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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판타지/SF
변이하는
작가 : 교관
작품등록일 : 2019.9.26

주인공은 6일 동안 자신의 변이에 대해서 인지를 한다. 받아들이는 순간 모든 것이 조화와 균형이 된다

 
변이하는31
작성일 : 19-10-27 11:34     조회 : 288     추천 : 0     분량 : 232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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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게 어떻게 된 것일까. 그저 나의 착각일까. 는개에게서 사라 발렌샤 얀시엔이 느껴지는 것은 어떤 식으로 설명이 가능한 일일까. 사라 발렌샤 얀시엔이라는 존재는 그저 는개의 감각적인 복합적 물질이었던가.

  사라 발렌샤 얀시엔은 마동에게 바로 자신이라고 했다. 누구냐고 물었을 때 그 누구도 아니라고 했다. 동시에 그 누구도 될 수 있다고 했다. 마트를 다녀와서 샤워를 하지 않았다. 욕실에서는 그저 손만 씻고 나왔을 뿐이었다. 사라 발렌샤 얀시엔과 교접을 가진 후 땀이 나지 않았다. 땀구멍이 변이를 한 것이다.

  하아.

  결국 마동의 입에서 기형성을 띤 소음 같은 소리가 크게 새어나왔다. 마동은 손을 뻗어 는개의 몸을 만졌다. 물처럼 여리고 부서질 것만 같은 몸이었다. 그녀의 신체도 긴장을 하고 있었고 군데군데 힘이 들어가 있었다. 말랐지만 부드러웠다. 손끝으로 는개의 아름다움이 전해졌다. 육체는 애무를 통해서 살이 된다는 말이 떠올랐다. 는개의 살갗과 살결을 느낄 수 있었다.

  “나 샤워하지 않았어. 땀 냄새가 날 거야.”

  “그래요.”

  “는개에게 이런 깨끗하지 못한 모습을 보이기 싫은데.”

  “응, 그래요.”

  마동은 더 이상 말을 하지 않았다. 두 사람은 서로의 몸과 마음을, 우주에서 발견한 탐사선을 구석구석 탐사하는 탐험대원들이 되어 탐사를 했다. 마동과 는개의 손과 얼굴은 서로의 성스러운 기관에 머물렀다가 자극을 주었다. 는개가 얼굴을 들고 마동의 얼굴 가까이 왔다. 머리카락이 미술품처럼 그녀의 얼굴위로 흘러 내렸다. 마동은 는개의 얼굴을 보기위해 그녀의 머리를 쓸어 넘겼다. 는개는 움찔하지 않았다. 마동의 손길을 기다리고 있었던 듯했다. 볼을 마동의 손바닥에 비볐다.

  그녀는 새 아빠라는 남자의 트라우마에서 벗어난 것일까.

  다가온 는개의 눈은 깊이가 무한정성을 띠었고 깊은 그곳은 마동이 늘 보는 세계와는 다른 곳이 존재해있었다. 그 속에는 누군가를 향한 원망과 환멸이 도사리고 있었다. 그리고 한 사람을 향한 그리움도 있었다. 끝을 알 수 없는 깊은 는개의 세계였다. 사라 발렌샤 얀시엔의 눈에서 봤던 녹색과 회색의 프리즘이 나타났다. 마동의 눈에 힘이 들어갔다. 머릿속 사고의 기능이라는 것이 ‘간신히’ 유지되고 있었다. 마동은 희비가 교차되는 녹색과 회색의 빛 속으로 점점 빨려 들어갔다. 는개의 깊은 슬픔의 소리가 밖으로 새어 나왔다. 그녀는 두 손을 벌리고 마동의 양손을 잡았다. 타협을 배제한 는개의 냉기가 양손을 통해서 마동에게 또렷하고 명쾌하게 전해졌다. 그녀의 배제된 타협 속에 마동의 몸이 녹아들었다. 새벽의 옥상에서 떨어질 때 몸이 불에 타오르는 느낌이 들었다. 멈출 수 없는 이 지독한 위배의 화마 속에서 마동은 는개가 전해주는 떨림으로 그 끝에 닿았다. 냉기와 화마는 마동에게서 언어를 단절 시켰다. 단절시킨 언어대신 비명을 내 지르게 했고 신음을 뱉어내게 만들었다. 는개의 눈 속에 사라 발렌샤 얀시엔의 세계가 보였다.

  사라 발렌샤 얀시엔은 무엇일까. 는개는 또 누구일까. 사라 발렌샤 얀시엔이 는개 속으로 들어온 것일까. 사라 발렌샤 얀시엔은 마동에게 무엇을 말하려 한 것일까. 두렵다. 나는 무서웠지만 섹스를 멈출 수 없는 것이 더 두려웠다. 하아.

  “이러다가 임신이라도 하면…….”

  하아.

  “괜찮아요. 당신의 아이라면. 하지만 전 임신이 불가능해요“라고 바투 붙은 는개가 숨을 내쉬며 속삭였다. 사라 발렌샤 얀시엔에게서 들었던 말이었다.

  그때 사라 발렌샤 얀시엔은 는개였을까.

  마동은 몸이 뜨거워졌다. 마동은 몸이 타올라서 재가 되어 버릴 것 같았다. 암흑 속에 있던 환멸 덩어리가 거울 속에 숨어 있다가 거울을 깨트리고 뛰쳐나오지 않을까 가슴이 두근거렸다. 는개가 마동의 얼굴을 양손으로 감쌌다. 꺼끌꺼끌한 마동의 입 속으로 망고같이 부드러운 그녀의 혀가 들어왔다. 는개의 혀는 마동에게 지금 이 순간 불필요한 생각은 하지 말아요, 저에게만 집중 해 주세요,라고 말했다.

  마동의 몸이 재가 된다.

 

  그 시각 욕실의 거울 속 환멸덩어리는 거울에서 빠져나와 만질 수도 없는 형체가 되어서 하늘로 붕 떴다. 그 모습은 자주색의 엑토플라즘이었다. 그리고 자주색의 연기는 뭉쳐서 크기를 부풀려 가더니 규칙이 없고 불길하고 무서운 형태를 만들었다. 일정하지 않은 문형의 덩어리는 욕실에서 환기구를 통해 밖으로 빠져나가 하늘에서 몇 번 붕붕 거리며 원을 그리더니 바닷가 쪽으로 포물선을 그리며 날아갔다.

 

  마동은 는개와 세 변의 전위를 느꼈다. 마동은 동통이 느껴졌다. 나쁘지 않은 통증이었다. 새삼 살아있다는 기분이었다. ‘천국보다 낯선’은 한 바퀴 돌아서 다시 처음부터 화면이 나오고 있었다. 에바는 욕을 하며 자신을 두고 둘만 나가버린 휴가에 제대로 환멸을 느끼고 있었다.

  “당신은 새벽으로 치달아 갈수록 힘이 더 나는 듯해요.”

  “새벽형 인간인가 봐.”

  이번에는 재미없다는 표정을 짓고 물건이 들어있지 않는 짐 꾸러미 같은 마동의 페니스를 건드렸다. 그렇게 문명은 하나씩 세워지고 있었다.

  “전 당신에 대해서 잘 모르지만 이제 회사에 나오지 않을 거라는 걸 알아요. 없어지려고 하는 것도 알 수 있어요. 하지만 말이에요 누군가는 당신을 필요로 해요. 보고 싶어 한다는 것도 생각해줘요. 이렇게 큰 세계에서 누군가 자신을 필요로 하고 있다는 건 정말 굉장하고 무엇보다 행복한 일이 아닐까요. 전 그렇게 생각을 해요.”

  마동은 이제 놀라지 않았다. 여자들은 알 수 없는 분자구조로 뒤덮여있는 존재였다. 남자보다 여자가 분명 진화가 더 되었다. 는개의 얼굴은 머리카락으로 덮여 있었다. 얼굴을 보기위해 마동은 그녀의 머리를 계속 쓸어 넘겼다. 그녀의 숨이 가라앉기를 바라면서.

