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명 중 단 한 팀의 승자만이 인정받는 게임.
아니, 이것은 게임이라기보다는 전쟁에 가까웠다. 이기기 위해선 살아남아야 하기에, 이기기 위해선 자신을 제외한 모든 이들을 죽여야 하기에.
그 끝에서 최후의 팀에게 주어지는 보상은 그들이 싸웠던 땅, 대지였다.
그리고 그 대지 위의 모든 것들은 승자의 소유물이 된다. 동물과 식물, 건물, 심지어는 ‘주민들’까지도.
온 우주의 행성에서 열리는 치열한 점령전쟁.
이를 ‘유니버셜 그라운드’라 부른다.
* * *
스코프 너머로 옵시디언인 한 명이 건물의 내부로 숨는 것이 보였다.
놈의 위치를 가늠하며, 나는 창 안 쪽으로 방아쇠를 당겼다.
타앙
머즐 플레시와 함께 날아간 탄은 건물의 내벽에 부딪힌 뒤 여러 조각으로 흩어지며 방 안을 난도질했다.
철컥, 노리쇠를 당기자 볼트액션 식의 저격소총은 탄피를 뱉어냈다. 탄착시 조각이 여러 갤래로 나뉘며 일정 범위를 헤집는 ‘갈래 마탄’의 탄피였다.
나는 손목의 상황 표시기를 확인했다.
[남은 생존 팀 : 2팀]
생존 팀의 수를 알리는 숫자가 3에서 2로 줄었다.
“옵시디언팀 전멸 확인.”
리더는 아무 말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의 헬멧 끝자락에 빗물이 고여 떨어지고 있었다.
3인으로 이루어진 지구인 팀은 길을 따라 전진했다. 파괴된 도시는 먹구름과 같이 우중충한 잿빛이었다.
우리의 마지막이 될지도 모르는 싸움을 슬퍼하고 있는 걸까? 하늘에서는 끊임없이 빗방울이 떨어지고 있었다.
지구 팀은 유니버셜 그라운드에서 연패했다. 이번 경기에서조차 패한다면 지구인들은 영원히 외계 종족의 노예가 되어 살아가야 했다.
‘내가 조금만 더 일찍 합류했었다면….’
그랬다면 연패하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 이렇게까지 지구가 극한의 상황에 몰리지는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지나간 일을 곱씹어 무엇 하리오, 나는 한숨과 함께 애써 잡념을 떨쳐냈다.
중요한 건 현재다. 그리고 이번 싸움을 시작으로 이겨나간다면 전 지구의 영토를 수복하는 것도 꿈만은 아니야.’
하지만 그 때, 총성과 함께 가장 선두에 있던 팀원 하나가 나가떨어졌다.
“에아트 인들이다! 엄폐해!”
나는 재빨리 인근의 건물 벽 뒤에 엄폐했다. 리더는 쓰러진 아군을 끌고 반대편 건물에 엄폐했다.
에아트 인들은 저격 스킬을 극한까지 찍어 1키로미터 밖에서도 파리의 날개까지 맞출 수 있는 놈들이었다.
위치가 먼저 노출되어 선제공격을 허용하고 말았다. 총격전에서 이는 패배로 이어질 수 있는 치명적인 실수였다.
하지만 절망적이지만은 않았다. 이로써 우리도 놈들의 위치를 알아냈으니. 이제 문제는 누가 먼저 적을 말살할 방법을 떠올리느냐였다.
나는 머리를 짜내며 고개를 돌려 길 건너편의 리더와 팀원을 바라봤다.
리더는 팀원의 상처를 지혈하고 있었다. 그 때, 팀원의 상처 위로 어떤 술식이 떠올랐다.
매우 익숙한 모양의 술식. 이를 알아본 나는 재빨리 소리쳤다.
“폭발 마탄이다!”
나의 외침에 리더는 재빨리 몸을 굴렸다. 하지만 그가 폭발의 범위에서 벗어나기 전에 마탄이 폭발했다.
콰앙, 하는 소리와 함께 리더는 내 곁으로 형편 없이 처박혔다.
“쿨럭!”
피를 토하는 리더를 재빨리 바로 눕혔다. 생각보다 상태가 심각했다. 이미 리더의 옷은 새빨갛게 물들어 있었다.
