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8년, 서울. 대도시의 시간엔 더이상 낯과 밤의 구분이 없었다. 낯이나 밤이나 빛이 넘쳐났기에 사람들이 시계 없이 시간을 점지할 수단이라곤 단지 빛의 색이 무색이냐, 색색이냐의 차이 뿐이었다. 사람들은 역사가 반복되면 반복될수록 분란을 피하기 시작했고, 지금을 사는 그들은 사소한 분란 하나 맞딱뜨릴 확률마저 없애기 위해 밖을 돌아다니는 것을 달갑게 여기지 않았다.
반면 청계천을 뒤에 둔 동대문시장의 경우 요새 사람들과는 무관하게 오가는 것들이 많았다. 대부분은 자기 주인의 구매 목록을 채우기 위해 대신 장을 보러 나온 로봇들이었으나 개중에도 사람들이 간간히 끼어 있었다. 로봇들의 외견은 그다지 깔끔하지 못했다. 생긴 것은 사람의 형상이었으나 얼굴에 난 접합선 곳곳엔 녹들이 묻어 있었다. 필히 그리 중요한 일을 맡고 있는 로봇이 아니기에 관리를 받지 못하는 것이리라. 허나 그것들은 자신들의 처지를 헤아리지도 않은 채 태연하게 가게의 주인들에게 구매를 원하는 품목을 말하며 간헐적으로 날씨에 대한 잡담을 나누엇다.
가게의 주인들은 로봇과 사람 사이에 큰 차등을 두지 않았다. 어차피 돈을 주고 물건을 사간다는 점에서 그 둘 사이의 가치가 크게 저울질 될 일이 없기 때문이었다. 종종 가게의 주인들은 손님이 주문한 물건들을 건네주면서 작은 칩 하나를 얹어서 건네곤 했다. 흔히 볼 수 있는 풍경은 아니었지만, 로봇들은 칩 하나를 받을 때마다 평소보다 과장되게 허리를 굽혔다.
시장 건물에서 윤활유를 전문으로 취급하는 가게가 하나 있었는데, 그곳의 주인인인 남자는 로봇을 꽤나 자상하게 대했다. 윤준이라는 이름을 가진 그는 오늘도 가게를 찾아온 로봇들을 자기 자식 대하듯 했다. 그런 탓인지 로봇들 사이에서 그의 가게는 유명한 편이었다. 그것들은 굳이 물건을 살 일이 없었음에도 종종 거기에 들르곤 했다. 오늘 그의 가에게 발길을 멈추고 계속 말을 거는 로봇이 하나 있었다. 윤준에겐 눈에 익은 모델이었다.
“아저씨. 오늘도 감사합니다.”
“어이. 그래. 조심해서 들어가고. 괜히 이상한 짓 했다가 용해소로 보내지지나 말고.”
윤준은 칩 하나를 로봇이 들고 있던 장바구니에 슬쩍 넣어주었다. 로봇이 크게 고개를 숙였다. 그 때, 윤준의 아들이 산발이 된 머리를 정리하지도 않은 채 가게의 맞은 편에서 걸어왔다. 아들 윤형도 가게 앞에서 알짱대는 로봇을 잘 알고 있었다. 그는 로봇을 지나치면서 그것의 머리를 한번 쓰다듬었다.
“윤형씨도 오늘 한층 더 잘생겨 보이네요.”
윤형은 눈을 가늘게 뜨고 대수롭지 않게 대답했다.
“시꺼 임마. 살 거 다 샀으면 얼른 들어가.”
“네네. 그러지요.”
윤준은 아들에게 핀잔을 주었다.
“너는 애가. 내일 아침이 출근인데 이제 일어나서 언제 회사 갈라고 그러냐.”
“아부지. 준비 금방 한다니까요? 보채지좀 마요.”
윤형은 건성으로 대꾸하면서 아버지의 가게 한쪽 구석의 벽면을 뒤지고 있었다. 아버지의 시선에도 아랑곳 않고 ‘그게 어디 있더라.’라고 중얼거리며 제 할일만 하는 모습이 제 아비에게 좋지 비쳐질 리가 없었다. 그래도 아비는 아들을 아꼈다. 어미 없는 자식으로 키웠지만 크게 엇나가지 않고 조촐한 직장이나마 다니며 제 밥벌이는 무사히 하는 덕이었다.
“찾았다!”
윤형이 집어낸 것은 푸른빛 액체가 담긴 엄지손가락 크기의 원통형 유리병이었다. 아비는 그 병을 들고 웃고 있는 아들을 보더니 낯빛이 파래져서는 기겁을 하며 달려들었다.