  “당신 집에는 바퀴벌레가 없죠?”라고 는개가 말했다.

  는개의 한 손은 힘이 빠진 마동의 그것을 만지고 있었고 한 손은 마동의 가슴위에 있었다. 작고 긴 손가락이었다. 손가락 끝에는 정갈한 손톱이 거실의 희미한 빛을 받아 반짝였다.

  “아마도”라고 마동이 말했다.

  “우리 인간은 바퀴벌레를 박멸하려고 아주 많은 노력을 하고 있어요. 그럼에도 바퀴벌레는 사라지지 않고 우리 인간 옆에 붙어서 끝없이 생존을 해 왔어요. 만약 바퀴벌레가 세상에서 사라진다면 어떨까요? 정말 인간은 바퀴벌레가 사라짐으로 해서 편안하게 생활을 하게 될까요?”

  마동은 는개의 말에 바퀴벌레를 떠올려 보았다. 징그럽게 생긴 얼굴(얼굴이라고 하기에는)과 흉물스러운 다리를 지니고 때로는 푸다닥하는 소리를 내며 날아다니는 모습이 떠올랐다. 균을 옮기는 벌레라는 것이 바퀴벌레에 대한 우리의 정의다.

  “바퀴벌레의 생명력은 곰팡이가 가득 들어있는 그릇 속에 며칠을 나둬도 죽지 않아요. 곰팡이의 포자가 바퀴벌레의 몸을 뚫지는 못해요. 바퀴가 화석곤충이라서 한때 지구의 사십 퍼센트는 바퀴벌레였던 거 알아요? 재미있는 사실이죠. 우리 인류가 바퀴를 처음 만났을 때가 동굴이라고 해요. 지구가 극한의 추위로 덮였거든요. 그래서 인류가 추위를 막을 수 있는 동굴을 찾아서 들어간 거예요. 바퀴벌레의 입장에서는 인간이 바퀴의 세계에 침투한 셈이죠. 지금 인류가 만들어놓은 문명도 그들에게는 거대한 동굴일 뿐이에요. 바퀴벌레도 오랜 시간동안 거쳐 오면서 진화를 거듭했어요. 머리는 배 밑으로 들어갔다던가, 음 영화에서 보는 바퀴벌레는 크고 징그럽지만 그들은 날개가 필요 없어서 날개가 없는 바퀴로 진화를 하기도 하고 말이죠.”

  그녀는 일식주방장의 요리솜씨를 가진 바퀴벌레 전문가이자 법학도출신.

  “제 말 듣고 있어요?” 는개가 늘어진 마동의 페니스에 힘을 주어 쥐었다.

  “그럼 아주 흥미롭게 듣고 있어.” 마동이 표정을 조금 일그러트리며 말했다. 는개는 마동의 턱을 살짝 꼬집었다. 그녀는 행복해보였다. 크리스마스 선물을 받은 9살 소녀처럼.

  “바퀴벌레 역시 살아남기 위해서 자신의 모든 것을 바꿔나가면서 진화의 법칙대로 변이해왔어요. 바퀴벌레는 현재 훈련이 가능한 유일한 곤충이라는 설도 있어요. 그들은 거대한 포식자 앞에서 죽은 척을 하는 거예요. 고양이가 건드리면 뒤집어진다거나 납작 엎드려서 죽은 척을 해요. 바퀴벌레는 그 방법을 알고 있어요. 어때요? 신기하죠?”

  바퀴벌레 이야기를 하면서 이렇게 행복한 표정을 지을 수 있다니.

  “또 생물학자들은 알아냈어요. 바퀴벌레가 포식자가 살짝 건드릴수록 죽은척하는 기간이 짧고 건드리는 시간이 길수록 죽은척하는 시간이 길어진다는 것을 말이에요. 포식자는 움직이는 먹이에 반응을 하기 때문에 바퀴벌레는 그에 대응하는 방법을 아는 거죠. 오랜 세월을 살아 남은 자들의 방법이랄까요. 그리고 포식자가 흥미를 잃고 바퀴벌레를 버리고 떠나면 그들은 다시 일어나서 가던 길을 가는 거예요.”

  “어쩐지 바퀴벌레를 그들이라고 표현하니 두 다리로 저벅저벅 걸어 다닐 것만 같아. 맨인블랙에서처럼 말이야.”

  “그렇게 된다면 정말 멋진 세상이 될 거 같아요. 그죠? 그들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똑똑한 곤충이에요. 미로를 찾아가는 실험을 해도 시간이 지날수록 찾아가는 시간이 앞당겨지는 거예요. 어때요? 대단하죠?” 는개는 그렇게 말하고 박수까지 쳤다.

  “바퀴벌레 야상곡을 만들어도 될 것 같군.”

  “맞아요. 바퀴벌레는 우리 인간에게 반드시 살아가야할 의미를 던져주죠.”

  마동의 머릿속에 바퀴벌레 교향악단의 모습이 붕 떠올랐다.

  “바퀴벌레는 고단백덩어리가 오래전 사냥이 어려웠던 고대시대에 인류의 좋은 식량이었는데 인류는 어쩌면 바퀴벌레가 없었음 지금의 시대가 없었을 수도 있어요. 아니면 지금 이 모습이 아니라 다르게 흘러갔거나 변했겠죠. 그건 학계에도 보고된 바가 있어요. 중국에서는 바퀴를 양식해서 식당에서 고가의 음식으로 판매되고 있는데 바퀴벌레를 꾸준히 먹고 생리통이 없어진 여자들도 있어요. 하지만 우리 인간은 바퀴벌레에게 그렇게 호의적이지 않죠. 그 이유는 세균의 이동이라는 것인데 실제로 바퀴벌레가 옮기는 병균은 집 진드기의 십분의 일도 옮기지 않아요. 바퀴벌레는 다리로만 병균을 옮기는 반면에 우리 주변에 늘 보이는 파리는 몸 전체로 균을 옮기니 어쩜 파리를 더 미워해야 하지만 인류는 그렇지 않아요. 파리는 손으로 잡는 사람도 있지만 바퀴벌레를 보면 기겁을 하는 사람들이 더 많죠. 인간은 바퀴벌레에 대해서 알아보려고 하지 않고 그저 바퀴벌레니까 미워하는 거예요. 바퀴벌레가 인류 속에서 사라져 버리면 파충류도 사라져 버리고 말아요. 그리고 연쇄적으로 하나씩 멸종하게 돼요. 모든 것이 끝나버리는 시발점인거죠. 바퀴벌레 입장에서는 무엇을 잘 못 한지도 모르게 당하는 거예요. 단지 그렇게 생겼다는 이유로 말이에요. 사회는 보통 그 사람이 그렇게 생겼다는 이유로 배척을 하잖아요. 그 사람에 대해서 알아보지도 않고 그저 넌 그렇게 생겨먹은 놈이니까. 같은 말로 확정짓고 차별하니까.”

  “그렇게 미워하는 바퀴벌레는 반드시 인류 속에 있어야 한다는 거예요. 우리가 바퀴벌레자체를 미워하는 마음을 버려야 해요. 당신은, 당신 자신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세상이 필요로 하고 있는지도 몰라요. 그 대상이 회사건 사람이건 그 무엇이건 간에.”

  는개는 마동의 눈동자를 보며 진지하게 말을 했고 말이 끝나니 하품을 한 번 했다. 모스카토의 향이 은은하게 났다.

  “바퀴벌레는 인류의 악이 아니라구요. 인류의 악은 어쩌면 인류일지도 몰라요.”

  그녀는 나에 대해서, 나의 어떠한 부분에 대해서 알고 있다. 그것은 무엇일까. 내가 꾸준하게 죽음을 받아들이는 훈련을 해오고 있다는 것을 는개는 어떻게 알았을까.