하지만 의약품은 전부 아까의 폭발에 날아가 버렸다. 내가 할 수 있는 거라고는 지혈 밖에 없었다.
“…젠장!”
여기까지인가.
혼자서는 결코 저격의 민족이라고까지 불리는 에아트인 팀을 이길 수 없다.
조금만, 아주 약간만 내가 더 성장했더라면 가능성이 있었을 텐데…!
툭, 하고 무언가 내 손을 건드렸다.
고개를 들어보니 리더가 나에게 무언가를 건네고 있었다. 금색 포장지의 드링크였다.
“……!”
눈을 크게 뜨고 리더의 눈을 마주 봤다.
“리더. 어째서 이걸 나에게…?”
리더는 입가에 희미한 미소를 지었다. 입꼬리의 끝에서 피가 한 줄기 흘러내렸다.
대답은 없었다. 하지만 그 뜻은 충분히 전달되었다.
“리더….”
떨리는 손으로 드링크를 건네받았다. 하지만 그것을 마실 엄두가 나지 않았다.
‘이걸 내가 마셔도 될까?’
나는 망설였다. 이 드링크의 의미를 잘 알고 있었기에. 이걸 마시면 어떻게 되는지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기에.
그 때, 떨리는 내 손을 리더의 손이 덮었다. 리더는 나를 보며 고개를 굳게 끄덕였다.
“…리더….”
타앙, 나를 찾는 총성이 울려 퍼졌다.
이제 시간이 없었다. 놈들은 내 위치를 알고 있었고, 아마 나를 죽일 방법도 세웠을 것이다. 곧 내 목숨은 날아간다.
지금 내가 선택할 수 있는 길은 하나뿐이다.
후우, 숨을 길게 내쉬고 마음을 굳게 먹었다.
“알겠어, 리더. 내가 반드시 해낼게.”
마지막으로 리더의 눈을 바라본 뒤, 단숨에 드링크를 들이켰다.
*
“…응시자, 82번 응시자. …이봐요, 이정욱씨!”
문득 정신을 차려보니 누군가 나를 부르고 있었다.
“설마 면접 중간에 조신 겁니까 지금?”
중년의 사내가 매서운 눈으로 쏘아봤다. 약간의 두통에 관자놀이를 누르며 주변을 둘러봤다.
어딘가의 사무실이었다. 내 옆으로는 가슴팍에 번호표를 단 젊은 남녀가 앉아 있었고 맞은편에는 책상 너머로 중년의 사원들이 앉아 있었다.
“면접… 중이었나.”
“뭐라구요?”
내 혼잣말을 들은 면접관이 어이없다는 듯 웃음을 흘리며 양 옆의 면접관들을 돌아봤다.
“이봐요 82번 응시생. 뭐 기면증이라도 있습니까? 그게 아니라면 지금의 이 행위는 큰 감점요소일 수밖에 없습니다.”
주머니에서 핸드폰을 꺼내 날짜를 확인했다.
[20XX년 9월 12일.]
2년 전이다. 확실히 과거로 돌아왔다.
“저기요 응시생! 지금 뭐하는 겁니까 면접 중에?”
“아, 죄송합니다.”
핸드폰을 주머니에 넣으며 사과했다. 사과는 대부분의 상황에서 사태를 키우지 않고 넘어갈 수 있게 해주는 유용한 대화수단이었다.
“후우…. 좋아요. 그럼 질문을 마저 하죠. 82번 응시생은 앞서 봉사 동아리 활동을 예시로 자신을 정의롭고 희생적인 사람이라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회사라는 것이 부당한 지시가 내려질 수도 있는 곳이죠….”
하지만 나는 면접관의 질문에 귀를 기울이지 않았다. 지금 면접이니 취업이니 그런 건 중요하지 않았다.
리더가 나에게 건네준 드링크.
그것은 지구 최후의 20인의 그라운더가 자신들이 가진 모든 것을 맞바꾸어 간신히 구한 인류의 비장의 카드, ‘회귀 포션’이었다.
그러니 나는 대비해야만 했다. 앞으로 다가올 전쟁에서 인류를 승리로 이끌기 위해.
마음을 굳게 먹고 심호흡을 했다.
“…아.”
잠깐만. 지금이 12일이라고?
황급히 핸드폰을 꺼내 시각을 확인했다.