“야! 이 망할 자식아. 그걸 왜 니가 갖구가? 당장 안 내려놔?”
“아이. 왜요. 내가 쓸 것도 아닌데 좀만 빌려 주세요.”
아비는 속으로 아들내미에 대한 후한 평가를 철회했다. 윤준은 필사적으로 아들이 갖고 있는 병을 뺏으려 애썼으나 이십대의 건장한 육체를 당해낼 수는 없었다. 아비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아들의 손에서 위험한 장난감을 뺏는 일을 포기하고 그저 못된 일에나 저것을 쓰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었다.
윤형은 숨을 헐떡이는 제 아비를 보고선 걱정이 됐는지 한 가지 당부를 늘어놓았다.
“아부지. 걱정 말라니깐요. 내가 이걸 내 몸에다 들이 부울 것도 아니고. 꼭 필요한 사람이 있다 해서 잠깐 빌리는 거라구요. 값은 후하게 뜯어 올게요.”
윤준은 아들의 얼굴을 보지도 않고 벽면에 놓인 접이식 의자에 앉아 손을 휘휘 저었다.
“아서라. 어디 가서 강도짓이나 당하지 말고.”
윤형은 아비의 걱정을 뒤로하고 집을 나섰다. 저녁 바람이 쌀쌀했다. 시장 건물을 뒤로 하고 대로변으로 나오니 수많은 차가 그의 앞을 지나다녔다. 그런 와중에도 어느 하나 클랙션을 울리는 것이 없었다. 이 또한 사람이 운전대를 잡지 않은 덕이었다. 세상은 어느새 사람보다는 기계에 의해 움직이고 있었다. 윤형은 그런 세상이 퍽 맘에 들지 않았다. 예전엔 제 아비가 운전대를 잡고 직접 운전하는 일을 본 기억도 있었지만 지금은 아버지조차 운전대를 잡지 않았다.
윤형이 씁쓸한 감상을 곱씹으며 향한 곳은 차로 약 삼십 분 정도가 걸리는 강서의 한 아파트 단지였다. 오래 전에 주택공사에서 저렴하게 분양을 내놓은 아파트 단지였기 때문에 좋은 환경과는 거리가 멀었다. 돈이 없으니 관리가 소홀했다. 윤형은 타고 온 택시의 스캐너에 스마트폰을 갖다 대고 삑 소리가 남과 동시에 문을 열고 내렸다.
그가 찾은 곳은 희설이란 여자가 머무는 집이었다. 윤형은 희설의 집에 찾아가기 전에 먼저 근처의 마트에 들렀다. 동네 마트는 윤형이 딱 바라던 모습을 가지고 있었다. 로봇은 찾아보기 힘들었다. 사람들이 저마다 팔에 노란 플라스틱 바구니를 이고 저녁 먹을거리를 고민하며 진열대 사이를 왕래하고 있었다. 윤형은 생수와 막대 아이스크림 서 너 개, 앙념에 절여져 있는 불고기 한 근과 깐 양파 두 덩이를 바구니에 넣었다.
윤형은 낯익은 길을 따라 늘 마주하던 문 앞에 도착했다. 그는 다시 스마트폰을 도어락에 갖다 대었다. 작은 경보음이 울리고 문이 열렸다. 현관 천장에 달린 전등은 손님을 반기듯 환한 빛으로 화답했다. 윤형이 인기척이 없는 집에다 먼저 말을 걸었다.
“나 왔어.”
그러자 조용했던 집에서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들리더니 여자의 목소리가 들렸다. 윤형의 애인인 희설이었다.
“앙. 잠깐만. 나 지금 일어났다.”
윤형은 비닐봉지를 발 밑에 내려두고서 집주인이 마중 나오기를 기다렸다. 그의 행동은 몇 번의 경험으로 깨달은 배려였다. 희설은 자신의 몸이 불편한데 대해 사람들이 배려해주기를 바랬다. 그렇지 못하는 경우에는 지체없이 큰 소리를 지르곤 했다. 때문에 윤형은 자신의 애인이 먼저 웃으며 현관까지 마중을 나오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끼릭 거리는 고철들의 마찰음이 몇 번 윤형의 귀에 닿았다. 그리고 희설이 안방의 문을 열고 웃는 얼굴로 애인을 맞았다. 윤형은 조심스럽게 다가가 그녀를 껴안았다. 희설은 윤형에게 몸을 맡긴 채로 배를 맞대고 안겨 있었다. 그녀는 애인의 등을 토닥였다.
