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략부장 김아름은 일부러 회의실에 30분 늦게 도착했다.
‘그런 낙하산 인사는 초장부터 기를 확실히 잡아놔야 해.’
물론 공손하게 대하라는 아버지의 말은 기억하고 있다.
하지만 회사에는 회사의 위계가 있고, 자신은 지금 정욱의 상사다. 그것이 망가지면 부서의 전체적인 분위기가 어수선해진다.
‘그러니 처음부터 길을 들여놔야 해.’
아름은 당당한 걸음으로 회의실에 들어섰다.
헌데 정욱은 없었다.
비서실장 최태훈만이 입을 멍하니 벌린 채 앉아 있었다.
“…비서실장?”
아름의 부름에 태훈은 황급히 자세를 고쳤다.
“아, 부장님.”
“신입은 어디갔어요?”
“그게….”
태훈은 몇 번 입을 열었다 닫았다. 그리고 간신히 입을 뗐다.
“갑자기 사장님하고 통화하더니… 귀찮게 하지 말라 말하고는 나가버렸습니다.”
아름은 눈을 깜빡거렸다. 이해가 되지 않는 듯 했다. 잠시 생각하던 그녀는 천천히 되물었다.
“사장님이 그 사람에게 귀찮게 하지 말라고 말했다구요?”
태훈은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
“아뇨…. 정욱 씨가 사장님께 귀찮게 하지 말라고….”
아름은 눈을 연달아 깜빡였다. 곧 말 뜻을 이해한 그녀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미친….”
험한 말이 터져나오려는 것을 간신히 억눌렀다.
머리가 다 지끈거렸다. 아름은 서류를 내려놓고 관자놀이를 문질렀다.
아무래도 둘 중 하나인 것 같았다. 단단히 미친 놈이거나, 아니면 그 이상의 거물이거나.
‘이정욱…. 대체 어느 쪽인거야?’
그에 대해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아름의 머릿속은 복잡해져만 갔다.
*
김권태 사장이 배정해 준 곳은 지하 3층의 한 창고였다.
원래는 천정 끝까지 갖은 상자들로 들어차 있었지만 수많은 직원들이 몰려들자 불과 몇시간 만에 텅 비어버렸다.
그렇게 모두 치우고 나니 공간은 매우 넓었다.
‘백 평 정도라고 했지?’
나는 그 중앙에서 팔짱을 끼고 공간을 조망했다. 필요한 것과, 그것들의 효율적인 배치도를 머릿 속으로 그려보았다.
한참을 그러고 있자니 비서실장, 최태훈이 머뭇거리는 발걸음으로 창고에 들어왔다.
표정을 보니 아직 아까의 쇼크에서 벗어나지 못 한 것 같았다.
하지만 뭐, 금방 적응될 것이다.
“태훈씨. 필요한 것들이 있어요.”
나는 그에게 필요한 물품의 리스트를 쭉 나열했다. 태훈은 재빨리 핸드폰을 꺼내 그것들을 받아적었다.
“얼마나 걸릴까요?”
내 물음에 태훈은 잠시 리스트를 내려보더니 자신 없는 표정으로 대답했다.
“…적어도 사흘은 필요합니다.”
“이틀 드릴게요.”
대답은 없었다. 하지만 상관 없었다. 해내야만 할테니까. 사장의 머리 위에 서 있는 자를 거스르고 싶지 않다면 말이다.
“아, 그리고 도배도 새로 해주세요. 흰 색이 좋겠네요.”
태훈은 말없이 고개를 끄덕이며 핸드폰에 내용을 적어내려갔다.
*
곧장 집으로 돌아온 나는 컴퓨터에 정보를 입력하기 시작했다.
내가 기억하는 앞으로의 일정과 주요인물들의 정보였다.
‘다음 경기까지 한 달.’
예선의 매 경기는 한 달을 주기로 벌어졌다. 그렇게 반 년이 흐른 뒤, 본선이 시작된다.
‘그리고 다음 경기부터는 룰이 바뀐다.’
이제까지는 지역을 단위로 불특정 다수의 인간을 한 경기장에 몰아놓고 1%의 승자를 뽑았다면, 이제부터는 백 명 단위로 게임이 진행되어 최후의 1인만을 가린다.
그 1명만이 다음 경기로의 진출이 허락된다.
‘이제부터가 본격적인 유니버설 그라운드다. 한 번의 실수조차 용납되지 않아.’
승자는 백 명 중 단 하나. 그렇게 다섯 번을 이겨야 지구의 리더가 될 수 있다.
이는 만만치 않은 일이다. 경기 중엔 변수가 많기 때문이다.
단지 회귀자라는 이유만으로 이기기엔 너무도 힘든 게임이다.
‘준비해야 해.’
철저히 준비해야 모든 것을 바로 잡을 수 있다. 그것을 위해 설계한 특수부서였다.
