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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라이트노벨
잭 앤 블랑 Jack & Blanc
작가 : 힛쥐
작품등록일 : 2019.9.6

갈수록 부패해져만 가는 귀족사회. 상류층은 하류층을 억압하고 그들을 그저 자신들의 재산이라고만 생각한다.
이런 세상속에서 태어난 두 명의 살인귀. 그들의 이름은 잭과 블랑이라고 한다.

 
21. 겨울을 맞이하는 밤 (1)
작성일 : 19-10-28 19:38     조회 : 376     추천 : 0     분량 : 50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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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15 17 19 21

  문 라이트의 여러 축제중 올해의 마지막이라고 할 수 있는 축제. 가을의 끝즈음, 겨울을 맞이하기 위해 여는 축제인 '크리스마스'이다.

 

  한 해를 무사히 넘긴다는 의미도 담고있는 이 축제는 며칠동안 진행되는 긴 축제이다. 이 기간동안에는 도시의 대부분의 사람들이 일을 쉬고 축제를 즐긴다.

 

  그 축제가 열리기까지 벌써 3일밖에 남지 않았다. 잭은 살짝 들뜬 마음으로 일을 마무리하고, 집으로 돌아갈 준비를 하였다. 축제 기간에는 첫 날 빼고는 전부 쉬는 날이다.

 

  "수고하셨어요, 잭 씨."

  "감사합니다. 점장님도 수고하셨어요."

 

  가게를 나서자 싸늘한 밤공기가 피부에 와닿았다. 숨을 내쉬자 하얀 입김이 나오고, 금방 모습을 감추었다. 이제 정말로 가을이 끝나간다는 것이 새삼 느껴졌다.

 

  문 라이트 거리의 빛도 살짝 바뀌었다. 이전까지는 하늘색 계열이었던 밤의 불빛이 지금은 흰색으로 바뀌어가고 있었다. 이것 또한 문 라이트의 특징중 하나인데, 계절에 따라 밤의 불빛의 색상이 바뀌는 것이다.

 

  잭은 주머니에 손을 찔러넣은 채 거리를 걸었다. 거리는 늦은 시간임에도 불구하고 축제준비로 바빴다. 그 열기가 싸늘한 밤공기를 조금이나마 따뜻하게 데워주는 것만 같았다.

 

  집으로 급하게 돌아가던 잭은, 무언가를 발견하고 곧바로 발을 멈춰세웠다. 사람들 사이에 흰색의 긴 머리의 여자가 한 눈에 들어왔다. 굳이 얼굴을 확인하지 않아도 누군지 알 수 있었다.

 

  "블랑!"

 

  그녀의 이름을 부르자 블랑이 옆으로 고개를 돌려 잭을 보았다. 잭은 얼굴을 환하게 밝히며 그녀 곁으로 뛰어갔다.

 

  "일 끝났구나, 잭. 고생했어."

  "으응. 그나저나 블랑은 여기서 뭘 하고 있었어?"

 

  블랑은 먼저 대답하는 것 대신에 다시 고개를 앞으로 돌렸다. 잭도 그녀의 시선을 따라가자 그곳에는 거대한 나무에 장식을 달고있는 사람들의 모습이 있었다.

 

  겨울에도 풀잎이 떨어지지 않는 윈터우드의 가지에는 불빛을 내는 방울들이 여럿 달려있었다. 제 각각의 색을 가진 방울들이 오히려 아름다운 불빛을 뽐내며 나무를 장식하고 있었다.

 

  "축제기간의 구경도 좋지만, 그 전에 준비하는 기간 또한 좋은 볼 거리야. 사람들이 후회없는 축제를 위해 준비하는 것을 눈에 담아두고 그 노력을 기억해주는거지."

  "흐으음……. 그런 생각은 전혀 해본 적 없었는데."

 

  둘은 고개를 들어올린 채 윈터우드의 주변을 돌아다니며 장식들을 구경했다. 문 라이트 시내의 중심지에 있는 이곳은 축제의 마지막 날, 눈꽃폭죽을 쏘아올리는 장소이기도 하다.

 

  축제의 마지막이자 하이라이트를 담당하고있는 눈꽃폭죽은 왕국 전역에서도 그 아름다움을 인정받고있어 많은 사람들이 이 눈꽃폭죽을 구경하기 위해 문 라이트로 찾아오기도 한다.

 

  그 만큼, 이곳은 매우 중요한 장소이기 때문에 사람들이 이렇게 열심히 윈터우드를 열심히 꾸미는 것이다.

 

  "슬슬 추워진다, 블랑. 얼른 돌아가자."

  "그래그래. 따뜻한 집으로."

 

  윈터우드에서 조금 떨어지자 사람이 많이 줄었다. 잭은 거리를 걸으며 크게 주목받지 못했던 밴딧 랜드로바의 암살에 대한 내용을 블랑에게 물었다.

 

  "그러고보니, 블랑. 밴딧 랜드로바에 대한 내용은 없었어?"