  온통 의문투성이였다. 마동은 누군가에게 자신의 마음을 내비친 적이 없었다. 동거를 했던 연상의 여자에게도 그의 마음은 전부 꺼내 보이지 않았다. 군대에서도, 여기 지금 이 회사에 입사를 해서도 마찬가지다. 심지어는 자신에게조차 마음을 제대로 꺼내 보이지 않았다. 일 할 때를 제외하고 마음 좋은 회사의 오너는 마동에게 언제나 속에 있는 말을 꺼내 놓기를 바랐다. 잘 웃지 않는 반면 타인을 향한 안 좋은 소리도 하지 않았다. 마동의 촉지를 타인에게 자신의 속내를 내 비치지 않게 하는 방법을 쌓아 가는데 있었다.

  는개는 중학교 때 목격한 나의 모습 속에서 어떤 무엇을 보았다. 그 무엇은 우로보로스의 띠를 제외한 것을 수도 있다. 그것은 무엇이었을까. 는개는 회사에서 나를 만난 후 아무도 모르게 혼자만의 방식으로 나를 관찰해 오고 있었던 것일까.

  마동은 고양이처럼 하품을 하고 그의 가슴에 자신의 볼을 갖다 댄 는개의 머리카락을 쓰다듬었다. 머리카락을 쓰다듬을수록 그녀의 향이 번졌다. 는개는 머리카락을 쓰다듬는 것에 크게 반응하지 않았다. 그녀의 머리카락에는 초월의 경계를 넘어선 무엇이 있었다. 그 사이에 어딘지 모르게 지적인 부드러움도 지니고 있었다.

  는개는 어떤 훈련을 통해서 새 아빠라는 남자에게서 받은 상처를 이겨냈을까. 그녀가 그동안 자신만의 방법으로 변이를 거듭한 것일까.

  “오늘 형사가 왔었어요. 형사는 어제일인데 마치 한 달 전의 일처럼 이야기를 하더군요. 당신을 찾았어요.” 는개는 마동의 가슴에 얼굴을 댄 채 말을 했다. 마동은 형사가 찾아오리라고 생각을 하고 있었다. 말을 할 때마다 가슴에 그녀의 입김이 불안하고 기분 좋게 와 닿았다.

  “그런데 형사가 기이한 말을 하더군요.” 는개는 마동의 가슴에서 일어나서 그녀자신이 만들어 놓은 술을 한 모금 마셨다. 발가벗고 앉아 있는 그녀의 모습은 역사를 구현하는 듯 보였다. 움직일 때마다 부서질 것 같은 조선시대 상감청자모란문의 주전자 손잡이처럼 위태로워 보였다. 그 호리병을 성장이 덜 끝난 어린아이가 들고 움직이는 것 같았다. 는개의 쇄골은 그녀와 함께 살아서 움직였다. 아무것도 걸치지 않는 는개의 몸은 정말 잘 빚어놓은 도자기 같았고 머리카락이 풀어져 늘어뜨려진 등에서는 척추의 골이 선명하게 드러났다.

  “형사는 최원해를 마치 산이 데리고 갔다고 해요. 아니…… 음…… 산이라는 거대한 관념체가 최원해 부장님을 슥 하며 빨아들였다고 해야 할까요. 형사도 자세하게 설명을 하지 못하더군요.”

  흠.

  “사모님이 연락도 없이 들어오지 않는 남편 때문에 자신의 오빠에게 연락을 했나 봐요. 부장님 부인의 오빠가 형사인데 산에서 다른 건 하나도 찾지 못했는데 부장님의 운동화를 발견했나 봐요. 이상한 건 부장님의 모든 것이 완벽하게 사라졌는데 운동화만, 그것도 운동화 한 짝만 발견했다나봐요. 부인은 남편이 당신을 만나서 조깅을 시작한다고 하면서 나갔다고 형사에게 말을 했데요. 형사는 당신에게 갔다가 허탕을 치고 일단 회사로 온 모양이에요. 형사는 사장님도 연락이 되지 않아 지금 걱정이라고 하더군요. 회사는 두 명이 출근을 하지 않아서 분위기가 어수선해요. 하지만 일을 하는데 있어서는 문제없이 진행되고 있어요. 당신도 그것은 잘 알고 있죠?” 는개가 말했다. 마동은 사실 잘 알고 있지 못했다. 보고를 받은 바도 없고 회사에 연락을 하지도 않았다. 그렇지만 클라이언트의 작업은 그것대로 원활하게 진행이 되어가고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설명할 수 없지만 분명히 그러했다.

  “클라이언트의 중요한 작업분량은 새벽에 당신이 사장님의 컴퓨터로 보내주어서 다행이라고 하더군요. 전혀 진척이 없을 것 같은 교통체증도 언젠가는 풀리듯이 이렇게 밤이 되니 모두들 퇴근을 하고 곳곳에서 사랑을 나누잖아요”라고 말하는 는개는 또 한모금의 와인을 마셨다. 마동은 아무리 생각해도 새벽에 자신이 작업을 한 기억은 없었다. 당연한 것 아닌가. 하고 생각을 했다. 조깅을 하고 들어와서 옥상으로 올라간 기억밖에 나지 않았다.

  그 와중에 나는 언제 작업을 해서 오너에게 보내줬단 말인가. 오너에게 클라이언트의 꿈 리모델링작업이 들어갔다면 그건 정확하게 내가 한 것이 아니었다. 나의 내면에 존재해있는 어떤 무의식이 작업을 한 것이다. 언제 그런 일을 순식간에 한 것일까. 레이아웃을 정리하고 조각나있는 꿈의 스크린을 하나로 그러모으는 작업을 하는 것도 시간이 오래 걸리는데 그 짧은 시간에 작업을 해서 오너에게 보냈단 말인가. 대칭의 나와 비대칭의 내가 대립을 했고 내면 속의 또 다른 나의 변이 때문에 나는 혼란스럽기만 했다. 휴대전화에도 오너에게서 온 부재중 전화는 없었다. 모르는 번호와 회사의 전화번호, 는개의 부재중 전화번호만 깜빡거렸었다. 나는 내 안에 내재하고 있는 자아가 몇 개인지 그 자아가 어떤 모습으로 변이 하는지 알 수 없었고 이젠 더 이상 궁금하지도 않았다. 하지만 지금 일어나고 있는 일은 현실이다. 그레고르처럼 이것은 현실에 직면한 것이다. 이제 가족에게 더 이상 오빠로서 아들로서의 그레고르가 아닌 것이다. 그레고르는 자신이 처한 현실을 인지하고 점점 자아가 사라져 갔다. 어느 날 갑자기 갑충이로 변해버린 그레고르와 나 자신을 나란히 세워놓고 봐도 다를 건 없었다. 새로운 자아의 개체에 대한 발로가 어디서 나오는지 나는 전혀 종잡을 수 없었다. 형사가 내일이면 찾아올 것이다. 최원해는 도대체 어떻게 된 것일까. 어디로 사라진 것일까. 두려운 것은 최 부장이 어떻게 된 것에 분명히 내가 관여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것은 누가 말해주지 않아도 알 수 있는 것이다.

  “어머 비가 와요. 창밖을 보세요. 비가 창에 부딪혀요. 당신의 집에는 형광등이 없어서 좋아요. 형광등불빛은 뭐랄까. 가열차게 어떤 작업을 요구하는 빛 같아요. 책이라도 반드시 봐야 할 것 같거든요. 이렇게 노란빛의 조도가 낮은 빛은 사람을 허물어뜨리는 빛 같아요. 잠이 와요. 저 좀 잘게요.”

