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댄의 이야기 **
7월 말, 한여름의 늦은 아침 공기는 덥덥하다.
나는 여섯 명의 멤버로 구성된 우리 팀의 리더 역할을 맡은 댄이다. 자발적으로 다 같이 숙소 생활 중인 우리 여섯 명은 새벽부터 같이 움직여 숙소 근처의 샵에서 메이크업과 머리 손질을 하고 의상을 갈아입고, 다시 숙소 근처에 위치한 소속사 내의 연습실에 모여 이곳에서 있을 방송 촬영 대기 중이다.
내 옆에 평상시처럼 무표정으로 서 있는 네오에게 옆구리를 손가락으로 쿡 찌르며 장난을 걸어본다.
네오와 동갑인 나는, 녀석보다 생일이 몇 달 빨라 우리 그룹의 큰 형 노릇을 하고 있다. 그리고, 대외적으로는 멤버들의 맏형으로서 큰소리 내고, 아버지 노릇을 하는 중이다. 하지만 현실은 멤버인 동생들에게 항상 몰이를 당하고, 구박을 당하고, 잔소리를 듣는다. 그래도 대중들을 접하게 되는 방송과 공연을 하면서 프로의 모습으로 동생들이 나를 믿고 따라줄 때라든지, 쑥스러워서 나의 얼굴을 직접 보며 바로는 이야기 못 하고 농담같이 고마움을 전하는 말과 글과 행동을 하는 것을 보면서 혼자 감동의 눈물을 줄줄 흘리곤 한다.
이런 우리는, 오늘부터 2박 3일, 팀원 여섯 명 모두 여름 휴가를 가장한 리얼리티 공중파 예능 프로그램 촬영을 하기로 되어있다. 하지만 삼일 연속으로 이어진 콘서트의 피로와 어제저녁 이번 여름 마지막 콘서트의 흥분이 가시지 않아 잠을 설친 우리는 힘들어하는 모습이 역력하다. 모두 연습실 벽에 기대어 서서 아무 말이 없다.
그러나 누구를 원망할 수가 없다. 무리한 일정인 것을 알면서 우리가 하자고 졸랐다. 지금이 아니면, 멤버 개개인의 스케줄이 너무 바빠 같이 모여 2박 3일 동안 촬영을 할 수 있는 기회가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런 공중파 방송 프로그램에 나가 우리를 알릴 수 있는 기회는 너무나 귀중하다. 우리나라에는 우리와 비슷한 아이돌 팀이 넘쳐나고, 그중에 우리 팀이 국민 예능 프로그램이라 불리는 이 프로그램에 출연할 수 있는 기회는 흔히 찾아오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우리는 너무 잘 알고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 방송국에서는 우리의 스케줄을 기다려 주지 않는다.
이번 우리가 출연하는 에피소드는 멤버 개개인이 서울 시내 안에서, 우리 모두 다 같이 갔으면 하는 장소를 적어내고, 제작진에서 그 장소들 중 다섯 곳을 정하여 2박 3일 동안 찾아가는 형식의 기획이다. 휴가지로 추천한 장소를 멤버들 간에 비밀로 하라는 제작진의 부탁으로, 우리는 아직 서로 서로가 어디를 적어 내었는지 모른다.
우리의 연습실로 촬영을 위해 한 분 두 분 모이기 시작하자, 피로감으로 처져 있던 멤버들이 서서히 움직이기시작한다. 오시는 분들을 향해 힘차게 아침 인사를 하고 웃으며 방송 촬영 준비를 한다.
연습실 안, 우리 여섯 명의 멤버보다 서너 배 많은 인원이 우리를 촬영하기 위해 마주해 계신다.
피디님의 사인에 따라 카메라에 우리의 모습이 담기기 시작한다. 언제나 그렇듯 한 화면에 우리가 다 같이 잡히도록 한 줄로, 어깨가 겹칠 정도로 서로서로 바짝 붙어 서서 우리 팀 구호를 다 같이 외치고, 내가 우리 팀을 소개하고 멤버들이 각자 자기소개를 하는 것으로부터 시작된다.
“메인 보컬 Neo입니다.”
“랩 담당 Nabee입니다.”
