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화 오빠, 그럼 저 매일 이렇게 허드렛일만 해야 하는 거예요?
하드 트레이닝으로 슬비가 슬슬 자기 밥값을 하려 하니 소영이 누나가 회사를 떠나게 되었다.
뛰어난 외모와 타고난 춤 실력으로 연예 기획사에 캐스팅이 되어 3개월 후에 데뷔를 하는 걸 그룹 프로젝트에 참여한다고 했다.
마음에 드는 곳이 한 군데도 없는 소영이 누나였지만 그래도 잘 돼서 나가는 거니 축하를 해줬다.
“누나 담배 냄새는 향수로도 안 없어져요.”
“성룡이 너 진짜 마지막까지 이럴 거야?”
“그럴 일이 있을지 모르겠지만, 예능에 나가게 되면 최대한 말을 아끼세요. 누나나 저나 말 많이 하면 NG니까요.”
“야, 강성룡 너…….”
“성격도 좀 죽이고 아무나 보고 실실 웃지 마세요. 처음 보는 남자는 잠 못 잘 수도 있으니까요.”
“응?”
“아무한테나 반말하는 버릇도 고치시고요.”
“뭐야!”
“맛있는 거 사준다고 아무나 따라가지 말고, 힘들면 언제든 돌아오세요. 누나 자리는 비워놓을 테니…….”
“성룡아…….”
“그렇게 아무 때나 눈물 글썽이지도 마시고요. 여자의 눈물은 가장 강력한 무기가 될 수 있으니 최대한 아끼세요.”
“성룡아, 고맙고 미안해. 그래도 성룡이가 있어서 결정하는 데 많은 도움이 되었어. 아영이 언니랑 하은이 잘 부탁해.”
“누나들은 제가 알아서 잘 살필 테니 걱정하지 마시고 회사 공금이나 채워놓고 가세요. 안 채워놓고 가면 청구서 보낼 겁니다.”
피팅 모델 시절부터 개인 팬 카페를 보유할 정도로 인지도가 높았던 소영이 누나는 클럽에서 다져진 춤 솜씨와 러블리한 외모 덕에 데뷔도 하기 전에 각종 포털 사이트 검색어 상위에 오르는 기염을 토해냈다.
덕분에 우리 투바니 쇼핑몰도 연관 검색어에 올랐다.
[강남여신], [강남여신 윤소영], [강남여신 투바니]
“오빠, 피팅 모델 하고 싶다고 계속 연락 오는데 어떻게 할까요?”
소영이 누나 덕분에 구하기 힘든 피팅 모델들이 알아서 먼저 연락을 왔다.
“적당한 날짜 정해주고 한 번에 오라고 해.”
“네. 오빠.”
슬비는 뛰어난 멘토가 있어서인지 피팅 모델을 하면서도 사무실 일들을 곧잘 해냈다.
피팅 모델을 하다가 연예 기획사의 관계자 눈에 띄어 소영이 누나가 데뷔했다는 인터뷰 기사가 나가자 연예인지망생을 비롯해 100여 명의 사람들이 피팅 모델 면접을 보러 왔다.
너무 많은 사람이 몰려 옆 건물에 있는 강당을 잠시 빌리기로 했다.
피팅 모델은 굳이 연예인이 되지 않더라도 준연예인급의 취급을 받았고, 수입 역시 나쁘지 않았다.
경력과 능력에 따라 차이가 있지만, SA급 피팅 모델인 하은이 누나와 소영이 누나 같은 경우에는 주 3회, 하루에 여덟 시간 정도의 촬영을 하고 한 달에 천만 원 이상을 가져갔다.
물론 어느 정도는 투바니 쇼핑몰의 공동 창업자로서 아영이 누나가 챙겨준 덕분이기도 했다.
네 시간의 개인 면접 끝에 마음에 드는 여섯 명의 모델을 선발했다.
“5번, 12번, 16번, 41번, 44번, 45번 앞으로 나오세요.”
호명되지 않은 61명의 인원들이 안타까운 눈으로 여섯 명을 바라보았다. 개중에는 안도의 한숨을 쉬는 사람들도 보였다. 뭔가 오해가 있는 것 같았다.
“앞에 호명되신 분들이 합격자입니다. 나머지 분들은 돌아가셔도 좋습니다.”
“기준이 뭔가요?”
“왜 우리가 떨어진 거죠?”
“적어도 설명은 해주셨으면 합니다.”
합격한 사람들은 객관적으로 봤을 때 뭔가 2% 부족한 사람들이었다. 그래서 그런지 사람들의 항의가 빗발쳤다. 이런 일이 처음이다 보니 아무래도 실수를 한 것 같다. 합격자만 따로 연락을 했어야 했는데 경솔했다.
“성룡아, 내가 봐도 뭔가 설명이 필요할 것 같은데, 이대로 돌려보내면 워낙에 좁은 바닥이라 다음부터는 피팅 모델 구하기 힘들어질 거야.”
떨어진 이유를 굳이 말해줄 필요는 없지만, 아영이 누나의 말도 일리가 있기에 알려주기로 했다.
