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비의 이야기 **
내가 영혼이라는 것의 의식을 느끼고 눈을 떠 처음 바라보고 있는 것은 흰색의 한복과 두루마기, 그리고 그 위에 청색의 괘자를 잘 차려입고 갓을 쓴 선비이다. 가슴팍을 가로질러 매어놓은 관자가 그의 건장한 체격이 잘 드러나도록 해주고 있다. 그런 그는 나의 나무둥치 앞에 서서 나를 마주 보며 눈을 감고 주술을 외우고 있다.
“나비이라 아미브하아..”
그의 주문을 들으며 의식을 깨워, 처음 느껴보는 바람이 여름이라고 말해주고 있다. 바람에 스치는 나의 솔잎 소리가 시원하다. 산을 힘들게 타고 온 듯, 바람을 타고 오는 선비의 싱싱한 땀 냄새가 그의 중저음 목소리의 주술과 함께 나의 기억에 각인 된다. 그리고, 나의 가장 높은 가지 끝, 새 둥지에서는 먹이를 받아먹느라 시끄러운 새끼 수리부엉이의 소리가 들려오고 있다. 이 모든것들이 아름답다.
나를 깨운 이 선비는 내가 깨어나고 조금 후 주술 외우기를 멈추고, 나에게 가까이 다가와 한 손을 들어 나를 쓰다듬으며 ‘잠시만 기다리시게.’ 라는 말을 한다. 그렇게 그 젊은 선비는 나에게 이 한마디 말을 남기고, 나를 혼자 남기고 뒤돌아 걸어간다.
뒤돌아 저만치 걸어가는 이 선비를 바라보고 있었던 것은 나만이 아니었다. 저 멀리 있는 나무들 뒤에 자신의 모습을 숨기고들 있어 알아차리지 못하였지만, 검은 옷을 입은 세 명의 남자가 사방에서 몸을 내밀며 나타난다. 그 중 두 명은 조용히, 멀어져 가는 흰옷의 선비가 눈치채지 못하도록 그를 뒤따르고, 나머지 한 명이 나에게 다가온다. 주위에 누가 있는지를 살피고는, 허리춤에 차고 있던 단검을 꺼내어 자신의 가슴팍 높이쯤 되는 나의 나뭇등걸에 커다란 X자를 새겨 놓고는 나머지 사람들이 사라져간 방향으로 급히 뛰어가 버린다.
이렇게 나의 영혼이 깨어난 첫날은 알 수 없는 궁금증만을 남기고 조용히 저문다.
그리고 그다음 날, 새벽 아침 해가 떠오르는 그때, 어제 흰옷을 입은 선비를 쫓던 검은 옷의 남자 둘이 손에 횃불을 들고, 마른 장작을 짊어지고 숲에 다시 나타난다. 그들은 조용히 나에게 다가와 어제 새겨놓은 내 나뭇등걸 위의 X자를 확인하더니, 나의 나뭇등걸 주위로 마른 장작을 쌓기 시작한다.
횃불을 든 남자 둘은 연신 주위를 경계하기 바쁘다. 장작들이 내 등걸주위에 다 쌓이자, 횃불을 든 남자중 한명이 ‘우리를 용서해 주시게’ ”라는 말을 한다.
그리고, 횃불을 장작들 속에 박아 넣어 나에게 불을 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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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지.마!”
“울.지.마!”
“울.지.마!”
팬들의 응원에 정신을 차린다.
내가 처음 영혼의 눈을 뜬 그때의 그 장면을, 매회 콘서트의 이 무대, 이 노래 순서가 될 때마다 기억해 내고 눈물을 흘린다.
‘넌지시 네가 떠오르죠. 그저 그런 날 속에 가끔 이런 날은 오히려 내 기분을 좋게 만들죠. 기억나니 우리의…’ 라는 구절을 부를 때는 아무리 마음의 준비를 해도 소용이 없다.
무엇 때문인지 모르겠다. 그 선비가 말한 잠시만 기다려 달라는 말 때문인지, 인간이 되어 차곡차곡 피땀으로 만들어 가고 있는 이 자리 때문인지. 어쩌면 앞만 보고 달려온 나 자신, 나비에게 잘했다고, 잘하고 있다고 칭찬의 눈물을 흘리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노래하는 가수가 되어 무대에 서는 일.
인간이 된 이후로, 어린 소년이었을 때부터 꿈꾸어 왔던 일이다. 어릴 적 팬들과 같은 저 관람석 자리에서 나의 우상인 가수의 무대를 바라보며 언젠가는 나도 저 무대 위에서 노래해 보았으면 하고 꿈으로만 바라던 일이 실제로 일어나고 있다.
우리 팀의 멤버들 여섯 명은 이제 겨우 이십 대 초반의 나이들이지만 열정과 연습으로 팀을 밑바닥에서부터 지금의 자리로 끌고 왔기에 서로가 서로에 대한 믿음과 사랑이 어느 팀보다도 끈끈하다. 우리 팀 막내 라인인 나와 빈과 효기는 다른 모든 것을 포기하고 우리의 꿈을 좇아 십 대의 나이에 연습생이 되었고, 연습생이 된 이후로는 숙소 생활을 같이하는 팀의 댄형, 네오형,케니형이 우리를 키우다시피 했다. 무대위의 공연을 위해 연습생 시절부터 하루에 열 시간에 가까운 춤과 노래 연습을 함께 그리고 따로, 끊임없이 같이 한 우리는 이제 서로를 믿고 의지하는 가족이다. 그리고, 나는 매번 이런 콘서트가 현실이 되게 하여준 우리의 팀원들과 팬들, 그리고 내가 아는, 나를 아는 모두를 사랑한다. 이런 사랑하는 사람들과 함께 감동의 무대를 만들어 가고 있는 나는 팀에서 작사, 작곡, 랩, 프로듀싱을 담당하는 나비이다.
콘서트홀 중앙의 둘출무대 위, 둥글게 둘러앉아 공연하는 ‘나비’라는 내 모습에 다시 집중한다.
‘울.지.마!’를 외치는 팬들을 향한 막내 효기의 ‘누가 울었다고 그래요? 우리 안 울었어요.’ 라는 멘트에 내 가슴속의 흥분을 가라앉힌다. 그리고는 팬들에게 눈물 흘리는 내 모습 보이기가 부끄러워져 나는 하늘을 보고 고개를 휘저어 본다.
다음 무대를 향해 자리 이동을 하는 우리. 돌출무대 뒤쪽에 자리한 메인 무대 위의 공연을 위해 세 사람씩 좌우로 나뉘어, 복도식 무대를 따라 걸어간다. 울음을 삼켜서 아직 아무 말도 하지 못하는 내 옆으로 펑펑 울던 케니형과 빈이같이 걸어가 주고 있다. 그들은 프로답게 다시 웃는 얼굴로 어쩌면 그렇게 소리까지 내면서 펑펑 울 수 있냐며 서로를 놀리며 걸어간다. 하지만, 감정을 추스르지 못해 여전히 아무 말도 못 하고 묵묵히 걷기만 하는 나에게 빈이 다가와 옆에서 걸으며 한 손을 들어 어깨를 쓰다듬어 준다.
몇백 년 전 그날, 그 선비가 나의 나무둥치를 쓰다듬던 손길같이 느껴진다.
문득.
무대 위에서 춤과 노래와 눈물로 젖은 빈에게서, 내 영혼의 의식을 깨우는 주술을 외우던 그 선비의 싱싱한 땀 냄새가 난다고 생각했다.
지금도 그때와 같은 여름이다.
== 1화.콘서트 마지막 날 끝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