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게 무슨 소리요. 황자가 사라지다니! ”
최소한의 내관과 상궁만을 대동한 채 청과 화연이 수의 전각인 현해궁에 도착했다.
미리 도착한 황후가 창백해진 얼굴로 청을 마주했다.
달달 떨리는 입술이 어미인 황후의 심정을 대변했다.
“ 대체 어찌 된 일이냐. ”
혼이 나간 황후의 손을 잡으며 황자의 보모상궁에게 청이 물었다.
가녀린 황후의 손은 지아비의 품에서 더 떨기 시작했다.
“ 그, 그것이... 산보를 나갔다 황자마마께서 술래잡기를 하고 싶다 하셔서, 잠시 눈을 뗀 사이에... 그만... ”
“ 대체 지금 그것을 말이라고 하는 것이냐! ”
보모 상궁의 말에 청이 소리를 질렀다.
목소리를 높인다고 될 일이 아님을 알기에 청은 손을 들어 이마를 짚으며 화를 다스렸다.
“ 폐하, 소첩의 잘 못이옵니다. 소첩이, 소첩이 덕이 부족하여... 흐윽.... ”
황후보다는 어머니로서 소진이 흐느끼기 시작했다.
아버지인 영의정과는 다르게 소진은 천성이 유하고 여린 여인이었다.
“ 황후, 어찌 그런 소리를 하시오. 다 괜찮을 것입니다. 지금 이렇게 약해지시면 안 됩니다. ”
“ 폐하... 흑, 흐윽... ”
그렇기에 정치 구조 상 그녀를 황후로 맞아야만 했을 때도 청은 군말 없이 따랐다.
가녀린 몸이 눈물로 범벅된 힘겨운 숨을 토했다.
“ 폐하의 말이 맞사옵니다, 마마. 분명 황자마마께서는 궁 안에 계실 것이옵니다. ”
화연 또한 황후의 몸을 지탱하며 말했다.
황후는 혼인 직후에 제 지아비가 다른 정인을 맞이하는데도 웃어주었던 사람이었다.
그 후로도 황제의 사람이라며 화연을 극진히 대접해 준 여자였다.
주작이라 천하다며 남들이 손가락질해도 황후는 화연을 감싸주던 사람이었다.
“ 귀비... 흑, 흐윽... 미안하오... ”
“ 아닙니다. 마마. 이럴수록 굳건하셔야 하옵니다. 폐하, 잠시만 담소를 나눌 수 있을까요. 아까 미처 해드리지 못한 이야기가 있사옵니다. ”
수는 그런 소진과 청의 아이였다.
천성이 밝고 따뜻한 아이는 어릴 때부터 화연을 따랐다.
화연이 일어나며 청을 불렀다.
금방 화연을 따라 일어선 청이 소진에게서 떨어져 화연의 말을 들었다.
“ 폐하, 결단을 내리셔야 하옵니다. 궁 안의 황군은 최소 경비 인력만 남긴 채 모두 수색 중입니다. 하오나 아직도 소식이 없다는 건... ”
“ .............. ”
청이 입술을 물었다.
화연 또한 마음이 찢어지는 걸 느꼈으나 담담한 척 하며 말을 이었다.
“ 귀비는 이것이 누구의 소행 같소. "
" 아뢰옵기 황공하오나 아직 도착한 괴한들의 서신이 없사옵니다. 또한 사라질 당시에 같이 있던 상궁과 내관들이 황자마마로부터 눈을 뗀 것도 잠깐이라 하옵니다. 게다가 그날따라 황자마마께서 호위무사에게 빙과 먹기를 권했는데 그게 탈이 나서 당일 산보에 동행치 못했다 하옵고, 황자마마께서 다른 임시 호위무사를 극렬하게 거부하였다 하옵니다. “
“ ................ 그래서. ”
“ 소인의 좁은 식견과 바람은....... ”
“ ...................... ”
“ 황자마마께서 스스로 궁을 벗어나신 것으로 사료되옵니다. 송구하옵니다. ”
화연이 애통함을 감추며 고개를 숙였다.
청이 그 모습을 바라보다 허, 하고 바람 빠지는 소리를 냈다.
커다란 손으로 마른 세수를 한 번 하더니 화연을 보며 말했다.
“ 나 또한 생각이 같소. 대체 이게 어찌 된 일이란 말이오. 문제는 지금부터요. 황자가 입던 옷을 그대로 입고 나갔고, 그대로 밖에서 신분을 들켜 괴한이라도 만난다면.... ”
“ 마마. ”
“ 은밀하게 황군을 동원해 도성을 샅샅이 뒤지라 명해야겠소. 시간을 지체해서는 안 되오. 귀비도.... 마음 단단히 먹으시오. ”
화연이 자신을 보는 청의 눈길에서 걱정을 읽었다.
