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효기의 이야기 **
더 이상 아무도 소나무 이야기나, 몇백 년 전에 따위의 이야기를 하지 않는다. 확실히 빈형의 주술 이후로 형들이 조금 변한 것 같은데, 오히려 더 우리의 일상 모습 같아서 이상하다.
빈형도 우리의 갑작스러운 태도 변화에 이상한 기운 같은걸 느꼈는지, 수영장에서 계속 나에게, 네오형에게 딱 붙어서 질문의 연속이다. 빈형의 질문들을 살짝 무시해주며 네오형에게 수영 강습 중이다. 이 나이가 되도록 물이 무서워서 수영장 한번 제대로 가보지 않았다는 네오형에게 열혈 강습 중인 내 모습을 카메라 감독님이 찍고 계신다. 빈형이 우리에게 더 질문하지 못하게, 네오형과 나는 더욱 열심히 수영강습에 집중한다. 빈형과 카메라 감독님이 떠나고, 나는 네오형이 병원에 있는 동안 놓친 다른 형들과 나눈 이야기를 해준다.
저녁 준비되었다는 말과 함께 순식간에 다음 촬영 준비를 한다. 호텔에서의 우아한 저녁 식사장면을 원하신 제작진에 큰 실망감을 안겨드리며 우리는 순식간에 스테이크 한 덩어리씩을 집어삼켜 버린다. 뭔가 허전해하는 눈빛을 주고받는 우리에게 제작진분들이 더 미안해하시는 이상한 상황이 되어버렸다.
후식도 한입에 해치워 버린 우리에게 우리 데뷔 초의 영상들을 틀어주신다. 우리의 모습들을 보며 이야기꽃을 피워본다. 이제 성년이 된 나는, 영상 속 아기 같은 내 모습이 왠지 낯설다. 무대위 연예인 포스 철철 넘쳐 흐르는 형들의 모습도 몇 년 전이랑은 많이 달라져서 새삼스럽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고 부모님 이야기를 하고, 가족 이야기를 한다. 가족 이야기를 하면 모두가 눈물을 흘린다. 우리가 이 자리에 있기 위해서 가족들이 같이 고생한 걸 알기 때문이다. 닭살 돋게 부모님께, 멤버들에게 사랑한다는 영상편지 같은걸 찍고 오늘 촬영을 마감한다.
감사의 인사를 하고 각자의 호텔 방으로 향한다.
나를 따라 내 호텔 방으로 들어온 빈형. 그런 우리 둘을 따라 방으로 들어 오는 케니형. 이틀 내내 형들 찍어 주느라 고생했다며 '이제는 내가 찍어줄께'를 외치며, 케니형이 잠들기 전의 내 모습을 찍기 위해 나섰다.
빈형은 마음이 급한지 케니형의 촬영에 개의치 않고 오늘 아침 병원에서의 네오형과 자신의 대화를 이야기해준다. 그러면서 주술을 외우기 전에 깨달은 이십 년 전의 남자가, 모두가 얽혀 있는 남자가 자신이었음을 깨달았다는 말을 한다.
빈형의 이야기에 마음이 마구 흔들린다.
형에게 잠원한강공원에서 계획한 우리의 거짓말이 들키지 않도록 얼른 딴청을 부린다.
마음이 불편하다.
“형, 피곤하실 테니 얼른 들어가서 쉬세요. 내일 또 아프면 어떡해! 나도 너무 피곤해요. 우리 촬영하고 있는 케니형도 이제 좀 쉬어야지…”
“하지만, 네가 왕이 아니라면 우리가 어떻게 각자 원하는 길로 갈 수 있지?”
빈형의 눈이 간절하다.
“형은 왜 내가 왕이 아니라고 생각해요. 어제 나는 왕이 아니라고 말하지 않았어요. 나는 우리가 모두 원하던 길을 갔으면 하고, 내일 그렇게 될 거예요!”라는 말로 빈형을 달랜다.
나의 말에 당황한 듯 말이 없어진 빈형을 붙잡고 앞으로 우리 둘의 미래만 걱정하면 된다고 빈형을 위로한다.
선유도 공원에서 형의 주술을 들은 다른 형들이 먼저 제자리로 돌아간 것 같다는 이야기를 한다.
케니형도 침묵을 유지하며 촬영만 하고 있다.
나는 지금 댄형이 명령한 왕 연기를 잘 하고 있다.
빈형과 케니형이 내방에서 나가자, 나는 기절하듯이 침대에 기대어 잠들어 버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