“어이구. 우리 아가 왔어요?”
“아가는 무슨. 어딜 봐도 내가 연상이구만.”
“그런 소리는 인생 경험부터 더 하고 오세요?”
희설은 윤형이 가지고 온 봉투를 들어 거실 테이블 위에 두었다. 그리고는 안에 든 것들을 하나하나 꺼내놓았다. 다리가 불편한 그녀는 장을 보러 밖으로 나가기가 힘들었기에 종종 윤형이 필요한 물건들을 사다 갖다주곤 했다. 그리고 희설은 그런 윤형의 배려를 잘 알기에 늘 올 때마다 고맙다는 인사를 빼먹지 않았다. 하지만 감사를 받은 윤형의 표정은 평소완 달리 약간의 장난기가 묻어 있었다.
“정말 고마워? 나 뭐 한거 없는데?”
“아니야, 진짜 고맙다니까.”
희설은 윤형에게 다른 꿍꿍이가 있을 거라고 생각하지 못했다. 그래서 윤형이 엄지손가락만한 유리병을 꺼내 들었을 때 그녀는 진심으로 놀란 표정을 지었다.
“그거 어디서 났어?”
“어디서 났긴. 우리 아버지가 로봇들 상대로 장사하는 거 알잖아.”
“설마 훔쳤어?”
“아니야!”
윤형은 희설이 자신을 변변치 못한 사람으로 생각할까봐 되려 역정을 냈다. 희설은 윤형의 고성에 움찔했다. 그녀는 의심을 거두고 먼저 사과를 건냈다.
“미안해. 그런 뜻으로 말한 건 아니었는데.”
윤형이 그녀의 사과를 바로 받음으로서 둘의 분위기는 평소와 같은 장난기 넘치는 분위기로 돌아갔다. 사실은 며칠 전 윤형은 아버지가 예의 그 유리병을 어디선가 고가에 구해왔을 때부터 눈여겨 보고 있었다. 안에 든 내용물이 정확히 무엇인지는 모르지만 가게에 오는 로봇들에게 몇 번 물어본 결과 그들의 아픔을 잊게 하는 종류의 약이라는 것은 알았다. 때문에 희설을 위해 집에서 챙겨 온 것이었다.
희설은 몸이 성할 무렵엔 총을 든 군인으로 일하고 있었다. 그러다 2년 전에 큰 테러에 휘말려 몸이 제 기능을 하지 못하게 되었고, 자연스레 현업에서 도태되었다. 경쟁의 시대에서 뒤떨어진 자를 선뜻 돌봐주는 이는 없었다. 희설의 의체가 정비에 워낙 많은 돈이 드는 탓에, 그녀는 차도가 확실하지 않은 치료에 연연하는 대신 은퇴하고 자신의 집을 마련해 조용히 사는 방법을 택했다. 윤형은 그런 희설이 안타까웠다. 현역일 때엔 누구도 그녀와 견줄 수 없었기 때문에, 윤형은 그런 그녀의 재능이 빛을 보지 못함을 매우 유감스럽게 생각했다.
“그래도 그거 나한테 막 줘도 되는거야? 엄청 비싼 거야. 알지?”
“알지. 아버지한텐 안 아까울 일에 쓴다고 했으니까 괜찮아.”
윤형은 앰플을 희설의 손에 쥐어주었다. 희설은 앰플을 들고 침대가 있는 큰 방으로 들어갔다. 윤형은 희설이 무엇을 하는지 직접 볼 용기가 없었다. 다만 소리가 나는 타이밍으로 앰플이 주사기의 실린더에 삽입되는 장면을 상상할 뿐이었다. 곧이어 실린더에서 압축공기의 일부가 새어나오는 소리가 들렸다. 윤형은 약에 의존해야만 사람다워지는 희설을 볼수록 생각이 많아졌다.
문을 열고 나온 희설은 처음 잠에서 깼을 때보다 밝은 표정이었다. 무릎에서 나는 철골격의 마찰음은 여전했지만 통증은 잊은 모양이었다. 희설은 냅다 뛰어 윤형의 목을 두 팔로 휘감았다. 희설이 흥에 겨워 말했다.
“우리 데이트 하러 안 갈래?”
“그래. 가자.”