  작은 하품을 하고서 는개는 마동의 품에 안겨서 잠이 들었다. 숨을 쉴 때마다 잘 다듬어진 가슴이 살짝 움직였다. 마동은 휴대전화 리모트컨트롤 어플리케이션으로 노트북의 전원을 껐다. 생각지도 못한 돈이 생긴 화면 속의 에바가 화면에서 갑자기 뚝 하며 사라졌다. 요즘은 좋다. 휴대전화로 모든 것이 가능하다. 이렇게 모든 것이 가능한 시대에 마동은 역행하는 기분이 들었다. 점점 강을 거슬러 올라가는 연어처럼 시간을 거꾸로 헤엄쳐가는 탐탁지 않은 방황을 하고 있는 것이다. 에어컨을 틀지 않았지만 는개는 땀을 흘리지 않고 새근새근 새끼 고양이처럼 잠에 빠져들었다. 마동은 는개의 얼굴을 보기 위해서 얼굴위의 머리카락을 살짝 걷었다. 는개는 산모배속의 아기처럼 몸을 꼭 말고 마동의 가슴에 더 바짝 붙었다. 마동은 휴대전화를 터치해서 실내의 조도를 더욱 낮췄다.

  두두 두두둑. 빗방울이 창을 때리는 소리가 크게 들렸다. 오케스트라에서 북을 치듯 울렸다. 아침이 찾아오면 마동의 감기는 더욱 지독해 질 것이다. 점점 몸이 말라갈 것이다. 문득 햇빛에 바싹 말린 식용 개구리가 생각났다. 수분이 다 빠져나가버린 개구리는 더 이상 개구리가 아니었다. 개구린데 개구리가 아니라고 하는 것은 어딘가 이상했다. 태양을 쳐다보지 못하고 추위를 더 느낄 것이며 구토도 심해질 것이다. 피부는 거칠어지고 뇌의 여러 구간과 핵에서 분열이 일어날 것이다.

  의사가 말한 것처럼 마동의 뇌기능은 일반인들과는 다르게 변이하고 있었다. 마동의 뇌는 보통 인간의 뇌 속에 있는 뉴런이나 시냅스를 두 배나 많이 가지고 있다. 마동은 자신의 뇌에 필요 이상으로 꽉 들어찬 뉴런과 시냅스에 대해서 생각했다. 자의력으로 뇌의 공간감을 나뉠 수 있다고 의사에게 들었다. 마동자신이 전두엽에서 하는 일을 두정엽에서, 두정엽에서 하는 일을 측두엽에서 할 수 있다고 했다. 이렇게 뇌가 구간에서 확실하게 하는 일을 서로에게 협력하는 듯 보이지만 결국에는 강요와 질서를 요구하고 마음의 순수한 부분을 잠식하게 된다. 무의식속에 숨어 지내던 이드를 불러내게 된다는 것이다.

  이드라는 것은 어떤 모습으로 나타나는 것일까.

  그런 세계와는 무관하게 는개는 마동의 가슴에 아기처럼 안겨 행복한 얼굴을 하고 잠들어 있었다. 행복하게 잠든 모습과는 달리 그녀의 등뼈는 애처롭기만 했다. 마동은 는개의 등을 쓰다듬었고 는개가 살며시 미소를 지었다.

  그녀는 몇 년 동안 어떻게 참았을까. 왜 하필 오늘에서야 이야기를 꺼내놓았을까. 좀 더 일찍 이야기를 했더라면 좋지 않았을까.

  미리 했더라도 어쩌면 달라지는 건 아무것도 없을지도 모른다. 상처받는 깊이만 더 깊어질 뿐이다. 마동은 3일전부터 마동자신에게 끊임없이 질문을 하고 있다. 물론 답은 목신 판이 어딘가에 숨겨놓아서 절대 찾을 수 없었다. 그렇다고 해서 질문을 멈출 수는 없었다. 질문을 하지 않으면 마동자신은 그대로 아파트에 귀속된 노인처럼 될 것만 같았다. 마동은 그동안 사용하지 않아 외계에서 온 물품처럼 보이는 모니터로 티브이를 틀었다. 집에 티브이는 없었지만 17인치 컴퓨터 모니터가 거실에 있었다. 그 속에서 뉴스가 나오고 뉴스에서는 마동이 살고 있는 아파트의 소식을 속보로 내보내고 있었다.

 

  [E아파트 203동에서 발견된 사체는 여자속옷을 입은 채 자신의 침대에서 사망했다. 입안에는 부인의 속옷이 잔뜩 들어있었는데 그것은 엄청난 양이었다. 감식반이 와서 그 속옷을 빼내는데 결국 장기까지 딸려 나와서 그대로 두고 부검실로 옮겨야 했다. 감식반의 몇몇은 속옷에 얽혀 딸려 나오는 내장장기를 보고 토하기도 했다. 목 여러 곳에 끈 자국이 선명했고 개목걸이와 부인의 스카프, 브라의 끈 자국들이 얼기설기 꽈리처럼 엉켜 있었다. 어떤 누군가가 입을 통해 목구멍으로 속옷을 집어넣었다는 증거다. 사망자는 무릎과 두 발로 스카프와 속옷으로 묶여있었다. 형사들은 외부의 누군가가 침입한 흔적이 없는 것으로 보아 부인을 의심했지만 부인역시 의자에 기이한 형태의 자세로 엉덩이를 보이며 묶인 채 성기를 드러내놓고 정신을 잃고 있었다. 누군가에 의해 제보를 받고 형사들이 달려왔지만 그 제보자의 행방이나 목소리 추적이 어려웠다. 전화의 발신은 400킬로미터 떨어진 지역에서 걸려온 전화였다. 관할형사들이 사건 현장에 달려왔을 때 부인의 이상스런 모습에 선뜻 방에 들어가서 묶여 있는 부인의 몸을 함부로 건드리지 못했다. 같이 투입 된 여형사덕분에 묶인 부인의 끈을 풀었다. 끈은 발목과 손목을 강하게 조인 탓에 부인의 손과 발은 부자연스러운 검은색으로 변해있었고 퉁퉁 부어 버렸다. 여형사가 부인의 몸에 묶여 있는 줄을 푸는 동안 형사들은 그 방에 들어가지 않았다. 부종이 심하게 검게 변한 손과 발은 원래 살갗의 색으로 돌아오지 않았다. 혈액이 전혀 순환하지 않아서 응급처지를 했다. 의자에서 풀려난 부인은 다시 기절을 했고 몇 시간 있다가 병원에서 정신을 차린 부인은 남편이 죽는 순간을 기억하지 못했다. 형사들의 현장스케치에서 부인은 뒤돌아 있는 상태였고 손발이 너무 촘촘하고 꼼꼼하게 묶여있어서 부인이 그것을 풀고 남편을 살해하고 다시 혼자 자신의 손발을 묶을 수는 없다고 단정을 지었다. 제3의 인물이 아파트로 들어와서 남편을 살해한 것으로 보이지만 현장에서는 그 어떤 단서도 나오지 않았다. 오직 제보자의 행방을 찾는 것이 사건해결의 실마리가 되는데 전혀 가닥이 잡히지 않았다. 전화국의 데이터 상으로 발신자가 있는 곳은 400킬로미터가 떨어진 곳이었다. 그곳은 영산강상류의 벌판에서 시작되었다. 가망이 희박하기만 했다. 형사들이 전화국에서 확인한 제보자의 목소리는, 남자로 30대인지 40대인지 50대인지 몇 살인지 가늠할 수 없었다. 시신의 부인은 밤새도록 묶여 있던 탓에 몸에 무리가 왔다. 성기의 기능도 저하되었고 부종은 병원에서 응급조치를 해도 빠져들지 않았다. 검게 변한 손과 발 또한 색이 돌아오지 않고 있었다. 후에 형사들은 시신의 부인은 취조하는 과정에서 그동안 정신적인 부분에 심각한 손상을 받았다는 의사의 소견을 전해 들었다. 국과수로 옮겨진 남편의 시신은 부검을 통해서 시신의 얼굴 주변과 장기에는 피가 흐르지 못하고 뭉친 울혈이 심하게 보였고 안구와 눈꺼풀 사이에 피가 고여있고 결막과 폐에 출혈로 인해 냉기는 좁쌀 같은 일혈점이 나타났다고 시간이 많이 흐른 후 결과가 그렇게 나왔다. 국과수에서는 질식사로 관찰되는 소견을 보였고 사건은 자살도 타살도 아닌 ‘사고사’로 결론이 내려졌다. 하지만 담당형사는 죽은 남자가 자신의 몸을 그렇게 꽁꽁 묶지는 않았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렇게 많은 양의 스카프와 속옷을 먹었다는 것도 이상했다. 묶인 상태에서 누군가에 의해서 그 많은 양의 속옷을 억지로 입안으로 밀어 넣었다는 것인데 그 누군가의 단서는 전혀 알 수 없었다. 지문이나 발자국, 당시 아파트 단지 내의 사람들을 탐문 수사를 해도 다녀간 사람의 흔적을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 엘리베이터 안의 CCTV 속에서도 집에 드나든 사람들의 모습을 찾아볼 수 없었고 미궁 속에 사건은 후에, 결국 사고사로 결론이 내려졌다. 부인은 정신치료를 받고 있었지만 진척이 없었고 자궁이 심하게 파손되어서 여러 번 수술을 받아야만 했다. 부인의 사고는 시간이 지날수록 어린아이로 변해갔다]

