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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판타지/SF
드러그 딜러
작가 : 새롬
작품등록일 : 2017.11.2

사랑하는 사람이 사고의 후유증으로 괴로워하고 있었다. 나는 단지 그녀에게 도움이 되고자 아버지의 물건에서 조금 비싸보이는 약물을 구해다 주었을 뿐이었다. 그 당시엔 지금 일어날 일을 전혀 상상하지 못한 채. 2029년, 나는 세상의 모든 인류를 적으로 돌리고 말았다.

 
2028년, 방치된 지능(2)
작성일 : 17-11-19 22:15     조회 : 238     추천 : 0     분량 : 80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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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굳게 닫힌 시장 건물의 셔터가 오전 일곱시에 자동으로 오르는 모습으로 동대문 시장의 하루가 시작되었다. 밤 사이 대기모드에 있던 드론과 로봇들의 램프가 수 차례 점멸하며, 그것들이 마치 사람인 듯 어제 못 다한 일과 오늘 해야 할 일의 우선순위를 정해두고 움직이고 있었다. 사람의 모습은 드물었다. 시장 건물 입구 좌우로 해서 수 년째 방치된 노점의 잔해가 있었다.

 

 

  사람이 있는 것이 어색한 이곳에 정복을 입은 남자 여럿이 몰려왔다. 그들은 사이렌을 울리며 도착한 순찰차에서 걸어나왔다. 거기엔 권호 대령도 포함되어 있었다. 대령은 시장 주변에 가득한 인형들을 보고 불쾌한 내색을 숨기지 않았다. 그가 여기에 온 이유는 하나였다. 기계의 사고 회로를 마비시킬 수 있는 불법 약물이 유통되고 있다는 제보 때문이었다. 군에서 특수부대 운용을 위해 수시로 쓰이는 약물이었으나 대상은 어디까지나 의체화한 군인들의 통증 억제를 위한 것, 로봇에게 어떤 작용을 일으키는지 잘 알고 있는 권호는 해당 약물이 민간에 유통되는 경로를 파헤치기 위해 나온 것이었다.

 

 

  “하여튼. 죄다 사람인 척 돌아댕기는게 보면 볼수록 노답이야.”

 

 

  대령의 불만에 동승한 것은 마약단속반의 고참 김 현준 반장이었다. 김 반장은 그들을 주시하고 있는 인간형 로봇의 머리를 향해 다 핀 담배꽁초를 내던졌다.

 

 

  “그니까요. 지들이 사람인가. 로봇이지.”

 

 

  대령과 반장은 과학수사대 유니폼을 입은 이들과 동행으로 눈앞에 있는 건물의 2층으로 향했다. 그들이 현장에 도착했다. 뒤따라 온 인력들은 현장 주변을 에워쌌다. 며칠 전 현장에 뿌려졌을 핏자국들은 전부 지워진 뒤였다. 다만 대령은 윤준이라는 남자가 쓰러진 위치를 정확히 알 수 있었다. 일행 중 몇 명이 대령에게 다가왔다. 대령이 그들에게 말했다.

 

 

  “혹시 남아있는 약이 있을 수 있으니까 여기 싹 다 뒤져.”

 

 

  “예.”

 

 

  작업원들은 그렇게 말하면서도 속으론 약간의 불만을 품고 있었다. 어차피 윤준이란 남자를 사살했을 때 1차적인 증거는 모두 수집해 갔을 텐데, 이제와서 재수색이라니. 작업인원들 또한 사람인 탓에 성과없는 노동을 반기지 않았다.

  대령과 반장은 그들 뒤에서 조용히 얘기를 나누었다. 대령이 먼저 반장에게 물었다.

 

 

  “보통 약팔이들이 중요한 정보를 어디다 둡니까?”

 

 

  “옛날엔 장부였죠. 요새는 전부 데이터를 복호화 해놓거나 아님 체인 코드로 비접속 네트워크에 숨겨두는 건데.”

 

 

  “헌데 이 윤준이란 사람 디지털 기기를 하나도 안 썼죠?”