윤형은 마트에서 사 온 재료들을 정리도 하지 않은채 봉지채로 냉장고에 넣어놓고 희설과 함께 집을 나섰다. 둘은 인적이 드문 청계천을 걸었고, 빈 건물에 홀로그램 광고판이 가득한 명동의 중심을 지나 광화문 광장 앞까지 다다랐다. 시간으로 따지면 약 세 시간이었다. 광장 가운데엔 광역 홀로그램 송신을 기념하기 위한 송신탑이 크게 자리잡고 있었다. 마치 붕대로 둘둘 말은 건전지를 3층으로 쌓아올린 듯 한 모습의 조형물은 어색함을 찾아 볼 수 없었다. 마치 아주 오래 전부터 거기 있었던 것 마냥.
희설은 그 송신탑을 보며 몇년 전 이야기를 꺼냈다. 이제는 듣기도 지긋지긋한 군대 이야기였다. 불과 십여년 전만 해도 군대 얘기를 꺼리는 것은 여자의 몫이었으나 이제 이러한 이분법은 역사책 속에 등장할 이야기가 되어버렸다. 그래도 얘기를 들으면 신기한 것들을 꽤 알게 되고는 했다.
“내가 옛날에 이거 설치한다고 생 난리를 치면서 반대하던 것들 싹 잡아들였던 때가 엊그제 같은데. 벌써 이만큼 어색함이 없어졌네.”
“그때 어땠는데?”
윤형은 마치 처음 듣는 이야기처럼 희설의 무용담의 다음을 재촉했다. 사실은 이미 열 번도 더 들은 이야기였다. 은퇴 후 집 밖에 나가지 않는 희설에겐 옛날의 이야기 말고는 크게 할 얘기들도 없었기에 윤혁은 이미 들었던 얘기라도 언제든 다시 들어주었다. 다만 아쉬운 점이라면 희설에겐 이야기꾼으로의 재능이 없었다는 점일까. 전에 했던 얘기는 과장되거나 각색되는 부분 없이 다시 그녀의 입에서 뿜어져 나왔다.
“난리도 아니었지. 이거 설치해서 건물들 외관이 전부 간판으로 바뀌게 되니까. 건물주들도 세입자가 줄어들테니 난리였고, 세입자들도 철수하라는 정부 말에 무슨 억지냐며 이게 설치되는 곳마다 사제 폭탄들 만들어서 던져버리고.”
“우와. 그사람들 위험한 거 아니야?”
“위험했지. 위험했지.”
“도망갈 생각은 안 해봤어?”
희설은 팔꿈치로 윤혁의 옆구리를 찔렀다. 평소 운동에 큰 재주가 없었던 그의 몸은 작은 자극에도 민감하게 반응했다. 희설의 몸이 사람과는 달리 더 튼튼한 기계로 만들어져 있음이 거기에 한 몫 했다. 희설은 억 소리를 내며 옆구리를 부여잡고 있는 윤형을 보며 말했다.
“군인이 도망가면 나라는 누가 지키나?”
“그것 참 매우 든든하네.”
“그치?”
희설은 눈앞의 수신탑을 보며 어깨를 폈다. 윤형은 희설의 몸이 걱정됐다. 약 기운으로 잠재운 인공신경의 통각이 언제 다시 그녀의 몸을 누빌지 모르는 일이었다. 윤형은 희설의 어깨를 감싸안았다. 그들의 뒤로 검은색의 의전차량 한 대가 호위드론에 둘러싸인채 지나갔다. 윤형은 요새는 보기 힘든 차량의 왕래에 잠깐 시선을 뺏겼다. 희설은 다른 곳에 정신을 팔고 있는 그를 보며 말했다.
“나 이제 슬슬 약기운 떨어지는 것 같애. 집에 갈래?”
“그래 가자.”
윤형은 희설을 집 앞까지 바래다주었다. 헤어지기 전에 그녀가 플라스틱 카드 하나를 건네주었다. 윤형은 카드의 용도를 물었다. 희설은 아버지에게 갖다 주라고 말했다. 윤형은 희설의 대가를 반려했다. 하지만 희설은 뜻을 굽히지 않았다. 윤형이 계속 거부하자 희설은 입술을 다물고 말 한마디 하지 않은 채로 그를 노려보았다. 윤형은 기가 죽어 결국 희설의 부탁을 거절하지 못했다.
아직도 부담스러워하는 윤형을 위해 희설은 결국 전후 사정을 설명했다. 윤형이 가지고 온 앰플은 사실 희설이 직접 부탁한 물건이었다. 윤형은 작은 배신감을 느꼈다.
“뭐야. 그런 거였으면 미리 말했으면 좋았잖아.”
