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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로맨스
예쁜 남자
작가 : 린비
작품등록일 : 2019.8.18

뇌가 예쁜 남자(지 잘난 맛에 사는 놈) 첫째 오빠 전도준. 전화번호부가 예쁜 남자(어장관리 오지는 놈) 둘째 오빠 전도민. 재력이 예쁜 남자(돈 지랄 하는 놈) 하숙생 오라한. 이 모든 남자들에 치이고 사는 나. 대한민국 어느 이상 가족의 우애, 자식 사랑, 우정을 말하다. 그리고 아주 조금의 연애 감정도? 지극히 현실형 로맨틱 코미디 드라마.

 
03. 둘째 오빠, 그리고 오라한
작성일 : 19-09-06 13:20     조회 : 445     추천 : 7     분량 : 68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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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쁜 남자』

  W.린비

 

 

 

 

 

 

 

 

 03. 둘째 오빠, 그리고 오라한

 

 

 

 

 

 

 첫째 오빠를 피해 다른 파스타 식당에 왔는데, 옆옆 테이블에 둘째 오빠가 데이트를 하고 있는 이 상황은 대체 뭘까.

 우리 뭐 파스타 가족이야? 파스타 가게란 가게에 다 영역 표시하고 다니는?

 

 나는 오빠가 우리를 발견할까봐서 줄곧 메뉴판으로 얼굴을 가리고 있었다.

 

 

 " 뭐해, 삐삐? "

 

 " 오빠, 우리 딴 데 가면 안 될까. "

 

 " 왜? 여기 별로야? "

 

 " 아니, 그게 아니라…들어오면서 못 봤어? "

 

 " 뭘? ”

 

 “ 도민 오빠. ”

 

 “ 도민이? 봤어. "

 

 

 근데 아무렇지 않아?

 

 옆에 전도민이 앉아있든 고릴라가 앉아있든 상관없다는 말투였다.

 

 나는 특수 요원 급으로 신분(?)을 숨겨있던 것이 머쓱해져 메뉴판을 슬쩍, 내려놓았다.

 

 

 하기사 도민 오빠는 지금 여자한테 한 눈이 팔려서 주변을 살필 겨를이 없어보였다. 우리가 식사를 다 하고 나갈 때까지 눈치 못 채는 게 가능할지도.

 

 그나저나 저 언니는 누구야. 처음 보는데.

 

 둘째 오빠는 어떻게 볼 때마다 여자 친구 얼굴이 바뀌어있는지, 저것도 능력이었다.

 

 

 " 삐삐, 그만 엿보고 메뉴 골라. "

 

 " 여,엿 본 거 아냐. "

 

 " 그래, 음료는 뭐 먹을래? 에이드? "

 

 " 에이드도 있어? 그럼 난 레몬 에이드!! "

 

 

 나년. 기껏해야 레몬 반 개 짜 넣은 음료를 왜 그리 흥분해 싸서 외쳤을까.

 

 우람한 내 목청에 옆옆 테이블의 여인께서 돌아봤다. 그녀의 동행자인 전도민도.

 

 

 이런 젠장.

 

 전도민이 나를 발견했다.

 

 

 " 어라, 돼지? "

 

 

 집에서는 내게 개미 눈곱만큼의 관심도 갖지 않는 오빠지만, 밖에서는 세상 친한 남매인 척을 했다. 특히 여자가 앞에 있을 때는 그 가식이 배가 되었다.

 

 책에서는 그런 걸 두고 인격 장애라고 하던데. 자아가 여러 개여서 필요한 상황에 딱딱, 맞춰 꺼내놓는 것 말이었다.

 

 마주칠 때마다 제 지인들 앞에서 나를 돼지니 식충이니 하며 놀려대어서, 나는 둘째 오빠라면 무조건 피하고 봤다.

 

 그런데 한참 잘 숨어 다니다가 이게 뭐람.

 

 

 탄식하는 사이, 도민 오빠가 여자를 데리고 다가왔다.