[9월 12일 10시 14분.]
오늘은 유니버설 그라운드의 개막전이 열리는 날이었다.
“이봐요, 응시생!”
참지 못한 면접관이 책상을 내려치며 언성을 높였다.
“지금 뭐하자는…?!”
그 말을 끊으며 나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죄송합니다. 정말 급한 일이 있어서... 죄송합니다!”
황급히 면접실 문을 열고 뛰쳐나왔다. 밖의 의자에 앉아 대기하고 있던 응시생들이 눈을 동그랗게 뜨고 나를 올려봤다.
그들이 보기에 나는 수많은 응시생들 중 하나일 것이다. 실제로 회귀 전의 나는 그들과 같은 처지였다.
하지만 이제는 아니다. 몇년이나 공부해서 가망없는 면접을 보는 것도, 면접관의 질문에 쩔쩔매는 것도 이제 끝이었다.
유니버설 그라운드가 시작되면 이 모든 건 아무런 의미가 없어진다.
‘지금 대비할 건 면접 따위가 아니야.’
복도를 달려 계단을 뛰듯이 내려왔다. 걸리적거리는 양복상의와 넥타이를 벗어 대충 아무 쓰레기통에나 던져 넣었다.
“택시!”
회사 앞에서 택시를 잡았다.
“어디로 갈까요?”
“대한 건설 본사로 가주세요.”
개막전이 열리는 시각은 11시, 아슬아슬하게 도착할 수 있을 시간이었다.
핸드폰을 열자 SNS에서는 이미 유니버설 그라운드를 주제로 시끌시끌했다.
[apex12: 야 그 찌라시에 적혀 있던 개막전 날이 오늘 아니냐? 유니버설 그라운드인가?]
[rlarmsdud : 그딴 개소리 믿는 거 실화냐? 님 초딩임?]
[NetherKing : 난 진짜라고 믿음.]
[rlarmsdud : 여기 커뮤니티 수준이 왜 이래? 완전 에바쎄바참치네.]
[apex12 : 진짜일수도 있잖아. 애초에 찌라시부터가 불가사의하게 뿌려졌는데. 그리고 구라였대도 딱히 손해 볼 건 없잖아?]
2주 전에 전 세계에 불가사의한 일이 일어났었다.
뉴욕의 월스트리트부터 사하라 사막의 오아시스마을까지 한날한시에 동일한 내용의 전단지들이 붙은 것이다.
전단지의 내용은 간단했다.
[9월 12일에 ‘유니버설 그라운드’의 개막전이 개최된다. 승자에게는 어마어마한 전리품이 주어질 것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믿지 않았다. 돈 많은 누군가의 장난일 거라고 여기고 넘겼었다.
택시가 광화문 광장 인근에 들어섰다.
“아, 여기에 세워 주세요.”
시각은 10시 45분, 다행히 늦지는 않았다. 면접을 보던 회사가 명동 인근에 있었다는 것이 천운이라면 천운이었다.
깨끗이 닦인 회전문을 열고 본사 건물에 들어섰다. 넓고 깨끗한 대리석 로비가 나를 반겼다.
“안녕하십니까. 어떤 일로 대한 건설 본사를 방문하셨는지요?”
회전문의 곁에 서 있던 안내양이 웃으며 그를 맞이했다.
“3층 갤러리를 방문하려고 왔습니다.”
“3층으로 가는 엘리베이터는 저쪽에 있습니다. 그럼 즐거운 관람 되십시오.”
안내양의 안내에 따라 반대쪽 벽에 붙어 있는 엘리베이터로 향했다.
엘리베이터 앞에 따로 서 있던 안내양이 나를 향해 싱긋 웃으며 대신 버튼을 눌렀다.
과도한 서비스에 불편함마저 느끼며 엘리베이터에 몸을 실었다.
건물의 3층에는 ‘대한 그룹 역사 전시실’이라는 이름의 박물관 같은 갤러리가 개설되어 있었다.
그 이름답게 엘리베이터에서 내린 나를 가장 먼저 반긴 것은 대한 그룹의 기나긴 연대표였다.
‘미안하지만 니들 역사에는 관심 없어.’
연대표를 무시하고 빠른 걸음으로 갤러리 내부를 훑었다.
