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빈의 이야기 **
이 무더운 한여름 대낮에 무슨 신나는 일이 있는지 뛰어와 나를 뒤에서 끌어안는 케니 형을 내 등으로 거의 업다시피 해서 숙소 근처 식당으로 들어왔다. 소나무 숲길 구간을 가기 위해 나눈 팀별로 식당 안의 식탁에 앉았다. 나와 한팀이 된 케니형은 소나무 숲길에 가는 것이 신난다는 말을 끝으로, 점심 고기 식단에 집중하느라 아무 말이 없다. 건너편의 다른 팀원들도 마찬가지다. 그 와중에도 효기는 잠시 잠시 핸드폰으로 동영상 촬영 중이다.
고기 담긴 그릇들을 깨끗이 비우고, 식탁 위의 손도 대지 않은 채소들을 보며 제작진에게서 식탁 위 초록색을 싫어하느냐는 농담을 들으며 다음 촬영에 들어간다. 나비의 진행으로 눈치 게임을 하고 나비와 네오팀, 댄과 효기팀 그리고 케니형과 나의 팀 순으로 출발을 확정한다. 게임에서 진 케니형과 내가 제일 마지막 출발이다.
출발을 기다리는 동안 우리는 인터넷으로 우리가 가야 하는 곳의 위치를 찾고, 그나마 넉넉한 용돈으로 교통수단을 검색해서 택시를 타기로 한다. 앞 좌석에 카메라 감독님이 타시고 뒷좌석에 작가님과 우리가 구겨져 타기로 하고 택시에 오른다. 인터넷에서 찾은 우리의 목적지를 택시 기사님께 보여드리고 뒷자리에서 방송용 농담을 주고 받고, 일찍 출발한 멤버들에게 전화를 걸어보고 난 후에야 카메라를 잠시 끄고 편하게 가기로 한다. 운전석 뒤, 나의 왼쪽에 앉아 소나무 숲으로 간다고 흥분해 떠들던 케니형은 카메라가 꺼진 후 그 후 몇 번 고개를 끄덕이더니 바로 잠이 들어버린다. 어제의 피곤과 방금 먹은 점심 때문인가 보다고 생각했다.
나는 뒷좌석, 카메라 감독님과 케니형 사이에 앉아 가만히 앞만 바라보고 있다. 택시가 고층건물들 사이로 뻗은 길을 달리고 있다. 우리는 지금 그 소나무 숲으로 가고 있다.
그날의 여름, 그곳은 내가 처음으로 소나무의 영혼을 깨운 장소이다. 그 소나무에게 기다려 달라는 말만 해놓고 다시는 찾지 않았던 곳이다. 두려움과 기대감 같은 뭐라 표현할 수 없는 마음이 되어 그저 앞만 바라보고 있다. 몇백 년을 살면서 그 소나무 영혼들에 대한 것은 듣지도 보지도 느끼지도 못하였다. 내 기억이 맞는다면 그들의 이미 그들의 짧은 생을 살다 갔으리라 짐작만 하고 있을 뿐이다.
케니형이 깜짝 놀라 눈을 뜬다. 오분도 눈을 붙이지 않은 것 같아 더 자라고, 아직 목적지까지 한참 남았다고 이야기 해주자 케니형이 답한다.
“소나무 숲에 가본지 너무 오래돼서 막 흥분돼!”
그리고 잠시 뜸을 들이더니
“한 육백 년 전쯤에, 아니 육백 년은 너무 길고, 한 오백 년 전쯤에. 아니야, 오백년은 너무 짧고.”
무슨 말을 하고 싶은지 자꾸 빙글빙글 돌기만 하는 말만 한다.
“내가 그 중간쯤의 몇백 년 전이라고 알아서 생각할게!”
나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더니,
“그래, 어쨌든, 오래전에 내가 소나무였었는데, 누가 내 영혼을 깨웠어. 그리고는 잠시 기다리라고 하고는 그 이후로 아무도 찾아오지 않는 거야. 그래서 소나무인체로 몇백 년을 잠만 잤었거든. 그 이후로는 잠자는 시간이 너무 아까워”
섬뜩하다.
뒷목의 솜털이 모두 일어선다.
그냥 케니형의 상황극인지, 누군가에게 들은 이야기인지, 아니면 진실을 이야기하는지 알 수가 없다.
털이 곤두선 양팔을 쓸며, 내 발만 바라보고 있다.
아무렇지 않은 척 포커페이스를 유지해 본다.
더 알아보아야 겠다는 생각을 한다.
케니형 말에 한마디 툭 던져 보기로 한다.