“억울하신 분들도 계시겠지만, 모두 자신 옆에 있는 분들을 보세요. 똑같은 화장, 똑같은 얼굴. 거울을 보는 것 같지 않으세요? 저희는 옷을 파는 회사지, 성형외과 광고하는 곳이 아닙니다.”
“…성룡아?!”
“헐.”
“뭐라는 거야!”
“대박!”
“뭐 저런 새끼가 다 있어!”
“잡아!”
쾅!
슬비와 누나들의 도움으로 겨우 면접장을 빠져나올 수 있었다.
사무실로 겨우 돌아왔는데 결과에 승복하지 못한 피팅 모델 한 명이 사무실까지 찾아왔다.
아영이 누나가 끝까지 탈락을 반대했던 모델이었다.
“전 수술도 안 했고, 다른 분들이랑 닮았다는 말을 인정할 수 없습니다.”
송혜지는 심사 결과가 어지간히 분한지 눈에 눈물까지 글썽이며 목소리를 높였다.
“아까도 말씀드렸지만 억울한 분들도 계실 거라고 얘기했습니다.”
“그럼 전 제가 떨어진 이유를 알아야겠어요.”
“그 어느 회사가 면접을 보고 떨어진 이유를 설명해 주죠?”
“설명을 안 해주시면 여성부에 성희롱으로 신고할 거예요.”
눈길만 잘못 줘도 성희롱으로 신고당하는 세상이라 하지만 이렇게 대놓고 말도 안 되는 협박을 당할 줄은 몰랐다.
“이유를 설명해 주면 조용히 돌아가시겠어요?”
“네!”
“송혜지 씨를 떨어뜨린 이유는 간단합니다. 얼굴과 몸매 모두 너무 예뻐서 탈락시켰습니다.”
“얼굴이 예쁘다고 탈락시키는 게 말이 되나요?”
“예뻐도 정도껏 예뻐야 하는데 송혜지 씨는 너무 예뻐서 탈락 된 겁니다.”
“그런 이유라면 전 용납할 수 없어요.”
“송혜지 씨는 마네킹 대신 피팅 모델을 쓰는 이유가 뭐라고 생각하시나요? 아무리 옷이 예쁘면 뭐하나요? 모델이 너무 예뻐서 옷에는 눈이 안 가는데 말이죠?”
“…….”
송혜지는 내가 무슨 말을 하든 반박을 하려고 잔뜩 굳어 있는 얼굴을 하다가 이내 수긍을 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어이가 없었다. 예뻐서 떨어뜨렸다는 말은 듣기 좋으라고 한 말이었다.
송혜지의 단순함은 예나 지금이나 변한 게 없었다.
“성룡아, 근데 그런 이유라면 나도 피팅 모델 하면 안 되는 거 아니야?”
“그러게, 그럼 나도 하면 안 될 것 같은데?”
“오빠, 그럼 저 매일 이렇게 허드렛일만 해야 하는 거예요?”
***
모델 선발이 끝나고 며칠 후 소영과 함께 송혜지가 아영의 집에 찾아왔다.
성룡이가 결사반대를 해서 떨어진 송혜지는 예전부터 소영과 친분이 있는 사이였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굳이 소영과 친분이 없다 하더라도 정상적인 면접을 봤다면 송혜지는 당연히 투바니 쇼핑몰 메인 모델로 붙었어야만 했다.
“아영이 언니 혜지가 쇼핑몰에 출근할 수 있도록 힘 좀 써줘!”
“그게 성룡이가 워낙에 강경해서…….”
“나도 성룡이가 회사를 위해 열심히 일하고 있고, 그래서 언니가 힘을 실어주고 싶어 한다는 건 알고 있어. 하지만 대표는 언니잖아. 언니가 의지만 있다면 충분히 방법을 찾아줄 수 있다고 생각해.”
“그건 그렇지만…….”
“이참에 성룡이 살짝 승진시켜 주면서 혜지 좀 꼭 받아줘. 솔직히 말해서 혜지 딴 데서도 오라는 데 많아. 그런데 내가 일부러 딴 데 못 가게 하고 억지로 데리고 온 거란 말이야!”
“알았어. 그럼 모레부터 출근할 수 있게 조치해 놓을게.”
“고마워, 언니!”
“고맙습니다. 언니!”
아영은 소영의 부탁에 곤란해 하며 어쩔 수 없이 승낙을 하는 것처럼 비쳐졌지만, 속으론 웃고 있었다.
안 그래도 어떻게 하면 소영이와 하은이의 반발 없이 성룡이를 조금 더 높은 자리로 올릴 수 없나 고민을 했기 때문이었다.
비록 자신이 대표의 자리에 있고, 소영은 자신의 꿈을 찾아서 연예인이 되었지만, 엄연히 소영과 하은은 투바니 쇼핑몰의 공동 창업자이기 때문이었다.
비록 송혜지가 들어온다 해도 정식 직원이 다섯 명밖에 안 되지만, 알게 모르게 하은이와 다른 사람들에게 성룡이가 무시를 당하는 것 같아서 기회를 만들어 계속 직책이라도 올려주고 싶은 마음이었다.
성룡에 대한 아영의 마음은 점점 커져만 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