“어떻게 그래. 네가 좋아하는 모습 보는게 좋은데.”
그 말에 윤형은 남자로서 어떤 반박도 할 수 없었다. 결국 허탈하게 웃으며 그녀의 은닉을 용서하고 집으로 돌아오는 것이 그의 몫이었다. 다음 날 윤형은 평소와 같이 정장을 차려입고 집을 나섰다. 그의 아버지는 잠에 든지 얼마 되지 않아 출근하는 아들의 모습을 볼 처지가 아니었다.
집을 나온 윤형은 하늘색이 짙은 회색빛인 것을 보고 다시 집에 들어가 우산을 챙겼다. 그리고 석연찮은 마음에 스마트폰을 보았다. 일기예보를 확인한 결과 비 소식은 없었다. 헌데 하늘은 곧 비가 내릴 것처럼 우중충했다. 그는 아파트 복도에 서서 한참을 고민했다. 강수 예정이 있었다면 알람이 먼저 울렸을 것이다. 하지만 우산을 그대로 집에 두고 가기도 꺼림칙한 날씨였다. 결국 윤형은 자신의 감을 믿고 우산을 들고 집을 나섰다.
그가 일하는 곳은 새로이 출하되는 드론들의 스트레스 허용량을 측정하는 시설이었다. 연구동이라 하기엔 세련미가 부족했고, 그렇다고 공장이라 하기엔 하는 일들에 일관성이 많지 않았다. 윤형이 하는 일이라고는 그저 자연재해와 유사한 상황에서 드론의 내구력이 얼마나 감소하는지를 측정하는 일이었다.
“왔네?”
교대 근무자인 정환이 그를 반겼다. 윤형은 그를 보자마자 미간을 찌푸렸다. 다름이 아니고 그의 입에서 술냄새가 진하게 풍겼다. 드론들의 스트레스를 테스트 하기 전에 일하는 작업원들의 멘탈 케어가 더욱 시급해 보였다.
“일하는 중에 술 드시다 걸리면 징계인거 몰라요?”
“응? 나한테 하는 얘기냐?”
세 살 위인 정환은 규칙이 없는 사람이었다. 때문에 윤형이 반말을 해도 크게 개의치 않았다. 물론 윤형도 그걸 알기에 사내에서 반말로 대하는 사람은 이 사람 뿐이었다.
“그럼 누구에요. 저번 달에도 사유서 쓰지 않았어요?”
“뭐 어때. 사유서 따위야 그냥 종이 쪼가리야. 종이 쪼가리.”
“그 종이 쪼가리 때문에 월급 깎여서 나한테 담배 꿔간 게 누구더라.”
“아 진짜. 마누라도 아니고.”
정환은 철제 술통을 유니폼 속주머니에 챙기고는 의자에서 일어났다. 윤형이 그의 옆으로 갔다. 정환이 밤 사이 있었던 일들을 간략하게 정리해주었다. 사람이 좀 특이하기는 해도 일하는덴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중간에 낙뢰라도 있었는지 새벽 세 시 쯤에 전기가 한 번 나갔어. 예비 전원으로 돌리는 중에 타임 랙으로 대기열에서 빠져버린 드론이 총 여섯 세트. 이건 나중에 점심시간 쯤에 수동으로 다시 넣어놓으면 될 거고.”
“정전이요?”
윤형은 작업에 대한 일지보다 묘하게 그 부분이 신경쓰였다.
“어? 어. 왜? 밖에 무슨 일 없었어?”
안에서 일하고 있는 시간엔 밖의 상황을 알 도리가 없었다.
“아뇨. 아무 일 없었던 것 같은데 정전이라니까 놀래서요.”
정환이 미간을 찌푸리며 윤형에게 얼굴을 들이밀었다.
“정말 아무 일 없어? 시스템엔 낙뢰라던데? 비 오는데 뻥치는 거 아니고?”
“아니라니까요. 어제 기상 알람도 없었고, 저도 오늘 우산 안 갖고 왔어요.”
“그래?”
정환은 그래도 의심스럽단 눈초리를 거두지 않았다. 윤형은 속으로 정환이 인상 쓸 때의 생김새에 대해 불평을 했다. 인상만 안쓰면 참 잘생긴 사람인데 하고. 그래도 그의 존재가 삭막한 직장 생활에 나름 활력소가 되어주긴 했다.
