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효기의 이야기 **
차 안에 달린 카메라들이 우리를 촬영하고 있어서인지 숙소로 돌아오는 차 안은 조용하다. 형들을 위해서 준비한 정보를 좀 흘려주기로 마음먹었다. 소나무 쉼터에서 숙소로 돌아오며 빈형에게서 들은 그림 제목으로 찾은 고급 정보다. 침묵으로 답답해하고 있을 형들에게 기쁨이 되기 바랄 뿐이다. 차 안 형들을 둘러보고, 핸드폰을 꺼내 들고, 우리의 카카오톡 단체방에 메시지를 보낸다.
[카카오톡 메세지 시작]
일월오봉도 (日月五峯圖)
오봉병(五峯屛), 일월오봉명, 일월오악도, 일월곤륜도 라는 이칭과 별칭이 있다. 왕이 임어하는 곳에는 실내외를 막론하고 어좌(御座) 뒤에 일월오봉도를 배치했다. 조선시대 궁궐 정전(正殿)의 어좌(御座) 뒤, 또는 야외 행사 때에는 천막 안의 옥좌 뒤에, 사후에는 빈전(殯殿)에, 진전(眞殿)에는 국왕의 초상화 뒤에 반드시 있어야 하는 그림이다. 그림의 형식상, 구도상의 특징은 화면의 중앙에는 다섯 개의 봉우리 가운데 가장 큰 산봉우리가 위치하고 그 양 쪽으로 각각 두개의 작은 봉우리가 배치되어 있다. 해는 중앙 봉우리의 오른편에 위치한 두 작은 봉우리 사이의 하늘에, 달은 왼편의 두 작은 봉우리 사이의 하늘에 떠 있다. 폭포 줄기는 양쪽의 작은 봉우리 사이에서 시작하여 한두 차례 꺾이며 아래쪽의 파도치는 물을 향해 떨어진다. 네 그루의 적갈색 그루터기를 한 키 큰 소나무가 병풍의 양쪽 구석을 차지하고 있는 바위 위에 대칭으로 서 있다. 병풍의 하단을 완전히 가로질러 채워진 물은 비늘모양으로 형식화되어 반복되는 물결무늬로 되어있다. 산과 물의 경계선 또는 작은 봉우리 같은 형식화된 물결들의 사이사이, 혹은 그 두 군데 모두에 위로향한 손가락을 연상케 하는 역시 형식화된 하얀 물거품들이 무수히 그려져 있다.
http://terms.naver.com/entry.nhn?docId=537233&cid=46660&categoryId=46660
한국민족문화대백과와 한국학중앙연구원에서 만든 자료.
“여기 더 흥미로운 거 있어.”
나는 사진과 함께 계속 카카오톡 메시지를 보낸다.
구성요소에 대한 해석은 여러가지이나 해는 왕, 달은 왕비, 산은 우리나라 산천, 물결, 폭포, 소나무는 조선왕조의 영원을 기원하는 뜻으로 해석되어 진다.
오봉병 (五峯屛)은 왕이 앉는 옥좌의 뒤나 왕의 초상화인 어진의 뒤, 또는 이밖에 국왕이 좌정하는 장소에 펼쳐 놓는 병풍이다. 조선 후기 왕이 참석한 궁중기록화를 보면 어김 없이 이 오봉병이 그려져 있다. 궁중기록화에서 왕의 모습을 그리는 것이 금기였기 때문에 기록화에 표현된 오봉병은 곧 거기에 왕이 있음을 알려주는 표식이 된다. 현재 경복궁 근정전, 창덕궁 인정전 등 왕의 옥좌 뒤에 펼쳐져 있다.
http://terms.naver.com/imageDetail.nhn?docId=1582254&imageUrl=http%3A%2F%2Fdbscthumb.phinf.naver.net%2F1891_000_1%2F20120709144926684_D81A7MFI7.jpg%2Fhd5_002_i7.jpg%3Ftype%3Dm4500_4500_fst_n&mode=simple&cid=47318&categoryId=47318
일월오봉병이 있는 인정전 실내 (출처 : 교과서에 나오는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NAVER 지식백과)
조선시대 국왕의 일상생활이나 궁중의 각종 의례에서 오봉병이 차지하는 막중한 위치에도 불구하고 오봉병의 도상(圖象)이나 그 유래에 관한 기록은 전하지 않는다. 현재 남아있는 오봉병들 가운데 간기(刊記)가 적혀있거나 그 제작 연대를 알 수 있는 오봉병은 단 한 좌(座)도 없다.
현재는 왕의 상징처럼 알려져 있는 오봉병은 실제로 조선 초, 중기에는 그 기록을 찾아 볼 수 없어 실제로는 조선 후기부터 사용되었음을 알 수 있다. 국가나 왕실의 주요 행사를 기록한 책인 의궤 중에서 오봉병에 대한 언급이 최초로 보이는 기록은 숙종 14년, 1688년도의 영정모사도감의궤이다. – 국립중앙박물관”
[카카오톡 메세지 끝]
여기까지 나의 카카오톡 메시지를 보내고 나는 슥. 차 안을 둘러본다. 모두 핸드폰을 꺼내 조용히 카카오톡의 메시지를 읽고 있다.
[이거이거, 형들이 말하는 소나무 영혼과 선비님이 모두 여기 있어서 일월오봉도 그림에 대한 구체적인 기록이 없는 거 아냐?]
나는 다시 카카오톡 메시지를 보낸다.
나비형의 답이 온다.
[소나무 송(松). 그림 안에는 있지만 그림 제목에는 오르지 못한 이름!]
다른 형들은 아무 말 없이 핸드폰만 만지는 우리의 모습이 카메라에 찍힐까 봐 조심하는 눈치다. 다시 카카오톡 단체방이 침묵으로 일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