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차역 플랫폼에는 벌써 기차가 와 있었다. 그들은 승차권을 확인하고 자신들의 자리를 찾았다. 그녀가 준비해온 샌드위치와 음료를 테이블에 꺼내 놓자, 그가 카페에서 사온 커피 두 잔을 내려놓고 그녀의 가방을 들어 선반에 올렸다. 그들이 짐 정리를 하고 나란히 자리에 앉자, 기차가 서서히 움직이기 시작하였다. 기차가 베를린 중앙역을 빠져나가서 도심을 지나가고 있었다. 그가 잠시 창가를 내다보다가 시선을 그녀에게 돌려 말을 걸었다.
“기차 여행 많이 해 보셨어요?” “많이는 아니고, 두세 번 해봤어요. 주로 버스를 이용했거든요.” “그래요, 저는 국내에서는 주로 기차를 많이 이용했거든요. 특히 서울로 대학을 진학한 후로는 집에 내려갈 때마다 서울역에서 기차를 탔어요.” “아~, 예 그러세요.” 그녀가 간단히 대답한 후 잠시 생각에 잠기는 것 같았다. 그가 그녀의 얼굴을 살피면서 그녀에게 생각할 시간을 주려고 대화를 잠시 끊었다. 잠시 후에 그녀가 생각을 정리하였는지 그에게 얼굴을 돌려 대화를 이어갔다. “고향이 어디세요?” “저는 충청도 시골에서 태어났어요. 그곳에서 유년 시절을 보낸 후 초등학교 때 도청 소재지로 전학을 가서 고등학교까지 다녔고, 졸업 후에는 서울로 대학을 진학하여 군대 3년을 제외하고는 독일에 오기 전까지 지냈지요.” 그가 조심스럽게 그녀의 얼굴을 살피면서 그녀에게 물었다. 그녀가 입을 한 번 굳게 담았다가 말을 이어갔다. “저는 고향이 평양이에요. 평양을 떠나 본 적이 거의 없어요. 이번에 외국에 나오기 전까지 계속 평양에만 있었어요.” 순간 적막이 흘렀다. 그의 얼굴에 순간 당황한 흔적이 역력했다. 그녀는 마치 예상이라도 한 것처럼 시선을 창밖으로 돌렸다. 한참 적막이 흐른 후에 그가 조용히 말을 건넸다. “전혀 예상하지 못했어요. 말투가 좀 이상했지만, 외국 생활을 오래 해서 그런 것으로 생각했거든요.” “많이 당황하셨지요? 미안해요. 진작 이야기를 했어야 했는데” “예, 솔직히 많이 놀랐어요. 무슨 말을 해야 할지도 모르겠고.” “혹시 일부러 저에게 접근한 것은 아니시죠?” “아니에요, 걱정하시는 그런 것은 절대 아니에요. 그러기에는 제 나이가 너무 어리죠.” “그렇지요, 그렇다면 다행이네요.” “저도 정말로 많이 생각하고, 또 고민했어요.” “제가 남한 출신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을 텐데” “첫 번째 만남에서는 경황이 없어서 생각할 겨를이 없었고, 돌아가 생각해보니까 아무래도 북한 출신 같지는 않아서 많이 고민했어요.” “그렇겠네요, 저는 한 번도 그런 생각을 하지 못했는지 모르겠네요.”
둘 사이에 또 적막이 흘렀다. 모든 것이 쉽게 결정할 사항이 아니라서 각자 생각을 정리할 시간이 필요했다. 서로의 입장을 충분히 이해되는 상황이라 자연스럽게 대화가 끊어진 채, 기차는 하이델베르크를 향해 달리고 있었다. 시간이 얼마나 지났을까 그가 먼저 대화를 다시 시작하였다. “그러고 보니까, 우리 아침 식사도 하지 않았네요. 고민할 때 하더라도 식사부터 먼저 하시죠?” “예, 쉽게 결정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니까요. 식사하면서 천천히 고민해보죠.” 그러면서 그녀가 포장한 종이를 벗겨낸 샌드위치를 그에게 먼저 건넸다. “고마워요! 잘 먹을게요.” “입에 맞을지 모르겠어요?” 샌드위치를 한 입 먹은 그가 얼굴에 미소를 띠면서 그녀에게 말했다. “맛있네요. 배가 고프실 텐데 같이 먹죠?” 그의 반응을 확인한 후 그녀도 포장 종이를 벗겨내고 샌드위치를 먹기 시작하였다. 그는 잠시 눈을 창밖으로 돌렸다가 다시 그녀의 얼굴을 향하면서 물었다. “그러면, 지금 어떻게 여기에 오게 된 거예요?” “아버지가 동독 주재 북한 대사관에 근무를 하고 계세요. 제가 아버지께 베를린 성벽을 보고 싶다고 졸라서 혼자 둘러보게 되었어요.” “그렇군요! 그래서 그날도 혼자 베를린 성벽을 둘러보고 있었군요.” “예, 주말에 대사관 직원이 안내해 주기로 되어 있었는데, 갑자기 일이 생겨 저 혼자 둘러보다가 난처한 일을 당하게 된 거지요.” “오늘 이야기를 듣고 많이 당황스러운 것은 사실입니다. 아무튼 제가 하이델베르크를 안내해 주기로 약속하였으니까, 즐거운 여행이 되었으면 좋겠네요.” “오히려 제가 죄송해요! 진작 말씀을 드렸어야 했는데, 갑자기 놀라게 해드려서요.” “아닙니다. 일단 복잡한 생각은 뒤로 미뤄두고 오늘은 여행을 만끽하였으면 좋겠어요.” “아무튼 죄송하고 감사해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