*
이틀 뒤, 대한 건설의 지하에는 ‘특수연구부’라는 팻말을 가진 부서가 창설되었다.
지하 3층의 창고를 리모델링해서 신설한 부서. 회사의 간부들은 모두가 그 곳에 촉각을 기울였다. 그도 그럴 것이 김권태 사장이 ‘아무런 관심도 보이지 말라’고 엄포를 놓은 탓이었다.
덕분에 나는 주위의 이목을 신경쓰지 않고 사내를 돌아다닐 수 있었다.
“태훈 씨, 부탁한 건 다 들어왔겠죠?”
뒤에서 나를 따르던 태훈의 대답이 들려왔다.
“물론입니다, 부장님. 오늘 새벽에 도착해 오전 9시에 설치완료했고, 여러가지를 테스트하는 중이었습니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솔직히 기대하지 않았다. 그만큼이나 얻기 힘든 물건이니까.
‘수완이 좋아.’
대한 그룹의 위광도 있었겠지만, 이 정도로 일 할 수 있는 자는 드물다. 태훈의 능력은 확실히 인정할 만하다.
‘아무래도 내 사람으로 삼아야겠어.’
수완이 좋고, 보고가 확실하다. 이 정도면 수족으로 쓰기에 딱 좋은 자다.
‘있다가 사장한테 전화해서 내 밑으로 붙여달라고 해야겠다.’
일단 오전에 이 쪽 일을 마치고 점심 시간에 전화하면 될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며 나는 특수연구부의 문을 열고 들어섰다. 기계 장치에 달라붙어 있던 연구원들의 고개가 일제히 나를 향했다.
““안녕하십니까, 부장님.””
나는 모두의 인사에 웃으며 화답했다.
“안녕하세요.”
부하직원이라해도 말을 함부로 하지 않는다. 그런 젠틀함에서부터 인성이 보이고 존경심이 따른다는 것을 나는 알고 있었다.
“지금 바로 가동이 가능한가요?”
나의 질문에 연구팀장이 안경을 고쳐 쓰며 답했다.
“조금만 더 기다려 주시겠습니까. 사소한 몇 가지 테스트를 더 진행해봐야 할 것 같아서 말입니다.”
새벽부터 출근해 열심히 일하던 직원들이었다. 굳이 더 닥달할 필요는 없었다.
알겠노라고 간단히 대답하며 나는 연구부서의 반대쪽으로 발을 옮겼다.
그 곳에는 수많은 모니터들이 배치되어 있었다. 보안팀의 상황실을 방불케 하는 모습이었다.
한 가지 다른 점이라면, 모니터들은 회사의 내부가 아니라 각각 다른 장소의 다른 이를 비추고 있었다.
조사팀장이 나의 접근에 자리에서 재빨리 일어났다.
모든 모니터가 한 눈에 보이는 위치에 마련된 내 자리에 앉자, 조사팀장이 재빨리 서류를 내 앞에 깔았다.
스무 장의 서류는 모두 상당한 분량이다.
“전부 찾으셨군요.”
내 말에 조사팀장이 재빨리 대답했다.
“부장님이 알려주신 정보가 워낙 정확해서 쉽게 찾을 수 있었습니다.”
나는 서류를 대강 훑어본 다음 모니터를 확인했다.
“감시인원은 어떻게 배정되었습니까?”
“타겟 한 명당 여섯 명을 배치해 이인 일조로 8시간씩 번갈아 감시하고 있습니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모니터가 감시하고 있는 대상은 서류에 실린 이들과 동일한 인물이었다.
사는 곳도, 직업도 성별도 모두 다른 그들은 바로 최후의 그라운더. 회귀 전에 최후의 20인으로써 군림하던 자들이었다.
물론 아직은 두각을 드러내지 않고 있었다. 하지만 미리 감시를 하며 상황을 파악해 두는 것이 앞날을 위해서도 유리하리라.
내가 알고 있는 그들의 개인 정보를 기반으로 조사팀이 타겟을 찾아내 감시를 시작한 것이 어제 밤부터였다.
타겟 한 명당 세 명의 감시자, 감시자의 의복에 부착된 카메라와 연결된 마흔 대의 모니터.
‘어떻게 봐도 범죄지.’
외부에 누설된다면 법적 처벌은 물론이고 사회적으로 매장당할 수도 있는 일이다.
‘그래도 이건 필요한 일이다. 놈들에 대한 정보를 알아야 나중을 도모할 수 있으니.’
들키기라도 한다면 저들과의 관계가 틀어질 수도 있지만 큰 상관은 없었다. 어차피 들키지 않으면 되니까. 설사 감시원들이 발각되어도 나와의 연결고리를 발견하는건 거의 불가능한 일이다.
나는 다시 고개를 내려 서류들을 확인했다. 꽤 긴 시간을 들여 정보를 모두 검토했다. 그들이 누구를 만났고, 어디에 갔었고, 무엇을 먹었는지까지 그들의 일거수일투족이 모두 적혀 있었다.
