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화 무슨 뜻입니까?
자살을 결심했지만, 고통 속에 떠나고 싶지는 않았기에 수면제를 모으기 시작했다.
수면제를 모아서 세상을 떠날 준비를 하고 있는데, 곧 제대를 앞둔 조성민 병장이 내게 다가왔다.
“막내 데리고 간다.”
5시 30분.
저녁시간이 얼마 남지 않은 때였지만, 말년 병장에게 식사 집합 정도는 무시해도 되는 일이었다.
“어디 가십니까?”
“따라와 보면 안다.”
이등병이 말년 병장에게 질문을 하는 건 용납되지 않지만, 고문관인 나에게는 해당되지 않았다.
조성민 병장은 부대 뒤쪽에 교묘히 숨겨져 있는 개구멍을 통해 나를 부대 밖으로 데리고 나갔다. 언제 준비해 놓았는지 개구멍 뒤쪽에는 사복이 놓여 있었고, 지갑을 꺼낸 조성민 병장은 나에게 만 원짜리 열 장을 건네주었다.
“앞에 보이는 능선 따라 가다 보면 기차역이 보일 거다.”
“…….”
전혀 예상하지 못한 상황이었다.
“무슨 뜻입니까?”
“뭐가 무슨 뜻이냐? 죽는 것보다는 탈영이 낫지 않겠냐? 어차피 죽을 결심을 했으면 밖에 나가서 여자들이랑 좋은 시간도 가지고, 술도 마음껏 마시고, 부모님 얼굴이라도 한 번 보고 가라는 말이다. 그리고 수면제는 맥주랑 마시면 더 잘 넘어간다.”
아무도 내게 관심이 없는 줄 알았는데, 조성민 병장은 나를 지켜보고 있었나 보다.
“제가 이대로 탈영을 한다면 조성민 병장님도 처벌을 피하기 힘들 텐데 말입니다.”
무슨 의도로 이러는 것인지 감이 잡히지 않아 불안한 마음이 들었다.
“뒈지려고 하는 놈이 남 걱정을 다 해주네. 나야 어차피 군 생활 조금 더 하면 되는 거고, 혹시 아냐? 밖에 나갔다가 네가 살 마음이 생길지 말이야. 군 생활 보름 더 하고 사람 목숨 구하면 그리 밑지는 장사 같지는 않아서 말이야!”
혼란스러웠다. 이 상황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아무리 머리를 굴려 봐도 판단이 서질 않았다.
“정 미안하면 내일 나가든가. 이제 길도 알겠다. 내 도움 없이도 시간만 잘 맞추면 서울까지 무사히 갈 수 있을 거다. 너 하나 잠깐 없어졌다고 바로 상급 부대에 보고하지는 않을 테니까 말이다. 아무튼 난 먼저 내려가마!”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30분가량 고민을 하다가 부대로 다시 돌아가기로 했다. 이대로 기차역으로 가면 왠지 헌병대가 기다리고 있을 것만 같은 생각이 들었다.
개구멍을 다시 지나가자 조성민 병장이 나무 밑에서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뒈지려고 했던 놈이 의심은……. 쩝.”
“…….”
마치 내 머릿속을 들여다보고 있는 것 같았다.
“너 하나 골탕 먹이겠다고 이렇게 번거로운 일을 자처할 만큼 병장이라는 계급은 가볍지 않다.”
“왜 제가 의심해서 내려왔다고 생각하십니까?”
“나를 위해서 내일 나가려고 돌아올 만큼 넌 착해 보이지 않거든. 그렇다고 탈영을 겁낼 것 같지도 않고 말이야. 그렇다면 하나뿐이 더 있겠냐? 아무튼 다시 수면제에 눈이 가면 이곳으로 와서 차라리 탈영을 해라. 죽는 것보다는 탈영이 나으니까 말이다.”
그날 이후, 지독한 두통과 불면증이 사라졌다. 언제든 마음만 먹으면 밖으로 나갈 수 있다는 생각이 들자 마음에 평화가 찾아왔다.
그때부터 난 주위를 둘러볼 수 있는 여유가 생겼고, 고문관 생활을 청산할 수 있었다.
누구보다 부지런해졌고, 능동적으로 변했으며 궂은일도 마다하지 않았다.
선임병들도 나의 달라진 모습을 보고 조금씩 마음을 열어주었다.
지능적으로 나를 괴롭히던 선임병들은 시간이 흘러 좋은 친구가 되어주었고, 때로는 좋은 형들이 되어주었다.
그렇게 지내다 보니 영원히 멈춰 있을 것만 같았던 시간이 흘렀고, 제대를 하게 되었다.
***
훌쩍훌쩍.
나의 군대 시절 이야기를 들은 어머니는 눈물을 흘리고 계셨다.
“군에 있을 때 엄마가 제일 보고 싶었습니다.”
“미안하다. 미안해. 강한 아이인 줄만 알았는데 그런 힘든 일이 있을 줄은 몰랐어. 흑.”
“저도 제가 강한 사람인 줄 알았어요. 하지만 아니었더라고요. 진짜 강한 사람은 참을 줄 아는 사람이었어요.”
어머니는 애틋한 얼굴로 나를 바라보셨다.
“고마워. 이렇게 엄마 곁에 있어줘서.”
