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시 설치된 천막을 걷고 정리 한 후에 간단히 식사들을 마친 무림인들은 진삼영 당주의 인도 하에 자리를 이동하기 시작했다.
“여기서부터는 가는 길이 많이 험하고, 위험하니 도착 근처까지 잘 따라 주시기 바랍니다.”
“알겠소이다. 진당주. 길 안내를 잘 부탁하오.”
빙궁의 외곽으로 빙 돌며 길을 떠나는 가운데 남궁기영은 멀리 빙궁의 성벽을 쳐다보고 이를 갈았다.
빠드드득.
“제길, 쉬운 일을 어렵게 풀다니. 빙궁 놈들, 각오해야 될 거야!”
성벽 위에 경계 무사를 노려보는 그는 꼭 기회가 되면 반드시 갚아 주리라 다짐하며 주변 무사들과 함께 살기를 풀풀 날렸다.
그러거나 말거나 빙궁의 경계 무사들은 비웃음을 짓고 있었다.
누가 있어 앙숙이나 다름없는 상대에게 안방을 내주겠는가! 빙궁의 입장에서 보면 당연한 결과였다.
이 정도면 그래도 자존심 강한 빙궁에서 많이 양보한 것이다. 그리고 가서 아예 좀 죽어 나갔으면 하는 맘도 있어보였다.
빙궁을 통해서 한시진이면 갈 거리를 이틀이 걸렸으니, 험한 길로 돌아서 간 까닭이다. 문제는 여기서 부터다.
아무리 무공이 뛰어난 무인이라도 이곳에서 빙백산을 오르기란 어려웠다.
빙백수룡을 잡기 전에 험난한 산세에 오르다 먼저 죽을 수도 있었다.
휘이이잉.
온통 주위가 얼음으로 덮인 빙백산 골짜기에서 불어 닥치는 칼바람. 거짓말 좀 보태서 검기가 실린 칼바람과 같았다.
고수전 참가자들은 문파 식구들의 진심어린 환송을 받으며 길을 나선다.
“소가주님, 부디 성공하시기를 바랍니다.”
“대사형, 몸조심하세요.”
개방의 식구들도 한마디씩 했다.
“소방주님. 빙백수룡의 고기 맛이 어떤지 다 같이 좀 먹어 봅시다. 히힛.”
“야아! 쓸데없는 소리 하지 말고. 소방주님, 위험하면 무리하지 마시고 그냥 오세요. 네에, 소방주님!”
“호호홋, 알았어. 보연의 지시 잘 따르고 말썽피지 말고 잘 기다려라.”
강현도 제자와 수하들의 남다른 배웅에 차마 발길을 떼지 못하고 있었다.
“사부님. 아무래도 생각해도 위험할 것 같습니다. 제가 몰래 뒤 따라 가겠습니다. 허락해 주세요.”
“후후, 괜찮으니 너는 여기서 수하들을 잘 다독이고서 기다려라.”
한사코 따라 온다는 제자. 그리고 뭔가 눈치를 챈 부영과 옷자락을 잡고 있는 불안한 눈빛의 소명. 천둥까지.
“자꾸 그러지 말고 별일 없을 꺼다. 수연의 말을 잘 듣고 있어. 알았지!”
컹컹컹.
“주군, 따르겠습니다.”
“주군, 나도 따라.”
간신히 설득해서 길을 나서는 강현과 옆에서 굳은 각오를 하고 나란히 걷는 화령.
몇 걸음 떨어진 거리에서 불만 섞인 눈초리를 보내며 움직이는 남궁기영과 고수전 참가자들은 불어오는 칼바람을 정면으로 맞으며 한발 한발 내딛었다.
빙백산의 초입은 그런대로 오를 만 했다. 그러나 조금 더 오르자 벼랑 같이 가파른 빙벽이 위용을 드러내며 발목을 붙잡았다.
파캉, 파캉.