회장의 동상, 초기 임원들의 단체사진, 국가에서 받은 수많은 훈장과 상장들... 그런 것들이 끝도 없이 이어졌다.
‘대기업 아니랄까봐 넓긴 엄청 넓네.’
내가 원하던 것은 갤러리의 출구 부근에서 간신히 발견할 수 있었다.
그것은 이때까지 대한 건축에서 축조한 건물들 중 이름난 건물들의 미니어쳐를 벽면을 따라 길게 진열해놓은 일종의 연속전시물이었다.
“이런 미니어쳐 전시품의 주변에는 반드시 그게 있지...”
주변을 두리번거리자 가까운 곳에서 그것을 발견할 수 있었다.
[외부인 출입금지]라는 문패가 붙은 기자재 창고의 출입문이었다.
경기 시작시의 포지션은 순위에 결정적인 영향을 끼치는 몇 가지 중요요소 중 하나이다. 그리고 이 곳은 최고는 아닐지라도 꽤나 좋은 포지션이었다.
시각은 10시 57분. 아슬아슬하게 시간에 맞췄다. 3분후면 유니버설 그라운드의 개막전이 시작된다.
이제 개전을 기다리는 일만이 남았었다.
“아, 오랜만이군요.”
문득 들려오는 목소리에 고개를 돌리자 한 중년의 사내가 나를 향해 걸어오고 있었다.
설마 나를 부른 거겠어, 주변을 둘러봤지만 아무도 없었다.
하긴 이런 시간에 하릴 없이 이런 곳이나 서성이는 백수가 또 있을까.
“저 말입니까?”
“예. 기억이 안 나시나 보군요. 그때 저희 회사에서 면접을 보셨지 않습니까. 여기 대한 건설에서.”
그런 적이 있었던가.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회귀 전에 워낙 강렬한 기억들이 많아 그런 것도 있지만, 최종면접까지 갔다가 떨어진 적이 너무 많아서이기도 했다.
그렇기에 적당히 아무 말이나 주워섬겼다.
“그 때 면접관이셨던 분인가요?”
“기억이 나셨나 보군요.”
면접관은 천천히 곁으로 다가와 앞의 미니어쳐들을 내려다봤다.
“떨어졌는데도 이렇게 다시 찾아와 역사전시실을 관람하실 정도라니…. 저희 회사에 정말로 애착이 남다르신 분이었군요.”
아무 말 없이 어깨만을 으쓱했다.
“저희 회사에 필요한 건 그 쪽과 같은 충성스런 인재였는데 말이죠…. 하지만 어쩔 수 없었습니다. 학력이 너무 부족했으니까요.”
그리고 면접관은 혼자서 너털웃음을 터뜨렸다.
“그러게 공부 좀 하지 그랬어요. 요즘 취업은 전쟁이에요, 전쟁. 공부해서 학력 쌓고 스펙 만들지 않으면 남들과의 싸움에서 이길 수가 없어요.”
딱히 대답할 말이 없어 입가에 미소만을 띄웠다.
이 모든 것이 그저 어이없는 희극 같았다.
전쟁이라고? 2년 뒤에 자기들이 외계인들에게 패배해 노예가 될지도 모른다는 걸 이 사람은 알고서나 이러는 걸까?
그 때, 아무런 전조도 없이 갑작스럽게 시야가 어두워졌다.
그리고 약간의 시간 후에 다시 밝아졌다. 시야의 중앙에는 작은 창이 떠 있었다.
[유니버설 그라운드 개막전이 시작되었습니다. 최후의 1%가 될 때까지 살아남으십시오.]
“응?”
면접관은 무언가를 잘 못 들었다는 듯 좌우를 두리번 거렸다. 그러다 나의 행동을 발견하고는 흠칫, 놀랐다.
나는 K-5를 장전하고 있었다. 마침 운이 좋게도 게임이 시작되자마자 앞에 무기가 스폰되어 있었던 것이다.
“다, 당신…! 그거 뭡니까? 대체 이게 뭡니까?”
“뭐긴 뭐겠어요.”
총구를 면접관의 미간에 가져다댔다.
“전쟁이 시작된 겁니다.”
타앙, 메마른 총성이 갤러리에 울렸다.
[1킬]
붉은 글씨가 시야 아래에 점멸했다.
그것을 시발탄으로 유니버설 그라운드 개막전이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