자신마저 생각해주는 따뜻함이 마치 옛날로 돌아간 듯 했다.
화연이 쓸 데 없는 감상을 벗어내며 굳은 목소리로 답했다.
“ .......... 황명 받잡겠사옵니다. ”
화연이 문을 연 순간이었다.
쩌억.
하늘이 갈라지는 소리가 나더니 천둥이 뒤따랐다.
쏴아아아아------
순식간에 물줄기가 온 세상을 덮쳤다. 화연이 청과 소진을 뒤돌아보았다.
모두 같은 근심으로 애가 달았다.
“ ............ 서두르겠사옵니다. ”
화연이 한 치의 망설임 없이 빗줄기로 뛰어들었다.
놀란 상궁이 비가리개를 들고 뒤따르며 화연의 빠른 보폭을 맞추었다.
* * *
“ 아바마마는 자맹 갈 때 어느 길로 가셨었을까아... ”
잠행.
어린 수는 그 말을 제대로 발음하지도 못한 채 길을 찾았다.
아무도 없는 길을 빠져나온 후 사방을 두리번거렸다.
여기저기서 울리는 산짐승 소리에 몇 번이나 놀랐지만, 뒷걸음질 치지 않는 걸음이 굳건한 수의 마음을 대변했다.
“ 분명 궁에서 가까이 사는 도성 사람들한테도 배울 수 있지만, 멀리가면 갈수록 많은 이야기를 들을 수 있다 하셨는데에.... ”
수가 손가락을 꼼지락 거리며 연신 손에 들린 지도를 보았다.
5살된 어린 수가 그것을 제대로 볼 리 만무했지만 그것이 생명줄인 양 잡은 어린 손이 간절했다.
“ 자맹을 자주 다녀야 참된 군자가 될 수 있다고 하셔써! 가자아! ”
수가 청의 목소리를 회상하며 길을 잡았다.
‘ 황자, 잠행이라는 것을 아느냐. ’
‘ 자맹? ’
‘ 하하, 잠행이다. 잠-행. ’
‘ 자맹이 무엇입니까? ’
‘ 하하. 황제로서 꼭 해야만 하는 것이지. ’
정답게 정원을 거닐던 어느 날 청과 나누었던 대화였다.
‘ 평소 우리 황족 사람들은 이 궁궐에만 살지 않느냐. 궁궐 밖 백성들의 이야기를 종이로, 또 신하들을 통해서만 접하지 않느냐. ’
‘ 맞사옵니다! ’
‘ 하지만 참된 군자라면 백성들이 어찌 살아가는 지, 무엇이 불편하고 무엇이 그들을 괴롭게 하는 지 직접 공부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궁궐 밖을 나가 그들을 살펴야 해. ’
‘ 우와, 맞는 말이시옵니다! ’
‘ 근데 황제의 앞에서 백성들이 평소처럼 지낼 수 있겠느냐? 불가능하지. 그래서 잠행이라는 것을 나간다. 백성들 중 하나인 것처럼 위장을 하고, 그들의 삶에 녹아들어 배우는 것이다. ’
‘ 그럼 거짓말을 하는 것이옵니까아...? ’
‘ 하하하.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구나. 하지만, 그들의 진정한 매일을 알기 위한 어쩔 수 없는 거짓말이다. 이 아비 또한 황자 시절부터 많은 잠행을 다니며 그들의 삶을 지켜보고, 또 배우고 익혔다. 대신 절-대! 신분을 들켜서는 안 된다. 절대! 우리 황자도 조금만 더 크면, 이 아비와 함께 잠행을 나가자꾸나. ’
‘ 우와, 좋사옵니다! ’
그 때부터 수의 마음에 잠행이라는 행동이 환상처럼 움텄다.
궁 밖을 나갈 수 있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는 아이였다.
궁에서 나고 궁에서 자란 아이.
그것도 탄생과 더불어 청의 후계를 이을 자로 지명된 고귀한 혈통이었다.
청과 소진, 화연이 말려도 신하들의 과잉 보호는 계속됐고, 수는 그 속에서 답답함을 느끼던 참이었다.
‘ 어? 저기 구멍이 있네에? ’
어느날 산보를 하다 성벽에서 발견한 조그만 틈을 보고 수의 마음에 생각이 하나 떠올랐다.
저기로 혼자 잠행을 갈 수 있겠다!
그리고 그 계획이 이렇게 실행된 것이었다.
어린 마음에 치밀하게 준비한 것인지 행색도 황자복을 벗은 흰 속옷 차림이었다.
개구멍을 기어서 빠져나오고, 몇 번 돌부리에 걸려 넘어져 옷이고 얼굴에 흙이 묻어 지저분했다.