무사들은 무림맹에서 준비한 날카로운 발톱 모양의 쇠붙이를 손에 끼고서 오른다. 정확한 위치는 모르지만 대략 진 당주에게 전해들은 위치를 가늠하며 오르기 시작했다.
쩌저적.
“헛, 위험해!”
바위 같은 큰 얼음조각이 떨어져 나갔다. 그 얼음은 부딪치며 더 큰 얼음을 부수고 연속적으로 부딪쳐 산을 크게 울렸다.
콰르르르릉.
경공에 능한 민첩한 무인이라도 한정된 장소인 빙벽에서는 운신이 쉽지 않았다.
“후우우. 큰일 날 뻔 했군.”
하마터면 빙백수룡의 그림자도 못보고, 바위에 맞아 떨어질 뻔 한 종남파의 유성검 종소총은 호흡을 가다듬었다.
카오오오우.
진정되자 종소총은 다시 움직이려는데 머리칼이 곤두서는 소리에 발을 떼지 못했다. 그 뿐만 아니라 다들 멈추었다.
빙백산을 울리는 소리. 생전 처음 느껴보는 원초적인 두려움을 일으키는 울림이 다시 메아리 쳤다.
카라라라락.
괴성이 처음 울렸을 때 만 해도 바람소리가 유별나다 했는데 그게 아니었다.
강현도 놀라 멈추었고 다른 무인들을 돌아보니 경직된 얼굴이었다.
곧바로 좀 떨어져있는 화령의 모습을 살폈다. 시선이 마주치자 괜찮다는 얼굴로 웃어 보였다.
우리는 나름 전적이 있었다. 바로 괴수인 광소화룡과의 격전 때문에 어느 정도는 익숙한 것이다.
무인들이 놀란 것도 잠시, 빙백수룡을 어떻게 찾나 고민할 필요도 없다는 생각이 미치자 오히려 반색하는 분위기로 바뀌었다.
이곳에 모인 이들은 중원 무림을 대표하는 후기지수들 이었다. 그런 그들에게 빙백수룡은 두려움이 아닌, 영물중 하나에 지나지 않았다.
“남궁 소가주, 잘 됐소이다. 소리가 들린 저 쪽 방향에 빙백수룡이 있는 것으로 보이니 일단 같이 움직입시다.”
“그게 좋겠소이다. 다들 조심하시오.”
육대세가 인물들 중심으로 서로 공을 세우겠다고 소리가 들린 방향을 잡아 이동을 시작했다. 그들의 행동에 나머지 구대문파 무인들도 타당성이 있어 보여 적당한 거리를 두고 신형을 움직였다.
강현은 빙백수룡 보다 그녀의 안전이 우선이기에 될 수 있으면 뒤에서 움직였다. 그녀도 자연스럽게 후미로 다가와 합류했다.
“강현님, 빙백수룡이란 영물이 먼저 번의 광소화룡과 비슷한 종류일까요?”
“흠, 아마도 비슷하거나 하지 않을까! 근데 말을 전해 듣고 소리까지 들어보니 예사롭지가 않아. 아무래도 조심하는 게 좋을 것 같아.”
“네, 그럴게요. 강현님도 꼭 조심하세요. 그리고 뭣하면 제가 도울게요.”
그녀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면 좋지. 위험할 땐 절대 앞으로 나서지마. 내가 맡을 테니까.”
화령은 손으로 입을 살짝 가리고 웃었다.
“호호호, 제 모습이 이래보여도 많이 세답니다. 한 팔 거둘 수 있어요.”
그녀의 강함은 그도 알기에 같이 웃어주었다.
“하하하, 여협님. 그럼 잘 부탁하겠소!”
둘이서 대화를 나누며 이동하는 사이 무인들이 모여 멈추어 있는 곳에 도착했다.
“어헉, 저, 저게 바로 빙백수룡!”
“······이건 대체, 실제로 보니 상상 이상의 괴물이로구나!”
“꿀꺽!”
오십장(150미터) 정도 가까운 거리에 커다란 바위 사이에서 정면을 노려보고 있는 영물 빙백수룡.