 

 

  “예. 심지어 스마트폰 하나 없었던 걸로 되어 있네요.”

 

 

  반장은 금고가 열려 있는 가게의 카운터를 한번 더 뒤졌다. 마약사범들의 뒤를 캔 경력이 십 년에 다다르는 그의 눈에도 특별히 눈에 띄는 것은 없었다. 한편 반장은 대령에게 의문점이 생겼다. 사람에게 악영향을 끼치는 마약은 수도 없이 봐 왔지만 로봇에게 악영향을 미치는 마약이란 건 대체 어떤 물건일까. 반장은 넌지시 질문을 던졌다.

 

 

  “근데 대령님이 찾는 약물이란거, 구체적으로 어떻게 위험한 거요?”

 

 

  대령은 의도적으로 그의 질문을 피했다. 반장이 한번 더 물었다.

 

 

  “이봐요 대령님. 무슨 물건을 찾는 줄 알아야 우리가 협조를 하죠.”

 

 

  반장의 집요한 취조에 대령은 불쾌한 기색을 숨기지 않았으며 대답하기 직전에 잠시 눈을 내리깔고 생각에 잠겼다. 오래 지나지 않아 그가 입을 열었다.

 

 

  “처음엔 마약으로 개발한게 아니었죠. 의체화한 특수부대원들 중에 몇몇이 부작용을 보였어요.”

 

 

  이미 반장의 흥미는 윤준의 입수 루트보다 대령의 이야기로 옮겨 가 있었다. 오랜 짬밥으로 지금 듣는 얘기가 쉽게 들을 수 없는 얘기라는 것을 알고, 이후 자신의 입장도 위태로워지리라는 추측이 섰으나 인간은 호기심을 못 이기는 동물이라며 스스로를 안심시켰다.

 

 

  “부작용이요?”

 

 

  “감각을 너무 예민하게 느끼는거죠. 팔에 파리가 앉았는데 철근에 깔린 것 같은 통증을 느낀다거나, 초가을의 날씨인데도 불구하고 화상을 입은 듯한 통증을 느낀다거나.”

 

 

  반장 또한 의체에 아무런 지식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그는 자신이 알고 있는 사실을 바탕으로 다시 물었다.

 

 

  “하지만 의체면 통각을 끊으면 그만 아닌가요.”

 

 

  “그게 안 되더랍니다.”

 

 

  “안… 된다고요?”

 

 

  대령은 한숨을 쉬었다. 그의 머릿속에 떠오르는 광경은 5년 전의 어느 사건이었다. 일종의 악몽이었다. 당시의 기억은 대령에게 일종의 죄책감을 부여하고 있었다. 대령이 기억하는 5년 전의 사건에서 지금까지 남아있는 단 하나는 사랑하는 여자의 이름 세 글자 뿐이었다. 대령이 반장을 보았다. 그 이상은 알려 하지 말라고 넌지시 경고의 눈빛을 보냈으나 반장은 대령의 배려를 거절했다.

 

 

  대령이 말을 이었다.

 

 

  “예. 트리거의 문제인지. 부작용이 나타난 인원들한텐 통각 차단 기능이 정상적으로 작동하지 않았어요. 때문에 우리는 각 감각기관이 아니라 뇌에 문제가 있다고 봤죠.”

 

 

  “뇌요?”

 

 

  “예. 정확한 원리는 알 수 없지만 뇌의 특정 부분을 마비시키면 과통각에 대한 증상이 멈춘다는 걸 발견했어요. 그걸 약으로 만든게 우리가 지금 찾고 있는 거죠.”

 

 

  반장은 또 하나 의문이 들었다.

 

 

  “근데 그게 로봇한테 왜 위험하다는 거죠?”

 

 

  “예의 현상을 알게 된 것도 우연이였죠. 의체한텐 진통제였는데, 로봇한텐… 마취제였어요.”

 

 

  “뭐가 다르죠?”