 

 아니, 왜 오는데. 오지마! 오지마!

 

 나는 두 사람이 우리 테이블 앞으로 행차할 때까지 두 눈을 질끈 감고 있었다.

 

 

 전도민이 내가 든 메뉴판을 내려 면전을 확인하곤 외쳤다.

 

 

 " 여어, 맞네~ 돼지! "

 

 

 여자가 호기심 어린 눈으로 물었다.

 

 

 " 누구에요, 오빠? "

 

 " 응. 인사해, 우리 집에서 키우는 돼지야. "

 

 

 개새끼. 대기권 밖으로 쏘아버릴 뻔 했어. 그러는 넌 우리 집에서 양식하는 오징어다!!

 

 나는 쪽팔림을 누르고 적당히 놀란 척을 곁들여 올려봤다.

 

 

 " 어, 오빠. 여기서 다 보네. "

 

 " 그러게. 기분 안 좋은 일 있냐 돼지? 왜 또 파스타 집에 있냐. "

 

 " 그냥. 라한 오빠가 사준다고 해서. "

 

 " 그렇군. 오라한, 너 새낀 나 봤으면 아는 척 좀 하지. "

 

 

 라한 오빠가 빙긋이 웃으며 고개를 까딱였다. 예쁜 여자를 봐서인지 입을 떼지 않을 모양이었다.

 

 이 오빠도 가오 잡네, 가오 잡아. 어휴. 남자란 족속들.

 

 

 " 아무튼 돼지. 인사해. 여기는 내 학교 후배. "

 

 

 여자는 오빠의 여자 친구가 아니었던 모양이었다. 하기사 애인이 있었다면 오빠는 지금 여기가 아니라 딴 데서 뒹굴고 있겠지.

 

 나는 난생 처음 보는 여인네에게 소금처럼 쭈그러 들어 인사했다.

 

 

 " …안녕하세요. "

 

 

 그에 여자가 웃음 지으며 안녕하세요, 라 맞인사했다. 어쩐지 라한 오빠를 보고 하는 것 같았지만.

 

 만인의 오작교 전도민씨께서도 그 시선을 놓치지 않고 본 모양이었다. 도민 오빠가 난데없이 제안을 던졌다. 정말이지 청천벽력 같은.

 

 

 " 우리 합석할까? “

 

 

 내가 기겁을 하고 고개를 들었지만, 여자는 '네' 하고 답하며 라한 오빠 옆자리로 엉덩이를 붙였다.

 

 음흉한 낯의 전도민과 살레 살레 웃는 여자를 나는 한동안 얼이 빠져 바라보았다.

 

 …뭐야?

 

 

 

 

 ***

 

 

 

 라한 오빠가 메뉴판으로 시선을 돌린 지 꽤 되었는데, 여자는 여전히 웃음 서린 눈으로 오빠를 응시하고 있었다.

 

 뭐지. 이 범상치 않은 분위기. 아무래도 여자가 라한 오빠에게 관심을 보이는 것 같았다.

 

 전도민이 내 옆구리를 툭툭, 치며 저 둘이 그림 좋지 않느냐는 듯한 눈빛을 했다.

 

 

 오빠 새끼는 자기 어장도 어장이지만, 남들 어장을 채워주는 걸 좋아했다. 호감을 보이는 두 남녀를 이어주곤 두 사람이 잘된 건 제 덕이라며 대가를 쏙쏙 받아 챙겼달 까.

 

 사람 일에 관여도 정도껏이지 내 입장에선 이해 못할 짓이었다.

 

 왜 고생을 사서 해? 언젠가 물은 내게 도민 오빠는 답했다.

 

 

 " 그러는 넌 고생은 고사하고 노력이라도 좀 해보는 게 어떠칸. 응? 모쏠이시여. "

 

 

 됐다. 말을 말지.

 

 나는 그냥 오빠 새끼가 애정 결핍이란 결론을 내렸다.