정환이 모습을 감추고 나니 윤형은 말을 할 일이 없었다. 시간은 정해진 대로만 흘러갔고 시스템은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오전 중에는 주로 사이클이 짧은 범용드론의 테스트가 전부였다. 윤형은 매 시 정각마다 테스트가 끝난 세트의 개수를 메인 서버에 저장했다. 주기가 짧은 일을 반복했기 때문일까. 윤형은 금새 허기가 졌다. 점심시간은 금방 찾아왔다.
윤형은 시스템을 휴면 상태로 돌리고 제어실의 문을 열었다. 문 앞의 선반에 오늘 점심이 배달되어 있었다. 메뉴는 마파두부 덮밥이었다. 매운 걸 잘 먹지 못하는 윤형에게는 좋지 못한 차림이었다.
“이럴 줄 알았으면 미리 식단 체크 해놓는건데.”
때문에 윤형은 오후 내내 쓰린 속을 부여잡으며 하루 일과가 끝나기만을 간절히 기다렸다. 윤형이 일을 마치고 집에 도착했을 때 아버지는 이미 집에 없었다. 그는 오후 다섯 시가 되면 채비를 마치고 가게로 가기 때문이다. 윤형은 옷을 편하게 갈아입고 다시 집을 나섰다.
아파트 단지의 정문을 나와 맞은편의 버스 정류장에서 차를 기다렸다. 버스는 제동이 걸리는 소리조차 내지 않고 조용히 정류장으로 미끄러져 들어왔다. 그것은 사람이 있건 없건 알아서 문을 열었고 윤형은 그 틈에 버스에 몸을 실었다. 두 정거장을 지나니 아버지의 가게가 들어서있는 상가 건물 앞에 도착했다. 여전히 걸어다니는 로봇들이 즐비했다.
윤형은 아버지의 가게로 향하면서 묘한 기시감을 느꼈다. 로봇들이 평소와는 다르게 자신을 한번씩 꼭 훑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윤형은 눈이 마주친 로봇에게 물었다.
“뭐야. 왜 자꾸 봐? 내 착각 아니지?”
윤형과 눈이 마주친 로봇은 비교적 신품이었다. 사지의 관절이 구체가 아닌 다발식이었고, 두부의 이음새가 거의 보이지 않았다. 외갑의 색상도 비교적 복잡한 톤이었다. 하지만 언어체계는 그다지 좋은 성능이 아니었는지 윤형의 질문에 대답을 하지 못했다.
“뭐 됐다. 뭘 바라냐.”
윤형은 로봇을 뒤로 하고 가게로 발걸음을 서둘렀다. 그럴수록 평소와 다른 이질감은 커져갔다. 늘 바쁘게 돌아다녀야 할 로봇들이 제자리에 멈춰있는 경우가 허다했고, 평소같이 소란스런 말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그리고 가장 이상했던 건 다른 가게의 주인들이 보이지 않았다. 사람의 말소리라고는 전혀 들리지 않는다는 점이 윤형을 불안에 휩싸이게 만들었다. 윤형은 가게로 뛰었다.
가게 앞엔 상가 건물의 입구보다 더 많은 로봇이 발걸음을 멈춘 채 우두커니 서있었다. 윤형은 로봇 사이를 헤집고 앞으로 나아갔다. ‘젠장, 이 새끼들 전부 다 대답을 기다리고 있던 거였어.’ 로봇이 윤형에게 응답이 없던 이유를 뒤늦게 알았다.
그리고 가게 앞에 도달해 그가 본 것은 얼굴에 커다란 쇠못이 박힌 채로 바닥에 쓰러져 있는 아버지 윤 준의 시신이었다. 윤형은 아버지의 마지막이 그리 되리라고는 상상도 해 본 적이 없었다. 돌아가실 때는 노망이 들어 자식 피곤하게 부려먹고 가실 분이라 생각했지, 손을 댈 엄두가 나지 않는 몰골로 차디찬 바닥에 누워 생을 마감하실거라곤 전혀 생각해보지 않았다. 어떻게 할 수가 없었다. 직경 오 센치 정도의 쇠 말뚝은 아버지의 안면을 정확히 뚫었다. 뺀다고 뭐가 달라질 것 같지 않았다.
오늘 자신이 없던 시간에 여기서 무슨 일이 있었던 건지 짐작이 가지 않았다. 무엇보다 아버지가 왜? 그렇게 혼란에 빠져 땅에 무릎을 꿇고 오열하던 사이 몇 발의 총성이 들렸고 윤형의 뒤에 멀뚱하게 서 있던 로봇 몇체가 그대로 주저앉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