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비의 이야기 **
짧은 시간, 굵은 빗방울의 소나기에 우리가 모두 흠뻑 젖어 버렸다. 모두 다 같이 맞추어 입은 하얀색의 바지들과 밝은색의 티셔츠들에 흙탕물이 튀어 있고, 잘 가다듬었던 머리 모양들이 모두 물에 젖어 축 쳐져 있다. 우리의 모양들이 아이돌 그룹 멤버와는 거리가 많이 멀어 보이는데, 그래도 나는 좋다.
엉켜서 울고 있는 빈과 케니형, 댄형 그리고 네오형 위로 신발에 달라붙은 흙탕물 튀기며 펄쩍 뛰어올라 와락 안아준다. 그리고 잠깐 아무 말 없이 있다.
이러고 있으면 금방 서로 민망해 지는 건, 우리가 아무리 큰 비밀을 서로 나누 어도 변하지 않는 진리인 것 같다. 댄형이, “뭐야 효기 어디 갔어”, 라며 슬금슬금 팔을 풀고 빠져나간다. 우리 모두 민망함에 핀잔을 주며 눈물을 몰래 닦는다.
사라져버린 소나기구름 사이로 다시 여름 햇빛이 쨍, 하니 내리쬔다. 숨이 턱 막혀오는 습기 가득한 공기가 몸 안으로 들어온다. 긴장감이 풀이면서 피로감이 몰려온다.
비가 그치고 건물 밖으로 나오시는 제작자분들이 보인다. 이런 우리의 모습을 찍으신 작가님은 기분이 좋으신 것 같다. 얼굴 가득 미소를 지으시고 카메라 감독님과 대화 중이시다.
홀딱 젖어 버린 우리는 소속사와 제작진 차로 나뉘어 구겨지듯이 두 개의 차에 실려 일정에 없던 숙소로 다시 향한다. 우리의 흐트러진 의상과 모습을 정비하기 위해 급하게 내려진 결정이다. 이 모든 걸 카메라 감독님이 가까이서 찍고 계셔서 우리는 서로 눈치를 나눠가며 더는 소나무 이야기와 궁금한 일을 서로에게 묻지를 못하고 있다.
나와 케니형이 제작진의 차에 따로 탔다. 자신의 비밀을 이야기하고 나서 마음이 홀가분해진 듯 케니형은 얼굴이 환하다. 효기와 떨어진 우리는 케니형이 핸드폰으로 우리를 촬영하고 있다. 나 혼자 나와서 무슨 재미가 있냐고 투덜거려 보지만, 나와 눈이 마주칠 때마다 싱긋싱긋 웃는 형의 모습이 행복해 보인다. 이제는 나도 나의 영혼이 지나온 시간을 멤버들과 나누고 싶다. 케니형이 느끼고 있을 홀가분함이 부럽다. 숙소로 향하는 차 안, 피로감으로 감은 눈꺼풀 위로 그 여름날의 기억이 영화의 한 장면처럼 머리에 떠오른다.
흰옷의 선비가 내 영혼의 의식을 깨우고 가버린 후, 선비를 미행하던 검은 옷의 남자가 나의 나뭇등걸에 커다란 X자를 새겨 놓고는 사라졌다. 그리고, 그날 나의 가장 높은 가지 끝의 새 둥지에서는 먹이를 받아먹던 새끼 수리부엉이는 다 자라 처음 날아올랐었다. 하지만 날아올랐다기 보다는 소나무 꼭대기 쪽, 가지 끝의 둥지에서 아래쪽 나뭇가지로 떨어져 내렸다. 그런 새끼 수리부엉이에게 다시 날아오르라고 응원하며 하룻밤이 지나고, 새벽 아침 해가 떠오르는 그때, 검은 옷의 남자 둘이 손에 횃불을 들고, 마른 장작을 짊어지고 숲에 다시 나타났다. 어제 새겨놓은 내 나뭇등걸 위의 X자를 확인하더니 내 주위에 장작을 쌓고, 횃불을 그 장작더미에 꽂아 넣어 나에게 불을 질렀었다.
하얀 연기는 이제 검은 연기로 변해 내 나무껍질 결을 따라 위쪽으로 치솟고 있었다.
“어서”
“날아!”
나의 마지막 아우성은 첫 날갯짓에 지쳐 내 나뭇가지에 떨어지듯 내려앉아 하룻밤을 보낸 새끼 수리부엉이의 것이었다. 날지 못하고 주저앉아 있는 새끼를 부르던 어미 새의 소리도 이제는 들리지 않는다. 나의 아우성도 새끼 수리부엉이에게는 들리지 않겠지만, 그래도 나는 소리친다.
“날아!”
그리고 불길을 담은 검은 연기가 치속을때 새끼 수리부엉이는 날아올랐고 날개를 파닥거리며 멀리 날아가는 것이 보였다.
그리고 내가 다시 영혼의 눈을 떴을 때, 나는 그 새끼 수리부엉이 안에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