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효기의 이야기 **
어제 바로 잠들어 버릴 정도로 피곤했었다. 그래서인지 아침은 개운하고 오늘 해야 할 일이 머리에 선명하게 그려진다. 소나무 영혼의 형들이 명령한 것을 잘 수행하리라 다짐한다.
댄형의 영혼이 소나무 영혼이든 아니든 정말 우리 팀 리더로서의 역할을 잘 한다. 아침 정신없는 와중에도 제작진이 원하는 깔끔한 시작으로 방송을 시작한다. 장소 추천자인 빈형과 내가 어버버 거릴 때마다 끼어들어 다림질하듯 프로그램을 매끈하게 만들어 준다.
“창덕궁은 궁 이름. 돈화문은 궁으로 들어가는 문 이름. 인정전은 왕이 업무를 보시던 건물 이름” 세 군데 이름이 입에 붙지 않아 자꾸 실수하는 빈 형의 진행에 설명을 더해주는 댄형이다. 댄형의 매끈한 다림질 멘트속에, 형의 처음 소나무였을 때의 몸이 인정전 어디인가의 기둥으로 서 있겠구나라는 생각이 든다.
왜 여기를 추천했는지 진행을 맡으신 두 분, 각자 이야기해주세요. 라며 다시 끼어드는 댄형.
“엄마가 저를 낳기 몇 주 전에 서울에 오셨다가 관광삼아 이곳에 들르셨다고 하셨었어요. 그런데 그때가 구정 연휴여서 사람도 많고 해서 제대로 구경을 못 하고 가셨었다고 서운해 하시더라고요. 그래서 이번에 제가 여기를 와서 촬영하면서, 엄마가 그때 구경하지 못한 곳을 보여드리고 싶어서 추천했습니다.”
“아, 그리고 여기서 빈형이랑 아주 비밀스러운 중요한 일도 하나 해야 합니다.!”
무슨 비밀스러운 일이야, 둘이서만 아는 비밀이 뭐야, 왜 우리는 몰라… 형들의 반응이 대단하다. 아니, 나에게 비밀 수행의 임무를 부여했으면 도와주지는 못할망정 이렇게 케물으면 어떡하란 말이야!
“빈형이 말한 일월오봉도라는 그림 제목에 왜 소나무 송은 빠졌는지 알아보는 거 입니다.” 말을 막 지어내고 나니 등에서 식은땀이 흐른다.
촬영장에서 빈형의 얼굴을 본다. 어제의 어색했던 내 모습을 지우고 오늘은 적극적으로 형이랑 붙어 있어야겠다고 생각하면서, 내가 두 사람씩 짝을 지어 출발하는 게임에서 빈형에게 적극적으로 같은 팀이 되어보자는 구애의 사인을 보낸다. 나에게 물어볼 것이 많은 형은 나의 제안을 흔쾌히 받아준다. 빈형과 한팀이 되어 웃고 떠들지만, 마음이 편하지는 않다. 카메라가 있어 형이 더 많은 것을 물어보지 않아 다행이라고 생각하며 우리는 팀별로 택시를 타고 목적지로 향했다.
카메라 앞에서 웃는 내 얼굴 뒤로, 내 마음은 빈형에게 미안하다는 말을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