그 모양새는 순백의 몸통에 기다란 사슴 같은 뿔과, 푸른색의 크고 날카로운 발톱.
광기에 물든 홍옥보다 진한 붉은 눈은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가히 범접할 수 없는 영험함이 깃들어 있었다.
절반 정도만 보이는 크기만 해도 성인 서너 명을 합친 길이만큼 되어 보였다.
누구하나 선뜻 나서지 못하고 긴장감에 팽배해 있을 때.
콰오오오우.
천지를 울리는 소리. 내력이 진탕할 정도였고, 소림의 사자후라고 한들 이보다 더 강렬할 수는 없을 것이다.
내력으로 고막을 보호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했는지 몇몇은 손으로 귀를 막기까지 했다.
고수전 참가자들은 정신을 차리고 서로간의 간격을 벌리며 조심스럽게 좌우로 흩어졌다.
힐끗.
고개를 뒤로 돌린 남궁기영의 시선이 화령을 향했다. 그리고 손짓을 하며 뒤쪽으로 가라는 신호를 보내는 것이다.
그녀가 어깨를 으쓱하며 어쩌라는 시늉을 해보였다. 남궁기영은 못마땅한 얼굴로 강현을 돌아보았다.
어쨌거나 그녀를 생각해주는 마음에 강현은 뭐라 내색 안하고 화령을 데리고 남궁기영 무리가 있는 뒤로 이동했다.
빙백수룡과 대치중인 시점에 누구하나 섣불리 나서지 못하는 상황에서 황룡세가의 황룡광예가 내력을 일으켜 달려 나가면서 검초를 날렸다.
“먼저 가겠소. 황룡비검!”
날카롭고 강력한 검기가 허공을 가르고 빙백수룡에게 쏘아졌다.
파가가각.
빙백수룡이 보란 듯이 공중으로 완전히 몸을 띄워 검기를 피해내고 대신 바위가 맞았다.
‘이런, 빌어먹을.’
아무리 전설상의 신룡이라 불리는 영물이라지만 내심 기대를 했는데 그의 공격이 무위로 돌아가자 자존심이 상한 그는 다시 검초를 날렸다.
“황룡비천”
이번엔 제대로 맞았다. 헌데 몸통을 맞았음에도 아무렇지도 않은지 위 아래로 움직이며 비웃는 느낌의 행동을 보였다.
전체적으로 몸을 완전히 드러낸 수룡의 크기는 입이 딱 벌어질 정도로 어마어마했다. 머리부터 꼬리까지 대략 칠장(20미터)은 족히 되어보였다.
북해빙궁의 전설로 내려오는 빙백수룡. 영물을 넘어서 신룡이라고 불린다.
빙백산에 터를 잡은 지 어언 삼천년이 넘었다. 오래전 어느 날 인간들이 나타나 소란을 피워서 죽였더니, 재물을 바치고 고개를 조아리기에 내버려 두었다.
그날 이후로 조용하다 갑자기 때로 나타나서 잠을 방해하다니. 씹어 먹어도 시원찮을 인간들이라며 빙백수룡은 분노했다.
냉기를 머금은 콧김을 씩씩 내뱉으며 눈을 두리번거린 뱅백수룡은 무시 못 할 인간들의 기운이 신경 쓰이지만, 그뿐이다.
크르르르르.
등골이 서늘하고, 혼백이 달아날 정도의 소리도 소리지만, 빙백수룡의 주위의 공기가 더욱 얼어붙으며 냉기가 급속하게 떨어졌다.
빙백수룡의 위엄한 움직임이 느껴지자, 이번엔 남궁기영과 팽운화가 거의 동시에 나섰다.
“창궁장천.”
남궁세가의 대표적인 검식중 하나인 검초가 허공을 가르며 출수됐다.
“혼원멸섬.”
처음부터 대놓고 성명절기인 혼원벽력도의 도법이 팽운화의 손에서 사정을 두지 않고 발출됐다.
