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비의 이야기 **
택시 안에서 촬영을 이어온 멤버들이 돈화문 앞에 모였다. 모두가 제작진에게서 받은 카드 속, 창덕궁의 건물 이름과 장소 이름을 외우느라 정신이 없다. 모두 같은 마음으로 여장을 하고 사진을 찍어 흑역사를 만들기 싫은 것 같다.
택시에서 내려 바라본 여름날의 하늘은 파랗고, 그 속에 보이는 돈화문의 처마 끝 조각상이 여름 햇빛의 아지랑이에 아른거린다. 하늘을 바라보는지 처마 끝을 바라보는지 알 수 없는 시선 방향으로 눈을 감고 가만히 있어 본다. 어느새 옆으로 다가온 효기가 손을 들어 내 얼굴에 그늘을 만들어 준다. 효기 손의 그림자가 내 얼굴을 쓰다듬는다.
“조금만 더 힘내, 형!”
막내의 응원을 듣는데, 갑자기 감은 눈 속에 눈물이 차오른다.
“살아있어서 행복하고, 지금 이곳에 너랑 같이 있게 되어서 너무 기뻐!”라고 말하자 효기가 “아침 잘못 먹었어?”라고 핀잔을 주며 햇빛을 가려주던 손을 걷어 내는 것이 느껴진다. 눈을 떠 효기를 보기 위해 고개를 돌린다. 총총 걸어 빈 옆으로 걸어가고 있는 귀여운 막내의 뒷모습이 보인다.
오늘 나와 한팀이 된 케니형은 핸드폰을 들고 여기저기 흩어져서 제작진이 나눠준 카드 속 창덕궁 속의 건물 이름을 외우는 멤버들을 촬영 중이다. 왠지 오늘 촬영이 끝나면 케니형과 내가 여장을 할 것 같은 직감이 든다.
‘한낮의 고궁 산책’으로 이름 지어진 오늘의 촬영이 시작되고, 돈화문과 금천교를 지나 인정전으로 들어선다. 우리의 촬영을 위해 특별히 창덕궁의 각 장소를 설명하는 그림판을 제작진이 만들어 오셨다. 효기와 빈이 제작진이 준비해준 설명서를 읽으며 설명을 잘 해주고 있지만 나에게 아무 말도 들리지 않는다. 내 머릿속에는 인정전 의좌 뒤에 걸려있는 일월오봉도를 빨리 보고 싶다는 생각뿐이다. 모든 설명이 끝나고 “자 인정전으로 들어가 보지요.”라는 말이 들린다.
멤버들을 촬영 중인 케니형을 뒤에 남겨두고 빈이 말한 일월봉월도를 보고 싶어 성큼성큼 인정전 방향으로 향한다.
한 발짝, 한 발짝. 더 가까이, 더 가까이.
인정전 안의 일월봉월도가 보인다.
걸음이 멈추어진다.
멈춘 채로 그림을 뚫어지듯 보고 서 있다.
저 그림 속, 소나무안에 들어가려고 내가 태어났었구나!
갑자기 현기증이 난다.
그때, 효기의 다급한 목소리가 들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