“케니형, 형이 소나무였을 때 …형의 영혼을 깨운 흰 두루마기 입고 찾아 갔던 남자가… 나였어”
세 남자가 앉아 있기 좁은 택시 뒷좌석. 나에게 닿아 있던 케니 형의 몸이 얼어붙는 것이 나에게 고스란히 전해진다. 얼어붙은 형의 몸으로부터 전해지는 긴장감과 떨림으로, 이제는 내 심장이 날뛰는 소리가 내 귀에 들려온다. 내 인생의 비극이 시작된 그 어린 왕 앞에서 날뛰던 심장 소리 같다. 그때의 기억이 휘몰아친다.
“폐하, 그리 하겠나이다. 하오나, 네 그루나 되는 소나무의 영혼을 찾아 깨우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옵니다. 몇 년이 아니, 몇십 년이 걸릴 수도, 아니, 영원히 못 찾을 수도 있나이다.”
“걱정하지 말아라. 네가 짐을 위하여 네 개의 소나무 영혼을 찾을 때까지 나는 살아 있을 것이다. 그리고, 너는 네 그루의 소나무 영혼을 찾아 모으기 전까지는 죽지 못할 것이다.”
나는 내 영혼을 드리는 대답을 하고, 육신의 목숨을 살려 그 방을 나왔다. 눈이 가려져 내가 끌려온 곳은 왕이 거쳐하시는 창덕궁이라고, 왕의 옆에 서 있던 내관이 나를 밖으로 안내하며 귓가에 속삭이듯 알려주었다. 나는 다시 눈이 가려졌고 양팔을 잡는 사내에 이끌려 다시 가마에 태워졌다. 출발하려는 가마에 대고 내관이 다시 입을 떼 말했다. 어명 하신 일을 완성하는지 지켜보겠다 하였다.
한참을 움직이던 가마가 멈추고 가마꾼들이 멀어져 가는 소리가 들렸다. 나는 또 그렇게 한참을 눈이 가려진 채 가마 안에 앉아 누군가 무슨 말을 해주기를 기다리고 있었으나 침묵만이 있었다. 내 손으로 눈가리개를 벗기고 바라본 가마 안에는 두루마기까지 갖춰진 하얀색 비단으로 지어진 한복 한 벌과 가죽신, 갓이 준비 돼 있었고, 내 이름이 새겨진 새로운 신분 패와 마패, 조선통보가 준비되어 있었다. 가마를 나오자, 멀리서 아주 미세하지만 나를 지켜보는 박수 무당 세 명의 기운을 느낄 수 있었다. 죽음의 기운이었다. 나를 감시하기 위해 왕이 보낸 인물들 이리라 짐작했었다.
그때부터 시작되었다.
왕이 어명 하신 소나무들을 찾기 위해 전국을 뒤졌다. 일 년이라는 시간이 휙 하니 지나갔으나 영혼을 깨울 수 있는 한 그루의 소나무도 찾지 못하였는데, 왕의 승하 소식을 들어야 했다. 어명을 내린 왕은 이제 없으나, 나는 이 일을 그만둘 수가 없었다. 멀리서 살기를 지닌 무당들이 나의 뒤를 밟으며 감시하는 것 때문이 아니었다. 그들은 두렵지 않았다.
어명 때문이었다.
“너는 네 그루의 소나무 영혼을 찾아 모으기 전까지는 죽지 못할 것이다.”
나는 내가 죽지 못하리라는 것을, 내가 그 어명에 답하는 순간 알았다. 그러나 그때까지만 해도 나는 죽지 못한다는 뜻의 실체를 모르고 있었다.
나의 고백 이후로 얼어붙어 버린 케니 형은 아무 말이 없이 나의 시선을 피하고 있다. 긴장한 케니형의 근육을 고스란히 느끼며 우리는 조용하게 서로 다른 곳을 보며 택시 안에 앉아 있다. 차가 꽉 막히는 길위, 택시 기사님도 우리의 무거운 침묵이 싫으셨는지 라디오를 트신다. 하지만 나에게는 우리들의 긴장한 숨소리만이 들린다.
케니형과 내가 탄 택시가 우이우이령길 주차장에 도착했다.
소나무 숲길의 소나무 쉼터에 가기 위한 출발점이다. 우리가 택시에서 내려 우두커니 서 있고, 작가님은 다른 팀이 어디 있나 연락 중이시다. 다른팀은 솔밭 근린공원 상단 주차장에서 소나무 숲길 가운데에 있는 소나무 쉼터로 이미 출발했다고 한다. 우리 팀만 다른 팀과 달리 반대편 출발 지점에 도착한 걸 알았다.
