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독기는 입술을 피가 나도록 질끈 깨물고 검에 내력을 주입했다.
콰아아앙.
“크읍!”
예상은 했지만, 그렇다고 충격이 적은 것은 아니었다. 뒤로 두 발이나 밀렸다.
강현은 검을 쥔 손에 힘을 주고 밀면서, 보법을 밟던 발로 무릎을 걷어찼다.
퍼퍽.
장독기는 단순함 속에 숨은, 기묘한 변화를 가진 보법을 피하질 못했다.
‘크읍, 무슨 놈의 보법이 이리도 현묘하단 말이냐!’
카가가각.
짙은 검기가 타오르며 넘실거리는 검으로 장독기의 검을 부서질 듯 긁어 내렸다.
“놈, 표국의 무사치고는 검술이 제법이구나.”
속으로 기겁했지만, 겉으로야 아무렇지도 않은 척 호기롭게 말을 뱉으며 검을 막아냈다.
“그래? 네놈도 산적 치고는 검술이 제법 이다만, 욕심이 지나쳐 화를 부르는구나.”
역공을 가하기 위해 장법을 날리려는 장독기에게 발로 무릎을 다시 찍어 눌렀다.
콰직.
“크으.”
무릎이 반대로 꺾여 쓰러지면서도 검을 찌르는 장독기의 검을 쳐낸, 강현은 옆으로 미끄러지듯 비켜서며 검진의 움직임에 따라 검을 수직으로 그었다.
쉬이익.
콰쾅.
검기를 잔뜩 머금은 검끼리 마주치자 귀청을 찢을 듯 폭음이 울렸다.
검진은 전체적으로 서로 대등하게 흘렀다. 내공과 위력은 강현과 수하들이 월등히 앞섰지만, 그동안 도적질을 하며 실전을 많이 거친 흑룡채의 노련함이 그 차이를 간신히 메우고 있었다.
검진은 그 특성상 서로를 믿고 목숨을 맡기는데서 출발한다. 부영을 비롯한 강시 수하들은 강현의 말을 절대적으로 믿고 따르며 목숨을 도외시하기에 검진의 위력이 공방을 거듭할수록 발전해 나갔다.
그에 반해 흑룡채의 검수들은 대조적이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몸에 상처가 늘어남에 몸을 사리게 되었다.
“이것들아! 뒈지고 싶지 않으면 정신 똑바로 차려!”
오만상은 나름 흑룡채를 대표하는 검수들이건만 이대로 더 가다가는 검진을 유지하기 어렵다고 생각했다. 당연, 검진이 깨지면 몰살이었다.
여러 차례 깊게 찔러오는 검을 근근이 피하며 슬쩍 곁눈질을 했다. 싸가지 없지만 그래도 무공을 믿었던 장독기가 상대를 압도하지 못하고 변변찮게 검을 놀리자 욕지기가 올라왔다.
‘시펄, 평소에 그리 잘난 척 하더니!’
강현은 흑룡채와 원수 사이도 아니기에 살심은 자제하고 검을 썼으나, 상대는 검 끝에 살기가 진득하니 실려 있었다.
장독기의 심신은 최악이었다.
초절정 고수인 채주 말고는 인근에 적수라곤 없었다. 그런데 한낱 표국의 무리들에게 밀리자 부하들이 보는 앞에서 망신은 둘째 치고, 자칫하다간 목숨마저 위태로웠다.
스으윽.
강현의 검이 길게 죽 늘어나며 장독기의 사혈을 노리고 박혀 들었다.
“헙!”
피하기는 어렵다고 직감한 장독기는 옆의 수하를 끌어들여 칼 막이로 썼다.
푸욱.
“끄으으윽.”
장독기를 향한 검이 엉뚱한 놈을 찔렀다. 잠깐 주춤하는 사이에 이때다 싶은 장독기가 수세에서 공세로 전환하며 좌측에서 검을 찔러왔다.
이때를 위해 축적해두었던 내력을 모두 실었다.
콰드득.
내력을 전부 쏟아 부어서 짙어진 검기가 이글거리는 검 끝이 강현의 어깨를 파고들었다.
강시의 강인한 신체를 가지고 있지만, 검이 아예 안 먹히는 것은 아니었다.
“으윽.”
짧게 내뱉은 신음에 비해 여파는 컸다. 강현이 느낀 충격을 수연만 빼고는 강시 수하들도 거의 비슷하게 느꼈다.