 

 

  대령은 마지막 질문에 대답하기 전에 주변에 자신들의 얘기를 듣는 다른 로봇이 없나 주변을 면밀히 살폈다. 그리고 반장의 마지막 질문에 답했다.

 

 

  “로봇한테 먹였을 때 마취되는 건 구동계나 신경계가 아니고 그들의 3원칙 중 하나거든요.”

 

 

  거기까지 들은 반장은 대령이 한 말의 무게감을 느끼고 당황해서 주변을 살펴 보았다. 대령이 그의 어깨에 손을 얹었다.

 

 

  “괜찮아요. 로봇들이 없는 건 확인 했어요.”

 

 

  “그럼 이 사람은 그걸 민간 시장에 갖고 나오는 미친 짓을 했단 말이오?”

 

 

  “그래서 별 수 없이 부대를 동원해 사살했던 거구요.”

 

 

  “허…. 참, 세상엔 별 말종이 다 있네. 기록을 보니까 인간 아들내미도 하나 있던 걸로 아는데.”

 

 

  “그쪽은 우리가 별도로 감시하고 있습니다.”

 

 

  “그래요….”

 

 

  반장은 대령에 대한 첫인상을 수정했다. 처음엔 자세가 딱딱하고 위압적인 군인으로만 생각했으나 사연을 듣고 보니 인류에 위협이 될 만한 일을 막기 위해 애쓰는 투사였다. 반장은 대령에게 협력을 약속했다.

 

 

  “그런 위험한 것이 세상에 나돌아다니면 큰일이죠. 그럼 우리 쪽에서 뭔가 알게 되는 것이 있으면 바로 연락 하겠습니다.”

 

 

  “부탁드립니다.”

 

 

  대령은 현장에서 추가적인 소득이 없는 것을 다시 한 번 확인하고 자리를 떴다. 반면 그보다 더 오래 남아있던 반장은 자신이 보는 시야보다 조금 더 먼 곳에서 누군가에게 감시당하고 있단 불안함을 떨칠 수 없었다.

 

 

  같은 시각 희설은 일이 잘못 돌아가고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다. 어제 이후로 윤형과 연락이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평소 하루에 열 번 이상은 자신의 안위를 묻기 위해 연락을 했던 윤형이었다. 희설은 스스로 윤형에게 많은 부분을 의지하고 있는 것을 알기에 더욱 초조해졌다. 기실 전역 이후로 불안한 마음을 잘 달래주던 것도 그였다.

 

 

  희설은 대령과의 협의 내용에 윤형에 대한 별도의 처우가 있었는지 검토해 봤으나 대령의 입에서 윤형에 대한 얘기는 나오지 않았었다. 하지만 가능성이 없다고 생각할 순 없었다. 그녀 자신이 군의 소속이었기에 군인이 일을 처리하는 방식은 잘 알고 있었다. 지금 희설의 식탁 위엔 대령에게 받아 온 가로 변 육십 센치의 은색 수트케이스가 있었다. 희설은 주저하지 않고 케이스를 열어 푸른 약물을 자신의 다리에 주사했다. 약의 효능으로 그녀의 다리를 괴롭히던 통증이 가라앉았다.

 

 

  희설의 외출을 결심했을 때 대령에게 전화가 왔다.

 

 

  “우리가 감시하고 있는 걸 모르지는 않을 텐데. 약을 써서 어디 가려는 건가?”

 

 

  “신경쓰이는 게 있어서요. 그쪽이 대답해 줄 건가요.”

 

 

  희설은 원하는 대답을 들을 수 없다는 확신을 가지고 말 끝을 단호히 했다. 대령은 지체 없이 대답했다.

 

 

  “우리가 알려줄 수 있는 거라면 뭐든.”

 

 

  “그럼 물을게요. 제 남자친구 윤형이 어디 있는지 아시나요.”