 

  [같은 날 E아파트 506동에서도 시신이 발견됐다. 역시 제보자의 행방을 알 수가 없었다. 남녀의 두 시신이 발견되었는데 두 사람 모두 방독면을 쓰고 있었다. 기이한 것은 두 사람 중 남성은 미라와 같은 모습으로 죽어있었다. 몸에 수분이 몽땅 빠져나가고 입고 있던 팬티(아직 삽입하기 전에 미라가 된 것으로 추정)와 방독면이 아슬아슬하게 얼굴에 붙어 있는 채 섹스행위의 형태를 그대로 유지하고 잘려버린 나뭇가지처럼 말라서 죽어있었다. 형사들은 당최 갈피를 잡지 못했다. 남자 밑에서 같이 죽은 여자는 남자가 경영하는 다운타운의 퍼브에서 아르바이트로 일을 하는 20대 초반의 여대생이었다. 죽은 남자는 30대 독신남자로 두 군데의 퍼브 겸 바를 경영하고 있었고 수완이 좋은 사람이었지만 성적취향이 매조틱했다. 그들의 죽음도 의문투성이라 형사들은 난감하기만 했다. 눈앞에 펼쳐진 장면이 영화 속의 장면과 같아서 그저 멍하게 몇 분을 그대로 있었다. 20대 여성의 체내에서 다량의 러미나정과 엑스터시의 약물이 혈액에서 발견됐고 미처 소화가 되지 않은 알약은 위속에 그대로 있었다. 여성은 술과 약에 취해 정신이 없는 상태에서 방독면을 쓰고 숨이 차고 가슴을 답답해하다가 폐가 제 기능을 발휘하지 못하고 결국에는 숨이 멎었다. 남자가 먹인 술과 약기운에 취해 숨을 쉬지 못해서 20대 여성은 안타까운 삶을 마감했다. 30대 독신남자는 여자가 숨을 멎은 지도 모르고 독신남이 원하는 성적 흥분을 만끽했다. 여성이 먼저 숨을 거뒀다. 이후 몸에서 수분이 전부 빠져나간 독신남도 방독면을 쓴 채 그대로 말라서 죽었다. 시신을 훼손하지 않고 현장에서 국과수로 옮기려 했으나 20대 여성의 몸 위에서 수분이 다 빠져나가 버린 30대 독신 남자는 몸을 건드리는 순간 건드린 곳이 바스러졌다. 얼굴 밑으로 보이는 남자의 신체는 팬티만 빼고 탈의 한 상태라 독신남의 몸은 수천 년 동안 잠들어있던 벌레 먹은 미라를 연상케 했다. 실제 미라와 다른 점이라면 바람과 햇빛에 양생이 아주 잘 된 식용도마뱀의 갈빗대처럼 보인다고 해야 할 것이다. 시신을 옮기려하자 바람에 모래성이 부서지듯 시신의 몸은 훼손되었다. 감식반과 담당형사들은 처음 겪는 상황에 놀랐고 당황스러울 뿐이었다. 형사들은 이 상황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었다. 바에서 일하는 직원들의 말로 사장인 30대 독신남자는 자기생정사 일거라고 했다. 이 나라에 의외로 자기색정사인 사람들이 많았다. 서울의 형사들은 수차례 그런 현장이나 사건을 접해왔다. 자기생정사는 뉴스를 통해서 대중에게 보도되지 않았다. 그 모습이 기이할뿐더러 타살은 거의 없기 때문이다. 자기색정사 행위를 즐기는 사람들은 순간의 쾌락이 영원히 숨통을 조일 수 있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그러면서도 과한 성도착을 탐닉하는 것이다. 이런 자기색정사로 죽은 사람이 자살로 밝혀지지만 사고사로 인정받지 못해 가족들은 보험금을 타지 못한다. 또 가족은 타인에게 이 사실이 알려질까 봐 두려웠고 창피했다. 사회는 공공연히 발생하는 성도착증 사건사고로 인해서 곳곳에 나타나는 시신은(누군가에 의해서 죽임을 당한) 일일이 매스미디어를 통해 보도되지 못하게 했다. 자기색정사의 사고 현장의 공통점은 시신이 격리되어있거나 고립된 자신의 방이나 다락, 지하실 같은 곳에서 발견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문은 대게 안으로 잠겨있다. 시신은 성기를 드러내거나 옷을 벗은 채로 발견되는 일이 많았다. 가끔 시신 중에 남성이 여자의 옷차림을 하고 있기도 한데 복장도착증 때문이었다. 시신이 있는 곳 주위에는 갖가지 도색잡지와 쾌락에 사용되는 도구들이 즐비하고 자기색정사의 연령층은 대부분 2, 30대 남성의 경우가 많았지만 간혹 여자들도 있었다. 문제는 자기색정사의 행위로 사망하는 경우가 점점 늘어가고 있는 추세다. 미국은 이미 자기색정사가 그 도를 넘어섰다. 담당 형사는 이 묘한 사건이 자기색정사는 아니라고 판단했다. 이 30대 독신남자 역시 어떠한 무엇인가에 의해서 시체가 되어버린 것이다. 하지만 그 다음이 없었다. 전혀 없다. 이 사건이 뉴스를 통해서 흐릿하게 보도가 되면서(단순히 성도착증 집착으로 죽었다) 성도착이 있는 사람들에게 포고를 하는 듯 보였다. 단서는 고사하고 유추와 상상도 할 수 없었다. 어떠한 무엇인가가 무엇인지 시발점조차 찾을 수 없었다. 주관과 객관을 모두 동원해도 작은 땅의 큰 도시에서 알 수 없는 사건이 터지기 시작하니 경찰에서는 갈피를 잡지 못했다. 진전이 없는 사건이 일어난 아파트 인근 산속에서 사람이 하나 실종됐다. 그것은 실종이라기 보다는 소멸에 가까웠다. 형체도 냄새도 없이 운동화 한 짝만 남기고 사라져 버렸다. 형사들은 말라서 바스러진 시신과 자신의 몸 안에 부인의 속옷을 잔뜩 먹고 죽어버린 시체의 수사를 어떤 방식으로 해야 하는지 난감하기만 했다. 아파트에 살고 있는 사람들은 아파트를 떠나야 한다며 흉흉한 소리를 했다]

 

  모니터 속의 뉴스는 속보를 앞 다투어 내보내고 있었지만 겉도는 보도뿐이었다. 한 아파트단지 내에서 사고사로 두 명이 죽었다는 소식을 내보냈고 모자이크 처리가 된 아파트 주민을 인터뷰하는 영상이 나왔다. 사람이 모래처럼 변했다는데 왜 자세하게 알려주지 않느냐, 도대체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건지 몰라서 너무 무섭다,라는 주민의 인터뷰 내용이 화면을 통해 부산스럽게 나왔다. 사람들은 자세한 진위를 알지 못했지만 기괴한 사건이 일어난 아파트에는 살 수 없다는 생각들이 점점 깊어졌다. 아파트값은 이제 바닥을 치고 아파트 내에 이미 살고 있는 사람들의 불만과 불안은 커져갔다. 보도국은 이 사건을 아주 자세하게 파헤쳐서 방송을 내보내려고 했으나 정부의 관계자들이 이미 방송국에 들어서서 보도국 국장과 방송국 사장을 포섭하여 면담을 가진 직후라 불가능했다. 그 사실을 방송국의 윗선을 제외하고는 대부분 알지 못했다. 프로듀서들은 외압에 의한 방송을 내보낼 수밖에 없었다.