 

 

 좌우당간 내가 낯을 얼마나 가리는데, 모르는 이와 덜컥 앉아서 밥을 먹게 되었는지. 그것도 한 집 사는 오라버니한테 노골적으로 관심을 보이는 여자와 말이었다.

 

 라한 오빠도 내치지 않고 있는 걸 봐서, 관심이 싫지 않은 눈치였다.

 

 나는 어쩐지 기분이 꽁기꽁기해지는 걸 느끼며 메뉴판의 같은 자리를 읽고 또 읽었다.

 

 

 " 삐삐, 먹고 싶은 거 골랐어? "

 

 

 왜인지 모르지만 그 순간 라한 오빠의 말을 못 들은 척했다. 여자가 그 틈을 치고 들었다.

 

 

 " 저는 크림 파스타요, 오빠. "

 

 

 조물주님은 참 불공평하시지. 저렇게 예쁜 여자한테 저렇게 예쁜 목소리까지 주시면 나 같은 순대가 어떻게 뒤를 이어 답하라고.

 

 

 " 삐삐 너는? "

 

 

 라한 오빠가 재차 물었지만, 나는 걸걸한 목소리가 신경 쓰여 입을 떼지 않았다.

 

 도민 오빠가 혀를 끌끌 찼다.

 

 

 " 아직도 못 골랐냐, 돼지? 하여간 다 먹고 싶어서 그러지? "

 

 

 그렇다, 어쩔래!

 

 나는 자존심에 상처를 입고 빨대를 우물이며 창밖을 내다봤다. 라한 오빠는 그 모습을 물끄러미 보다 파스타 다섯 개를 몽땅 시켰다.

 

 저 저 돈지랄. 여자 앞이라고 더 후하게 사주는 것 봐. 그래, 재력 예쁜 남자 어디 가시겠어. 아주 자랑하다 못해 과시하고 싶겠지.

 

 

 시킨 음식이 모두 세팅될 때 쯤, 여자가 라한 오빠의 손등을 수줍게 건드렸다.

 

 

 " 저기요, 오빠. ”

 

 

 나는 심장의 좌심방을 건들리는 기분이었다. 돌아본 라한 오빠의 눈빛이 쓸데없이 다정했기 때문에.

 

 

 " 예? "

 

 “ 둘이 사귀시는 건가요? 그러니까, 도민 오빠 동생분이랑…. ”

 

 

 여자의 시선이 애매하게 나를 가리킬 쯤, 전도민이 전광석화의 스피드로 끼어들었다.

 

 

 “ 얘 모쏠이야. 천연기념돼지지. ”

 

 

 이 히밤 놈의 오징어가. 아니라고만 하면 되지 그 사실은 왜 밝혀?

 

 날 건드리길 좋아하는 놈답게 오빠는 괘씸한 말을 골라서 했다.

 

 

 “ 말 나온 김에 소개팅 할래, 돼지? ”

 

 

 발레하는 오징어 따위가 내 외로움에 관여하지마! 기분 나쁘니까! 그리고 해달라 해도 안 해줄 거잖아!!

 

 

 여자가 꽃 같은 웃음을 활짝, 지었다.

 

 

 “ 그죠, 아니죠? 혹시나 맞으시면 실례일까봐 물었어요. ”

 

 “ 네가 그런 오해를 했다는 게 더 실례다. 내 백만불짜리 친구를 감히 돼지 따위에게 이어 붙여? ”

 

 

 그러는 니 놈 새끼의 명줄은 염라대왕의 엉덩짝에 붙이고 싶다!

 

 귀신은 저런 놈 안 데려가고 뭐하나 몰랐다. 처녀 귀신으로 홀려 얼른 데려가 버리지.

 

 

 여자는 새로운 정보를 입수하고 눈을 빛냈다.