 

 

  대령은 남자친구란 단어에 어색함이 돌았다. 그가 알기론 둘 사이는 단순한 연인 관계였다. 교제하다 언제든 끝낼 수 있는 그런 관계. 때문에 희설이 윤형에게 저리 신경쓰는 것에 공감하기 힘들었다. 대령은 몇 가지 아는 사항이 있음에도 희설에게 말하지 않았다.

 

 

  “아니. 그에 대해선 전혀 아는 게 없네. 군 관계자도 아니고.”

 

 

  ‘거짓말.’

 

 

  희설은 그 말을 속으로 내뱉었다. 관련이 없을 수가 없었다. 그의 아버지는 전직 군인이었고, 군에서 민간으로의 유통이 금지된 약물을 밀반출 하고 있었다. 더욱이 윤형은 자신을 닮은 의체를 개발하던 동일 회사에서 근무하고 있었다. 희설은 대령의 제의를 받아들인 후 상황을 구체적으로 정리했다. 아마 윤형의 아버지를 사살한 것도 군부일 것이다. 다만 윤형과의 관계는 어디서도 연관성을 찾아볼 수 없었다. 자신이 모르는 것, 그것이 윤형이 지금 연락이 닿지 않는 이유라고 추측했다.

 

 

  대령이 방금 전보다 단호한 목소리로 말했다.

 

 

  “감시에 수고가 드니 가급적 집에 있어 줬으면 좋겠는데.”

 

 

  “처음 협력할 때 외출을 제한하겠다는 사항은 없었던 걸로 압니다만.”

 

 

  희설은 그렇게 대답하고 집을 나섰다. 전화를 끊을 때 나직히 깔리던 대령의 한숨 소리가 똑똑히 들렸다.

 

 

  그 시각 윤형은 근 십여년 만에 사람이 직접 운전하는 구형 차량의 조수석에 앉아 식은 땀을 흘리는 중이었다. 원인이라 함은 운전대를 잡고 있는 소녀 덕이었다. 윤형은 처음 소녀가 가자고 했었던 폐차장이 떠올랐다. 구로에서 다짜고짜 자신을 끌고 온 소녀는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사고가 났던 플랫폼에 들어온 다음 열차를 타고 수원으로 향했다. 환승 없이 열 댓 정거장을 지나 수원역에 도착했다.

 

 

  수원역은 서울 시내의 지하철과는 또 다른 모습이었다. 역사가 워낙 크고 다른 편의시설과 맞물려 있던 탓에 노숙인들의 행색이 많지 않았다. 역 밖으로 나온 소녀가 말했다.

 

 

  “음. 데이터랑 많이 다르네요. 옛날엔 수원역 주변에도 노숙인이 많았다고 하던데.”

 

 

  “언제 적 얘기야.”

 

 

  적어도 윤형이 태어난 시기 전후로 그런 얘기는 없었다. 윤형은 행선지에 대한 고민 뿐 아니라 소녀를 부를 호칭에 대해서도 신경이 쓰였다. 언제까지 너, 야 로 부를 순 없는 노릇이었고, 얼굴이 희설과 닮았기에 빨리 적당한 이름을 붙여 애인과의 차별점을 만들어 주고 싶었다. 윤형이 물었다.

 

 

  “그나저나 뭐라고 부르면 되냐?”

 

 

  “저요? 아까 부르시던 것 처럼 부르면 되지 않아요?”

 

 

  “야, 너, 이런걸로 만족하냐?”

 

 

  “음…. 이름이 중요해요?”

 

 

  도리어 당당하게 되묻는 소녀 덕에 윤형은 말문이 막혔다. 사실 본인 입장에서 불리는 호칭에 불편함이 없다면 이름이 굳이 필요할까. 윤형은 깨달았다. 이름을 붙여야 할 필요는 바로 자신 때문이라고. 하지만 그 점을 입 밖에 내지는 않았다. 상대의 정체를 모르는 이상 감정적인 부분은 쉽게 보이지 않아야 하는 법이었다. 반면 소녀는 윤형이 골머리를 앓는 모습이 신기했던 듯 멀뚱히 바라보고 있었다. 윤형이 말했다.

 

 

  “뭘 보냐.”