  모니터를 보고 있던 마동도 졸음이 쏟아졌다. 아직 하늘은 컴컴했다. 여름밤이지만 비가 내려 밤하늘은 어두웠고 저 멀리서 마른번개가 내리치는 모습이 보였다.

  오늘은 왜 잠이 쏟아지는 것일까.

  며칠 동안 해가 떠오르는 아침이 되어야 겨우 잠들 수 있었던 마동은 잠이 쏟아지는 것마저 의아하게 느껴졌다. 그의 품에는 아름다운 는개가 발가벗은 채 안겨서 잠이 들어 있었다. 기하학적인 숨소리를 고요하게 뱉어내는 그녀의 몸을 감싼 채 마동도 졸음에 겨워 잠에 빠지기 직전이었다. 숨을 쉴 때마다 는개의 가냘프고 매끄러운 등이 미세하게 아래위로 움직였다. 잠이 쏟아졌지만 마동은 미려하고 미세한 움직임의 는개를 낙조의 눈빛으로 바라보았다. 마동은 좀 더 는개를 눈으로 담고 싶었다. 그녀의 작은 움직임에 세계가 살아있다고 느꼈다. 끝이 없는 세계가 는개의 등에 있었다. 는개를 감싸고 있던 오른손으로 그녀의 등을 쓰다듬었다. 견고했다. 부드러웠다. 등을 끌어안았다. 는개의 얼굴에 작은 미소가 또 한 번 생겨났다. 그녀의 미소를 보며 마동도 잠이 들었다.

 

  [2시간 전]

  밤이 되었지만 여름날 해변의 바다에는 사람들이 많이 몰려나와 있었다. 해무가 해안으로 들어와 해변을 가득 뒤덮고 있어도 사람들은 저마다 해변의 곳곳에서 술을 마시거나 밀려오는 파도에 장난을 쳤다. 모두 밤바다의 정취에 녹아들어 여름밤을 보내고 있었다. 하늘은 곧 비가 쏟아질 것 같은 먹구름이 저 멀리 보였지만 사람들은 먹구름을 신경 쓰지 않았다. 해안은 커다란 유선형의 리아스식 해안으로 파고가 낮은 파도만 밀려들어오는 비교적 평온한 해변의 모습이었다. 이렇게 만들기 까지는 본격적인 파도가 밀려오는 곳에 대대적으로 테트라포드를 심어 놓아 해류를 잠잠하게 만들었다. 수천 개의 테트라포드가 눈으로는 보이지 않지만 해안 저 멀리 바다 밑에는 가득 들어 있었다. 그 덕분에 물고기와 바다생물들 역시 무럭무럭 살아가게 되었다. 여름의 밤이 되면 수온이 올라가서 바다 멀리 나가있던 붕장어와 작은 게들이 해안 가까이 올라왔다. 사람들은 투망을 던져 여름밤에 해안을 찾아온 물고기들을 낚아 올려 그 자리에서 사람들과 회를 떠서 먹기도 했다. 투망처럼 생간 그물망을 던지는 행위는 불법이었지만 제제하거나 나무라는 해안경찰이나 관계자들은 없었다. 한 번 던지면 투망 속에는 게라든가 물고기가 한 가득 끌려 올라왔다. 해변에는 그렇게 잡아 올린 물고기를 구경하려고 모여드는 사람들에게 신기하고 재미있는 모습이었다. 밤바다의 풍경에 취해있는 사람들은 저마다 여름밤을 즐겼으며 찐득거리는 몸으로 밤바다의 탁한 어둠속으로 들어갔다.

  바다위에는 길 잃은 아이의 영혼처럼 해무가 이리저리 바다위에서 떠돌고 있었다. 마치 바다 밑으로 들어가지 못해 억울해 하는 모습처럼 비참해보였다. 그리고 스산하게 움직였다. 해변에는 50대로 보이는 남자들도 모여서 술을 마시고 있었다. 흥이 달아올랐다. 50대 무리의 남자들은 흥에 취해 술을 마시다가 합심을 하고 바다에 뛰어 들었다. 그들은 친구사이로 가정을 잠시 놔두고 친구들끼리 어린 시절을 떠올리며 바닷가에 모였다. 그들이 바다에 뛰어드니 이곳저곳에서 바다에 뛰어드는 사람들이 생겨났다. 해양경찰이 감시대에서 호루라기를 불면서 그들을 저지했다. 하지만 사람들은 술을 마셔서 경찰이 잡으러 와서 끌고 나올 때까지 바다에서 나오지 않았다. 해수욕장의 바다 수위는 허리까지 밖에 오지 않았고 수온은 미지근했다. 바다는 안전했지만 사고에 대비해서 야간에는 입수를 금지했다. 50미터정도까지 나가야 바다의 수위는 어른 가슴의 높이정도 되었다. 바다에 뛰어드는 사람들에 비해서 해양경찰의 수가 적었다. 갑자기 바다에 뛰어든 사람들을 끌고 나오느라 해양경찰은 모두들 감시의 대상의 집어넣지 못했다. 사람들은 끌려 나오면서도 즐거워했고 소리를 지르는 사람, 노래를 크게 부르는 사람 등 천차만별이었다. 경찰은 옷과 머리가 다 젖어가며 사람들에게 호루라기를 불며 몇몇을 끌고 나왔다. 감시본부에 쉬고 있던 경찰도 나와서 바다에 뛰어든 사람들을 끌고 나왔다. 해양경찰은 사람들 모두 끌고 나왔지만 한사람을 시야에서 놓쳤다. 그 사람은 50대 남자들 중 한 명으로 허리까지 오는 바다에 들어가 더 멀리까지 헤엄을 쳤다. 남자는 친구들 중에서 가장 바다수영을 잘했었다. 물개라는 별명으로 이 고장에서 나고 자란 그는 어린 시절에는 여름이면 여기 해수욕장에 와서 헤엄을 치곤했다. 그때는 해수욕장의 모습만 가지고 있었지 제대로 된 해수욕장이라 할 수는 없었다.

