 품에 안고 등을 토닥여 주었다. 그녀의 눈에서 눈물이 흘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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