계진상은 몸 곳곳에 상처를 입고 악다구니를 쓰고 있는 와중에 눈앞의 여 검수가 주춤거리는 틈을 놓칠 수 없었다. 검을 재빠르게 휘둘렀다.
무림에서는 여인의 얼굴과 가슴을 공격하는 것이 금기시 되었지만, 지금 그걸 따질 때가 아니었고 그럴 여유도 없었다.
스악.
계진상이 휘두른 검은 민경의 앞섶을 갈랐다. 단단한 신체를 지니고 있어 파부는 상하지 않았으나 옷이 벌어지며 가슴이 거의 드러났다.
“앗, 민경님!”
민경의 표정은 미묘하나마 변했지만, 별반 다를 게 없었고 오히려 수연이 크게 놀라 소리쳤다.
강현도 수연의 비명과도 같은 소리를 못 들을 리 없었다. 민경을 보자 머릿속의 핏줄이 터져나가는 것 같았다.
화아악.
무형의 기운인 분노와 살기가 유형화 되어 몸을 감싸고 무섭게 타올랐다.
“크으, 네놈들이 도저히 용서가 안 되는구나.”
자신이 당한 것 보다 수하가 당한 것에 분노가 치민, 그의 검은 이제 짙은 날카로운 검기를 줄기줄기 뿜어내는 것을 넘어서 검강(劍强)처럼 선명한 청광을 내고 있었다.
우우우우.
강현의 분노는 전염되듯이 강시 수하들에게 순식간에 번졌고, 전체적으로 아지랑이가 피어오르듯 내기가 넘실거렸다.
기세가 완전히 변했다. 종전은 그저 놀이삼아 수련이라도 했다는 듯이.
아아아.
흑룡채의 장독기와 부하들은 바짝 얼어붙으며 현실을 부정했다. 크게 잘못 건 들였다는 것을.
당장은 공격만이 최선임을 알기에 장독기는 부하들을 독려하였지만 그들도 사람인 이상 무모하다는 것을 알면서도 어쩔 수 없이 검진을 펼쳤다.
‘제길, 명년 오늘이 제삿날이구나.’
많이 늦은 감은 있지만 오만상은 마음을 비웠다. 그랬더니 구겨진 얼굴이 펴지며 평온함을 유지했다.
강현은 환선검진을 명했다.
“환세혼멸(幻世魂滅)!”
환선검진에서 항상 중앙을 맡으며 진의 중심에서 검진을 조정하던 그가 제일 앞으로 나선 것이다.
구구구궁.
검진 구성원 하나하나가 초절정 고수 이상 가는 엄청난 내력을 뿜어내며 환선검진을 펼치니, 위력이 이전의 자왕승검 검진과 비교 불가였다.
태산도 무너뜨릴 정도의 말도 안 되는 엄청난 기세에 눌려 흑룡채 무리들은 안색이 눈에 띄게 파리해졌다.
강현 일행의 환선검진과 흑룡채의 녹야방진이 다시금 격돌했다.
콰콰콰쾅.
“크아아악.”
퍼퍼퍼펑.
“끄윽, 크어어억.”
녹림이 만든 녹야방진은 공격과 방어가 뛰어나기로 유명하다. 명문 대문파의 검진보다는 못하지만 나름 오랜 경험을 바탕으로 만들어졌기에 여타 검진에 뒤진다고 볼 수 없었다.
그런 녹야방진도 강현이 앞서는 환선검진에는 맥을 못 추었다. 이미 구성원에서도 차이가 벌어진 검진 대결의 결과는.
몇 번의 격돌로 흑룡채의 무리들은 막질 못하고 폭풍이라도 만난 듯 쓸려 나갔다.
녹야방진의 검진 구성에서 빠져 멀찌감치 떨어져 끝나기만을 기다리던 흑룡채 나머지들은 입을 찢어져라 벌리고 다물 줄 몰랐다.
“어어, 녹야방진이······. 이게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이야!”
땅위를 쓰러지지 않고 버티고 있는 자는 단 둘 뿐이었다. 그것도 검에 기대어 간신히.
강현은 크고 작은 부상을 입어 신음들을 하고 있는 주변을 슥 둘러보았다. 대부분 목숨은 붙어있었다.
그나마 손속에 사정을 두었기 때문이었다. 무심한 눈으로 걸음을 옮겼다.
저벅저벅.