 

 

 “ 아, 두 분이서 친구세요? 언제부터 친구이신 거에요? ”

 

 “ 중학교 동창이야. 2학년 때인가? 오라한이 내가 다니던 학교로 전학을 왔어. ”

 

 

 중 2. 둘째 오빠가 한창 지랄 총량의 법칙을 채우고 있을 때였으니 얼마나 더 몹쓸 놈이었겠는가.

 

 조용히 지내고 싶은 라한 오빠에게 오빠 새끼가 하도 말도 안 되게 들이대서, 둘이 머리 뜯고 싸웠다는 소리를 들었던 것 같았다.

 

 뭐 길게 놓고 보면, 전도민의 일방적인 노력 끝에 결국 친해지긴 했지만.

 

 

 여자가 무언갈 기억해내려는 듯 오른쪽 위로 눈을 굴렸다.

 

 

 “ 도민 오빠랑 같은 중학교면 소일중학교겠네요? ”

 

 “ 이야, 토끼. 넌 그걸 기억하냐. 나한테 관심 많구나? ”

 

 

 도민 오빠가 특유의 감탄 추파를 시전했다. 하지만 그보다 날 거슬리게 한 건 따로 있었다.

 

 토끼?

 

 여자가 쑥쓰러운 듯 흘러내린 머리를 귀에 걸며 말했다.

 

 

 “ 아, 제 이름이 기도이인데, 발음이 비슷하다고 주변 사람들이 토끼라 불러요. ”

 

 

 좋으시겠요. 전 생긴 게 비슷하다고 돼진데.

 

 오빠 새끼의 언행이 차별적인 건 알고 있었지만 대놓고 다른 짐승으로 부르는 행태에 잠시 절연을 진지하게 고민했다.

 

 첫째 오빠를 데려오고 싶다. 나의 토낌에 머리끝까지 화나있을 전도준의 주먹으로 전도민 새끼의 죽빵을 날리고 싶어.

 

 

 그제까지 잠잠하던 라한 오빠가 입을 뗐다.

 

 

 “ 암토끼는 싸울 때 수컷 얼굴을 초당 5회까지 갈길 수 있다던데, 주먹 좀 쓰십니까? ”

 

 “ 하하, 네? 뭐야, 웃겨요. ”

 

 

 남자는 호감 있는 여자랑 대화할 때 아이디어 뱅크가 된다고 했다. 대화가 끊기지 않게 하려고.

 

 라한 오빠의 발언은 가히 신박할 정도라 대화하려는 의지가 다분히 느껴졌다.

 

 오라한도 도이씨가 마음에 들었나보네…그래, 내가 봐도 예뻐.

 

 

 나는 조금은 무안한 얼굴로 물 컵에 담긴 빨대를 물었다. 둘째 오빠 새끼의 공격을 제외하면 어떤 말도 내게는 오지 않았다.

 

 상황이 전도민의 의도대로 잘 흘러가고 있었다. 도이씨도 그걸 아는지 주도를 이어갔다.

 

 

 “ 그럼 두 분 고등학교도 같이 나오셨어요? ”

 

 

 나는 빨대를 뽀글대다 말고 멈췄다. 금기어를 들었기 때문이었다.

 

 눈을 굴려 라한 오빠를 보니 전과 같이 웃는 낯이지만 오빠의 입가가 미세하게 휘어지고 있었다. 미소 짓는 것과 반대쪽으로.

 

 

 “ 고등학교 말입니까? ”

 

 

 …일 났다.

 

 나는 급히 도민 오빠의 등살을 쳤다. 주제 돌려, 등신아!

 

 그러나 라한 오빠가 한 발 빨랐다.

 

 

 “ 죄송하지만 전 고등학교 문턱도 못 밟아봤습니다. ”

 

 

 당연한 물음이 때로는 공격이 됐다. 오빠는 성공한 창업의 주인공이었지만 학업 쪽으로는 역사가 짧았다.