  파도가 일어도 남자는 물개처럼 파도를 가르고 물살을 헤치며 앞으로 갔다. 남자는 조금 더 헤엄쳐가서 바다가 가슴까지 오는 것을 확인했다. 술은 좀 마셨다. 하지만 헤엄을 치지 못할 만큼 마신 것은 아니었다. 지금은 비록 배가 나오고 몸도 예전 같지 않지만 여기서부터 저기 보이는 작은 바위섬까지 헤엄쳐 갈 수 있다. 한 번 해보자. 마음을 굳히자. 지금까지 험난한 일도 겪어왔는데 이까짓 것쯤 문제될 건 없다. 간단한 일이다. 거리는 대략 15미터 정도였다. 남자의 친구들은 경찰에게 이끌려 바다를 거의 빠져나가 해변으로 가 있었다. 술기운 탓인지 바다가 따뜻하게 느껴졌다. 따뜻한 수온이 전해지는 느낌이 나쁘지는 않았다. 남자가 숨을 들이쉬고 자유형으로 천천히 팔을 저어 멀리 나갈수록 수온은 점점 따뜻해졌다. 잠시 멈추었더니 발이 바닥의 모래에 닿지 않았다. 이렇게 바다에 떠 있는 느낌이 얼마 만이었던가. 시원하게 방뇨를 했다. 소변에 체내에서 빠져나갈 때 한순간 온도가 내려가서 몸이 시원해졌다. 떨림이 있었지만 이내 바다의 따뜻한 수온이 그의 몸을 감싸 안았다. 남자는 목까지 오는 찰랑찰랑한 바다의 수면을 보았다. 해안가에서 사람들의 웅성거림이 들렸다. “물이 따뜻해! 물이 뜨끈해! 마치 온천 같아!”라며 사람들은 큰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남자는 술 때문에 체온이 올라간 자신만이 느끼는 바다의 온도라고 생각했는데 착각이 아니었다. 사람들이 큰소리를 내며 즐거워했고 해안가에 있던 사람들이 바다에 발을 담그고 다시 바다로 뛰어드는 사람들이 늘어났고 경찰들은 다시 분주하게 그들을 만류했다. 멀리까지 나가지 않고 사람들은 아이들을 무릎에 앉혀 따뜻해진 바다에서 때 아닌 온천을 즐겼다. 수온은 조금씩 더 올라가서 양반다리로 앉으면 반신욕을 하는 기분을 가질 수 있었고 바다에 앉아서 땀을 흘리는 사람도 있었다. 해수욕장의 하늘위에는 곧 비를 뿌릴 것처럼 거대한 구름이 머무르고 있었다. 구름은 어두웠지만 자줏빛을 띠고 있었다. 자줏빛의 구름을 눈치 채는 사람들은 없었지만 구름은 분명 자주색을 띠고 있었고 구름의 저편에서는 거대한 마른번개가 내리치고 있었다. 바다는 마치 자연온천탕처럼 수증기를 피워 올리고 있었다. 수온은 따뜻해졌다가 이내 뜨거워지기 시작했다. 바다주위는 해무가 들어차서 바다에서 피어오르는 수증기가 해무에 흡수되어서 하나의 완전한 증기탕의 세계를 보는듯했다. 자줏빛먹구름은 실체가 확실히 드러나지 않았지만 한차례 쿠르릉 하는 천둥소리를 내더니 비를 뿌리기 시작했다. 사람들은 수증기를 피워 올리며 데워진 바닷물 속에서 온천의 기분을 만끽했고 하늘에서는 시원한 비가 내려서 더욱 즐거운 여름밤의 해수욕을 즐겼다. 해수욕장의 밤바다에는 소식을 듣고 몰려온 사람들로 낮보다 더 많은 사람들이 바다 속에서 바다온천을 즐겼다. 그것은 매우 기이한 풍경으로 뜨거운 바닷물에서 온천을 즐긴다는 말은 어디에서도 들어보지 못한 소리였다. 비상상황으로 더 늘어난 해양경찰과 해안경비대원들의 긴장 가득한 표정과는 달리 바다온천을 즐기는 사람들의 표정은 즐거웠다. 해양경찰들은 떨어지는 비를 보며 묘한 표정을 지었다. 비는 어쩐지 비린내를 동반하는 듯했다. 비린내는 정확하게 무슨 비린내인지 집어내기가 애매했다. 마른 복숭아에서 나는 냄새인데 기분이 나쁜 냄새 같았다. 그들은 다른 지역의 큰 해수욕장의 해안경비대나 해양경찰들에 비해서 위기의식이 덜했다. 이곳 바다는 지금까지 사고사가 없었고 안전사고도 거의 일어나지 않았다. 하지만 이 기이한 풍경을 바라보며 그들의 표정에는 당혹스러움과 난처함이 고조되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목 부분에서 찰랑거리는 바다를 느끼며 헤엄쳐 들어간 50대 남자의 얼굴에 떨어지는 시원한 비의 느낌이 아주 좋았다. 남자는 배영의 형상을 취했다. 몸이 바다에 둥둥 떠 있는 느낌. 이것은 마치 새가 되어 하늘을 나는 느낌과 흡사했다. 학창시절에 종종 바다에 몸을 뜨게 해서 눈을 감고 바다를 이불삼아 누워 있었다. 몸은 뜨거웠지만 얼굴은 시원해서 정말 온천을 즐기는 기분이 들었다. 남자는 재작년 일본의 야외온천에 갔을 때 이런 기분을 느꼈다. 왜 한국에는 온천시설과 부대시설이 일본 같지 않을까. 남자는 온천을 즐기는 일이 아주 좋은데 한국에서는 일본만큼 즐길 수 없음을 탓하며 일본온천여행에서의 일을 떠올렸다. 돈이 많이 들었다. 일본의 야외온천에서도 몸은 온천에 담근 채 하늘에서 떨어지는 새 하얀 눈을 맞았다. 그때는 겨울이었다. 벌써 재작년의 일이었다. 그때처럼 남자는 얼굴에 시원한 빗줄기를 맞으면서 몸은 뜨거운 바다의 수온에 희열을 느끼고 있었다. 남자는 이미 멀리까지 나와 버렸고 해안경찰들과 해안경비대들은 남자를 시야에서 놓쳤고 현재 바다에 들어가 있는 사람들의 안전을 지키느라 신경이 곤두서있었다. 해안에서는 사람들이 앉아서 물놀이를 즐기는 모습이 보였다. 이렇게 헤엄을 쳐서 조금 멀리 떨어진 바다에서 보니 사람들은 굉장히 작은 존재였다. 이렇게 작은 존재들이 모여서 성공과 실패를 논하고 행복과 불행사이에서 왔다 갔다 하는 것이 우습게 느껴졌다. 기분이 좋았다. 앞으로 종종 바다에 와서 헤엄을 쳐야겠다. 이렇게 좋은 기분을 왜 지금에서야 알았을까. 남자의 등과 허벅지로 기포가 올라오는 느낌이 들었다. 배영자세에서 몸을 세웠다. 대중목욕탕에 가면 바닥에 기포가 나오는 탕이 있다. 그곳에 발바닥을 대면 기포가 발바닥을 때리는 느낌이 좋았다.

  보글보글.

  그런데 느낌이 강하게 들었다. 대중목욕탕의 기포가 ‘강’으로 올라오는 탕에서 발바닥을 기포에 대면 시원하지만 따끔거리는 느낌이었다. 목욕탕의 인공적인 기포만큼 발바닥에 바다의 기포가 올라와서 와 닿는 만큼 강한 감촉이었다. 나쁘지는 않았다. 바닷물의 수온이 점점 올라갔다. 50대 남자의 얼굴은 땀을 흘리고 있었지만 비가 내려 그 땀을 모두 씻어내 주었다. 빗물인지 바닷물인지 비린내가 나기 시작했다.

  보글보글 보글보글.

  50대 남자의 발바닥이 심하게 따끔거린다는 것이 느껴졌다. 아아 안 되겠다. 이제 바다에서 서서히 나가야겠다. 남자는 몸의 방향을 돌려서 해안 쪽으로 헤엄을 쳤다.

  보글보글 부그르르르 부글부글.

