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퉁이 #01 사서 ver.>
여느 때와 같이 소재에 대해 생각을 하던 나는 배가 슬슬 고프기 시작했다. 늦은 시각 편의점을 들려 나오는 길이였다. 편의점에서 간단하게 먹을 것을 사고 들뜬 마음으로 가고 있었다. 앞뒤로 바이킹을 타듯 봉지의 소리가 요란하게 났다. 이걸로 뭘 해 먹을까. 집에 뭐가 더 있지? 생각하며 들떠 있었다. 그렇게 가던 중 몸의 안쪽에서 요동치기 시작했고, 위가 허해지기 시작했다. 더 팔을 흔들 수도 없고 둥둥 떠다니는 기분으로 집으로 향할 수 없었다. 위에서 위액이 조금씩 올라와 식도를 자극했다. 빨리 돌아가야 할 것 같은 느낌이다. 마실 거라도 하나 살 걸 그랬나? 나는 한숨을 쉬며 앞쪽에 보이는 모퉁이를 돌기 위해 조금 빠르게 걷고 있었다. 첫 번째 모퉁이를 돌고 두 번째 모퉁이에 다다를 때쯤 앞쪽에 사람 형태의 모습이 보였다. 섬뜩한 기운이 느껴졌다. 그 사람이 날 바라보고 있는 듯했다. 흠칫했다. 얼굴은 역광이라 비치지 않고, 모자까지 써 사람의 표정이나 모든 게 보이지 않았다. 그에 대응하는 멋쩍은 웃음을 지었지만, 모퉁이의 사람은 움직일 기미가 안 보였다. 그 사람은 무언가 들고 있었다. 무단투기하는 사람인 것일까. 최근 집 앞에 쓰레기가 많이 버려져 짜증 나던 참이었다. 나는 그가 그 행위를 하는 사람이란 걸 확신 할 수 있었다.
“저기요. 쓰레기 버리면 안 돼요.”
내가 몇 걸음을 나아갔을까. 한 네 발자국 정도 나아갔을 때, 갑자기 그 모퉁이의 사람이 움직였고 내가 있는 방향으로 몸까지 틀었다. 그리고 그의 손에 반짝이는 무언가를 보았다. 누군가가 내 발목을 잡고 있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더 앞으로 나갈 수가 없었다. 그렇게 내가 멈춰 선 지 5분이 지났을까. 나는 그 시간 동안 숨도 마음대로 편히 쉬지 못한 것 같다. 내가 잘못 본 것이다. 라는 생각으로 모퉁이를 다시 지켜보았다. 그렇게 자세히 보던 중 모퉁이의 사람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아씨. 헛것이 아니잖아.”
고개를 어깨너머로 돌리며 작게 말했다. 심장 소리가 서서히 크게 들리더니, 경적을 울리듯이 크게 울려 퍼지기 시작했다. 혹시 나에게 오려는 것일까. 아니면 그냥 지나갈 것일까. 제발 후자였으면. 아마도 신이 나의 바람을 들었나 보다. 그 모퉁이의 사람은 내가 있는 쪽이 아닌 반대쪽으로 걸어나가고 있었다. 그 순간 나는 온몸에 힘이 빠져 그 자리에 주저앉고 말았다. 한숨이 저절로 나왔다.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집으로 가기 위해 움직였다. 그 모퉁이의 사람의 여운이 가시지 않는지, 모퉁이에 가까워질 때, 모퉁이를 돌 때 나는 숨을 죽여 그 자리를 빠져나와 집으로 곧장 들어갔다.
긴장해서 그런지 더욱 허기가 짐을 느꼈고 힘마저 빠졌다. 소파 위에 대자로 침대처럼 뻗었다. 그리고 아무것도 생각하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모퉁이의 사람 때문에 쉽게 머릿속이 비워지지 않았다. 그리고 그가 들고 있던 것. 내가 잘못 본 것이 아니다. 꿈이길 빌었으나 그렇지도 않았다. 모퉁이에서 뭘 하고 있었던 걸까. 한 참 고민하고 있던 나는 일어서 창문 쪽으로 걸어나갔다. 모퉁이 바로 앞. 2층. 우리 집이다. 그가 혹시 다시 나올 것인가. 궁금했다. 창문 앞쪽에 몸을 밀착시킨 채 기다렸다.
진한 검은색이 점차 색이 입혀지더니 형태를 드러냈다. 사람이었다. 그 사람은 좌우 앞뒤 확인하는 듯했다. 사람이 있으면 안 된다는 것처럼. 그리고 내가 있는 곳을 바라봤다. 계속. 불이 꺼지길 바라는 것인가. 나는 혹시 하는 마음에 불을 껐다. 역시 예상이 맞았다. 그는 그제야 고개를 돌리고 자신이 하려던 행동을 하려고 했다. 그의 행동을 살폈다. 무언가 보이긴 하지만 정확하게 보이지 않았다. 도대체 뭘 하는 걸까. 나는 방으로 혹여 소리가 날까 봐 발끝을 세워 살금살금 걸어갔다. 어렸을 때 이후로 안 쓸 줄 알았는데. 먼지가 얇게 깔린 쌍안경을 꺼내 툭툭 털어 내며 창문으로 다가갔다. 하지만, 내가 다녀온 사이 이미 그는 떠나고 자리에 없었다.
