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케니의 이야기 **
넋을 놓은 것 같은 댄형과 냉정한 모습의 네오형과 흥분한 나비와 달리 나는 좀 즐겁기도 하고, 뭐라도 모두에게 물어보고 싶고, 정말 내 형, 동생이 나와 같이 소나무 영혼이었었는지 다시 확인도 하고 싶고, 뭐 그렇게 이런저런 그들의 이야기를 듣고 싶다. 하지만 모두가 조용히 입을 다물어 버려서 나는 안달이 난다.
PHOTO POINT, 소나무 쉼터에서 보이는 하늘 위의 소나기구름을 보면서 다들 일사천리로 방송 분량과 사진을 찍고 우리가 출발했던 주차장과 반대 방향의 주차장으로 향한다. 아무도 말없이 빠르게 걷기만 하다가, 작가님이 조금만 더 가면 된다는 말씀을 듣고, 나는 내 이야기를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팀원들 가운데에서 가볍게 달리듯이 걸으면서, 빈이 옆으로 좀 더 다가가 나의 이야기를 모두에게 해주기로 한다.
빈아, 나는.
선비가 영혼을 깨워준 소나무인 채로, 그렇게 들판에서 불어온 불길에 몸통이 불에 그을린 나는, 살아남아 마을로 들어가는 길을 지키고 섰었다. 내 앞을 지나다니는 모두는 나를 좋아해 주었고, 경외해 주었고, 그들의 일상을 나에게 나누어 주었다. 건강한 아이가 태어났다며 고맙다는 이야기를 해주고, 그 아이가 자라 결혼을 했다는 소식을 전해주고, 결혼한 아이가 자식을 낳아 손녀가 생겨 이제는 할머니가 되었다는 그런 이야기 들이다. 이런 일상의 이야기들을 들으며 백 년이 지나고, 이백 년이 지나고, 그렇게 오백 년이 흘렀을 즈음, 사람들의 웅성거리는 소리는 지금껏 내가 듣고 느껴왔던 것과는 다른 것이었다.
그날도 5월의 봄날이었다.
나를 둘러싸고 떠드는 사람들의 소리. 그들은 나를 바라보고 서서 나의 처분에 대한 토론 중이었다. 여러 사람 중 앞으로 나와 말하는 청년은 나를 가리키며 “이 나무를 밀어내고 이 자리로 도로가 뚫리면 우리 마을이 가난에서 벗어날 수 있어요.”라고 사람들을 설득하고 있었고, 그중 나이 지긋한 사람들은 “이 소나무가 5, 6백 년이 넘었을 건데”, “마을의 수호신이야.”, “우리 모두 큰일 안 겪고 편안했던게, 이 소나무 덕이야”라고 말하고, 젊은 사람들은“반쯤 불타다 남아서 흉물스러운데 무슨 말씀이세요”, “그리고 이제는 너무 늙은 소나무라 언제 쓰러질지도 몰라요”
그들의 토론은 오래가지 않았고, 봄날의 태양이 내려앉을 무렵, 시원한 바람 한 줄기가 내 가지와 솔잎을 쓸어내려 마지막 송홧가루를 실어가 줄 때, 나는 요란스러운 전기 톱질에 “쿵”하고 내 몸뚱이를 바닥에 뉘어야 했다.
나의 영혼은 바람이 실어가는 송홧가루에 담겨 있었다. 송홧가루가 바람에 실려 날아가 떨어진 곳에서 나는 다시 눈을 떴다.
활짝 핀 들꽃 안이었다.
그렇게 나의 영혼은 소나무에서 꽃으로 처음 이동을 하였다.
내 이야기라 끝나갈 때쯤 후두둑 하고 굵은 빗방울이 내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곧 엄청난 소나기가 내리기 시작했다. 내리는 소나기 속을 내달리느라 서로의 거리가 멀어졌다 가까워졌다 하는 우리들의 사이에서 나는 나의 이야기를 마무리했다. 모두가 내 마지막 이야기를 들었는지 잘 모르겠다. 그래도 지금까지 그 누구에게도 하지 않은 이야기를, 하지 못한 이야기를 하고 눈물이 난다.
이 빗속을 내달리느라 아무도 내 눈물을 보지 않았기를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