  "있었어. 그런데 혁명 덕분에 묻혀버렸지. 그리고 아마 휴즈 엔틱도 그 암살에 대해서는 탐탁하지 않아 할듯하네."

 

  밴딧 랜드로바가 자신의 신변을 보호하기 위해 고용했던 수많은 경호원들은 모두 휴즈 엔틱의 마피아 일원이다. 그들을 죽인 것은 마피아에 대한 도전이기도 하였다.

 

  또 한 엔틱 가문과 랜드로바 가문은 오래전부터 사이가 돈독했기 때문에 그의 암살은 하나부터 열까지 마음에 안 들 것이다. 아마 은밀하게 암살을 행한 범인을 찾고있을 것이다.

 

  "뭐, 일단 마피아보다는 다가오는 축제만 생각하자고. 일 년에 한 번씩 찾아오는 날이잖아?"

 

  맞는 말이었다. 괜히 다른 귀족의 암살에 관한 내용으로 날을 보내기 보다는 축제 기간인 만큼 즐거운 생각으로 축제를 즐기자는 말이었다. 잭도 당연히 이 말에 부정할 생각은 없었다.

 

  "그나저나 이런 날에 뒷골목 사람들은 뭘 하려나?"

  "그 생각은 못해봤네. 으음……. 자기들끼리 놀려나? 아니지, 서로에게 관심이 없는 그 녀석들이?"

 

  블랑은 팔짱을 낀 채 진지하게 생각하기 시작했다. 잭은 무심결 길버트에 대한 생각을 하였다. 그는 자신들을 도와주는 조력자 입장인데 함께하는 시간은 상상 이상으로 적었다.

 

  아무래도 잭이 축제가 시작되기 전에 해야할 일이 생긴 것 같았다.

 

  축제 이틀 전. 잭은 곧바로 집으로 향하지 않고 뒷골목에 있는 길버트의 집으로 향하였다. 잭은 조심스럽게 길버트의 문을 두들겼으나 아무런 반응도 없었다.

 

  "이럴 때는 어떻게하더라……."

 

  잭은 잠시 생각에 잠기더니 이내 블랑이 했던 방식을 생각해냈다. 세게 길버트의 집 문을 걷어차자 문이 힘차게 뒤로 밀렸다. 책상에 앉아있던 길버트가 놀란 표정으로 문쪽을 보았다.

 

  "뭐야뭐야?! 블랑이야?"

  "아뇨. 이번에는 저만 왔어요."

  "으잉? 이건 또 무슨 경우래."

 

  양손으로 가방 끈을 잡은 채 당당하게 길버트의 집 안으로 들어갔다. 길버트는 어이가없다는 듯한 얼굴을 하고 있었지만 잭을 바로 내쫓지는 않았다.

 

  "그래서, 무슨 일이지? 누구의 정보를 원해?"

  "이번에는 정보 때문이 아니라 단순하게 궁금한게 있어서 온거예요."

 

  길버트가 한쪽 눈을 치켜올리며 호기심을 나타냈다. 잭과 블랑이 길버트를 찾아오는 경우는 대부분이 귀족에 대한 정보를 위해서였지 사적인 이유로 온 적은 별로 없었기 때문이다.

 

  책상에 어지럽혀져있는 종이들을 대충 정리하고 다 찢어진 의자에 앉은 길버트는 블랑이 있을때와는 완전히 다른 태도를 보여주었다.

 

  블랑이 있을때는 빌빌 기던 그가 이런 모습을 보이자 잭은 그가 얼마나 블랑을 무서워하는지 느꼈다.

 

  "그, 길버트는 축제 기간때 안나오시나요?"

  "허어. 이거 완전 뜬금없는 내용이로구만."

 

  그렇게 말하면서도 잭의 말이 살짝 흥미로운 모양이었다.

 

  "미안하지만 나는 그런 사람들이 많은 곳은 좋아하지 않아. 뒷골목에 살고있는거 보면 답 나오지."

  "무슨 대인기피증 그런거예요?"

  "대충 그렇다고 하자."

 

  길버트는 대답한 후 눈만 살짝 위로 들어올려 무언가를 생각하는 듯 하였다.

 

  "그나저나 너가 블랑이랑 만난지 몇년됐지?"

  "갑자기 그건 왜 물어봐요?"

 

  역으로 질문했지만 길버트는 아무런 말 없이 그저 잭의 얼굴을 보고만있었다. 그의 눈빛을 보니 별 의미없는 질문이 아닐것이라고 느낀 잭은 그의 물음에 답해주었다.

 

  "10살 때 블랑을 만났으니…… 8년 되었네요. 이제 곧 9년이 되겠지만."

  "8년이라. 꽤 오래됐군."

 

  왜 뜬근없이 그런 질문을 했는지 곧바로 물어보고 싶었지만, 길버트는 잠시 무언가 생각하고, 고민하는 듯한 눈치였다.

 

  "잭, 너는 블랑에 대해 얼마나 알고있나?"

  "네?"