 

 

  “아저씨요.”

 

 

  소녀의 대답에 윤형이 발끈했다. 자신을 아저씨라 판단한 근거가 무엇일까. 이제 이십 중반, 가장 혈기 넘치는 나이에 아저씨라 불린 것이 적잖히 속이 상했다.

 

 

  “야. 내가 어떻게 아저씨야. 어? 말이 돼?”

 

 

  “저보다 나이 많으면 다 아저씨랬어요.”

 

 

  윤형은 미간을 손으로 짚었다. 아무래도 가정교육을 단단히 잘못 받은 모양이었다. 윤형은 집으로 돌아가고 싶었다. 그는 희설에게 도움을 청하기 위해 주머니를 뒤졌다. 헌데 있어야 할 것이 없었다.

 

 

  “어? 뭐야. 내 핸드폰 어딨지?”

 

 

  “뭐 찾아요?”

 

 

  “뭐긴 스마트폰. 집에 가려면 태그는 찍어야 할 거 아냐.”

 

 

  “아 그거….”

 

 

  소녀가 뭔가 아는 듯한 뉘앙스로 말을 하자 윤형은 다짜고짜 소녀의 어깨를 잡고 추궁했다. 초조했던 탓에 소녀의 어깨를 쥔 손이 좀 셌음에도 소녀는 아프다는 내색조차 하지 않았다. 윤형이 재차 물었다.

 

 

  “봤어?”

 

 

  “네. 아저씨가 선로에 떨어졌을때 열차가 빡 하고 밟았어요.”

 

 

  “…….”

 

 

  윤형은 실감나는 표현에 말을 잃었다. 누굴 탓 할 일은 아니었다. 적어도 오는 도중에 한 번이라도 주머니에 손을 넣어봤으면 알 수 있었던 일이니까.

 

 

  “왜요? 문제 있어요?”

 

 

  분위기를 모르고 질문을 계속하는 소녀는 윤형의 손이 왜 바들바들 떨리는지 이유를 알려달라 했다. 윤형이 대답을 할 때였다. 그가 본 소녀의 눈동자 속에 아주 미약하게 붉은 점이 반짝하더니 사라졌다. 그와 동시에 소녀의 표정도 같이 사라졌다.

 

 

  아주 잠깐의 시간, 단 1분도 되지 않는 시간에 수많은 변화가 일었다. 먼저 소녀가 하늘을 보았다. 두 사람 위로 큰 그림자가 날아들었다. 밤하늘 색과 비슷하게 몸을 까맣게 칠한 헬기 한 대가 그들의 머리 위로 날아왔다. 소녀는 플랫폼에서 봤을 때와 같은 밑기지 않는 움직임으로 자세를 낮게 숙이더니 윤형의 손을 잡아채고 달리기 시작했다. 찰나의 시간 후에 윤형이 발을 딛고 서 있던 바닥에 총탄이 날아들었다.

 

 

  윤형이 상황을 인지한 것은 역 앞 삼거리의 횡단보도를 건너 5층 짜리 빌딩이 늘어선 대로변을 달리고 있을 때였다. 어떤 말도 할 수 없었다. 그저 두려움을 이기려 자신을 잡고 있는 손이 이끄는 대로 달리는 것이 전부였다.

 

 

  “골목으로 숨어요!”

 

 

  소녀는 그렇게 소리치고 정확히 3초 후 오른쪽 건물들 사이의 골목으로 방향을 틀었다. 소녀는 대뜸 달리다 멈춰선 윤형을 안아들고 양쪽 건물을 번갈아 딛으며 단숨에 3층 높이까지 뛰어올랐다.

 

 

  “ㅁ… 뭐?”

