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콰아앙
괴수인 광소화룡이 토해낸 지옥불과도 같은 화염을 두 팔과 몸으로 가려서 막아낸 강현은 참을 수 없는 뜨거움에 신음성을 흘렸다.
“크으음.”
검기에도 상처를 입지 않는 강현의 팔이 시뻘겋게 변하며 부풀어 올랐다. 화염덩어리의 위력이 아마도 강기 이상이었던 모양이었다.
광기에 물든 광소화룡의 눈에서 시선을 거두지 않고 화령에게 말했다.
“괴수가 보통이 아니니, 혼자서 상대하는 것은 무리요. 양쪽으로 나누어서 상대합시다.”
협공하자는 뜻이었다.
“예, 그렇게 해요.”
화령은 강현의 부상에 타구봉을 단단히 고쳐 잡고 괴수를 잡아먹을 듯이 분노하며 내공을 끌어 올렸다.
강현은 내력을 주입한 검을 횡으로 그었다.
-츠읏
푸른 실선의 검기는 공간을 가르며 괴수에게 날아갔다. 검기가 날아가지만 실상은 눈에 보이지도 않을 만큼 빠르다.
-촤라라랑
무쇠도 자르는 검기는 괴수의 단단하기 그지없는 발톱에 막혀 버렸다.
다시 한 번. 더 강하게 검을 그었다.
“천이단극.”
검에서 뻗어나간 강력한 검기가 이번엔 괴수의 아래쪽을 쓸어갔다.
-콰가가가각
괴수란 놈은 만만치 않았다. 육중한 몸을 하고서도 민첩하게 움직이며 검기를 피하는 것도 모자라서 꼬리로 일격을 날려 온다.
-후우우우웅
-파캉
놈의 힘이 얼마나 강한지 뒤에서 보았기에 정면으로 맞부딪치지 않고 비껴서 검으로 쳐 내었지만, 몸이 뒤로 몇 걸음이나 물러났다.
“이놈아, 이것도 한 번 받아봐라.”
강현은 만리비행의 보법을 밟으며 괴수의 몸 곳곳을 찌르고 베며 공격을 가했다.
-팍, 파가각
외피가 너무 단단한 탓인지 결정적인 피해를 입히지 못했다. 그리고 괴수가 어찌나 빠르던지 미처 피하지 못한 강현의 등을 날카로운 발톱이 훑고 지나쳤다.
-차라라락
“크흡.”
등에 길게, 얕지만 상처 자국이 났다.
금강불괴와 같은 자혼 강시의 신체를 지녀 보검이 아닌, 웬만한 무기로는 상처를 입히지 못했으나 괴수의 발톱에는 자혼 강시의 신체도 안전하지 못했다.
공격이 최선의 방법이기에 강현은 고통과 위험을 무릅쓰고 괴수에게 재차 검을 날렸고, 괴수도 가만히 당하지만은 않겠다는 듯 다시 날카롭고 흉흉한 무기인 발톱을 앞세워 강현의 목숨을 노렸다.
설마하니 괴수에게 당할까보냐. 쉽게 봤던 괴수에게 역공당한 강현은 무시무시한 발톱이 몸을 스칠 때 마다 긴장감은 더해갔다.
말은 안하지만 그녀도 지금 두려움이 엄습할 거라 생각되었다.
“크으, 뭐, 이렇게 단단한 거지. 몸에 금강석이라도 둘렀나!”
강맹한 검기가 실린 검에 수십 차례 가격 당했음에도 상처하나 제대로 입지 않자 질려서 도리질을 했다.
이 상태로 계속 붙었다가는 어두운 땅속, 저 이름 모를 괴수에게 잡혀 난생 처음 죽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는 몰라도 그녀만은 꼭 살아서 이곳을 나가게 해주고 싶었다.
화령은 괴수 앞에서 자만했던 자신을 후회하며 탓했다.
‘내가 너무 안일했어. 죽더라도 강현님을 위험에 빠트려서는 절대 안 된다.’
