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11월 1일
늦잠을 잤다!
항상 불안함과 긴장감을 가지고 잠에 들었다가 어제는 나도 모르게 편안하게 잠들어서 그랬나 보다. 미친 듯이 양치와 옷갈아입기를 한번에 하면서 스트레스를 팍 받는 중이다. 아 씨... 점점 우울해질라 그래... 일어나자마자 빼먹은 우울증 약과 추가 약을 두알 정도 더 덜어 먹는다. 이놈의 완벽주의적 성향은 항상 실수나 잘못을 저지르면 스스로에게 극심한 스트레스와 두통을 준다.
“안녕하세요!”
“10분 지각! 웬일이래? 지각 없어서 맨날 포상금 받던 아가씨가?”
“아... 어제 술을 좀 마셔서...”
“에헤이! 술 안마시다가 또 왜 마셔~ 우리같이 매일 일하는 사람은 자나깨나 술 조심!”
“넵 명심하겠습니다! 이거 재고부터 정리하면 되나요?”
여유없는 아침에 바로 시작하는 하루 일. 이런 일이 몇 번 없었던 나에겐 힘들고 숨차다.
자꾸만 나 스스로에게 책임을 묻는 질책이 날아온다. 잠에 곯아떨어질 것 같으면 밤을 새던가!!! 이 미친 **야... 항상 흠없는 모습 보여 왔잖아! 이제 와서 왜 그래...
그만. 이런 생각들을 더 하다가는 우울감이 또 스멀스멀 올라올 거다. 그만해야 한다. 일에 집중해야 한다. 일에 집중...집중...
헐레벌떡 시작한 아침이어서인지 점심시간은 의외로 빨리 왔다. 사실 카페 문을 열기 전까지만 해도 그에 대해 잊고 있었다. 그러나-
“어! 하현씨! 오셨네요.”
아, 맞다.
“어 네... 수일..씨 맞죠? 뭐라도 드셨어요?”
“아, 같이 먹으려고 기다리고 있었죠. 점원이 여기 브런치 세트가 맛있다던데?”
브런치 세트? 한번도 생각 안해봤던 메뉴다. 왜냐하면, 당연히, 비싸니까.
“아... 브런치 세트요? 그게 좀...”“제가 살게요. 오늘 하현씨 불러낸 건 나니까.”
항상 앉던 창가 자리에 앉은 나는 또 다시 내 과거와 마주할 수 밖에 없었다. 김진애 박사의 “한 번은 독해져라”. 고등학교 3년 내내 내 책상 앞에 꽂혀 있었던 책. 책의 3분의 2 지점에 크라프트 종이 책갈피가 꽂혀 있었다. 매번 독해지려고 시도했지만 한 번도 독해져 볼 수 없었던 나. 독하지 못했던 거라고 생각했지만 우울증 진단 받고 나서 나는 독할 수가 없었던 것이라고 결론 내렸었던 책이다. 그런데 우연치곤 참 대단한 책 선정이네. 책을 뒤적이던 찰나, 그가 커다란 브런치 접시를 테이블에 내려놓았다. 우와.
“여기 카페 참 괜찮네요? 하현씨가 골랐나요?”
“아... 그냥 가게 앞이라서...”
“요즘 시대에 이 귀찮은 에그 베네딕트를 만들어 주는 카페는 흔치 않아요. 수란은 그때그때 익혀야 하거든요. 홀랜다이즈 소스는 또 어떻고.”
“아... 에그... 베네딕트요?”
처음 들어보는 생소한 메뉴다. 참... 정갈하면서 화려해 보였다. 빵 반쪽에는 햄과 시금치 등이 얹어 있고 그 위에는 반쯤 익은 달걀, 그리고 부드러운 노란색 소스가 흘러내리고 있었다. 근데 이걸...어떻게 먹지? 위에 빵이 얹어져 손으로 집어먹을 수도 없고... 옆에 포크랑 칼이 있는 걸 짐작해서 나는 이 요리를 분해해 먹기로 했다.
“어? 그거 분해해서 먹으면 맛 없어요. 이리 줘봐요.”
그는 능숙하게 계란부터 빵까지 수직으로 잘라 찍은 조각을 소스에 뭍혀 내게 내밀었다.
“감사합니다.”
버터의 진한 풍미와 야들야들한 달걀, 짭조름한 햄. 매일 먹던 단조로운 치즈 베이글에 비해 환상적인 맛이었다. 이 카페가 이렇게 요리를 잘 했었나. 그를 따라 수직으로 자른 조각을 하나 더 입에 넣는다. 역시 소스에 뭔가가 있나.
“드디어 웃네요. 역시 맛있는 거 먹는 거야말로 행복이죠.”
“네? 아. 제가... 웃었나요?”
“입꼬리 살짝 올라갔어요. 보기 좋은데요 뭘. 예뻐요.”
아. 초면부터 이런 멘트라니. 그런데도 불편하지가 않았다. 그냥... 편안했다. 이 특이한 느낌은 뭘까. 이 남자가 대체 누구길래.
“그래서, 오늘은 아침부터 왜 우울했어요?”
이 사람이... 귀신인가... 아님 나 스토킹? 우울한 건 어찌 알았대...
“아, 표정 보면 딱 보여요. 오늘 완전 스트레스 받은 일 있었던 것 같은데?”
“아... 네... 오늘.. 늦잠잤거든요.”
“늦잠잤군요. 그래서요?”
“네?”
“지각해서 우울한 거에요?”
“아 지각한 것도 있고... 그냥... 제 스스로가 못마땅해서 좀 그랬나봐요.”
“뭐가 못마땅했어요?”
“음... 제가... 휴우... 그냥 완벽하게 잘 근무하고 있었는데, 지각했다는 게...”
“하현 씨, 사람은 누구나 지각해요.”
“그렇지요. 그렇지만...”
“그 누구도 완벽하진 않아요.”
그 누구도 완벽하진 않다. 그렇지.. 그런데 왜 난 나 자신이 완벽하지 못한 것에 스트레스를 받을까. 왜 내가 항상 못마땅한 걸까. 왜 나는... 나를 인정할 수 없는 걸까. 내 잘못을, 내 자신을.
“그 누구도 완벽하진 않지요. 저도 그렇지만... 저는... 제 자신이 많이 싫나봐요. 그래서 스트레스를 자꾸 스스로 주네요.”
“그거 나쁜 버릇인 거 알죠?”
“네? 아 네.. 나쁜 버릇이죠...”
“그럼 고쳐요.”
“네? 그게 그렇게 간단히..쉽게 되는 일이 아닌데...”
“그럼 내가 도와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