 

 

 “ 중졸이란 소리죠. ”

 

 

 돈만 잘 벌면 됐지 학력 따위가 뭐가 대수냐 하겠지만은, 라한 오빠는 학벌주의 때문에 모욕을 겪은 순간들이 꽤 있던 모양이었다.

 

 오빠는 쇼핑몰 직원들을 고용할 때도 학력을 일절 보지 않았고, 내가 수능을 국밥 말고 돌아왔을 때도 유일하게 재수 소리를 하지 않은 이였다.

 

 오죽하면 대학 있는 쪽으로는 볼일도 안 본다고 했으니, 라한 오빠에게 학벌이란 그야말로 치부였다.

 

 그런데 그걸 초면의 상대가 건드려버린 것이었다.

 

 

 그걸 어떻게 아냐고?

 

 라한 오빠는 치부가 쓸리면 말이 많아졌다. 특히 자기비하적인 발언이.

 

 

 “ 흔히들 그러죠. 초등학교 때는 하버드가 조밥인 줄 알다가, 중학교 때는 서울대가 조밥인 줄 알고, 고등학교 때면 자기가 조밥이란 걸 깨닫는다고. 하지만 전 스스로가 조밥이란 걸 남들보다 일찍 깨달았습니다. 왜? 중졸이니까요. 조밥 중의 조밥이었던 거죠. ”

 

 

 와중에 라한 오빠는 말투가 다정다감했다. 그게 사람 피를 말렸다.

 

 

 도민 오빠가 중재에 나섰다.

 

 

 “ 야, 임마 왜 혼자 쉐도우 복싱이야. 도이는 그냥 물은 거야. ”

 

 

 허나 라한 오빠는 폭주를 멈추지 않았다.

 

 

 “ 대학 안 가면 땅을 치고 후회할 것 같죠? 아닙니다. 우주로 날아가 달을 치며 후회합니다. ‘과거의 나’라는 놈의 면상을 쳐서 눈 코 입을 다 풍화시켜버리고 싶은 후회죠. ”

 

 

 도이씨는 한 인간의 자격지심이 몰려오는 소리에 많이 놀란 것 같았다.

 

 그러거나 말거나, 라한 오빠는 계속 나불댔다.

 

 

 “ 나무꾼이 산신령 앞에서 금도끼 은도끼를 고민할 때 전 과거의 나라는 놈을 두고 기계적 풍화를 할까? 화학적 풍화를 할까? 고민했습니다. 보이십니까? 풍화로 깎인 날렵한 이목구비? ”

 

 “ …… ”

 

 “ 요즘엔 연애 할 때도 스펙을 따진다던데 그래서인지 근 몇 년 간 사람을 못 사겨 봤습니다. 계속 우주로 가서 달을 치고 오느라 그럴 시간도 안 나더군요. 덕분에 고독의 극한값을 구하는 중입니다. ”

 

 

 이제는 도민 오빠도 세상 얼빠진 표정으로 앉아있었다.

 

 

 “ 솔로부대 5성장군이 되면 지구상의 별별 소리를 다 듣게 됩니다. 거의 마법사가 되지요. 나일 강에서 손 세척하던 어느 150살 할머니가 그러더군요. 조선 시대 돌쇠도 중졸보단 팔자가 좋았다고. 지구 반 바퀴를 돌아간 곳에서도 저는 박복한 놈이라는 겁니다. 이런, 말하다보니 시간이.”

 

 

 라한 오빠가 돌연 겉옷을 여미며 일어섰다.

 

 

 “ 어,어디 가세요? ”

 

 “ 달 치러 갈 시간입니다. ”

 

 

 평소엔 저렇게까지 하진 않는데, 오늘따라 오빠의 열폭이 심한 것 같았다.

