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빈의 이야기 **
갑자기 쏟아지는 억수 같은 소나기에 케니형은 이야기를 멈추고, 그렇게 우리는 빗속을 달려 주차장에 다다랐다. 제작팀 모두 비를 피할 수 있는 건물 안으로 우르르 몰려 들어간다.
“형”
사람들을 따라 들어가지 않고, 기어들어 가는 목소리로 내 옆에서 줄곧 같이 걸어 내려와 준 케니형을 불러 세운다. 내리는 빗속을 달려오면서 붉어지는 형의 눈가를 보았고, 형의 오백 년 인생 이야기를 들었다. 그 기나긴 인생을 이야기하는데, 너무나 짧은 순간을 이야기하듯 해서, 그래서 미칠 것 같았다. 내가 형을 그렇게 불에 타다만 나무로 만들어 길가에 오백년 넘는 세월 동안 세워 놓았다는 것을 믿을 수가 없었다. 내 마음이 타들어 간다.
“미..안..해…”
두 주먹을 꽉 쥔다. 다음 이야기를 해야 하는데 목이 메여서 말이 끊겼다. 케니형이 다가와 나를 와락 안았다. 그렇게 안아주는 형에게 겨우 감정을 억눌러 나는 말을 이었다.
“그렇게 기다리게 해서 미안해…”
눈물이 주체할 수 없이 흘렀다.
비가 아직도 내린다.
울먹이는 나를 한참을 안아 주는 형.
나를 안고 있던 케니형이
“그런데, 너 땀 냄새 끝장이다! 좀 떨어질래”라며 흐니끼고 있는 나에게 핀잔을 준다. 갑자기 쑥스러워져서 형의 품에서 한발 걸어나가려는데, 케니형과 나를 와락 끌어안는 누군가가 있다. 갑자기 우리 둘을 옆에서 끌어안아서 케니형과 내가 거의 박치기를 할 뻔 한다.
“나도 사랑해”
댄형이다. 그리고 아무 말 없이 그런 우리를 끌어안는 또 다른 사람이 있다. 안 봐도 안다. 네오형일 것이다. “아, 뭔데!” 나비의 목소리가 들리고, 엉켜있는 우리 네 명 위로 펄쩍 뛰어오른다. 본능적으로 다음은 효기이 일 것을 안다. 우리들중 가장 큰 체격을 자랑하는 효기가 우리 위에 올라타서 우리를 짓누르면 정말 지옥의 절구통에 담겨 짓이겨 지는 느낌이다. 근육이 알아서 긴장한다.
잠깐의 시간이 지나도 아무 일이 없다.
다들 뭐야, 효기 어디 갔어. 이러면서 슬슬 엉킨 팔을 푼다. 그리고 우리는 조금 떨어져, 그런 우리의 모습을 자신의 핸드폰으로 열심히 촬영 중인 효기를 발견한다. 효기는 싱글벙글 웃으며 그런 우리를 찍고 있더니, 우리가 모두 쳐다보자 자신의 엄지손가락을 들어 올리며 “잘했어, 우리 형들!”이라고 말한다.
어느새 소나기는 멈추고 여름의 햇살이 내리 쬔다. 습기가 가득한 후덥지근한 열기가 올라온다.
서로 비에 젖은 꼴을 놀리며 땀냄새 난다고 저리 가라고 난리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