한쪽에서 짙푸른 기가 넘실대는 타구봉을 움켜쥔 채 빈틈을 노리는 화령을 보았다.
온 몸이 흙투성이인 채로 자신의 안위는 상관없이 저돌적으로 맞서고 있는 화령을 본 강현은 정신이 번쩍 들었다.
‘정신 차리자! 그녀가 위험하다.’
사력을 다해 손에 쥔 검에다 만년화정의 내력까지 더해 내공을 불어 넣기 시작했다.
근육이 부풀고 막대한 내공이 지나감에 따라 몸에 나있는 핏줄이란 핏줄은 전부 툭툭 튀어나왔다.
-그으으응
검에서 일렁이는 검기가 이전과는 확연히 다르게 타오르듯이 청광이 더욱 짙어지며 검강으로 바뀌었다. 절대고수 정도만이 할 수 있는 검강이 발현 된 것이다.
-쩌어엉
거기서 멈추지 않고 더욱 정점에 이르러서는 검강이 검속으로 갈무리 되듯 사라졌다.
‘어라, 검기의 성질이 바뀌었네!’
검 날의 주변이 이글거리며 공기가 이지러진다.
-지이잉
괴수와의 접전을 통해 무공이 두 단계 더 올라서게 된 것이다. 검기의 유형이 바뀐 것에 기쁨과 궁금함이 일었지만, 지금 그걸 생각할 때가 아니었다.
무공의 진전과 함께 이제껏 괴수를 상대했던 거와는 또 다른 기세가 폭풍처럼 일어나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곁에서 본 화령은 꿈을 쫒는 듯이 몽롱한 눈빛으로 젖어들었다.
‘아아, 어쩜! 그는 괴수를 물리치는 천계의 장수와도 같구나.’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혼신의 무공을 펼치는 그에게 한없이 빠져들었던 화령은 동굴 전체가 흔들릴 정도의 크고 괴기스런 소리에 현실로 돌아왔다.
-카르르륵, 콰르르릉
“헛, 조심해요!”
괴수가 토해낸 엄청난 열기의 화염구는 극양의 강기와도 같은 위력을 보였다. 빛처럼 빠르게 날아오는 화염을 마주 상대하지 않고 옆으로 흘렸다.
또다시 화염을 토해내기 위해서는 시간이 필요한 것을 알았기에 곧바로 섬전처럼, 코앞까지 근접한 강현은 아래쪽을 향해 검을 그었다.
-치이이익
만년화정의 내력이 더해진 이글거리는 검에 괴수의 가죽이 일부 갈라지며 푸른 피가 튀었다.
고통에 찬 괴수는 괴성을 내지르며 꼬리를 휘둘렀지만, 검에 막히고 말았다.
-파아아앙
내력을 최대한 끌어올려 막았음에도 손아귀가 터질듯 했다. 괴물도 괴물이지만, 이에 맞서는 둘도 정상은 아니었다.
지닌바 무공을 모두 펼치며 상대를 했어도 괴수는 여전히 쓰러지지 않고 저만치서 잡아먹을 듯이 활활 타오르는 눈빛을 하고 숨을 고르고 있었다.
한 가지 희망이라면 강현이 성장함에 공격이 먹히기 시작한 점이었다.
‘그렇다면······.’
“군악호산!”
천변무의 검식이 내력을 잔뜩 머금은 검에서 괴수의 정수리를 쪼갤 듯이 눈부신 검기가 쏘아졌다.
-서걱
-캬아아아아
검기를 막은 괴수의 앞발 부분이 뼈가 다 보일 정도로 길게 베이며 녹색의 피가 튀었다.
-콰콰콰쾅, 콰쾅
참기 힘든 고통에 몸부림치는 괴수 때문에 동굴이 무너질 정도로 주변이 초토화되기 시작했다.
“이크크, 아주 지랄발광을 하는구나.”
누가 들으면 들짐승이라도 잡는 소리인 줄 알았을 것이다.