다시 수가 두리번거리는데, 왠 사내 아이 무리가 수에게 다가왔다.
“ 이거 완전 거지 아닌겨- 야, 꼬맹아, 아서라. 여기는 네 구역이 아닝께! 왕놈이 오면 너를 가만 안 둘 것인 게 썩 꺼지라! ”
“ 아니야! 거지 아니야! ”
혼자 돌아다니는 수를 보고 동네 꼬마들이 한 소리씩 했다.
흙이 온 몸에 범벅이고, 머리는 여기저기 뻗혀 있는 수의 행색을 놀렸다.
놀리는 소리에 화가 난 수가 우는 소리를 냈지만 아이들의 놀림은 멎을 줄 몰랐다.
“ 엄마 젖도 못 뗀 게 어디서 주소 잘 못 찾아와 이럴까잉. 배도 고파 죽겠는디 썽 나서 더 배고프게 하네! ”
“ 배고파? 왜 배가 고파? 밥을 안 먹었어? ”
우는 소리를 내던 수가 아이의 말 꼬리를 잡으며 물었다.
반짝반짝 빛나는 수의 눈이 궁금함의 정도를 보여주고 있었다.
“ 니미럴, 니는 배가 안 고프냐잉. 다 아는 처지에 어디서 질문질이여, 질문질이! ”
“ 아니야, 몰라! 왜 배가 고파? ”
집요한 질문이었다. 아이들이 어이가 없다는 듯 웃었다.
그 중 대장으로 보이는 아이가 손지검을 하려 손을 들어올리며 소리쳤다.
“ 허참, 이걸 확!! ”
“ 으허엉...! ”
수가 두 팔로 머리를 감싸며 울음을 터뜨리려는데 순간이었다.
“ 너희들 애한테 뭐하는 짓이야!! ”
“ 아씨, 더러운 지랄종 왔다. 튀자. ”
목소리의 주인공은 수보다 머리 하나가 큰 여자아이였다.
여자 아이의 등장에 남자 아이들이 소근댔다.
“ 빨리 싹 다 안 꺼져?! ”
아까 사내 애들이 했던 것처럼 손지검을 할 듯 여자 아이가 손을 쳐들었다.
사내 아이들이 우르르 도망가며 말했다.
“ 내가 청룡이었으면 불길한 니년을 뒤지게 했을겨! ”
“ 빨리 꺼져!! ”
사내아이들의 말이 씨알도 먹히지 않는 다는 듯 여자 아이는 다시 발을 구르며 위협했다.
어느새 사내아이들이 모두 사라졌다.
“ 히잉... 고맙습니다아... ”
“ 넌 어디에서 온 애야, 못 보던 앤데. 아우, 흙 다 묻은 것 봐. 어디에 넘어지기라도 한 거야? ”
“ 어 그게, ...... ”
수의 앞에 쪼그려 앉은 여자 아이가 수의 몸에 묻은 흙을 털어주며 물었다.
수가 대답하기 난처한 듯 말꼬리를 흐렸다.
“ 사연이 있으면 다 대답 안 해도 돼. 길을 잃은 건 아니지? ”
“ 네에... ”
여자 아이의 물음에 수가 우물쭈물 대답했다.
“ 갈 곳은 있는 거야? ”
“ 안니요오.... ”
“ 이런 밤에 무슨 일이야. 우리 집에 하루 지내다 갈래? ”
수의 몸에 묻은 흙은 대충 다 털어낸 여자아이가 물었다.
손에 묻은 흙을 박수를 치듯 털며 수를 바라보는 여자 아이였다.
“ 네! ”
수가 대답하자 여자아이가 얼른 웃으며 수의 손을 잡아주었다.
“ 너 가서 씻어야겠다. 어? ”
“ ?? ”
여자 아이가 수와 잡은 손을 떼며 물었다.
“ ................... 너, 청룡이니? ”
여자 아이의 눈빛에 의구심이 가득했다.
수가 당황해 하며 손을 내저었다. 들키면 안 된다. 어린 생각이 온 몸을 지배했다.
“ 아니야, 나는! ”
일반인이라고 해야 하는 걸까. 무엇이라 해야 하지.
절대 황자임을 들켜서는 안 된다고 하셨는데.
어설프게 거짓말 했다가 들키면 안 되는데...!
어린 수의 머릿속에 여러 가지 생각이 팽팽 맞부딪혔다.
하필이면 나온 대답은 최악의 선택지였다.
“ 나는 주작이야! ”
여자 아이의 눈에 스친 살기를, 어린 수는 눈치 채지 못했다.
그 때였다.
쏴아아아아아아아아----------
순식간에 비가 덮쳤고, 사방이 젖기 시작했다. 수도, 여자아이도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빗물조차 아이의 살기를 거두어가지는 못했다.