“어머니가 원하시면 대학교에 갈 의향도 있습니다. 나쁜 일도 아니니 말입니다. 그동안 말 안 듣고 어머니 속상하게 한 거 지금부터라도 다 갚을게요.”
“아니다. 아니야. 성룡이 너 원하는 대로 살아, 아들이 그렇게 힘든 줄도 모르고 엄마라는 사람이 삐져서 면회 한 번 안 가고. 흑. 정말 미안해. 그깟 100억 원 없어도 그만이야. 엄마는 아들이 먼저야.”
몰랐다. 할아버지의 재산이 그리 많으신 줄…….
명절 연휴가 끝나고, 사직서를 들고 회사에 출근했다.
“대표님, 저 이번 달까지만 하고 그만두겠습니다.”
“기본급 110.”
“뭔가 오해하시는 것 같은데 월급 때문에 그러는 게 아니라, 공부를 해서 대학교에 가려고 합니다.”
“120.”
“누나! 저 진짜 대학교 졸업증이 필요해서 그래요.”
“130. 더는 안 돼.”
“진짜 힘들다거나 월급을 올려달라는 게 아니고 집안 사정이라 말씀은 못 드리지만 대학교 졸업증이 꼭 필요한 일이 생겼어요.”
할아버지께서는 세금 폭탄을 맞는 한이 있더라도 올해 안에 재산을 다 상속해 주신다고 하셨다. 돌아가신 이후에 받는 상속과 생전에 받는 상속은 세금이 어마어마하게 차이가 난다고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할아버지께서는 완강하셨다.
내가 아들이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할아버지를 봐서라도 난 대학교에 들어갈 필요가 있었다. 그래야지만 큰아버지들이 할아버지를 더는 귀찮게 하지 않을 것이기에 말이다.
“140. 일하면서 공부하면 되잖아. 더는 안 돼. 나도 마지막이야.”
하지만 아영이 누나가 너무 강경하게 나왔다. 솔직히 얘기해서 나도 투바니 쇼핑몰을 떠나고 싶지는 않았다.
“그럼 커피 심부름 같은 잔심부름도 시키지 말아주세요. 최대한 공부할 수 있는 시간을 보장해 주었으면 합니다.”
“150. 10만 원은 내가 줄게. 난 성룡이가 타주는 커피가 제일 맛있더라.”
“나도.”
하은이 누나랑 소영이 누나가 깜빡이도 안 켜고 대화에 끼어들었다.
“성룡아, 무슨 일인지 모르겠는데, 기껏 일 다 가르쳐서 이제야 좀 쓸 만해지나 싶은데 사람이 그러면 안 돼.”
“맞아! 너 딴 데 가려고 그러지? 너 진짜 치사하다. 원래 다른 사람 들어오기로 했는데, 나가라고 하기 미안해서 계속 일 시켰던 건데, 이런 식으로 나오면 안 되지. 너 때문에 두 명이나 기다렸다가 못 들어왔어.”
“너 그리고 우리나 되니까 불편해도 참고 일하는 거야. 다른 쇼핑몰은 다 여자들밖에 없어. 금남의 지역에 들어와서 일하고 있으면 감사한 마음으로 일을 해야지. 어디로 내빼려고 그러는 거야?”
“그래. 처음에 들어올 때도 아영이 언니가 너 이상한 사람 같다고 망설이는 거 소영이랑 나랑 고집해서 너 받아준 거야. 누나들을 봐서라도 그러면 안 되지!”
소영이 누나와 하은이 누나는 마치 내가 배신자라도 된 마냥 나를 몰아붙였다.
***
제대를 한 달여 남겨놓은 조성민 병장은 처음엔 성룡이에게 관심이 전혀 없었다.
비록 성룡이가 개김성도 투철하고 이해하기 힘든 행동을 많이 했지만, 어차피 곧 있으면 제대를 하기에 자신과는 상관없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군대 생활이라는 걸 하다 보면 정말 밖에서는 겪어보지 못한 특이한 성격의 소유자들을 만날 수 있었고 군대에선 그런 사람들을 고문관이라고 표현했다.
말년 병장은 떨어지는 낙엽도 조심하라는 말이 있는 것처럼 무사히 제대를 하려면 고문관은 피하는 게 상책이었다.
하지만 어느 날부턴가 성룡이의 변한 눈빛을 보게 되었고, 지켜볼 수만은 없게 되었다.
성룡이의 눈빛이 상병 시절 죽음을 결심했을 때 자신의 눈빛과 너무나 닮아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자신이 본 눈빛이 틀린 게 아니라는 걸 알게 되었다.
성룡이 아무도 모르게 수면제를 모으고 있는 걸 알게 된 것이었다.
누구나 세상을 살다 보면 감당할 수 없는 시련을 겪게 되고 극단적인 마음을 가질 수 있다는 걸 이미 경험으로 알고 있던 조성민 병장은 그때부터 성룡이에게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성룡이 극단적인 마음을 왜 갖게 되었는지는 궁금하지 않았다.
똑같은 시련을 겪어도 누군가는 별거 아닌 일처럼 넘어갈수 있지만, 또 다른 누군가는 죽음을 결심할 정도로 무게가 달라질 수 있기 때문이었다.
그저 같은 공간에서 과거의 자신과 같이 죽음을 결심했다는 것만으로도 뭔가 동질감 같은 게 느껴졌고 살게 해주고 싶다는 생각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