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빈의 이야기 **
“그래서, 네가 그림 그리던 왕이 아니라고?” 혁에게 질문하는 나비가 보인다.
콘서트 마지막 날 조명에 비친 효기의 모습이 그날의 왕과 닮았다고 생각한 내가 제정신이 아니라고 생각했는데, 무언가 연결 고리가 있는 것일까? 그러는 나의 모습도, 그 옛날 영혼을 이동시킬 수 있었던 박수 무당과 많이 닮았지만 단지 우연일 뿐이라는 생각을 했었던 나 자신이었다. 이런 생각에 빠진 나에게 효기의 목소리가 들려 온다.
“내가 왕이라면, 빈형에게 모두 제자리로 돌려보내거라, 라고 말하고 다 해결해 버리겠어.”
효기의 대답이 맞다. 자신이 왕이면서 굳이 아니라고 대답할 이유가 없다고 생각한다.
대표님이 뭔가 열쇠를 가지고 있을 수도 있다. 결국은 우리를 하나의 팀이 될 수 있도록 뽑은 사람은 대표님이다. 대표님이 우리의 정체를 모두 알고 있었다고 하기엔 여전히 무엇인가가 부족하다. 그동안 왜 아무 말도 우리에게 하지 않았을까? 이십 년 전의 일을 설명하기에도 뭔가 부족하다. 우리 모두 이십 년 전부터 엮은 무엇인가가 있는 것 같다.
피곤해 보이는 얼굴로 방바닥에 몸을 뉘고 있던 댄형이 몸을 세워 앉으며 “나는 계속 살고 싶어.”라고 말하며 치고 들어온다. 아마 서로를 의심하며 닦달하는 모습에 마음이 편하지 않은 모양인 듯 문맥도 없는 말로 효기를 의심하고 대표님을 의심하는 우리 대화를 잘라 버린다.
“나도.”
내 이마의 열을 재고 있던 케니도 대답한다.
“우리 이제 시작이야. 바닥부터 올라온 팀이잖아. 우리 모두 똘똘 뭉쳐 더 잘 하자.”
“이제 빈형이 찾던 우리가 다 모였으니 어명을 거둘 왕만 찾으면 되네”
나를 향하는 말인지, 내 얼굴을 보며 말한다.
나는 기회가 될 때 우리의 영혼을 다시 제자리로 돌려주기를 원하는 쪽이다. 하지만 나비나 케니형, 댄형은 이제 막 사람의 몸에 들어온 영혼인 데다, 우리 그룹에 대한 애정도가 너무 커서 영혼이 제자리로 돌아간다는 것이 꼭 지금은 아니어도 된다고 말한다. 우리 각자가 지금의 위치에서 원하는 것들이 이루고 나서도 늦지 않다고. 하지만 우리의 이런 밤샘 토론이 이어지든 말든 나는 나 자신의 영혼조차 어찌할지 못하는 신세이다.
가만히 있던 네오형이 끼어든다.
네오형이 묻는다.
“나비, 너는 항상 날아다닐 수 있는 새였니, 새장에 갇혀 주인이 부를 때 노래해야 하는 그럴 때도 있지 않았니, 닭장 안에 갇혀 알만 낳다가 죽은 적은 없었니, 천적의 눈을 피해가며 하루하루 목숨을 부지하기 위해 살지 않았었니, 먹이가 부족해 배고픔에 허덕인 적은 없었니, 수천 킬로미터를 날아야 하는 철새일 때는 날갯짓의 피곤함에 몇백 년을 아파하지 않았니?
케니, 너는 항상 아름다운 꽃이었니, 그리고 한철 피었다 지면서 우리 중 누구보다도 더 많은 죽음을 경험했을 텐데, 죽음에 대한 두려움은 없었었니, 새로운 몸으로 옮겨갈 때 네가 원하던 꽃으로만 옮겨 갈 수 있었니, 사람이나 짐승에게 밟히고 꺾이는 아픔과 괴로움은 없었었니, 아무도 바라봐 주지 않는 꽃의 모습으로 잠시 순간을 살 때도 있었지 않니?
댄, 너는 수백 년 동안 움직일 수 없고, 아무도 찾아와 주지 않고, 말 걸어 주는 이 없는 일생을 살았는데 그때는 얼마나 행복했었니, 가뭄과 홍수와 한여름의 이글거리는 태양 빛과 한겨울의 매서운 한파로 수백 번 얼어붙어 본 아픔이 있지 않니, 다시 그런 소나 무안으로 영혼이 이동될 수도 있다고 생각해 본 적은 없니?
우리는 우리가 옮겨 갈 새로운 생명을 선택할 수 없어. 누군가의 영혼을 뺏고 그 자리에 들어가야 해. “
효기가 몰아치는 네오를 끌어안아 진정시킨다.
오늘 알게 된 멤버들의 비밀스러운 사실에, 그리고 내가 던진 어떻게 이 영생을 끊는지 모른다는 충격적 소식으로 지칠 때로 지친 네오형의 모습이 보인다.
이제는 조금 쉬어야 한다는 생각을 한다. 내 머리도 몸도 지쳤다.
내일 촬영을 위해서 자야 한다.
우리 여기서 끝내고 자러 가야 한다.
벌써 새벽 세시가 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