내상 깊은 때문인지 입가로 검붉은 핏물이 흐르고 있는 장독기 앞에 검을 뻗으면 닿을 거리에서 멈추었다.
크륵.
장독기는 치밀어 오르는 핏덩이를 억지로 눌러 삼켰다. 이제껏 녹림에 몸담고 있으면서 많은 사람들의 목숨을 좌지우지하고 악행을 자랑스럽게 여기며 살아왔다.
이제는 반대로 그의 명줄이 눈앞의 인물에게 달려 있었다. 강호에서 살아가는 한 죽음은 피할 수 없다. 그래도 죽음은 그와 상관없는 먼 얘기인 줄 알았는데 코앞까지 다가오니 만감이 교차했다.
죽기엔 억울했다. 세상에 누가 죽고 싶은가.
체면불구하고 엎드려 빌어볼까! 살수만 있다면 무언들 못하겠는가.
불안한 눈동자로 떨고 있는 녹림 우두머리를 지켜보다 한숨을 쉬었다.
“후우우. 너의 목숨이 소중한 줄 알면 다른 사람의 목숨도 소중한 줄 알라. 오늘의 일을 잊지 말고 뼛속깊이 새겨라.”
나머지 뒤의 녹림 무리들을 보니 시선을 피하며 고개들을 숙였다. 이런다고 당장 달라지지는 않겠지만 어느 정도 알아들었으리라.
검을 거두고 미련 없이 몸을 돌렸다.
초점 없는 눈으로 강현의 등을 응시하던 장독기의 눈은 순간 시뻘게지며 욕망으로 채워졌다.
“크아앗, 이놈 죽어랏!”
슈우우욱.
동귀어진을 작정했는지 남은 내공과 선천진기까지 뽑아 끌어올린 장독기는 주저 없이 검을 내질렀다.
“아앗, 사부님!”
안도하며 지켜보던 수연의 시선에 사부의 등 뒤를 찔러가는 검을 보고 놀라서 소리쳤다.
까아앙.
서걱.
제일 가까이 있던 부영의 신형이 흐릿해지며 사라졌다가 나타나 장독기의 검을 쳐냈다. 그리고 이어진 검 날은 장독기의 목을 깔끔하게 베었다.
툭, 데구르르.
머리가 바닥을 굴렀다.
그것만으로도 모자랐는지 목이 잘린 장독기의 몸을 부영이 멀리 걷어차 버렸다.
부영의 시선은 곧바로 오만상을 향했고, 오만상은 버티고 있던 검을 원수 대하듯 보기 싫다는 얼굴로 뒤로 휙 던져버린 후 무릎을 꿇고 고개를 조아렸다.
흑룡채 녹림무리들도 오만상을 따라 무릎을 꿇고 고개를 조아렸다.
* * *
먼저 길을 나선 개방의 무리들이 다시 돌아왔다. 그리 멀리 가지 않았기에 작게나마 검들이 부딪치는 소리를 듣고서 다시 달려온 것이었다.
화령은 길을 가던 중 맥이 빨라지고 심장이 두근거리는 감정에 서둘러 경공을 펼쳐 왔다.
도착한 화령의 눈에 오직 그가, 그의 모습만이 들어왔다.
“강현님, 괜찮으세요!”
주변이 초토화 되어 있고, 검수들이 여기저기 널 부러져 있어 걱정 어린 그녀는 그의 상세를 살피느라 여념이 없었다.
“아, 나는 괜찮아. 그런데 길을 안가고 어찌 다시 온 거야?”
“강현님 생각에 멀리 갈 수가 없었어요.”
대답을 하는 화령은 어깨의 검상을 봤다.
“여기 다치신 것 같은데 아아, 이를 어쩌지!”
그 큰 눈에 금방 눈물이 떨어질 것처럼 눈시울이 붉어지는 그녀. 결국 눈물이 떨어지는 그녀의 어깨를 다독여 주었다.
“이거 별거 아니야. 금방 좋아져. 그러니 걱정 말고 눈물 뚝.”
“흑, 알았어요.”
눈물을 살짝 훔치며 고개를 돌린 화령과 오만상의 시선이 허공에서 마주쳤다.
그 순간, 별처럼 초롱초롱하며 곱던 화령의 눈동자는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무시무시한 살기를 쏘아냈다.
“커억!”
살아남았기에 해탈한 듯 평온한 표정을 유지하던 오만상의 얼굴이 구겨지며 다시 죽상으로 변했다.
‘허어, 이번엔 진짜로 제삿날이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