꽉 움켜쥐고 있던 무연의 양손이 힘이 빠지더니 주먹이 풀렸다.
<현>
무연은 듣는 내내 긴장했는지 양손 손 줄기에 땀이 흐르며 빛이 나고 있었다. 그리곤 무언가 허무함에 빠진 듯 온몸에 힘이 빠졌다. 무연만이 그런 것이 아니다. 다른 2명도 허탈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관오는 미간에 힘을 주며 말을 했다.
“이야기 속 그 모퉁이의 사람이 그 일의 장본이라는 증거가 없지 않습니까?”
그 말을 뒤로 관오는 한숨을 내뱉었다. 이래 봤자 정황밖에 늘어놓는 꼴밖에 되지 않으니. 지금 사서의 짧은 이야기와 말로는 음악을 들을 때 도입부 밖에 듣지 않은 느낌이었다. 그 음이 사람들을 긴장하고 빠져들게 할 때쯤. 갑자기 끊기는 느낌. 그들은 아직 이야기가 끝나지 않았다고 생각했다. 특히 인비는. 뭔가 뒤가 구린 느낌을 받았지만, 그걸 캐내려고 하지 않았다. 숨길만 한 이유가 있으니 하지 않았겠지. 하지만 그의 말이 본 것이. 방금 말한 것이 다라면, 말을 하지 않으려고 한 것은 그가 말했던 것과 같이 정황이 뚜렷하지 않았기에 말을 하지 않을 것일 수도.
"이야기를 종합해 보면, 어떤 사람이 사건 현장에 있었고, 무언가 꺼림칙했다. 다시 보려 했지만 못 보고 돌아섰다는 거죠? 그 당시 봤던 것이 정말 살인범이라면 심증은 있지만 관오씨의 말처럼 증거도 없고 정확하게 본 것이 아니니, 섣불리 판단할 수는 없을 것 같네요.”
역시나 인비는 웃으면서 자신의 의견을 이야기하였다. 무언가 평온하면서 가시가 서 있는 말투였다. 그녀는 손목의 메탈 시계를 바라보더니 의자에서 일어나며 죄송한데 해산해야겠다고 말을 했다. 인비를 제외한 3명은 고개를 갸우뚱하며 그녀를 바라봤고, 인비는 업무가 아직 남았다고 말을 했다.
"아. 제가 어디 병원 의산지 말씀 안 드렸네요. 이 위쪽. 정신병원에 정신과 의사예요."
인비는 두 손바닥을 맞대며 선량한 웃음을 지으며 그들에게 말을 한 뒤 먼저 가보겠다는 말을 건넸다. 차후 모임은 다음에 또 메일로 보내겠다고. 그땐 시간을 많이 가지고 이야기를 하자고 말이다. 그들은 알겠다는 의사를 보내고 해산을 하려던 참이었다. 사서가 무연을 불러 세웠고, 같은 동네니 같이 가자는 말을 했다. 무연은 아직 불편한 사서였지만, 어차피 계속 만남을 이어가야 한다면 같이 가면서 말을 터도 괜찮을 것 같았다. 무연은 사서와 함께 역으로 향하였다.
어느덧 지하철역에서 내렸다. 사서는 오는 내내 무연에게 말을 걸지 않았다. 이렇게 침묵 속에 사서가 물었다.
“무연씨, 무연씨는 궁금한 점이 없어요?”
무연은 멍하니 바라보았다. 어떤 말을 해야 할지 감이 잡히지 않는 그였다. 사서는 말없이 계속 땅을 바라보고 있는 무연을 모습을 보곤 피식 웃었다.
“무슨 생각을 그렇게 골똘히 해요?”
고개를 사서에게 돌리며 무연은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 손사래를 쳤다. 그리고 다시 걸었다.
-뭘 궁금해야 하는 걸까
“뭘 궁금해야 하는 걸까.”
무연은 땅을 바라보며 말을 했다. 그 뒤 우뚝 선 채로 사서를 바라봤다. 혼자만의 생각이 입 밖으로 나온 것이 조금 부끄러웠다.
“아니. 그게 아니라. 속마음이.”
자신이 말을 하면서도 붉어지는 볼을 어루만지는 무연이었다. 사서는 그런 무연의 모습에 같이 멈춰 서며 자라의 목처럼 앞으로 갔다가 뒤로 움직이며 호탕하게 웃었다. 의외의 무연의 모습에 사서는 마음에 들었는지 무연의 어깨에 자신을 팔을 두르며 편한 사이로 지내자고 말을 했다. 무연 또한 불편한 사이는 거북하니 그러자고 했다. 사서는 기분이 좋은지 어깨 위의 팔을 풀어 무연의 손을 덥석 잡고 휙휙 휘두르며 동네에 아는 이웃도 없었는데 잘된 일이라며 잘 지내보자고 했다.
"큼! 자기소개를 다시 해볼까?"
주먹을 쥐어 헛기침하더니 사서는 집중하라는 듯 무연에게 말을 건넸다. 무연이 사서를 물끄러미 쳐다보니 스는 자신의 이름하고 직업만 알지 않느냐며 자신의 이야기를 해준다고 했다. 그들은 걸어가던 중 갑자기 내리는 비에 버스정류장 앞 벤치에 앉아 비가 멈추기를 기다리며 이야기를 했다. 잠깐의 소나기가 내리는 것 같았기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