그 중에서도 내가 지시한대로, 그들의 재산 상황이나 사회적 위치에 어울리지 않는 사건들은 굵은 글씨로 적혀 있었다.
대학생이 한 끼에 수십만원을 호가하는 식당에 들렀거나, 노가다판을 전전하던 남자가 모델과도 같은 아리따운 애인이 생겼다거나, 그런 것들이었다.
서류를 모두 확인하자 한 가지 결론에 도달할 수 있었다.
‘모두들 권속을 부리고 있다. 스무 명 모두 개막전에서 살아남았구나.’
당장은 그것을 확인한 것만으로 충분했다. 서류를 내려놓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마침 연구팀장도 마지막 테스트를 끝낸 참이었다.
“부장님. 지금 바로 사용하시겠습니까?”
“지금 가능합니까?”
“옷을 갈아입고 오시면 바로 시작하겠습니다.”
나는 구석에 마련된 탈의실에서 트레이닝복으로 갈아 입었다.
이후 팀장이 다가와 끈 무더기 같은 것을 내게 건넸다. 센서가 달린 특수복이었다.
‘좀 무거운데?’
나는 연구원들의 도움을 받아 특수복을 보행 보조기구 위로 올라갔다. 그리고는 VR기기를 머리에 썼다.
미군에서 훈련용으로 사용하는 DSTS(Dismounted Soldier Training System)의 개량버전이었다.
DSTS가 단순 가상현실 FPS 게임과 다른 점이라면, 실제 육체 정보가 반영되는데다 육체적 피로 또한 느낄 수 있다는 것이었다.
신체 정보를 반영시켜주는 VBS(Virtual Battle Space) 프로그램. VBS는 입력된 신체 정보를 기반으로 아바타를 생성하고 이를 DSTS가 생성한 전장에 떨어뜨린다.
그렇기에 이 아바타는 실제 육체와 같은 체력적 한계를 갖는다. 전투가 지속되면 명중률이 떨어지고, 일정 이상의 거리를 이동하면 보행보조기구가 다리의 피로를 재현하는 것이다.
그렇기에 DSTS와 VBS를 조합하면 전장을 매우 현실적으로 경험할 수 있다.
“그럼, 프로그램 가동하겠습니다.”
연구팀장의 말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윽고 어둠 뿐이던 HMD에 빛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나는 시가지의 한복판에 덩그라니 서 있었다. 사방을 둘러보니 그곳은 뉴욕의 시내였다. 타임스퀘어 앞의 텅빈 도로는 현실감 만큼이나 이질적이었다.
‘서울이 아닌 건 아쉽지만, 미제품이니 어쩔 수 없겠지.’
손에 느껴지는 묵직한 무게감과, 걸을 때 다리에서 느껴지는 저항감도 현실과 똑같았다.
‘솔직히 별 기대 안 했었는데 이건 꽤나 훈련이 되겠는걸.’
그 때 시내 깊숙한 곳에서 총성이 울렸다.
미리 설계된 서바이벌 상황이었다.
연구팀에 의뢰해서 설계한 ‘오퍼레이션 유니버셜’ 작전이었다. DSTS에서 제공하는 군사작전 상황 중엔 이 같은 것이 없어 연구팀을 시켜 직접 만든 것이었다.
‘좋아. 그럼 어디 얼마나 잘 만들었나 체험해볼까.’
나는 총성이 울리는 건물 안으로 발을 옮겼다.
입구 부근의 M500, 펌프액션식 샷건을 들고 진입하자 로비에서 십 수명의 사람들과 마주쳤다. 그들은 아무것도 들지 않은 채로 나에게 무턱대고 달려들었다. 마치 좀비떼를 보는 것 같았다.
‘어휴…. 아직 미완성이군.’
나는 샷건을 갈겨대며 이들을 정리했다. 총알이 다 떨어진 이후에는 로비 한쪽에서 주운 야전삽으로 이들을 해치웠다.
한바탕 살육이 끝나고, 난 흠뻑 젖은 몸으로 VR기기와 특수 복장을 벗었다.
옆에서 연구팀장이 땀을 닦을 수건을 건넸다.
“어떠셨습니까?”
“아…. 손 볼 부분이 아직 많군요.”
가장 큰 문제점은 적을 보자마자 달려드는 좀비같은 AI. 적이 이렇게 움직여선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
일반적인 사람이 생존을 위해서 움직이는 패턴을 좀 더 학습시켜야 할 것 같았다.
“미팅이 필요할 것 같군요.”
나는 연구팀장을 불러 회의실로 들어갔다. 그에게 한시간에 걸쳐 보완점을 설명했다. 이를 모두 들은 팀장이 자신이 정리한 노트를 들여다보며 입을 열었다.
“이건 마치… 서바이벌 게임 같군요.”
“맞아요. 바로 그겁니다.”
나는 손가락을 튕기며 고개를 끄덕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