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의 아버지는 8.15 해방 이후 남한에서 좌익 활동을 하다가 월북한 할아버지와 북한 정권 수립에 참여한 고위 간부 딸인 할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다고 한다. 외할머니의 집안의 배경에 힘입어 그녀의 아버지는 북한에서 엘리트 코스를 거치면서 (구) 소련에 유학을 다녀와 외교관으로 활동하었다. 그의 어머니도 대학교수 집안의 딸로 말 그대로 그녀는 북한 내에서 유복한 집안 출신이었다. 그녀도 외교관 아버지를 따라 영국에서 중·고등학교를 다녔다. 대학은 북한 정부의 방침에 따라 외할머니 댁에서 평양 외국어 대학에 진학하였으며, 방학 때만 부모님 곁에서 생활을 하다가 개학하면 다시 들어갔다고 한다. 이번에는 아버지가 근무하고 있는 폴란드의 한 대학에 단기 교환학생으로 나왔다가 베를린을 방문하게 된 것이었다.
그녀의 이야기를 듣다 보니 그도 자연스럽게 자신의 집안 이야기를 하게 되었다. 그의 아버지는 어린 나이에 부모를 잃고 만주를 오가면서 장사를 하다가 해방 이후 경찰에 들어와 군인으로 6.25 전쟁을 맞아 부상을 입고 제대하였다. 그리고 어머니의 아버지, 즉 외할아버지는 해방 이후 좌익 활동을 하다가 6.25 전쟁 때 좌익 활동 경력 때문에 남한 정부에 의해 총살당하였다. 그래서 외할머니가 홀로 두 딸을 키우면서 군인 출신인 아버지를 데릴사위로 들여 집안을 이끌어 갔다. 그도 이러한 집안 배경을 고등학교 때까지 전혀 알지 못했다. 아버지와 어머니께서 자녀들에게 이야기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도 대학을 서울로 진학하면서 외할머니와 함께 지내면서 외할머니로부터 처음 듣게 되었다. 그때서야 자신의 학생운동과 외할아버지의 좌익 활동 경력 등 때문에 국내에서 공직으로 진출하는 것이 쉽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하였다. 결국 국내에서 취업하는 대신에 독일 유학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다. 자신의 출신과 배경에 대해 자세하게 이야기를 하고 있는 자신을 보면서 마음속으로 놀라고 있었다. 어쩌면 그녀를 다시 보기 힘들 수 있다는 생각에 마음이 한결 가벼웠는지도 몰랐다. 아무튼 그는 친한 친구들에게도 쉽게 꺼내지 못했던 집안 이야기를 술술 풀어 놓고 있었다. 그녀는 그의 말에 때로는 고개를 끄덕이고, 때로는 같이 가슴 아파하면서 끝까지 들어 주었다.
기차가 하이델베르크 역으로 들어섰다. 베를린에서 하이델베르크까지 오는 4시간 동안 둘은 많은 이야기를 나눴다. 부모님을 비롯하여 어린 시절부터 지금까지 자라 온 배경까지 마치 친한 친구를 만난 것처럼. 앞으로 둘 사이가 어떻게 진행될지는 모르지만, 지금 이 순간만큼은 서로에게 있는 그대로 솔직하고 싶었다. 기차 안에 동양인은 둘밖에 없어서 더 솔직하게 말을 할 수 있었다. 어차피 그들은 둘의 이야기를 알아들을 수 없을 테니까. 아무튼 둘은 오랜만에 만난 친한 친구처럼 편하게 이야기를 나눴다. 어쩌면 둘은 이번 하이델베르크 여행이 마지막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서로에게 더 충실하고 싶었는지도 몰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