강현은 여세를 몰아 천변무의 다음 검식을 전개했고, 반대편에서는 짙푸른 기가 넘실거리는 화령의 타구봉이 춤을 추듯 괴수의 뒤를 압박했다.
-퍼퍼퍼펑
강현과 화령의 협공으로 수세에 몰렸으나, 괴수는 역시 보통 영물이 아니었다.
일정 거리를 벌린 뒤, 검을 거두고 화령의 옆으로 자리를 옮겼다. 잠시 싸움이 소강상태에 접어들자 강현은 지친 괴수를 예의 주시했다.
“괴수가 보통 징글징글한 게 아니야. 아마도 전설상의 용이 되려고 하는 놈인 것으로 보이는데 혹시, 내단도 있으려나.”
“우왕, 내단!”
내단 이라는 말에 좋아서 눈을 동그랗게 뜨고 말하는 그녀의 모습이 너무나도 아이 같아서 크게 웃고 말았다.
“핫하하하.”
그녀가 민망한지 얼굴을 푹 숙였다. 무심코 그런 그녀의 앞머리를 쓰다듬자, 그녀는 싫지 않은지 발치의 돌을 툭툭 차며 수줍게 웃었다.
“헤헤헷.”
둘의 달달하고 불타는 모습에 괴수가 마치 시기라도 하는 듯 화끈한 화염을 쏘아냈다.
-화르르르릉
-타닥
둘은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서로를 밀어주며 피했다. 그리고 곧바로 반격을 시작했다.
“조심하세요!”
“그대도 조심하시오. 이놈, 이번엔 아주 끝장을 내주마.”
-스스슷
순식간에 바닥을 구르며 거리를 좁힌 강현은 이글거리는 검을 괴수의 아래쪽으로 쓸어갔다.
괴수는 섬뜩하게 다가오는 검에 놀라 뒤로 성큼 물러났다.
강현은 곧바로 벽을 타고 오르며 등 뒤를 검으로 갈랐다.
-촤아아악
입으로 물려고 하는 괴수의 머리를 화령의 타구봉이 강타했다.
-콰아앙
강현은 내력을 최대한 끌어 올려 중심을 잃고 넘어가는 괴수의 몸통 한가운데에 검을 찔러 넣었다.
-빠드득
괴수의 가죽이 조금씩 녹아내리며 벌어졌다.
그대로 힘을 더 가하자 검이 더 깊게 틀어 박혔다.
-캬아아아
몸부림을 치던 괴수가 그를 떼어 놓으려고 꼬리를 휘두르려고 하는 게 보였다.
-콰콱
몸통에 박힌 검을 발로 세게 밟으며 뒤로 훌쩍 몸을 날렸다. 그 덕분에 검이 자루 뒷부분만을 남기고 깊숙이 박혔다.
-케르르르륵
괴수의 흉포한 눈동자는 흐리멍덩해졌고, 입에서는 푸른 피가 연신 꾸역꾸역 흘러 나왔다. 더 이상 버티기 어려워 보였으나, 영물을 상대로 방심은 금물이었다.
괴수는 입을 크게 벌리며 다시 한 번 공격을 취하려는 행동을 보였다.
“내 뒤로 서요!”
“넷!”
뒤에 서라는 말에 냉큼 자리를 옮기는 자신을 보고 실소를 머금었다.
‘후훗, 언제부터 내가 이 사람을 이렇게······.’
그의 다정다감함이 좋다. 소중하게 생각해주는 그의 마음이 전해진다.
험난한 강호 무림에서 누가 있어 자신을 이리 아껴주겠는가.
개방의 소방주인 화령의 무공은 이미 무림맹 장로급인 초절정 고수에 근접에 있었고, 내공은 무림에 전설인 절대고수와 견주어도 부족하지 않았다.
그런데도 강현의 한마디에 말 잘 듣는 어린아이처럼 행동한 자신이 우스웠지만, 그 어떤 것에도 흔들리지 않을 태산 같이 우뚝 서있는 그의 모습에 입 꼬리가 스르르 올라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