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비의 이야기 **
네오와 효기가 사 온 고기가 많아 보였었는데, 막상 구워서 먹기 시작하니 많은 양이 아니었다. 사실 아무리 많은 양을 사와도 다 먹고 하면 항상 허전한 위장을 가진 이십 대의 청년들이다. 그런 우리를 위해서 항상 아무 말 없이 고기를 구워주는 네오형이 고맙다. 고기를 맛있게 구워주는 형의 하얀 손을 보면서, 몇백 년 동안 무슨 상처를 입어서 우리에게 아직 아무 이야기도 못 하고 있는 것인지 마음이 쓰인다.
이렇게 또 순식간에 고기까지 먹어 치운 우리는 익숙한 모습의 분업으로 숙소 안을 정리한다.
작가님께 요리하는 모습 말고, 설거지와 청소 같은, 뒷정리 잘 하는 우리 모습을 담아서 방송에 내보내 달라고 애교를 부려본다. 카메라는 계속 돌고 있다. 제작진에서 숙소 구석구석 카메라를 설치해 놓아서 녹화시간이 따로 있는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카메라 감독님들을 등지고 고기 먹은 것에만 집중한 게 죄송해서 부탁을 드려본다. 작가님은 너무 자연스러운 모습이라고 의외로 좋아하신다.
이렇게 우리의 요리 대결 촬영은 큰 사건사고 없이 네오형이 일등을 하는 것으로 잘 마무리하고, 제작진은 개인 인터뷰 촬영 준비를 하신다.
댄형은 잠깐의 틈을 이용해 자신의 소나무에서 소나무로 영혼 이동한 이야기를 조금 털어놓더니 마음이 한결 가벼워 진 것처럼 보인다.
빈과 눈이 마주친다. 나를 더 알고 싶어 하는 홍빈의 마음이 보인다.
나도 눈치껏 잠깐의 시간, 우리가 모두 둘러앉게 된 기회에 나의 아주 짧은 이야기를 한다.
X자가 그려진 나의 소나무.
검은 옷의 남자들이 지른 불에 활활 타오르는 순간, 새끼 수리부엉이가 되어 날아오른 나의 영혼은 나비라는 사람이 되기 전까지 이 새에서 저 새로 영혼이 옮겨 다니며 전 세계를 날아다녔었다. 나는 수천 마리나 되는 새의 인생을 살아서 어디서 무슨 새로 어떻게 살았는지 제대로 기억을 해낼 수가 없다.
그러다 이십 삼 년 전 겨울에 다시 한국의 서울로 철새가 되어 돌아왔었다. 그리고, 여느 이름 없는 새들의 인생처럼 소리 없이 나무 밑에 떨어져 죽음을 기다리고 있었었다. 고된 철새의 머나먼 비행에 지칠 때로 지쳐 더 이상 날 수가 없었었다.
의식이 흐릿해지며 다음 생은 어느 새가 될 것인지를 생각하고 있을 때, 그렇게 죽어가는 새를 양손으로 곱게 받아드는 사람이 있었다.
나의 이야기에 잠깐 침묵의 시간이 흐른다.
소나무숲, ‘한낮의 숲속 산책’ 이후로 카메라만 꺼지면 우울 모드가 되는 빈, 얼굴이 다시 죽을 죄인이 된다.
핸드폰으로 우리를 촬영 중인 효기의 얼굴도 어둡다. 괜히 신경이 쓰여
“너 핸드폰 메모리 용량이 버티니?”라고 묻는 나에게
“용량 빵빵한 메모리 카드 꼽았어”라고 답하며 씩 하고 눈웃음을 웃는다.
우리에게 다가오시는 작가님이 무슨 이야기 중이냐 하고 물으신다. 효기의 말이 생각나, 나도 작가님께 인터넷에서 읽은 최근 우리 팀의 팬픽 이야기하는 중이라고 둘러댄다.
케니형의 개인 인터뷰를 시작으로 우리는 뿔뿔이 흩어져 각자의 일정 정리를 시작하고, 샤워를 하러 가고, 다음 개인 인터뷰 준비를 한다. 그러면서 나의 눈은 자신의 이야기를 전혀 하지 않는 네오형과 빈을 따라가고 있다.
네오형은 “아이고야, 힘들다” 소리를 내며 거실에 대자로 뻗어버린다. 빈은 샤워를 하러 가고, 막내 효기는 조용히 거실 가운데에 뻗은 네오형을 들어 옮기고, 테이블을 정리하고 있다. 다음 인터뷰 순서인 댄형은 귀와 눈을 쫑긋 열고 케니의 인터뷰 장면을 열심히 관찰 중이다.
모든 것이 일상의 우리 모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