  "그러니까, 그녀의 과거에 대해 말이야. 아무말도 안해줬어?"

 

  블랑의 과거라. 딱히 생각해보지 않은 주제다. 서로가 처음 만난 8년 전의 그 날.

 

  그녀는 그때부터 혼자서 살인귀로서 귀족들을 죽이고다녔다. 잭의 뇌리에 블랑과 만났던 그 날이 스쳐 지나갔다. 당연히 그 일은 잊지 못한다.

 

  잭은 홀로 다가오는 죽음에 저항하고있었지만 역부족이었다. 그것이 코 앞까지 찾아왔을 때, 나타난 것이 바로 블랑이다. 차가운 겨울바람과 함께 들어온 블랑은 잭을 죽음으로부터 구해냈다.

 

  그거에 크게 감명받은 잭은 그 때 결심했다. 그녀와 함께 하겠다고. 살인귀로서 세상에 널리 퍼져있는 쓰레기들을 모두 정리해 잘못된 이 세상을 고치겠다고.

 

  이것이 잭이 살인귀가 된 경위지만 블랑이 어쩌다 살인귀가 되었는지는 자세히 알지 못한다. 몇 번 물어본 적은 있었지만 그럴때마다 그녀는 얼버무리듯 대답했었다.

 

  "보아하니 말해주기 싫었나보군."

  "……블랑이 저에게 뭔가를 숨기고있단 거예요?"

  "그래. 하지만 나쁜 의도는 아닐거야. 나쁜 이유는 더더욱 아닐테고."

 

  잭은 우물쭈물해하며 길버트를 보았다.

 

  "혹시, 알고있어요? 블랑의 과거에 대해."

  "알고있다마다. 하지만 아직 말은 못 해주겠군. 블랑이 너에게조차 말하지 않은 것을 보면, 남의 입을 통해 알려지는 것은 더더욱 싫어할테니까."

 

  정론이었다.

 

  본래 이곳에 찾아온 이유는 길버트가 축제에 참여하는지 안하는지에 대한 여부였건만, 새로운 궁금증이 생겨버렸다. 그녀가 자신에게 무언가를 숨기고있다니. 잭으로서는 생각해본 적도 없는 내용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그는 알고있다. 블랑이 자신을 속이고 있을리는 없다는 것을. 그 첫만남에, 그간 지내온 나날들을 생각했을 때. 잭은 곧바로 미소를 띠었다.

 

  "기분 나쁘지는 않나?"

  "전혀요. 그럴게 알고있거든요. 블랑이 저를 속일리가 없다는 것을. 분명 아직은 말해주기 힘든 내용이겠죠. 그럼 기다릴거예요. 블랑이 말해줄때까지."

 

  길버트는 "호오."하며 약간의 감탄이 섞인 소리를 내었다.

 

  "그나저나 길버트는 블랑과 언제부터 알고지냈어요? 저랑 블랑이 만나기 전부터 서로 알고있던 사이같은데."

  "흐음. 너가 블랑과 알고지낸지 8년이랬으니……. 그럼 난 11년 됐구만."

  "11년……."

 

  잭은 자연스럽게 어지럽혀진 거실에 놓여있는 의자에 앉았다. 약간 곰팡내가 올라오긴 했지만 못참을 정도는 아니었다. 어느새 코가 이 지저분한 집에 적응한 것일까.

 

  앉은 데에는 이유가 있다. 그 이유를 바로 알아챈 길버트는 머리를 한 번 긁적였다.

 

  "많은 내용은 못말해주겠군. 그러니까……. 그 때의 나는 떠돌이 정보상인이었고. 으음……."

 

  길버트는 기억을 되짚으며 열심히 지금 시점에서 말할 수 있는 내용들을 추려냈다.

 

  "젠장. 그녀의 과거 없이는 말할 수 없구만. 나중에 블랑한테서 직접 들으라고."

  "그건 좀 아쉽네요. 어쩔 수 없죠."

 

  잭이 의자에서 일어나 문으로 향하자 길버트는 그를 마중해주려는 듯 그쪽으로 다가갔다. 문을 살짝 열자 차가운 바람이 집으로 조금 들어왔다. 길버트는 반사적으로 양팔을 붙잡아 자신의 몸을 꼭 껴안았다.

 

  "블랑한테 바로 물어볼건가?"

 

  그 물음에, 잭은 잠시 생각하는 듯 하더니 어딘가 씁쓸한 눈웃음을 지어보이며 대답했다.

 

  "아뇨. 때가 되면 물어볼라고요."

 

  짧게 대답하고 잭은 길버트의 집을 나서 자신의 집으로, 블랑이 있는 집으로 향했다.

 

  집에 도착하자 여느 때와 다름없이 블랑이 인사를 해주었다. 잭은 손을 들며 인사를 받아주었다.

 

  블랑이 자신에게 무언가를 말해주지 않았어도, 고작 그 정도로 블랑에 대한 잭의 신뢰는 쉽게 깨지지 않는다. 그저 묵묵히 기다릴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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