그에 맞서 피하지 않고 확연하게 보일 정도의 짙은 안개 같기도, 얼음 같기도 한 빙연(氷煙)이 거대한 검막처럼 펼쳐졌다.
샤아아아.
남궁기영의 검기는 부딪치자 맥없이 사그라졌고, 팽운화의 도에서 발출된 도기는 꼬리 부분으로 빗겨 쳤다.
파캉.
“으음.”
“헛!”
의외의 괴력에 검기를 날린 당사자는 물론이고, 지켜보던 이들도 난감한 표정들과 신음성을 흘렸다. 이정도 일 줄은 꿈에도 생각들을 못한 것이다.
“어쩐지 빙궁 놈들이 빙백산에 오르는 걸 순순히 보고만 있는가했다.”
각자의 무공과 성향이 다르지만, 이순간만은 연합하여 수룡을 잡은 후에 공헌도에 따라 우열을 가리는 것 말고는 달리 방법이 없어 보였다.
육대세가 인물들의 주도하에 결정이 났지만, 나머지 구파일방 등의 무인들도 딱히 반대할 이유는 없었다. 그만치 수룡은 절대 난적이었다.
서문세가의 서문제우가 빙백수룡을 중심으로 끌어들이기 위해 나섰다.
“가운데로 한 번 끌어내 보겠소. 제아무리 영물이라지만, 한 낱 미물 따위에게 밀릴 수는 없지.”
내력을 끌어올린 그는 검기를 잔뜩 머금은 도를 휘두르며 출수를 했다.
“파천양단.”
하늘도 단숨에 쪼갠다는 강렬한 단해도법이 빙백산에서 펼쳐졌다.
쩌르릉.
산을 울리는 소리와 함께 발출된 반월형의 도기는 매섭게 수룡을 노렸다.
크라라락.
수룡도 섬뜩하게 포효하며 이에 질세라 내뿜은 짙은 안개 모양의 빙연을 내뿜었고, 둘 사이의 간격은 순식간에 좁혀졌다.
서문제우는 피하지 않고, 튀어 오르며 수룡의 머리 부분을 수직으로 그어 내렸다.
콰카카칵.
기가 실린 도와 수룡의 발톱이 서로 맞닿으며 기괴한 소리를 냈다. 도법이 가로막힌 것이다.
파아앙.
“헛!”
이어서 수룡의 꼬리가 섬전처럼 서문제우의 몸을 노리고 휘둘러졌다.
간신히 보법을 밟아 옆으로 빠진 사이에 남은 무인들이 일제 가세했다.
“황룡출해!”
황룡세가의 소가주인 황룡광예의 검에서 황룡제화검의 초식이 출수됐다. 양강 계열의 정수답게 검기가 이글거리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콰드드득.
그의 검과 수룡의 냉기를 품은 빙연이 부딪치며 굉음과 함께 주변으로 얼음 파편이 암기처럼 퍼졌다.
슈슈슈슉.
“이런, 제길 피해!”
점창파의 양기창이 창을 쥐고 출수를 하려는 게 눈에 들어오자, 황룡광예는 뒤로 몸을 빼며 아쉬운 대로 기가 실린 검을 한 번 더 날렸다.
“천붕대망.”
점창파의 정수가 담긴 수십 개의 창날이 수룡의 몸통을 노리고 파고들었다.
따다다다당.
수룡의 외피는 너무 단단했다. 한자가 넘는 쇠도 푹푹 뚫어 버리는 창의 공격도 무용지물이었다.
“하아, 뭐 이런 경우가 다 있나!”
쉽지 않다는 판단 하에 사방에서 무인들이 전력을 다해 각자, 일신의 성명절기를 전개하니, 무림의 신공절학들이 수룡을 두고 쏟아졌다.
무인들의 파상적인 공세에 칼끝도 안 들어가던 수룡의 비늘이 떨어졌다.
카아아아아.
기가 뒤틀리고, 내부가 진탕될 정도로 포효를 지르며 빙백수룡은 이름값을 하며 광기를 더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