 

 

  윤형의 감상은 그게 다였다. 얼빠진 단말마가 채 끝나기 전에 소녀는 몸을 날려 3층에 나 있던 창문 하나를 향해 그대로 뛰어들었다. 유리가 깨지는 소리가 들리며 두 사람이 바닥에 나뒹굴었다. 그들이 뛰어든 곳은 VR룸이었다. 많은 사람들이 몸이 푹 잠기는 의자에 앉아 튜브형 글라스를 낀 채로 누워 있었다. 현실의 감각을 들을 수 없는 사람들인 탓에 두 사람의 요란한 등장에도 불구하고 별 반응이 없었다.

 

 

  소녀는 나사빠진 표정으로 자신을 보고 있는 윤형의 팔을 당겨 일으키고는 다시금 도주를 재촉했다. 소녀는 건물의 창문을 통해서 다음 건물로, 그런 식으로 외부로의 노출을 피해 달아났다. 그렇게 열 번 이상의 무모한 도약을 계속 한 후에야 소란이 잦아들었다.

 

 

  마지막으로 도착한 곳은 사람이 없는 불 꺼진 사무실이었다. 요즘 시대에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이 많지 않은 시기에 사무실을 구경하는 것은 윤형에겐 색다른 체험이었다. 소녀는 사무실 창을 깨고 들어오자 마자 창문의 블라인드 글래스를 조종해 바깥의 상황을 살폈다. 유리가 투명해졌다가 불투명해지는 간극은 불과 삼 초 남짓. 일련의 행동을 모두 마치고 나서 소녀가 한숨을 쉬었다.

 

 

  “에휴. 죽다 살아났네.”

 

 

  태연하게 그리 말하는 소녀에게 무어라 꾸짖으려 했던 윤형은 다리가 풀려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소녀가 다가왔다.

 

 

  “좀 괜찮아요?”

 

 

  괜찮을 리가 없었다. 윤형은 주저않은 불썽사나운 모습으로 자신보다 한참은 어려보이는 소녀를 향해 고함을 질렀다.

 

 

  그 시각 권호 대령은 상황실에 앉아 수원에서 오는 보고를 받고 있었다.

 

 

  “까마귀. 목표를 놓쳤습니다.”

 

 

  “귀환 하도록.”

 

 

  보고에 대한 대답은 간단했지만 대령의 속은 좀 더 복잡했다. 인류의 미래를 위해 은하 상사가 탈취한 의체를 반드시 회수해야 했다. 행여 예의 의체에 리모트 콘트롤이 아닌 별개의 AI라도 이식된다 하면 사태는 걷잡을 수 없이 커질 것이다. 물론 시간은 걸릴 터였으나, 사태를 긴급하게 할 정도의 위험성이 있었다.

 

 

  하지만 의체의 우수성 때문에 실패한 작전에 대해 누군가에게 책임을 물을 수도 없었다. 오늘따라 어깨에 박힌 무궁화 세 개의 견장이 더욱 무겁게 느껴졌다.

 

 

  “가만 보니 내가 누구한테 책임을 물을 입장이 아니군, 내가 책임을 져야 하는 자리야….”

 

 

  부관이 그에게 와 용태를 물었다.

 

 

  “괜찮으십니까.”

 

 

  “괜찮지. 하지만 빨리 해결을 못하면 어느 누구도 괜찮지 않게 될 거야.”

 

 

  “이해합니다. 다음 작전을 위해 필요한 정보가 있다면 수집하겠습니다.”

 

 

  “부탁하네.”

 

 

  대령은 부관에게 남은 뒷일을 맡기고 상황실을 나섰다. 지금 대령의 머릿속엔 서너개의 시나리오가 동시에 떠올랐다. 작전시의 보고로는 의체는 은하 상사가 아닌 윤형으로 파악된 남자와 같이 있었다 했다. 그럼 의체와 윤형의 관계를 파헤치는 한 편, 은하상사의 소재를 파악하는 팀도 별도로 꾸려야 했다. 거기에 번거롭게 움직이기 시작한 희설의 문제도 있었다. 그에게 있어 지금 당장 의지할 수 있는 사람은 방금 전까지 옆에 있던 부관 뿐이었다. 대령이 지나간 블록의 조명은 그의 모습이 사라지자 바로 불빛을 거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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