  50대 남자는 발바닥에 감촉이 없다고 느꼈다. 다리로 헤엄을 쳤지만 남자는 다리가 자신의 몸에 붙어있는지 가늠 할 수 없는 정도였다. 다리에 감각이 빠져 나갔다. 순간 두려움이 확 밀려와 술이 전부 깨는 기분이었다. 남자가 그렇게 생각하는 순간 바닷물은 상상 이상으로 뜨거워졌다. 눈으로 들어오는 바다의 수면은 물을 끓이는 것처럼 보글보글 하는 수증기 방울이 바다의 수면위로 올라와 터졌다. 비린내가 역하고 심하게 올라왔다. 당황해 버린 50대 남자는 바다에서 허우적대기 시작했다. 심장이 과장되게 뛰었다. 심장이 뜨거워진 체온을 견디지 못하고 팽창하려 했다. 남자의 눈앞에 펼쳐진 광경은 기괴했다. 물고기들이 익어서 바다위로 둥둥 떠오르고 있었다. 비린내와 함께 양념이 제대로 되지 않은 매운탕을 끓일 때 나는 냄새가 진동했다. 남자는 심장이 터질 것 같았다. 바다에서 나가려고 헤엄을 쳤지만 손과 발은 아무런 감각이 없었고 허우적거리기만 할 뿐이었다. 바다는 순식간에 부글부글 끓어오르고 있었고 남자는 온 몸이 끓는 바닷물에 데어서 비명을 질렀다. 문득 손으로 다리를 만지니 살점이 문드러져 떨어져나갔다. 남자는 바다 속에서 꼬리 잘린 잠자리처럼 파닥거렸지만 이내 물고기처럼 익어서 바다의 수면위에 뜨고 말았다.

  “으아악, 저기 사람이 보여요.” 누군가 둥둥 떠 있는 물고기들 사이에 사람이 떠 있는 모습을 보고 소리를 질렀다. 해변은 아수라장이 되었다. 비명을 지르는 사람들이 늘어나면서 비교적 얕은 바다에 있던 대부분의 사람들은 물 밖으로 나왔다. 바다의 모습은 기괴한 풍경이었다. 완전히 익어버린 수천 마리의 물고기들이 수면위로 둥둥 떠올랐다. 바다는 그야말로 냄비 안에서 끓이는 탕처럼 부글부글하며 끓어오르고 있었다. 바다는 시간이 지날수록 물고기의 익은 냄새가 비릿한 악취로 변하면서 사람들은 모두 코를 막았고 해변을 떠나가는 사람들이 늘어났다. 행복하기만 했던 바닷가는 도래하지 않던 지옥의 세계로 일순간 변해버렸다. 멀리 헤엄쳐 나갔던 50대 남자는 바다의 수면에 떠올라 물고기처럼 점점 익어갔다. 시간이 흐를수록 남자의 얼굴은 흐물흐물하게 변했고 남자의 장기에 차 있던 공기가 끓는 물에 부풀어 올라 사람이라는 형체만 알아볼 수 있었다. 바다는 마치 히에로니무스 보쉬의 그림 같은 모습이었다.

  정말 지옥이 있다면 이런 모습이지 않을까.

  해변에 있던 사람들은 소리를 지르고 두려움에 떨었다. 우는 사람도 있었고 비린내에 토하는 사람도 있었다. 그 두려움은 본질적인 두려움이었다. 인간의 삶에 닥쳐올 것이라는 예상 가능한 두려움이 아니었다. 손을 뻗을 수 있는 반경 내에서 벗어나버린 두려움이었다. 상대를 알 수 없고 예고도 없고 대비 할 수도 없는, 시작을 알 수 없는 무서움이었다. 주의력이나 분석 같은, 머리가 해야 할 논제가 전혀 적용되지 않는 광경이 바다에 펼쳐지고 있었다. 사람들은 망연자실한 모습으로 끓어오르는 바다를 바라보았다. 비는 떨어져 펄펄 끓어오르는 바다에 음표를 수십 만 개 만들어냈다.

 

  [5일째]

  류 형사는 아침 일찍 깨어나 본부에 앉아 있었다. 제대로 잠들지도 못했지만 눈도 잘 떠지지 않았다. 48살로 다부진 체격과는 다르게 얼굴의 상태가 형편없었다. 주방에서 배가 고파 처음으로 눈에 띄는 것을 주워서 씹어 먹은 표정을 하고 있었다. 입고 있는 검정 반팔 티셔츠는 땀이 여러 번 흘렀다가 마른 흔적이 역력했다. 듬성듬성 빠져버린 머리칼은 그가 부산스럽게 긁을 때마다 더 고슬고슬하게 가늘어 지는 듯 보였다. 한 눈에도 스트레스를 많이 받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류 형사는 머리를 긁고 손톱의 냄새를 한 번 맡고는 청바지에 손을 비볐다. 한 손에는 사건서류가 들려있고 시선은 서류에 머물러 있었다. 형사들 대부분 집에 들어가지 못하고 실종사건과 기이한 시체의 사건 때문에 경찰서 내 분위기는 긴장이 흘렀다. 에어컨을 강하게 틀어놔서 그런지 냉랭한 기류가 마치 초겨울처럼 다가왔다. 병든 닭처럼 책상에 엎드려 자는 형사가 보였고 강아지처럼 의자에 모로 누워 끙끙거리며 잠이 든 형사도 보였다. 본부의 실내는 씻지 못한 형사들의 발에서 풍기는 시큼한 냄새가 책상이며 의자사이며 본부의 바닥에 꼼꼼하게 내려앉아 외부인의 출입을 방해했다.

  류 형사는 불과 며칠 사이에 발생한 사건이 연관성이 있지 않을까 하는 추리를 해봤다. 전혀 다른 사건이 아니라 무엇인가에 의해서 모두가 연관이 있다고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렇지만 그 어느 하나 들어맞는 구석이 없었다. 류 형사는 30도 각도에서 모든 추리를 동원해서 꼬리가 이어지는 부분을 유추하려 했지만 아무런 연관성을 찾을 수 없었다. 상식선에서 일어나는 사건이 아닌 만큼 상식을 벗어나서 유추하려해도 힘들었다. 류 형사가 근무하는 동부지구에서 한꺼번에 알 수 없는 사건이 일어났다. 남부지구의 남부서 선배에게 연락이 와서 자신의 매제가 이번 동부의 야산에서 실종이 되었는지 사라졌다는 것이다. 실종신고를 하기에는 이르지만 무엇인가 기이하고 이상하다며 매제가 뛰어 올라간 산을 한 번 조사해줬으면 좋겠다는 말을 들었다. 선배는 오래전에 동생의 남편(최원해) 때문에 호되게 고생을 했던 적이 있었다. 지금도 사리진 매제 때문에 고생을 하게 생겼다고 말했다. 선배는 류 형사에게 가장 큰 도움을 준 사람이다. 류 형사에게는 늦게 본 딸이 하나 있는데 날 때부터 좋지 못한 신장을 갖고 태어났다. 그 모든 것이 자신의 잘못인 것 마냥 류 형사는 생각해왔다. 수빈이이의 신장이 갑자기 수술을 요해서 수술비를 마련하느라 뇌물을 받고 혐의를 풀어준 적이 한 번 있었다. 하지만 감사과의 감찰에 걸리고 말았다. 그때 선배가 그 일을 대신 뒤집어쓰고 사건을 해결해 주었다. 류 형사에게 아무런 걱정을 하지 말고 수빈이의 수술을 잘 하라고 격려해준 선배였다. 수빈이는 이제 7살이다. 작은 생명의 불꽃이 주먹만한 작은 신장에 달려 있었다. 엄마 없이 류 형사는 딸을 잘 키워보려고 했지만 늘어나는 사건 때문에 규칙적인 생활은 힘들었다. 수빈이는 신장이 약해서 달리면 안 되지만 친구들에게 놀림을 받다가 달리기를 한 모양이었다. 소식을 듣고 모든 것을 미루고 가서 딸아이를 안고 병원으로 가면서 류 형사는 제발 살아만 있어 달라고 기도를 했다. 그때 선배덕분에 수술을 했지만 건강해지지는 않았다. 수빈이는 한 번의 수술을 더 받아야 한다. 그마저도 상황이 여의치 않다. 처음 했던 수술에 비해서 시간도 오래 걸리고 수술비가 두 배는 더 든다. 수술을 받지 못하면 몸에 구멍을 내고 피를 걸러야 할 판이다. 류 형사는 은혜를 입은 선배에게 빚을 갚을 날만 기다려왔는데 선배에게 연락이 온 것이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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