“댄스와 보컬 담당 Bean입니다.”
“댄스와 보컬을 담당하고 있는 리더 Dann입니다.”
“메인 보컬 귀염둥이 Kenny입니다.”
“막내 Hyogi입니다.”
언제 피곤으로 처져 있었냐는 듯, 카메라 ON 사인이 들어오자 멤버들은 아직 정보를 받지 못한 휴가지에 대한 기대감으로 펄쩍펄쩍 뛰어다니고 있다.
“우리 막 서로 고생시키려고 이상한 곳 추천한 거 아냐?” 빈의 일침이 날아온다.
“겁보 케니형 맞춤, 귀신의 집, 귀신의 집!”
“너 어디 추천했는지 끝까지 말 안 해주더라, 섭섭해!”
한 멤버의 말 한마디를 다른 멤버가 받아가며 에너지를 더 끌어올리고, 웃음바다로 만들어 촬영을 재미있게 끌고 가고 있다. 여름의 태양만큼 활기차고 젊은 우리의 이십 대 모습이 보기 좋다고 생각하며 나의 진행이 계속된다.
“제작진분들께서 저희 각 멤버들에게서 휴가를 보내고 싶은 장소 추천을 미리 받아 가셨습니다. 그런데, 아직 저희에게 어디로 가는지 알려주시지 않고 있으십니다. 누가 추천했는지, 추천 사연이 무엇인지는 일정에 맞춰 하나씩 알려 주신다고 하십니다.…. 그리고 중간중간 제작진분들이 준비한 다양한 이벤트가 있으니 기대해 달라고 하십니다.”
우리 멤버들은 프로다. 시키지 않아도 자신들이 어느 순간에 무슨 질문과 말을 해주어야 하는지 안다. 나의 진행이 살짝 딱딱하게 계속되는 동안에도
“벌써 11시가 다 되어 가는데, 점심은 언제 먹나요?”
“첫날 오전 일정 담첨된 분은 복 받은 건가요?”
“재미없는 멤버에게 오늘 오전 분량 떠 넘기!”
빈의 재치넘치는 말 한마디가 들린다. 이렇게 서로 대화를 주고받으며 나의 진행이 지루하지 않게 만들어 준다.
그리고, 나는 이제 막 제작진이 건네준 봉투를 열어본다.
“제 손에 드디어 오늘 오전 휴가 장소를 추천한 분의 이름이 있습니다.”
“우리가 처음 가야 하는 장소를 추천 한 사람은… “
“둥둥둥둥”, “두둔두둔”, “둥등둥등”, “두두두둥”, “두두두두”
누가 시키지 않았는데, 서로 미리 말 맞추어 본 것도 없는데, 나머지 다섯 멤버들이 같이 화음과 화성을 넣어 내가 장소 추천자의 이름을 읽기 전 긴장감을 넣어 준다.
“나비!”
“장소 추천해주신 나비에게 진행을 넘기도록 하겠습니다. 나비에게서 이 장소를 추천한 사연을 먼저 들어 보고, 추천 장소로 가서 나비의 관광 가이드 실력을 보도록 하겠습니다.”
나의 마지막 멘트를 끝으로 나는 진행을 나비에게 넘긴다.
진행을 넘기며 잠시 끊어진 촬영. 효기가 핸드폰을 꺼내 열심히 우리의 잠깐 쉬는 시간을 촬영하는 중이다. 우리가 자유 시간마다 무엇을 하는지 궁금해하는 팬분들을 위해, 우리는 이렇게 촬영이 쉬어 갈 때마다, 우리의 방송 이외의 자연스러운 모습을 핸드폰으로 촬영해서 우리만의 인터넷 방송용으로 편집해 팬들과 공유할 계획이다. 이 촬영의 담당은 효기와 그의 핸드폰이고, 보조 촬영은 케니이다. 촬영기술이라고는 1도 없는 ‘코코형제 인터넷 방송 촬영팀’이 무엇을 찍을지 벌써부터 걱정이다. 시원하게 뻗은 콧날을 가졌다고 팬들이 둘을 묶어 지어준 별명까지 써가며 촬영팀을 만든, 두 사람의 의욕을 믿어 보기로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