이제는 우리 둘만이 촬영 해야 한다. 서로 간의 팽팽한 긴장감과 충격에 우리는 지금 서로를 바라보지도 못하고 있다.
작가님의 사인과 함께 다시 촬영이 시작된다. 이런 힘든 상황에서 케니형이랑 무엇이든 해야 한다. 난 중압감에 눈의 초점이 흐려진다. 몇백년동안 수없이 상상해온 소나무의 영혼을 만난 상황이다. 그런데 난 지금 아무 말도 하지를 못하고 있다.
가만히 길만 걸을 수 없다.
더 알고 싶다.
케니형에게 더 물어봐야 한다.
목적지까지는 도보로 삼십 분 정도가 걸릴 것 같았다. 케니형도 나와 같은 마음이었는지 자신의 핸드폰을 꺼내 동영상 촬영을 하며, 자신이 나를 인터뷰해도 되는지 작가님과 카메라 감독님 물어본다. 두 분이 계속하라는 사인을 보내오신다.
“저가 소나무였을 때 흰 두루마기 입고 찾아오셨던 분이 본인이라고 하셨는데… ”
어차피 우리 둘만의 알 수 없는 대화는 재미없어서 편집 될 것이 뻔했다. 그렇게 마음을 먹고 형의 인터뷰에 응하기로 한다.
“대략 오백 오십 년 전에는 모든 사람이 흰옷 입고 다녔어. 다른 거 뭐 없어?”
촬영용 핸드폰을 든 케니형이 내 얼굴 가까이, 핸드폰 카메라를 들이댄다. 카메라가 없으면 우리는 여전히 서로의 얼굴을 똑바로 바라보지 못할 것이다. 답을 하기 전 작가님과 카메라 감독님을 슬쩍 보며 눈치를 살핀다.
“갓을 쓰고 있었어”
“그 시대 선비들 다 갓 썼어.”
“검은색 갓을 썼어”
“갓은 다 검은색이야”
“그리고 소나무 앞에 서서 주술을 외웠어”
“소나무 영혼 깨우는 엄청난 일인데, 주술 정도는 외워줘야지. 그리고, 흰옷 더러워지니까 앉거나 누워서 하지는 않았을 거야. 그러면, 어느 계절이었어?”
“켄형 말고 세 그루의 소나무가 더 있는데, 형이 몇 번째 나무인지 몰라서 …”
“나 말고 세 그루가 더 있어!”
나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촬영하고 있다는 것도 잊어버렸는지, 핸드폰을 떨굴 듯이 형의 팔이 아래로 떨어진다. 걷던 걸음을 멈추고 나에게 큰 소리로 말한다. 조금 떨어져서 걸어오시던 작가님과 카메라 감독님이 켄형의 높아진 목소리에 뛰어오시면서 무슨 일이냐 물어보신다.
“빈이 자꾸 이상한 상황극 해요!”
케니형은 끝까지 나의 얼굴을 보지 못하고 제작진에게 얼굴을 돌리며 투정을 부리고 있다.
이제 촬영 시작이니까 긴장하지 말고 자연스러운 모습 보여주면 된다는 조언을 작가님에게 들으며, 나와 케니형은 아무 대화 없이 묵묵히 땅을 보며 걷고 있다.
내가 발견한 기억는 소나무들이 모두 불타고 사라졌는데, 어떻게 된 일이지! 무엇이 잘못 된 거지! 나 말고 또 다른 영혼을 움직일 수 있는 박수 무당이 있었나? 그럴 수는 없다. 그러면 무엇이지?
다른 소나무들의 영혼도 그러면 살아 있을 수 있다는 설정이 만들어진다.
나의 생을 끝낼 수도 있다.
그래, 이생을 끝낼 수 있다!
방금까지 얼어붙었던 근육들이 풀리고 내 뇌에서 아드레날린이 분출된다.
나는 지금 무엇이든 할 수 있을 것 같다. 이제야 내 주위를 다시 둘러보게 된다.
더위에 지쳐서인지 작가님과 카메라 감독님도 촬영을 접고 조용히 숲길을 걸으신다. 그러면서 나는 케니형이 입고 있는 흰 운동화와 흰색 바지가 흙길에 더러워 질까 걱정이 된다. 그리고 형이 입은 초록색과 흰색의 줄무늬가 시원하게 들어간 티셔츠가 여기와 잘 어울린다고 생각한다.
그렇게 한참을 걸으며, 한여름에 맡아보는 이곳의 솔잎 향기가 그리웠다고 생각한다. 소나무 쉼터에 도착해서 케니형에게 기다리게 해서 미안하다는 말을 해야겠다고 다짐한다.
== 4화. 촬영 첫날, 12:00AM 끝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