 

 

 “ 농담이고 짜장면 집에 갑니다. 제가 ‘중’졸이라 ‘중’식만 먹거든요. 가방끈 짧은 놈이 감히 지성인들의 데이트 코스라는 파스타 집에 오다니 정신머리 참. ”

 

 “ …… ”

 

 “ 지성인들은 탕수육을 논할 때 부먹이냐 찍먹이냐 묻더군요. 도이씨는 어느 쪽이십니까? 저는 그냥 처먹입니다. 중졸이 부먹 찍먹을 가리다니 있을 수 없는 일이죠. ”

 

 

 오빠의 계속되는 궤변 속에서 도이씨는 다급히 정신을 차렸다.

 

 

 “ 하,학력 그런 건 상관없어요. 요즘엔 학력보다 개성의 시대잖아요? ”

 

 “ 예, 그러실 겁니다. 남 일이니까요. 자기 일이 되면 다들 기를 쓰고 대망의 11월을 준비하지요. ”

 

 “ 저,저는 아니에요. 학창 시절에 공부도 엄청 못했고, 수능도망했었어요! ”

 

 “ 정시가 아니라면 수시겠지요? 전도민처럼. ”

 

 “ …… ”

 

 “ 대한민국에서 학력 신경 안 쓰는 사람 딱 하나 봤습니다. 그게 누군지는 궁금하라고 안 알려줄 겁니다. ”

 

 

 오빠는 참으로 이상한 겁박을 남기고는 정중하게 목례를 했다.

 

 

 “ 그럼 전 이만 달 치러. ”

 

 

 그러자 도이씨의 입에서 거의 애원에 가까운 외침이 나왔다.

 

 

 “ 제,제가 살 테니 드시고 가세요 오빠! ”

 

 “ 아닙니다. 감히 중졸이 대학생들과 겸상을 할 순 없죠. 안 그래, 삐삐? ”

 

 

 나는 그 말을 듣고 냉큼 일어섰다.

 

 그제야 눈치를 채었다. 라한 오빠의 폭주는 이 자리를 벗어나기 위한 술수였음을.

 

 

 논리는 무논리를 이길 수 없었다. 라한 오빠는 이미 오래 전에 그것을 깨달은 것 같았다.

 

 아마도 오빠의 어린 날, 아마도 무자비한 친부의 폭력에 한쪽 귀가 멀어버렸던 날, 아마도 미성년자의 몸으로 돈벌이에 나서며 온갖 고초를 겪었던 나날에.

 

 

 후로 오빠는 더러운 세상에게 이거나 먹으라며, 상상 이상의 무논리를 던지고 어퍼컷을 날리는 중이었다. 아주 기가 막히게.

 

 

 “ 가자, 삐삐. 우리에겐 중식이 어울려. ”

 

 “ 아님 고등어자반집을 갈까? 나 고졸이잖아. ”

 

 “ 그거 참 좋은 생각인데? ”

 

 

 나는 라한 오빠의 뻔뻔함이 좋았다. 세상 사람을 다 벙 찌게 하는 그 무논리를 닮고 싶었다.

 

 고로 ‘중’졸인 오라한 곁에서 외친다. 내 ‘중’지나 먹어랏, 전도민! 이 입냄새 새끼야! 캬악!

 

 

 

 
작가의 말
 

 중고 콤비!

 

 + 오늘도 린비의 글을 찾아주셔서 감사합니다 :)

 모든 선호작 등록, 댓글, 피드백 환영합니다, 애정합니다 ♡

 
 
자신만의 이미지를 등록해보세요
귀차니즘 19-09-06 21:50
 
거절하는 방법도 짱인 라한이 그 와중에 라한이 친부ㅠㅠㅠㅠㅠ 너무해ㅜㅜㅜㅜ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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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zlle 19-09-06 23:25
 
라한이ㅋㅋㅋㅋ어휘력이ㅋㅋㅋㅋㅋ무논리인뎈ㅋㅋㅋㅋㅋㅋㅋ어휘력이 장난이아니네요! 달 치러 간뎈ㅋㅋㅋ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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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돋은흥순이 19-11-23 12:05
 
신박한 거절인데..??라한아 너의 어휘력에 박수를!!!ㅋㅋㅋㅋㅋㅋ대단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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